임상, 상담 영역에는 일종의 트랜드가 있습니다. 먼 과거에는 우울증이 있었고 몇 년 전부터 성인 ADHD가 유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가 관심을 받고 있죠. 명칭이 그래서 그렇지 자살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내담자가 자해를 한 적이 있다고 하면 어떤 임상가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해도 이유와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심각도의 순으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1. PTSD에서 보이는 자해
: 주관적인 고통감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고통감을 상쇄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입니다. 내담자가 겪는 고통감이 비현실적인 수준이라 그야말로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냄으로써 현실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하는 겁니다. 칼로 하는 자해가 가장 많으며 자상을 입으면 느끼게 되는 날카로운 고통감과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를 보면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면서 내가 미쳐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잠시나마 느끼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게 됩니다. 고통감이 심해질수록 자해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빠른 개입이 필요합니다. 심리평가 결과도 당장 입원을 시켜서 수검자를 보호해야 하나 싶은 수준으로 심각한 상태로 나옵니다. 손목 자해만 해도 다른 목적의 자해에 비해 깊게 긋기 때문에 상처가 깊게 나고 손상 정도도 심한데 만약 약물이나 hanging, 투신 등의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자살 성공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우울 장애에서 보이는 자살 위험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개입하는 게 안전합니다.
2. 파괴적 관심끌기인 자해
: 자해가 의지 대상(부모, 애인, 보호자 등)의 관심을 끄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관심, 애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거죠. 파괴적 관심 끌기의 수단은 항상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고자 하는 대상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해인지를 확인하면 입증됩니다. 관심을 받는 게 중요한 LHL, HLH 기질 유형 등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관심을 받고 싶을 뿐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처 없이 극적인 자해 위협이나 협박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자해를 하더라도 손상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손목 자해의 경우 꿰맬 정도의 상처가 나지 않음).
3. 방어 행동인 자해
: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자해 협박(또는 시도)를 하는 경우입니다. 지나치게 억압적이거나 통제하려는 부모, 주 양육자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압력을 경감시키거나 기대를 좌절시키려는 목적으로 자해를 사용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파괴적 관심끌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자해보다 위험도가 낮아보이지만 투신 등 역전 불가능한(시도하면 되돌릴 수 없는) 협박을 사용하는 경우는 실수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해 시도의 치명도(fatality)를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 지향적인 우리나라 문화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HML, LML 기질 유형인 자녀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 행동입니다.
자해는 자살 위험성 평가만큼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향후 상담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고 임상가와 라포를 형성하는데도 중요하기 때문에 자해의 목적을 이해하는 건 임상가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에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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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워낙 자해(Non-Suicidal Self-Injury)가 유행이기도 하고 정서행동특성평가에서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의뢰되는 청소년들도 많다 보니 내담자들의 자살 가능성에 예민해진 상담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supervision 때 자살 위험성 평가나, 자살 예방 상담, 자살 방지 대책에 대한 질문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요지를 정리해보면 '내담자가 과연 자살을 시도할까요?', '내담자가 안 죽게 하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내담자인 것 같은데 병원에 입원시키는 게 좋을까요?', '내담자가 죽으면 어떡하죠?'처럼 내담자가 죽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감당하지 못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묘책을 물어보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더군요.
상담을 오래 하다보면 내담자를 잃는 경험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건 상담자의 숙명과 같은 것이어서 피하려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다고 안도할 일도 아니고, 반대로 자주 경험한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2009년에 제 내담자를 잃은 이후 그 여파가 굉장히 오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포스팅 참조). 그 이후로 자살과 관련된 공부도 많이 했고 상담자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도 정리해서 연속으로 포스팅을 하기도 했죠.
자살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상담에 의뢰된 내담자를 상담할 때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를 죽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걸 자주 봅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내담자를 더 절망에 빠뜨려서 의도와 반대로 죽음의 길로 인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무게감이 같지는 않지만 제가 주로 했던 도박 중독 상담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가족들은 도박을 끊게 하려고 중독자를 데려오고, 상담자 역시 중독자를 망가뜨리는 도박을 멈추게 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합니다. 그러니까 도박을 못 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알고 보면 그게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지만 설사 도박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은요? 한 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그렇다고 믿었던) 도박을 빼앗긴 도박자에게는 무엇이 남죠? 도박을 멈추는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도박을 멈추지 않고서는 도박 중독 치유가 끝나지도 않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도박을 멈추게 하려는 모든 노력이 중독자가 아닌 주변인의 관점에서 본 접근법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다시 자살 위험성 문제로 돌아와서 내담자가 자살을 이야기할 때 내담자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족도, 상담자도, 하다못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학교, 군대, 회사 등 조직조차도 내담자의 자살은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담자는 어떨까요?
내담자가 왜 죽고 싶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공통된 이유 중 하나는 살아야 할 희망이 없다고 느껴서입니다. 살 희망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벌려면 일단 죽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살방지서약서 작성을 요청하고, 자살 위험성이 있으면 비밀보장을 할 수 없으니 부모에게 알릴 수 밖에 없다며(내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나를 죽지 않게 하는데만 골몰하는 상담자를 보면 내담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는 안 될 이유를 찾으려는 상담자를 보면 든든하고 의지가 되고 상담자를 한번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살아보려는 마음을 먹게 될까요?
도박을 그만두더라도 어떤 행복한 삶이 가능할지를 함께 찾아보는 상담자를 도박자가 원하듯이, 자살하고자 하는 내담자는 자신이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는 상담자를 더 미덥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담자의 그런 노력이 역설적으로 내담자의 생존 확률을 높입니다.
그러니 내담자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죽느니만도 못한 삶을 어떻게든 연명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살게 하기 위해, 삶이 어떤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을지 내담자가 깨달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있어서 행복하다는 걸 (매 순간) 느끼기 위해 살고자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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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9일 충북청소년종합지원센터 강의에서 사용했던 PPT입니다.
상담 현장, 그 중에서도 아동 및 청소년 상담을 할 때 흔히 접할 수 있는 정신병리문제를 모아서 3시간 분량으로 만든 자료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ADHD* 소아/청소년 우울증* Delayed PTSD(성폭력 생존자)* 학교 부적응 문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ADHD
* 주 호소 문제의 변별
* ADHD 신화 : 허위 긍정의 오류
* 주의할 점 : 주의력 문제의 구분
* 진단
* 평가
* 평가도구
* 치료
2. 소아/청소년 우울증
* 증상
* 우울증의 구분
* 우울 사고 vs. 우울 정서
* 연령에 따른 차이
* 자살 위험성 평가
* 분노 폭발 : 열등감 내재 확인
3. Delayed PTSD(성폭력 생존자)
* PTSD의 진단 준거
* 왜 Delay되는가
* 변별 진단
* 여아의 자해
* 왜 말하지 못하는가
* 근친 성폭력
* 치유에 중요한 요인들
* 심리평가
* 치유의 3단계
* 치유 단계 별 주의할 점
* 상담의 point
* 성폭력에 대한 통념
4. 학교 부적응 문제
* 1단계 : MR, BIF, BA 배제
* 2단계 : Adjustment Disorder 배제
* 3단계 : 스트레스 요인이 집(PCRP 고려)
* 4단계 : 스트레스 요인이 학교(왕따 고려)
이전에 심리평가자가 아닌 상담자의 입장에서 정신병리적 문제를 다룰 때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내용을 다룬 자료인
‘상담에서 만나는 정신병리문제’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 자료는 아동, 청소년 상담을 하는 상담자가 자주 만나는 네 가지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얼마든지 내려 받아 사용하셔도 됩니다. 출처만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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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긍정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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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진단이 중요한 심리평가에서는 왕따는 Adjustment Disorder를 진단하기 위한 identifiable stressor로 작동하느냐, 그 정도가 PTSD로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느냐 등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지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접근방법을 찾아야 하는 심리치료와 상담 영역에서는 왕따를 임의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집단 따돌림(소극적 왕따)과 집단 괴롭힘(적극적 왕따)로 구분하는 것이죠.
집단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을 동시에 당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지만 둘 중 어느 하나에만 국한된 경우 주로 당하는 왕따의 종류에 따라 아이들이 보일 수 있는 증상과 대처 행동, 치료적 접근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집단 따돌림의 경우에는 주로 사회적 철회(social withdrawal)가 일어나는 대신 고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지지 체계가 공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장기간 방치될 수 있고 적절한 개입의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지적 제한이 있거나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이의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에 더욱 취약합니다.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부족한 지적 능력 및 사회적 기술, 의사소통기술 등을 보강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집단 괴롭힘의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에 비해 아이가 겪는 고통감이 훨씬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눈에 띕니다. 고통감이 너무 심한 경우에 자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고 일부 아이의 경우에는 집단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다른 아이를 희생양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능력 부족보다는 외양을 포함한 신체적 특징의 차이 등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환경의 개선이 주가 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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