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supervision을 하면서 진로 적성 코칭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참 많이 드렸습니다. 저도 과거에 그런 실수를 자주 했지만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들이 가져오는 문제가 대부분 대인 관계 갈등에 기반한다고 전제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랑만이 문제일까'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외로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일'부터 안 되기에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진로 적성 코칭이라는 게 결국은 당사자의 기질, 흥미, 적성, 능력,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일 수 밖에 없어서 이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고 바로 극단적인 선택 질문을 통해 이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질문은 요새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과 비슷합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개의 극단적인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밸런스 게임과 차이점은 단순히 고르는 것이 아니라 왜 그걸 골랐는지, 생각해봄으로써 그 선택에 투영된 자신의 기질과 가치관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빠르게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친구가 하나도 없는 억만장자 VS. 만인의 사랑을 받는 거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지가 있다고 해 보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억만장자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지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예시에서는 경제적 여유를 통한 안정감이 더 중요한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 게 더 중요한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린 보통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면, '매뉴얼대로 일해야 하지만 책임질 필요가 전혀 없는 공무원 VS.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모든 걸 내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프리랜서'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전자는 안정감과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자유로움과 흥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가깝죠.
이처럼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자신도 잘 몰랐던 기질, 흥미, 가치관이 드러나게 됩니다. 공통점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 질문은 진로 적성 코칭에서 빠른 가지치기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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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적성 코칭이 어려운 이유는 일반적인 상담 훈련 과정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아무래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일테지만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상담자 스스로도 자신의 진로 적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심리학이 재미있어서 전공했을 뿐 그게 제 적성에 잘 맞는지, 기질에 부합하는지 등을 따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공부하면서 저랑 맞는 분야가 있고 맞지 않는 분야가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느꼈고 그래서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학을 전공할 때 의외로 공부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보다는 경영학에 더 가까운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처음에 희망했던 임상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저랑 맞는 분야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되었죠. 역시나 개인 단위에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 제 기질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담자가 아닌 supervisor와 강사의 identity가 저랑 가장 잘 맞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합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잠깐 샜는데 진로 적성 코칭을 하려는 상담자라면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제로 진로 적성 코칭을 해 봐야 합니다. 그런다고 지금의 길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담자를 도울 방법에 대한 힌트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진로 적성 코칭의 모든 것 : 상담자용' 포스팅에 충분히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진로 적성 코칭을 할 때 '현실성', 다시 말해 실현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게 상담자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는 이미 부모님, 친구, 선배, 진로 상담 교사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실성을 토대로 이런저런 조언을 지겹게 들었을 겁니다. 그게 효과적이었다면 상담자에게 안 왔을거에요. 그러니 누구나 했을 법한, 뻔한 조언은 그만두세요.
두 번째 이유는 현실성을 고려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적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실성이라는 건 결국 먹고 사는 문제, 그것의 지속 가능성, 안정성 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이걸 먼저 고려하면 그 다음에는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집니다. 예를 들어 예체능 적성을 가진 내담자가 있다고 해 보죠.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은데 유명한 화가가 되는 건 현실성이 없어 보이니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진학하고 그림을 취미로 그리자고 타협을 하게 되죠. 그러니 그림으로 성공해야 하는 현실 따위는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으려면 꿈과 가치관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현실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투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성은 '어떻게?'를 묻습니다.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냐? 등등이죠. 하지만 꿈과 가치관은 '왜?'를 묻습니다. 왜 그걸 하고 싶은데?, 그게 왜 너에게 의미가 있는데?라고 묻게 되죠. 꿈과 가치관을 탐색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적성 및 기질과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성은 진로 적성 코칭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미세 조정을 할 때 고려하면 충분하고 그건 내담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등산이 내 적성이라는 걸 찾았다고 해 보죠. 어떤 산을 오를 지, 어떤 방법으로 오를지를 고르는 것이 바로 현실성을 고려하는 겁니다. 등산을 할 것도 아닌데 에베레스트를 오를지, 지리산을 오를지를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 상담자는 진로 적성 코칭을 할 때 의도적으로 '현실성', '실현 가능성'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담자까지 그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내담자의 적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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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제목이 지나치게 거창한데 그만큼 현장의 상담자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어그로를 좀 끌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으시는 선생님들은 제가 '일' 영역을 탐색하고 이 문제로 내방하는 내담자에게 진로 적성 코칭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 우선 진로 적성 코칭이 필요한 내담자를 심리평가를 통해 어떻게 찾아내는지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 TCI/JTCI
- 자율성 성격 중 '목적의식' 하위차원 -1SD 이하
- 자기초월 성격 중 '창조적 자기 망각' 하위차원이 +1SD 이상인데 예체능 전공 또는 직업이 아닌 경우
* MMPI-2/A 공통 : 동기 척도 3총사(Sc4, (A)-DEP1, (A)-TRT1) 중 65T 이상인 척도가 많을 때
* MMPI-2 : WRK 내용 척도 65T 이상
* MMPI-A : A-las2(주도성 결여) 내용 소척도 65T 이상(A-las1 소척도 점수가 낮을수록 유의미)
당연히 의미있는 결과들이 많을수록 진로 적성 코칭이 필요한 내담자입니다.
그 다음, 진로 적성 코칭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데 보통 많은 상담자들이 진로 적성 코칭을 하라고 하면 Holland, Strong 같은 관련 검사를 실시할 생각부터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수검자의 적성, 흥미, 가치관에 대한 충분한 탐색 없이 이런 전문적인 검사를 실시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 본인의 적성이라고 (잘못) 믿는 것을 투사함
2. 본인의 역동을 투사함
1번의 문제는 내담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대로 법조인의 길을 걸었던 집안에서 판, 검사가 되라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성장한 내담자는 다른 길을 고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 길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고 응답합니다. 그러니 결과가 실제 내담자의 적성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1번보다 2번의 문제가 더 심각한데 예를 들어 애착 외상을 경험한 Delayed PTSD 내담자에게 Holland 검사를 시행한다고 해 보죠. 어릴 때 불안정 애착이 된데다 애정 결핍이 있는 내담자는 항상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돌봄 직업을 자신의 천직이라 믿기 쉽습니다. 그래서 Holland 검사에서 S(ocial)로 나오고 전공과 직업도 보육 교사, 유치원 선생님 등 돌봄 직업과 관련된 걸 선택하게 됩니다. 당연히 본인의 적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비판단적인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적성에 대해 심사숙고를 해 본 적이 없는 내담자에게 Holland, Strong 같은 검사를 실시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겁니다. 이런 검사는 진로 적성 코칭의 맨 마지막 단계로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해야 하는 겁니다.
그럼 대체 진로 적성 코칭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막막해 하실 수 있겠죠. 제 생각에 진로 적성 코칭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나마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자신의 진로 적성을 스스로 탐색해보지 않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도와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아래는 제가 제 진로 적성을 탐색하면서 사용했던 방법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포스팅들이니 본인에게 맞는 지, 내담자에게 적용할 부분이 있는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열한 순서는 먼 과거에서부터 가까운 과거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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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절반이 경영학과야?
위는 전공 자율 선택제에 따라 취업에 유리한 인기학과에만 학생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미디어 다음의 기사입니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요즘의 취업 전쟁에 임하는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생각이 얕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는 상관없이 무조건 취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요?
제가 있는 직장에는 E여대 영문과를 나온 직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고 성적도 잘 나왔기에 적성과 상관없이 집에서 원하는 대로 E여대 영문과를 들어갔고 큰 고민 없이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졸업 후 영어 성적을 우대하는 입사 제도를 잘 이용해 좁은 관문을 뚫고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죠. 그 후 3년, 이 직원은 자신의 전공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기안 작성과 회계 업무로 웬만한 사무직이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영어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어 얼마 전 외국 출판사에 order 문제로 e-mail을 보내는 것을 부탁했더니 제대로 못하더군요. 지금 이 직원은 야간 경영 대학원에 진학을 할까 고민중입니다.
이 직원의 경우가 이 직원 개인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겁니다. 취업에 유리하다고 해서 적성과 상관없는 전공을 선택하거나 냉큼 전공을 바꾸는 학생들의 미래가 과연 어떨까요? 이제 곧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겁니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전문성이 필요한 일,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만이 인정과 대우를 받는 사회가 올 겁니다. 그런 사회가 오면 그때 가서 또 전공을 바꾸시겠습니까?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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