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창한데 이건 상담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저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로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자격을 취득한 새내기 전문가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은 듯한 벅찬 뿌듯함과 함께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과도한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실제 실력이 어떠하든,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내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뭔가 몸에 맞지 않는 과분한 옷을 걸친 것 같은 생경함은 덤이죠.
이 때 이러한 과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채우는 데 집중하는 상담자가 가장 많습니다. 수련 기간 동안에 못 읽었던 전공 서적을 탐독하기도 하고, 실전 워크샵에 집중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예 학교로 돌아가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상담자도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총 쏘는 기술보다 전쟁의 의미를 부여하고 참전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죠.
전문가 자격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신에게 상담/심리치료란 무엇인지, 임상가로 살아간다면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지, 윤리적인 규정과 별개로 내담자/환자와 치료적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가치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중 관계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 등등.
수련 중에는 내담자/환자를 돕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고 그 기술이 완성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노력은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임상가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초보 전문가일때가 아니면 다지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현실과 타협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나서 1년 안에 마무리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는 2003년 초에 전문가가 되고 나서 8월에 취업하기 전까지 약 6개월을 실업 급여를 받으며 쉬었습니다. 가치관을 정립하겠다는 구체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수련받느라고 미친 듯이 일만 하다 갑자기 쉬게 되면 할 일이 없거든요. 결국 자신과 대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다면 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일이나 공부를 시작하지 말고 충분히 쉬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게 임상가로서의 평생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런 가치관을 정립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상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내담자를 우선하겠다는 저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2018년 제가 속한 조직에서 순환 근무를 위한 지방 파견을 가라는 명령이 갑자기 내려왔습니다. 지방 센터에도 상근 상담자를 충원해야 한다는 건의를 이미 수년 전부터 했지만 회사는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다가 그 사업장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정부에서 근로 감독을 나온다고 하니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서울의 상담자를 긴급 파견해 보여주기를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6개월 또는 1년 간격으로 서울 센터에 근무하는 3명의 전문가를 계속 순환 파견 보내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제대로 상담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신규 내담자를 받아서 상담을 하더라도 내년에 제가 파견 명령을 받으면 저나 내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저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거기에서 상담을 시작해도 1년이 지나면 또 거기에서 진행하던 상담을 강제 종결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야말로 상담자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인거죠. 그래서 회사에 상담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가라는 것이죠. 이런 회사의 몰상식보다 더 역겨운 건 함께 일하던 다른 상담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조직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냐는 겁니다. 이 좋은 조직에서 잘리지 않고 정년퇴직을 하려면 내담자를 희생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상담자가 되면 안 되는 사람' 포스팅 참조).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제 가치관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6년 동안 일해온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8년 독립을 했습니다(
'인생 Season 2를 시작합니다' 포스팅 참조). 그리고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자평합니다.
제가 다니던 직장은 임상/상담 통틀어서 가장 일 적게 하면서도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무기 계약직이기 때문에 입 다물고 회사에서 시키는대로만 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그야말로 꿀 빠는 직장이죠. 그걸 제 발로 차버리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담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았다면 저도 현실과 타협했을 지 모릅니다. 가치관을 세워두지 않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흔들릴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시점이 저처럼 늦게 오는 행운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현실과 타협하기 전에, 임상가의 가치관을 정립해 두시기 바랍니다. 저는 실력보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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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미니 강의는 TCI 강의입니다. 'TCI의 이해'는 11월에 주말에 개설했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이번에는 평일 낮 시간대에 엽니다.
이 강의는 TCI의 기본을 익히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것으로 아쉽게도 (주)마음사랑의 구매자격 취득을 위한 강의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구매자격과 상관없이 TCI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하는 강의입니다. 대신 핵심 내용을 압축해서 밀도있게 전달하고 2개의 실제 사례를 통해 TCI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미니 강의에 대한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 TCI의 이해
* 일시 : 2018년 12월 19일(수) 14:00~18:00(4시간)
* 장소 : 서울 신도림역 인근 월든3 아카데미
* 인원 : 선착순 8명
* 비용 : 1인 당 5만 원(음료, 주차권 포함)
* 특징 : 강의 내용 녹음 가능, 제약없는 예약 취소(언제든 조건없이 100% 환불, 불이익 없음)
# 강의 일주일 전까지 정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강의가 취소됩니다. 단 예약한 인원이 강의 전 모두 취소하고 1명만 남더라도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합니다.
* 수강을 위한 조건(매우 중요! 필독!)
: 이 강의는 TCI를 익혀 임상/상담 장면에서 환자/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할 임상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들으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반드시 충족하셔야 됩니다.
1.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등) 산하 전문가 자격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2.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등) 산하 전문가 자격 수련생(신청 시 수련 중임을 확인)
3. 국가공인 자격증(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 등)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 심리학 관련 대학원 졸업 자격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졸업 후 전혀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신청 방법 : 이메일(수신처 : walden3@gmail.com)
* 기재 내용 : 이름, 휴대폰 번호, 수강을 위한 조건 충족 여부(수련 여부, 자격증 및 자격 번호 기재)
* 선착순으로 정원 안에 들어온 분들께는 마감 후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덧. 이 포스팅에 앞으로 듣고 싶은 강의 주제나 일시(예; 평일 낮 등)를 덧글로 남겨 주시면 향후 미니 강의 주제 및 일시 선정에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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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에서는 오로지 MMPI-2/A에만 초점을 맞춰서 각 척도들이 실제 임상/상담 장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 특히 함께 비교하며 이해해야 하는 척도군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현장에서 MMPI-2/A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어떻게 연결하며 해석하면 좋은지 궁금한 임상가들에게 추천하는 강의입니다.
이번 미니 강의에 대한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 MMPI-2/A 실전 해석
* 다루게 될 구체적인 내용
: MMPI-2/A 각 척도의 임상적 의미와 해석 방안
* 일시 : 2018년 12월 16일(일) 14:00~17:00(3시간)* 장소 : 서울 신도림역 인근 월든3 아카데미
* 인원 : 선착순 8명
* 비용 : 1인 당 4만 원(음료, 주차권 포함)
* 특징 : 강의 내용 녹음 가능, 제약없는 예약 취소(언제든 조건없이 100% 환불, 불이익 없음)
# 정원이 미달되는 경우에는 강의가 취소됩니다. 단 예약한 인원이 강의 전 모두 취소하고 1명만 남더라도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합니다.
* 수강을 위한 조건(매우 중요! 필독!)
: 이 강의는 임상/상담 장면에서 환자/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 MMPI-2/A를 활용할 임상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들으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반드시 충족하셔야 됩니다.
1.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산하 전문가 자격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2.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산하 전문가 자격 수련생(학회에 수련 등록 필수)
3. 국가공인 자격증(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 등)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 심리학 관련 대학원 졸업 자격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졸업 후 전혀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신청 방법 : 이메일(수신처 : walden3@gmail.com)
* 기재 내용 : 이름, 휴대폰 번호, 수강을 위한 조건 충족 여부(수련 여부, 자격증 및 자격 번호 기재)
* 선착순으로 정원 안에 들어온 분들께는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덧. 이 포스팅에 앞으로 듣고 싶은 강의 주제나 일시(예; 평일 낮 등)를 덧글로 남겨 주시면 향후 미니 강의 주제 및 일시 선정에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덧2. 이 강의는 기존 미니 강의와 달리 수련을 받고 있지 않은 심리학 관련 대학원생에게도 오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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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는 선별심리평가의 개념을 정리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것으로 아직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선별심리평가 도구인 MMPI-2/A와 SCT를 중심으로 심리평가란 무엇인지, 심리평가의 실시 이유와 실시 순서, 심리평가 보고서의 기본 양식까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MMPI-2/A와 SCT의 개관에 해당되는 내용 뿐 아니라 해석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3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밀도 있는 강의입니다.
이번 미니 강의에 대한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 선별심리평가의 이해(MMPI-2/A, SCT를 중심으로)
* 다루게 될 구체적인 내용
- 심리평가의 정의
- 심리평가의 실시 이유
- 심리평가의 실시 순서
- SCT 개관
- MMPi-2/A 개관
- Screening Test의 실시 및 해석
* 일시 : 2018년 10월 28일(일) 15:00~18:00(3시간)
* 장소 : 서울 신도림역 인근 월든3 아카데미
* 인원 : 선착순 8명
* 비용 : 1인 당 4만 원(음료, 주차권 포함)
* 특징 : 강의 내용 녹음 가능, 제약없는 예약 취소(언제든 조건없이 100% 환불, 불이익 없음)
# 정원이 미달되는 경우에는 강의가 취소됩니다. 단 예약한 인원이 강의 전 모두 취소하고 1명만 남더라도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합니다.
* 수강을 위한 조건(매우 중요! 필독!)
: 이 강의는 임상/상담 장면에서 환자/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 선별심리평가를 활용할 임상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들으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반드시 충족하셔야 됩니다.
1.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산하 전문가 자격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2. 한국심리학회(임상, 상담, 중독, 발달, 범죄, 건강....) 산하 전문가 자격 수련생(학회에 수련 등록 필수)
3. 국가공인 자격증(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 등) 소지자(신청 시 자격 번호 기재)
-> 심리학 관련 대학원 졸업 자격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졸업 후 전혀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 청소년상담사 2급 직무자격연수에서 제 강의를 들은 선생님들은 이 강의를 안 들으셔도 됩니다. 내용이 동일합니다.
* 신청 방법 : 이메일(수신처 : walden3@gmail.com)
* 기재 내용 : 이름, 휴대폰 번호, 수강을 위한 조건 충족 여부(수련 여부, 자격증 및 자격 번호 기재)
* 선착순으로 정원 안에 들어온 분들께는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덧. 이 포스팅에 앞으로 듣고 싶은 강의 주제나 일시(예; 평일 낮 등)를 덧글로 남겨 주시면 향후 미니 강의 주제 및 일시 선정에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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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그동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느낀 것인데요. 하나는 전공, 출신 학교, 수련 과정의 차이 없이 대부분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겁니다. 돌려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supervisee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아마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똑같았겠지요)
formulation도 잘 되었고 작성한 심리평가보고서도 훌륭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하거나 감탄을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운이 좋은거지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멀었는데요 뭐"라는 반응이 나와서 맥이 풀립니다.
하도 답답해서 2010년에는 관련 포스팅('supervisee를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착각하는 supervisor')을 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supervisee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를 저는 수련 과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처벌 위주의 도제 중심이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명감과 겸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임상가가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자기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supervisor가 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자신이 supervisor가 되면 그저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첫 번째 문제와도 연결될텐데 많은 supervisee 선생님들이 자신이 제대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는지, 채점은 틀리지 않았는지, 터무니 없는 진단 가설을 세운 건 아닌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쓴 건지 등등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저도 흔히 하는 실수라서 지적하면 제가 놀랄 정도로 미안해 하거나 심하게 주눅이 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굉장히 불리합니다. 그 불리함은 심리평가를 진행할 때 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자신감이 없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고 불안 수준이 높으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라포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상담 회기를 늘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북돋고,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불안을 애써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임상가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내담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불안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절대로 훌륭한 임상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진주라도 시궁창 깊숙이 쳐박아 놓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자신감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가 과연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 수준은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기 전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하세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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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국심리학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실시한 세월호 참사 심리지원 관련 '재난심리 사전교육'을 다녀왔습니다.
1, 2차 교육은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서 실시했는데 3차는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진행되었네요. 장소가 서울인데다 휴일인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주최측이 좀 더 큰 강의장을 현장에서 긴급 섭외해서 교육 전에 옮겼는데도 나중에는 보조 의자마저도 모자랄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이 사안의 심각성과 심리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석자들에게는 학지사에서 한국심리학회에 기증한 '재난현장의 심리적 응급처치(권정혜, 안현의, 최윤경 공저)' 책이 무료로 한 권씩 주어졌습니다.
초반에는 재난심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현의 선생님이 재난심리위원회 활동과 관련하여 간략한 브리핑을 하셨고 이어서 이화여대 트라우마연구실의 주혜선 선생님이 '재난 및 외상의 심리적 응급처치'라는 주제로 2시간 30분 정도 강의를 하셨습니다.
중 2가 된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동안(저는 처음에 학회 간사나 진행 요원 중 한 명인 줄 알았다는;;;;)이셨는데 강의 실력은 발군이고 내용도 아주 충실하고 좋았습니다. 핵심만 쏙쏙 짚어주는데다 나중에는 이완 및 grounding 기법도 실제로 시범을 보여주셔서 유익했고요. 역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의 강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짧은 시간에 큰 도움이 되는 강의였습니다.
청중석에 질문을 요청했을 때 재난심리위원회의 느린 행보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빨리 현장으로 가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분들이 꽤 계시던데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더군요.
지금의 상황은 전문 인력이 충분하다고, 치유가 급하다고 무조건 투입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성 상 지금 투입된다고 더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사건 발생 4주에서 6주 이후에 터져나오게 될 테니까요. 권정혜 선생님 말씀처럼 초반에 주도권 경쟁하느라 힘 빼고 여론이 시들해지는 상황에서 모두들 물러났을 때 누가 끝까지 남아서 치유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언제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언제 나오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죠.
그리고 하나 묻죠. 어제 모인 그 많은 심리치유 전문가 중 PTSD 전문가가 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당장 단원고에 파견하면 본인도 심리적으로 소진되지 않으면서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상처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죠? 의욕과 사명감 만으로 내담자가 치유됩니까?
이건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충분히 몸을 풀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투입되는 전문가들도 부상당하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과열된 이런 분위기가 두렵습니다. 그리고 매일 몇 번씩 제게 묻습니다.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과연 그들을 도울 능력이 내게 있는지, 모두들 등 돌리고 돌아섰을 때도 동요하지 않고 오직 내담자만 바라보면서 끝까지 그들의 손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이 내게 있는지, 그리고 짐작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그들의 상처에 충격받지 않고 굳건히 버텨낼 단단한 마음이 내게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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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연구실,
포스코관,
학지사,
한국심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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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카피를 패러디한 제목입니다만... 그 정도로 비장한 건 아니고요.
2009년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참으로 뻔뻔스러운 사감위'라는 포스팅에서 '기관차 효과'와 '풍선 효과'를 대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감위는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규제해야 불법 사행산업을 잡을 수 있다는 기관차 효과를 믿고 합법적인 사행산업을 때려잡는데 총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완결판이 전자카드제라고 할 수 있고요. 아직 전면 도입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만...
저 위의 포스팅 이후로 4년 반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합법 사행산업을 규제하려고 많이 노력했으니 기관차 효과대로라면 불법 사행산업도 덩달아 많이 줄어 들었어야겠지요?
어림없는 소리죠. 합법 사행산업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에 불법 사행산업은 성장 일로에 있어서 이미 감당을 못할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사감위에서 한번도 불법 도박 시장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시장 규모가 100조는 넘었을 겁니다. 합법 사행산업에 비해 5배 이상으로 커진거지요. 뒤늦게 사감위에서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 발의를 한다는 둥 뒷북을 치고 있지만 제가 볼 때 이미 늦었습니다.
기관차 효과는 불확실한 것에 베팅하는 인간의 도박 본능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합법 사행산업을 이용할 때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면 힘들어서 포기하고 레저 수준에서만 즐기겠지 하는 아메바 수준의 생각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내가 원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불법 도박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건 생각도 안 한거지요.
실제로 도박 중독 치료를 담당하는 일선 센터에서는 경마, 카지노 등 전통적인 도박을 주 도박으로 하는 중독자의 수가 현저히 줄고 불법 스포츠 토토나 불법 온라인 도박을 하는 중독자가 압도적으로 늘었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비율은 대략 20:80 정도나 됩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감위에서 운영하는 치료센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치료자 중 한 사람이니 합법 사행산업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규제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단 그 적정선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해야죠. 도박에 대해 뭣도 모르는 비전문가들 모아놓고 탁상공론으로 결정하지 말고요.
며칠 전에 있었던 공청회에서 참석한 패널들의 면면을 보면 1차 종합계획안보다 질적으로 더 후퇴해서 도박과 도박 중독 분야의 전문가가 한 명도 없더군요. 대체 뭣들 하자는 건지... 누가 제대로 지적을 했던데 그냥 이해 관계의 개싸움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불법도박을 부숴 풍선 효과에 의해 합법 사행산업의 틀 안에서만 도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걸리면 신세 망친다는 신호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엄중한 법 집행과 부당이익의 환수를 일관되게 지속해야 합니다.
불법도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합법 사행산업만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도박 문제 해결 못합니다. 왜냐하면 풍선 효과가 옳으니까요.
설마 도박 문제가 해결되면 사감위의 존립 이유가 없어지니까 조직 생존을 위해 그냥 내버려두고 공존공생하려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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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위에서 사행산업체에게 강제하는 평가 지표 중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도박중독 예방교육 실적 및 만족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량평가 지표로 6점의 가중치를 갖고 있으며 교육 실적 횟수와 교육 만족도로 평가합니다.
교육 실적은 회당 0.5점, 교육 만족도는 80% 이상 시 만점, 미만 시 5% 단위로 1점을 차감하여 계산합니다.
문제는 교육 만족도인데 이게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을 전혀 모르는 머저리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육 만족도 평가 때문에 예방교육 자체의 질 저하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거나 하다못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예방교육은 어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도박중독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예방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전문가가 조금만 내용에 신경쓰면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행산업체에서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예방교육은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KRA(한국 마사회)에서 실시하는 경마팬 대상 예방교육을 예로 들어보죠. 경마팬들은 기본적으로 중독이라는 말 자체를 재수없다고 터부시하는데다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경마로 인한 도박 중독이 어떻느니, 도박 중독의 피해가 어느 정도로 추산된다느니, 공존 장애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대놓고 얼굴 표정이 싹 바뀌는 건 기본이고 중간에 욕하면서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경마 전문가가 나와 말 고르는 법, 순위 예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인기 강좌와 달리 참석자의 수 자체가 비교도 안 되게 적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참석자 한 사람만 불만족으로 체크해도 전체 만족도가 확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감위는 교육 만족도 기준을 더 높이겠다느니,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이니 좀 더 사업 특성에 맞도록 구체적이고 세분화하여 예방 교육을 실시하라느니 하면서 뭣도 모르고 속 편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아무리 현장 전문가가 사명감을 갖고 프로그램 준비와 강의에 공을 들여도
교육 만족도 평가가 존재하는 한 알게 모르게 80점이라는 점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도박 중독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내용을 순화시키거나 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중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쉽게 쉽게 갈 수 밖에 없는거지요. 그런 부담없이 원래 하고자 했던 방식으로 강하게 예방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면 만족도 점수를 80점 이상으로 맞출 수 없기 때문에 편법(울며겨자먹기로 만족도 점수가 너무 낮은 사례를 제외하는 등)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체 이런 방식의 예방 교육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요?
도박 중독자? 치료 전문가? 사행산업체? 사감위?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제발 현장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기 바랍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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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글에 사용된 사례가 심리평가에 대한 내용이라서 그냥 '임상심리' 카테고리로 분류합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임상심리전문가 중 심리평가, 그 중에서도 MMPI-2/A 강의를 의뢰받고 고민하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강의를 의뢰받았을 때 맨 먼저 점검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뭐 강의의 대가도 아니고 저도 강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 중 하나이니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강의 준비하시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보통 전문가가 된지 2~3년 정도 지나 junior에서 senior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임상심리전문가들에게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대학 강의는 아니고 일회성 내지는 시리즈 워크샵 형태의 강의들이죠.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특강 형식으로 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고 알음알음으로 외부에서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2~3년차라는 위치가 좀 애매해서 그동안 쌓은 실력에 비해 아직 자신감이 확실히 붙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냥 고사하는 바람에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 할 귀중한 기회를 날리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느 책에선가 본 이후 제 모토 중 하나가 된 것이 있는데 바로
'거절해야 할 절대절명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상 모든 요청을 기회로 받아들이고 승낙한다'는 겁니다. 물론 재미없으면 단박에 거절합니다만.
가끔 내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 거절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강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수도 있지만 임상, 상담심리전문가에게 들어오는 강의는 최소한 심리학 관련 지식이 필요한 강의입니다. 설마 제게 주택 경매 관련 강의 의뢰가 들어오겠어요? 그러니 무조건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 사설이 길었는데 예를 하나 들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수도권의 어떤 시 교육청에서 학교 상담 교사를 대상으로 MMPI-2/A와 SCT를 엮어서 2시간 정도 특강을 해 달라는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강의를 듣는 수강자의 욕구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수강자의 배경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야 제대로 된 맞춤 강의안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강사와 수강생이 모두 윈-윈하는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는 참석 대상이 학교 상담 교사이니 강의 요청을 한 담당자를 통해 참석하는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이 MMPI-2/A, SCT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인지, 아니면 아동/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심리평가 결과를 formulation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담당자가 그 정도도 모르고 있거나 참석자의 의견 조사를 안 해주는 강의는 거절하는 게 낫습니다. 그냥 대충 시간이나 때우라는 말이니까요. 이것이 수강자의 욕구 조사입니다. 방금 설명드린 것처럼 참석자의 욕구가 이론인지, 사례인지에 따라 강의안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참석자가 강의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심리학 전공자가 얼마나 되는지, 참석자의 전공 베이스가 어떻게 분포되는지,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수련 중인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MMPI-2/A, SCT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아예 처음 듣는 수준인지 아니면 실제로 현장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인지 등. 수강생의 배경 지식 수준을 파악하게 되면 강의 내용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죠. 이것이 능력 조사입니다.
강의를 많이 하시는 전문가 선생님들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내용이겠지만 강의안의 틀을 잡는 것부터 막연하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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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드릴 심리평가 워크샵은 제가 먼저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던 방식인데 그만 선수를 빼앗겼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포기하고 손놓고 있을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의 심리평가 워크샵은 주로 일부 검사 도구(주로 MMPI나 로샤)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을 다루는 워크샵이 생기기 시작(아직은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했습니다.
하지만 Full Battery에 포함된 검사 도구를 모두 포함하면서 짧은 시간에 정보를 융단폭격하지 않고 충분한 질의응답과 논의를 하고 검사의 실시와 해석,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까지 모두 다루는 심리평가 워크샵은 제가 알기로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본 워크샵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8월 24일부터 11월 23일까지 12주 동안 진행되는 1부 워크샵에서는 심리검사의 실시와 해석을 주로 다루고 이후 이어지는 6주 동안의 2부 워크샵에서는 검사 sign의 통합 및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에 대해 다루게 됩니다.
6~7명 정도의 소수 정예로 진행될 예정이고 반개방형이라서 모든 session에 강제 참석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1부 워크샵 중 최소한 1/3 이상에 참석해야 2부 워크샵 참석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참석 가능 대상은 한국 심리학회 산하 전문가 수련 과정에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고 최소한 심리평가 1, 2 수업을 이수한 분이면 좋겠다고 합니다.
소수 정예로 진행되는 만큼 선착순으로 마감한다고 하네요. 비용은 session 당 3만 원이고 매 session은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첨부 파일을 참고하시고 문의 사항이 있거나 신청하시려는 분들은 resilience4@gmail.com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덧. 이 워크샵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은 모두 제가 1:1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장기간 했고 실력만큼은 제가 보장하는 분들입니다. 저도 워크샵 전반에 대해 benchmarking할 겸 observer로 참석할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 목하 고민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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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회는 세부 워크샵 일정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등록하라는 것(이미
2008년에 제가 한바탕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네요)에 이미 빈정상했고 중독심리학회는 학술대회 내용이 별로라서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정신병리연구회 하계학술대회에서 DSM-5 워크샵을 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 하루 휴가를 내어 다녀왔습니다. 이것으로 올해 임상심리전문가 연수 시간은 다 채웠삼~
원래는 DSM-5 워크샵만 들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시간이 1시간 30분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전에 하는 치료 사례 회의까지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장소가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강당이었는데 본관, 별관과 떨어진 별도의 건물이라서 그런지 조용한 게 마음에 들더군요. 워크샵이 열렸던 대형 강의실에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내내 더웠던 것은 빼고요. 하루종일 부채질하느라고 지쳤습니다. ㅠ.ㅠ
우선 치료 사례 회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4개의 강의실에서 각각 연속으로 2개의 사례를 진행했는데 책상을 원형으로 배치한데다 토론자가 일방적으로 comment하지 않고 청중을 사례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효과가 있으려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못해 결론적으로 말하면 완전히 망했습니다. 연수 평점 시간이 아니라면 저만해도 그런 치료 사례 회의에는 참석 안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참석자가 온통 사례 발표를 앞둔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뿐이고 전문가는 가뭄에 콩나듯이 하더군요. 이래 가지고 무슨 발표자에게 도움이 되는 노하우와 comment가 나오겠습니까. 둘째. 여전히 심리치료와 상담을 하지 않는,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을 토론자로 배치했더군요. 인력 pool이 부족한 건 알지만 그럴바에는 토론자의 수를 줄이고 대형 강의실에서 하더라도 질을 높이는 편이 낫습니다. 발표자와 수준 차이가 거의 없는 토론자는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사례 발표는 그나마 이상한 치료 기법들을 적용하지는 않았더군요. 오히려 현장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 때문에 발표자나 참석자나 참 지루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문가랍시고 참석한 김에 이런저런 생각나는 점을 좀 많이 말했더니 나중에 혼자서 다 떠들더라, 아예 강의를 하더라는 뒷담화가 들려오던데 매우 불쾌합니다. 오죽 엉망이었으면 저같이 낯가림 심한 사람이 나서서 떠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겁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심리치료와 상담 수련을 간과하면 나중에 심리평가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상담심리전문가들이 병원 장면에 진출한 뒤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경고를 해도 귓등으로나 듣고 정신들을 못 차리니 원... 쯧쯧쯧...
오후에는 DSM-5에 대한 워크샵이 있었는데 3시간 30분으로 예정된 시간 내에 8명의 전문가가 20분씩 intensive하게 강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정보다 30분이 더 걸렸지만 8개의 강의 모두 매우 훌륭했습니다. 특히 성격 장애 발표를 담당한 박준영 선생님의 강의는 아주 발군이었습니다. 부러울 정도로 침착하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핵심을 정확하게 짚더군요. 매우 좋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잘 하셨고요. 확실히 junior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니 에너지도 넘쳐서 전반적으로 워크샵에 기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DSM-5에 대한 기대가 듬뿍 생겼습니다. 자료집과 발표 자료의 슬라이드가 차이 나는 강의가 몇 개 있지만 워낙 꼼꼼하게 DSM-IV와의 차이를 잘 정리해 주셔서 자료집만 꼼꼼히 뒤져봐도 DSM-5의 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신병리연구회에서 이번 워크샵 자료를 온라인으로 공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최종 결과가 아니라서 내년 APA 학회가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DSM-5를 공부하느라고 2013년이 정신없이 그러면서도 즐겁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아직 90% 정도만 결정된 상태라서 최종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의 분류와 진단 기준이 임상 현장의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바뀌었고 과잉 진단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진단에 필요한 기간을 대폭 늘리는 등의 깨알같은 노력도 꼼꼼히 기울였더군요. 각 장애의 severity를 평가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아마 병원에서 평가만 담당하는 임상가들은 full battery에 의존해 평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DSM-5에 맞춰 진단하기 위한 새로운 평가 방법의 개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심리치료나 상담을 주로 하는 임상가들은 초기 적응기만 잘 넘기면 DSM-IV에 비해 업무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워낙 현장의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해서 적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거든요.
dementia라는 용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점, MR의 진단에 더 이상 지능 지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점, 도박 중독이 충동 조절 장애 중 유일하게 중독 장애로 이동한 점 등도 새로웠습니다.
빨리 DSM-5로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DSM-IV는 빈틈이 너무 많은 진단 편람이기 때문에 상담을 할 때나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적잖이 짜증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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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연수 평점 부족으로 1차 경고를 받은 김에 올해는 미리미리 챙겨두려고 일부러 휴가까지 내고 작심해서 춘천까지 다녀왔습니다.
사전 등록도 미리미리, 교통편도 미리미리 예약했죠. 직행특급을 없애 해당 지자체 주민을 배제했다고 말이 많은 ITX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예약도, 발권도 아이폰의 코레일 앱에서 편리하게 할 수 있지만 저처럼 어쩌다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평상시에 자주 서울 나들이를 해야 하는 주민들은 타격이 크겠어요. 경제적인 부담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30% 할인을 받아도 거의 7천 원에 육박하니까요. 민영화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오전 8시에 용산에서 출발하는 ITX를 탔는데 전철 승강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개찰구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환승 처리가 되는 걸 몰라서 아까운 지하철 요금을 날렸습니다. ㅠ.ㅠ
9시 20분 경에 춘천역에 도착하니 셔틀 버스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우연히 반가운 얼굴도 만나고요. 도우미를 많이 배치해서 길을 헷갈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학회장이 한림대와 라데나 리조트로 나뉘어 있어 불편함이 클 것 같았는데 셔틀 버스 배차 간격을 잘 맞춰 배치해서 그런지 큰 혼란은 없어 보였습니다. 저야 하루종일 한림대 학회장에만 있어서 별로 상관은 없었습니다만...
오전에는 박경순 선생님의 심리치료 수퍼비전 워크샵을, 오후에는 조선미 선생님의 심리평가 수퍼비전 워크샵을 들었는데 나중에 다시 포스팅하겠지만 둘 다 들은 분들이라면 확연히 구분이 갈 정도의 수준 차이가 있더군요. 둘 중 하나를 듣고는 멘붕 상태로 머리가 아파 고생 좀 했다는... ㅡㅡ;;;;
사람이 많이 붐볐는데도 꽤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서 그런지 등록, 자료집 및 연수 평점표 배부에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강의장 시설도 괜찮았고요. 원형 강의장이라서 주목도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양쪽으로 영사막을 펼쳐서 어느 쪽에 앉아도 불편함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제 회의실이라서 그런지 각 자리마다 모바일 기기 충전이 가능한 전원 콘센트가 있어서 아이패드를 충전하면서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고요. 강의 들으면서도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로 메일 확인해서 답장 보내고 할 건 다 했지요(자랑이냐!!).
강의가 끝나고 난 뒤 학회 보관용 연수 평점표를 제출해야 연수 평점이 인정되던데 새로 도입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이기는 한데 강의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듣기에 짜증나는 강의를 버텨내야만 연수 평점을 인정해준다면 그것 자체가 고문이 되지 않겠어요?
점심 식사는 한림대 구내 식당에서 먹었는데 저처럼 채식을 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메뉴로는 쫄면이 유일하더군요. 그것마저도 없었으면 굶을 뻔 했습니다. ㅠ.ㅠ
음식값은 확실히 쌌지만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먹기에는 양이 턱없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식당으로 가는 길에 대한 지도 안내가 분명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학회원들이 길을 헤맸습니다. 교직원 식당은 그래도 지도 상에서 찾기가 쉽던데 학생 식당은 찾기 어렵게 표시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강의가 모두 끝난 후 춘천역이나 버스터미널로 데려다주는 셔틀 버스가 없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제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라데나 리조트로 가는 버스만 안내하더군요. 결국 6시에 출발하는 ITX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 버스 노선이나 시간표만 안내를 해 줬어도 훨씬 나을 뻔 했습니다.
하루만 경험했지만 시설, 인력 배치 등이 꽤 짜임새 있게 진행된 학회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들을만한 강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고 현장 전문가들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수퍼비전 워크샵도 정착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의 눈높이를 너무 낮게 본 것 같습니다. 바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정리된 현장 노하우를 제공하지 않고 개인적인 상념이나 푸념을 늘어놓는 식으로는 계속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한림대 관계자를 비롯해 강원 지역의 선생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덧. 춘계학술대회 대신 봄 학술대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던데 사소한 것 같지만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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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지막으로 사감위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올린 것이 2010년 9월(관련글:
'사감위 너나 잘 하세요')이니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그동안 사감위가 일을 잘해서 비판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안 올린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바빴고 뭐 제가 떠든다고 듣는 것 같지도 않기에 그냥 무시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독예방치유센터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짤리는 등 내우외환때문에 정신이 없었을테니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었던 것도 있고요.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최근에 사감위의 헛발질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요새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도박중독 예방을 위한 극장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데 그게 사감위에서 난도질당했습니다. 내용인즉슨 광고에 삽입된 도박 이미지를 모두 삭제하고 문자로만 노출하도록 하라는 것이죠. 아니, 극장 광고가 30초에 불과한데 이미지를 빼고 문자로만 도박중독 예방 광고를 하라는게 말이나 됩니까?
게다가 이 광고의 컨셉이 '사랑에 빠진다면'-'프로포즈 하면 되고', '이가 빠진다면'-'치과에 가면 되고', '머리가 빠진다면'-'가발을 쓰면 되고', '도박에 빠진다면'-'~에서 상담을 받으면 되고'와 같은 식으로 연결하는 것인데 '사랑에 빠진다면'에 삽입된 이미지의 간접 키스 장면이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고 그게 도박과 연결되면 예방이 아닌 도박을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 키스 장면도 빼라고 했답니다. 누가 그런 의견을 냈는지 모르겠으나 머리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네요.
요새 말이 많은 방통위에서도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깔끔하게 통과된 광고를, 그것도 도박 중독 전문가 4인이 자문해서 3차례의 회의와 시사회를 거쳐 제작한 광고를 이런 말도 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난도질하다니요.
저는 방통위 위에 사감위가 심의기구로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사감위 자체 조직인지, 아니면 민간 위원회에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박중독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으로 무장한 이런 사람들이 무슨 도박중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앉아 있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주 대박을 터뜨려 주셨는데 내년에는 또 어떤 삽질을 할 지 두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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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병원 급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어합니다. 적절한 금전적 보상과 복리 혜택이 주어지는 유급 수련 과정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경험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종합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종합병원이라는 수련 현장의 장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업무량에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종합병원이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희귀한(?) 장애는 별로 못 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병원에서 Sleep Walking Disorder, Fugue,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환자 등을 평가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애는 몸에 밸 정도로 많이 봅니다.
제가 수련받은 병원의 경우 1년차 레지던트는 1/4분기 동안 지적 장애 판정에 투입되는데 다양한 심각도의 Mental Retardation 환자를 지겹도록 평가합니다. 그 다음에는 발달 장애 클리닉에 투입되어 몇 달동안 Communication Disorder, MR, PDD NOS, Autistic Disorder를 변별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보호 병동에서 SPR, MDD 환자를 실컷 평가하고, 다시 외래에서 ADHD, Anxiety Disorder 아동을 평가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 장애를 일정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쌓이는 노하우와 지식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특정 장애에 대한 검사 sign과 case formulation의 감을 잡을 수가 있고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는 다른 장애와 변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의 장애에 대한 감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무조건 다양하고 특이한 환자를 본다고 전문성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얄팍한 잔수만 늘게 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앞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성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심리평가 부문에서도 최종적으로는 특정 장애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증 클리닉의 집중 훈련 과정을 통해 Pain Disorder 환자에 대한 대가가 되든지, 재활 병원에서 뇌손상 환자의 손상 부위를 아주 detail하게 잡아내는 전문가가 되든지, 섭식 장애 센터에서 Eating Disorder 환자를 평가, 치료, 예방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든지 말이죠.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평가하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집중'적인 훈련과 전문성의 배양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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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 포스팅에서 예고한 것처럼 임상심리학의 어두운 미래 예상에도 불구하고 소위 블루 오션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대한 제 예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예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인생 진로를 이곳에 올인하시면 안 됩니다. 뭐, 하셔도 좋습니다만 제가 전혀 책임질 수 없으니 나중에 내 인생 책임지라고 연락하지 마세요~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의 블루 오션은 크게 네 가지 분야입니다.
첫째.
노인 관련 분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피할 수 없는 미래이고, 미래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향후 전체 인구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할 노년층에 대한 정신건강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가 알기로 이 분야는 거의 불모지 상태입니다. 그나마 독거 어르신의 daily care와 관련된 분야만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 치매 등 노인성 정신장애에 대한 신경심리평가, 치료, 재활, 예방 등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은 말할 것도 없고 세부 분야의 전문가 수마저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할 말로 치매, 파킨슨 병 등 노인성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신경심리평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전문가의 수는 인프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신경심리평가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대우도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어서 호화로운 실버타운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다루는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의 복지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국가 정책의 방향이 이 분야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격적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수요에 비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노인 상담에 대한 경험 축적, 노인성 장애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지식, 신경심리평가 도구의 숙달에 미리미리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둘째,
애착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 말씀드린 초고령화 사회의 대두와도 맞물려 있는데 노인층이 늘어나는 만큼 출산율은 더욱 떨어져서 가구 당 1.0의 출산율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소아과, 산부인과 등이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지요. 소아정신과도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줄어들고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 두드러지는 핵심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애착 문제입니다. 맞벌이 가정에서 태어난 독자들이 늘고 있고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주 양육자로부터 강제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몇 년 전부터 불안정 애착 문제가 아이가 보이는 다양한 증상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ADHD, Anxiety Disorder, Conduct Disorder 등의 진단이 의심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부모-자녀 관계, 특히 불안정 애착이 원인인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의 경우에도 애착 문제가 심화되어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이 많더군요.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그럼에도 경쟁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안정 애착을 하는 건강한 아이들을 점점 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애착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별로 없습니다. 애착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의 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애착 치료를 다루는 전문 서적 마저도 거의 없습니다(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검색해 보세요). 그만큼 이 문제의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죠. 아동에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애착 문제에 대한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셋째,
상실 문제입니다. 대가족 체계에서는 삶과 죽음이 그리 많이 분리되지 않았고 죽음이나 상실의 충격을 완화시켜 줄 장치가 그나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이제는 독거 가정, 비혼 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상실의 충격을 감소시켜 줄 완화 장치가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픔을 함께 나눌 형제가 없고, 친구의 수도 부족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자가 많기 때문에 배우자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반려 동물을 입양하지만 대부분의 반려 동물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아서 오히려 더 자주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물며 오랫동안 정들었던 물건을 버리는 것 마저도 상실의 서운함과 아쉬움을 주는데 가족, 가족과 같은 반려 동물을 잃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방법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상실의 문제는 단지 죽음과 관련된 것 뿐 아니라 이별의 아픔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용과 인정만을 강조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현재 상실의 문제만을 특화시켜 다루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우울증, 적응 장애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볼 때에는 역부족이고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들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지만 상실에 초점을 정확하게 맞춘 것이 아니라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려면 지금부터 자신의 specialty를 정해서 전문성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넷째,
중독 문제입니다. 그 중 한 영역은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문 분야라고 말할 때에는 딴 데 정신팔지 않고 적어도 10년 정도를 현장에서 굴러서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예전에는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나누곤 했습니다만 최근 추세는 모든 중독을 행위 중독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약을 주사하는 행위, 손에 든 담배를 입으로 빨아들이는 행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중독 메카니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쨌거나 기존의 물질 중독 뿐 아니라 도박, 인터넷, 게임, 섹스, 쇼핑, 관계 중독 등 다양한 행위 중독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어 앞으로는 여러 분야에서 중독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기존 상담 영역에서도 중독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가능한 전문가를 요구할 겁니다.
현대 사회는 삶의 폭폭함을 잊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가족 제도의 해체와 핵가족의 확대, 물질 만능주의의 만연, 개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해 중독적 삶의 확산이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중독 분야의 수요는 점차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중독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해당 분야의 지식과 전문성, 현장 경험을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 애착, 상실, 중독, 이 네 가지 키워드를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Generalist는 가고 Specialist가 온다'는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는 specialist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대우받을 수 없는 시대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을 미리미리 개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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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Paul G. Quinnett은 제가 2009년 3월에 혹평했던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Pavlov's Trout, 1998)'라는 책을 쓴 임상심리학자입니다. 못말리는 낚시광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분은 자살 관련 분야의 최고수 중 한 명입니다.
보통 자살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연예인 자살이나 생활고에 시달려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에게는 훨씬 더 자주 접하는 문제입니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니더라도 자살로 귀결되거나 자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매우 많거든요. 속된 말로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 환자나 내담자를 자살로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임상가는 초보이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환자나 내담자를 잃을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정신적 타격은 임상가를 burn-out시킬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2009년에 도박 중독이었던 내담자, 2010년에 우울 증세가 동반된 적응 장애 피검자를 각각 자살로 잃었습니다. 1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썼던 글이 바로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에서는 다행히 자살 시도를 하는 빈도가 적은 편이지만 자살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도박자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흔한 문제이고 도박 중독자들은 충동성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언제든 불행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는 임상가 중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제 나름대로 대비를 하는 차원에서 고른 책인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30년 이상 현장에서 자살 환자를 치료한 전문가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이런 책은 실제 현장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저도 이런 책을 꼭 한 번 쓰고 싶군요. ㅠ.ㅠ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은 정리해서 포스팅도 할 생각이지만 현장에서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임상가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저도 소장하면서 가끔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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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회는 매년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필기 시험에 앞서 수련생(이 용어는 매번 들을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데 학회는 여전히 바꿀 생각이 없나 봅니다) 공동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련생 공동 교육은 수련 커리큘럼의 표준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금의 현실에서 레지던트들이 시험을 앞두고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교육 수강료가 턱없이 비싸다는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년에 단 한번에 불과한 공동 교육이 표류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를 수강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불만이 이제는 극에 달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실례로 올해 공동 교육 과목 중 '노년기 심리장애', '가족치료', '신경심리평가', '소아청소년 심리장애' 내용에서 임상심리전문가/정신보건임상심리사 시험에 단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히 문제가 나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공동 교육과 시험이 완전히 따로 놀았다는 말입니다. 이럴 바에는 대체 뭐하러 공동 교육을 실시하는 겁니까?
물론 공동교육의 내용이 시험에 꼭 나와야 하는 법은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가 극히 드문 현실에서 유일하게 그동안 몸으로만 때웠던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공동 교육이라면 문제 출제 위원이 공동 교육을 진행하거나 그마저 어렵다면 공동 교육 강사들이 문제 은행의 기출 문제들을 한번쯤은 읽어보고 그에 따라 레지던트들이 꼭 익혀야 하는 지식을 정리해서 교육을 실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전문가들조차도 당장 시험을 보면 줄줄이 미끄러질 정도로 공부를 안 하는 마당에 시험 대비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공동 교육에서마저도 엄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면 먼 거리를 마다않고 천금같은 시간과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하고 모여든 레지던트들은 뭐가 됩니까?
준비된 강사를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학회의 어려움을 수련 레지던트에게 전가하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문제 은행의 내실화를 위해 새로운 출제 위원을 계속 보강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 교육의 강사들이 강의 영역의 출제 문제를 일독하고 공동 교육안을 작성토록 하는 방안을 추천합니다.
학회가 문제 유출을 막고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원칙만 계속 고집한다면 공동 교육의 내실화는 요원합니다.
수련생 공동 교육의 내실화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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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한 마지막 과정 중 하나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들의 치료 사례 발표회가 연구회, 지회 별로, 또는 전체 학회 차원에서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발표할 치료 사례를 supervision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포스팅합니다.
제가 수련을 받을 때에도 그랬지만 가져온 치료 사례를 보니 온갖 특이한 장애와 기법이 난무하더군요. Eating Disorder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고 Avoidant PD 정도는 되어야 하고 기법도 요새 유행하는 ACT, 마음챙김명상 등은 써 줘야 치료 좀 했다고 한답니다.
뭐 좋습니다. 평소에 워낙 심리치료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보니 이런 자리에서나마 특이한 장애와 치료 기법을 맛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말이죠.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를 위한 치료 사례 발표회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요? 그것부터 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나가서 치료를 하게 될 때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치료 기법과 지식이 제대로 숙련되어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 아닌가요? 그렇다면 가장 흔하면서도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점검하고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지 왜 현장에서 보기도 힘든 특이한 장애와 기법을 시험하는 시험장으로 사용합니까?
토론자로 나온 전문가조차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특이한 사례를 갖고 토론하면 없던 전문성이 갑자기 생기기라도 한답니까?
학회에서도 레지던트마다 특이한 사례를 발표하려고 하면 토론자 섭외하는데에도 곤란하지 않나요?
특이한 사례와 기법은 전문가 사례 회의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자면 전문가 사례 회의부터 부활시켜야 하겠지만요. 이 또한 참으로 요원한 일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 수련과정의 치료 사례 발표회에서는 '왕따당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여중생', '삶의 의욕과 목표를 잃은 기러기 아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처럼 너무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한 문제 사례를 중심으로 어떻게 초기 면담을 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구조화하는지, 어떻게 라포를 형성하는지, 치료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목표 달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종결은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치료의 맥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물론 치료 사례 발표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심리치료 교육에 대한 틀을 제대로 짜는 것이겠지만요.
치료 사례 발표회가 계속 특이 장애와 기법의 시험 발표장으로 유지된다면 실속은 하나도 없고 임상심리전문가 레지던트의 부담만 가중하는 요식 행위로 전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덧. 그리고 아무리 수가 적더라도 토론자는 자신이 직접 상담과 치료를 하는 전문가만 섭외하세요. 병원에 있는 전문가라고 모두 상담과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레지던트들에게 등 떠밀고 심리평가마저 게을리하는 전문가가 얼마나 많은데요. 발표를 하는 레지던트보다 사례를 접한 경험이 더 적은 토론자가 떡하니 앉아있는 것을 보면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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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심리평가/심리치료의 supervision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supervisee 선생님의 수가 어느새 30명이 넘었습니다. 거의 40명에 육박하는군요.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제가 6년 째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고 있지만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는 소리를 여전히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수님들은 대체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건지...
그나마 supervisor랍시고 supervision을 제공하는 전문가들도 자질 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제 얼굴에 침뱉기에 해당하는 이런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런 전문가들에게 주제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저도 언제든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글로 남겨 미리 제게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면 supervision을 한 뒤 원하는 분들에 한해 수정한 내용을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점검하는 소위 '첨삭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워낙 손 볼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잘 써온 분도 계시고 대면 supervision이 끝난 뒤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게 되어(이제와서 생각을 해 보면 보고서에 들이는 정성과 고민은 저보다 나은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감을 잡고 키워드를 찾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을 도와드리는 것 뿐이죠) 첨삭 지도를 해도 문구를 매끄럽게 다듬거나 오, 탈자를 점검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comment를 한 보고서를 발송하면서 formulation이 잘 되었다는 솔직한 평을 보내면 '너무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우울한 일상에 힘을 얻었다'는 식의 어리둥절한 답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positive feedback마저도 인색한 harsh한 supervisor가 천지라는 사실을 말이죠. 대면 supervision에서도 온통 '네가 준비해 온 만큼만 supervision을 봐 준다', '어떻게 레지던트가 이런 것도 모르냐', '이 용어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썼냐,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어떻게 건방지게 다른 superviser에게 supervision을 받겠다는 말을 하냐'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고 상처를 주는 supervisor가 얼마나 많은 지 알게 되었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가 주로 군 생활 할 때 많이 들은 말인데 살상을 목적으로 한 조직에서 듣던 말을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는 전문가 조직에서 또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하게 키워야 강군이 된다는 말도 군대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전쟁이 나면 그 상사부터 쏴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적개심 가득한 사람들만 양산하지 군 전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과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무기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전 학교에 있을 때에도, 군에 있을 때에도, 수련을 받을 때에도 혼이 나면서, 면박을 당하면서 배웠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밉기만 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던 기억만 있습니다.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는 supervisor들에게 진심으로 묻습니다. 정말 그렇게 면박주고 모욕하고 혼을 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실력자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열등감을 supervisee에게 투사하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acting out하는 히스테리 supervisor에 대해서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말해봤자 제 입만 아프고 그 사람의 인생에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임상 분야가 얼마나 좁은데 그렇게 평판 관리를 안 하십니까? 저처럼 사람 가리고 외곽에서 은둔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온 정보만 모아도 당장 퇴출되어야 할 전문가(명칭이 아깝습니다)가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제가 편하게 대해도 명색이 제가 superviser인데 supervisee들이 실상을 모두 말 할리가 없을텐데도 남 부끄러워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책으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미 몇 차례 비슷한 포스팅을 했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supervisee들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고 미래의 내 동료입니다. 어려운 길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들이고요. 그리고 야단치고, 화내고, 혼 낸다고 실력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더 격려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읽어보라고 참고 자료를 주세요. 화만 내지 말고요.
제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잣대로 삼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supervisee가 못 돼고 글러먹었어도 이들이 약자입니다. 그러니 저는 앞으로도 이들의 편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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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독 통합법 개정에 대한 설명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마약, 알코올 등의 약물 중독과 인터넷,도박 등 행동 중독을 하나의 법 체계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 중독 통합법의 골자입니다. 소관 부서가 보건복지부가 될 지, 다른부처가 될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렇습니다.
통합법의 근거는 소관 부처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중독 문제에 대응하는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 법에 절대 반대입니다.
우선 저는 이 법 제정의 기저에 깔려 있는 부처 이기주의와 그에 영합하는 일부 교수들의 밥그릇 싸움이 역겹습니다. 중독이라는 그다지 균일화되지도 않은 문제를 대응한답시고 치료 현장을 하나의 틀로 관리, 감독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웃기고요. 지금처럼 소관부서가 다른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하나로 묶어두면 그게 제대로 관리가 되겠습니까? 그저 관리 조직의 크기만 키우겠다는 부서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효율적인 대응이 되려면 각 중독 별로 특성화시키되 유기적인 치료 네트워크가 구성될 수 있도록 연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어떤 난리가 벌어질 지 불 보듯 뻔합니다.
사감위처럼 중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얼치기 공무원들이 거대 조직을 만든 뒤 역시 현장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교수들을 규합해 자문단을 만들고 각종 연구 용역을 실시할겁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치료자의 노하우는 사장됩니다. 그리고 나서 중앙 조직내에 control center를 만든 뒤 각 중독 분야의 센터들은 정신보건센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물론 양적으로 보기에 일시적으로 실적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향 평준화됨으로써 각 센터의 치료자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하향평준화되는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세력은 모든 중독의 뿌리가 같다고 보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인터넷 중독과 도박 중독의 접근법도 상당히 상이하다고 보는 쪽입니다. 동일한 중독 상담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1회성의 위기 개입 상담을 할때에나 통하는 이야기이지 현장에서는 그 정도의 공통 상담 기법갖고 치료를 한다는 건 5살 꼬마에게 소총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중독자를 상담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각 중독 분야의 현장 치료자들끼리의 연계망도 없는 지리멸렬한 중독 분야에서 top-down 방식으로 관리 조직부터 만들고 통제하려고 하면 우리나라 중독 분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일하게 좀 냅두세요.
냅두는게 중독 분야의 발전을 도와주는겁니다. 사감위 하나만으로도 뺴앗기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은데 괜히 허섭한 조직 자꾸 만들려고 하지 말고요. 기존의 조직을 없애면 더 좋겠지만 그건 기대도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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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적용됩니다.
물론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심정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내려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점검하고 헷갈리거나 분명하지 않은 것을 따로 list up해 supervision 때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supervision point를 물어봅니다. 이 케이스를 왜 supervision 받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요. 이 질문을 자꾸 던지는 이유는 supervision을 준비할 때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알고 싶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case formulation이 어렵기 때문에 supervision을 받으려고 하지만 point를 잡기 위해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취약점을 찾아낼 수 있고 이 취약점을 보강해야 supervision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을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supervision point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진단의 문제인가
:
진단이 헷갈리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가설 검증 방식에 의한 case formulation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진단을 위해 필요한 정신병리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검사는 그런대로 하겠는데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정신병리에 대한 지식을 더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 결과를 대충 꿰맞추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단명을 붙여 제출하게 됩니다.
2. 검사 sign 통합의 문제인가
: 검사 sign이 통합되지 않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역시 가설 검증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보다 중요한 검사 sign을 선별하지 못함)이고
다른 하나는 각각의 검사 sign이 어떠한 심리적 상태, 증상, 문제와 연결되는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과도한 정보에 압도되어 보고서 작성 시점에서 수많은 정보를 늘어놓고 골라내는데 어려움을 겪게되고 후자의 경우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해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전자의 경우는 가설 검증 방식으로 접근하는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각 검사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사 별 manual과 해석서를 보다 심층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3. 검사 sign과 배경 정보의 불일치 문제인가
: 심리검사의 실시 및 채점, 해석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도 겪게 되는 이 문제는
대부분 배경 정보의 신뢰도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자녀를 방임한 어머니의 주관적 보고를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
screening에 실패하거나 꼭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병력이 있는 정신분열병 환자가 복용하던 약물 미확인 등)
발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심리검사 실시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나머지 검사 실시, 채점, 해석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죠. 이 경우는
부족한 정보를 수집하는 노하우를 익히게 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4. 검사 실시 및 채점, 해석의 문제인가
: 수련 과정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중요시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맹점이 많은 부분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종합병원 급 수련 기관에서도 검사의 실시, 채점은 대학원에서 충분히 익히고 왔다고 가정하며 1년차 때 윗년차가 몇 번 관리 감독하는 것으로 마스터했다고 여기는데 실제로 전문가가 된 이후에도 잘못된 검사 실시 방법을 본인도 모르는 채 고집하는 경우가 많으며 검사 도구 자체에 대한 지식마저도 부족(예를 들어 K-WAIS의 언어성-동작성 지능의 유의미한 차이 점수가 연령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름)한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세부적인 지식을 supervision을 통해 교정해야 합니다.
5.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의 문제인가
: 이건
임상심리학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데 현재 어느 수련 기관에서도 어떻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수련 레지던트의 자질하고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참고 서적이 한 권도 없으며 Clinician's Thesaurus와 같은 외국 서적을 참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ion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표준화된 보고서 작성법보다는 적절한 용어 사용, 군더더기 없는 기술, 논리적인 연결법 등입니다.
6. 심리평가 보고서 활용의 문제인가
:
심리평가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술 방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지체 판정을 위한 보고서이냐, 심리치료를 위한 평가이냐, 학교 제출용이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제언(recommendation)도 달라지게 됩니다. supervision에서는 이러한 각각의 활용도에 따라 심리평가 보고서를 어떻게 달리 작성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밖에도 많은 점검 point가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정리를 했으니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선생님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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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출판업에 종사하는 분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요새는 심리학이 출판 시장의 대세라고 하네요. 자기 개발(이거 계발이 맞나요? 당췌 헷갈려서 -_-;;;)서와 재테크 서적의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심리학 서적의 세상이 온 겁니다.
그런데 정작 졸업하면 미아리에 돗자리 까는거냐는 비아냥과 조소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고 선배들로부터 10년만 참으면 심리학이 대우받는 세상이 온다는 격려같은 한탄을 들으며 살아온 제게 이런 세태는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거든요.
그래도 나름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서적이라면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고 자부합니다만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심리학 서적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궁금하시면 심리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서적 코너에 가셔서 제가 별 다섯개로 평가한 책이 몇 권이나 있는 지 세어보시면 당장 아실 수 있을겁니다. 그나마도 제가 높게 평가한 책은 현장의 임상가를 위한 전공서적, 그것도 거의 번역서입니다. 일반인들을 위한 책은 제 기억으로 한 권도 없습니다.
이것은 심리학 분야가 일반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큼 여전히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당의정처럼 달달하게만 쓴 책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책 팔아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물론 강력히 후자를 의심하고 있고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2009년~2010년에 쏟아져 나온 '~심리학', '심리학 어쩌고 저쩌고로 살펴본 ~'류의 책 중에서 정말 좋은 심리학 책이 있나요? 몇 번 책 소개를 하면서 뻔한 사회 심리학 개념을 재탕하는 것을 한탄한 적이 있는데 사회 심리학의 개념들이 무슨 사골입니까? 재탕하게.
자신들만의 상아탑에 갖혀 상호소통을 하지 못하는 심리학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심리학이야 오해를 받든 말든 자본주의 파도의 서핑을 즐기는 얼치기 심리학자들은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
얼치기 심리학자들이나 제대로 안 파는 사람들이나 똑같은 넘들입니다.
당장 심리학과의 경쟁률이 폭등하여 어느 학교는 의대 다음으로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제 블로그만 해도 최근 들어 임상심리전문가, 상담심리전문가를 꿈꾸는 분들의 방문 수가 월등히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수련 기관이 모자라 수련을 받기 위한 재수는 필수요, 삼수도 필수라는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해줍니다. 선택받은 몇 몇을 제외하면 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비정규직의 길을 걸어야 하거나(특히 박사급 전문가는 길이 없습니다) 프리랜서로 평생 심리평가만 하면서 치료자의 길을 접어야 하는데도 아무도 심리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심리치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심리평가만 해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하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아무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지 않습니다.
미팅에 나가 심리학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기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만날 때 심리학을 했다고 하면 관심을 보이는 게 기분 좋아요?
언제까지 관심에 취해서 헤롱헤롱거리면서 살 겁니까?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것과 모자란 것을 점검하고 함께 나누고 쌓아서 제대로 된 전문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심리학과를 들어갔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한 번 좌절하고 수련 기관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두 번 좌절하고, 가까스로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마지막으로 좌절해서 치료자의 꿈은 어디로 갔는지 프리랜서로 아둥바둥 일하다가 그냥 모교 대학원에 박사 과정으로 들어가서 주저앉는 걸 이제는 그만해야 합니다. 모두 다 교수가 될 수도 없지만 교수가 되고 난 이후에 심리평가도 심리치료도 supervision도 모두 내려놓고 그냥 대학생들에게 사기치면서 띵까띵까 정년만 보장받으려는 보신주의도 이제는 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별 것도 아닌 심리학 개념을 사골 우려먹듯이 재탕하면서 사람들에게 팔아먹는 짓거리부터 때려치워야 합니다.
책 좀 팔리고 인세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 된 듯 으쓱하겠지만 나중에 나이 먹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신차리세요. 그 때 가서 물릴 수도 없어요.
요새는 사기치는 것이 쉬운 만큼이나 물리기가 어렵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인간으로 살기는 참으로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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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본래 약력이 긴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더 말 할 것도 없고요. 학계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제대로 된 전문가일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족함과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걸 보상하려고 자격증에 집착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작년 10월에 전문가 보수 교육의 일환으로
8주짜리 MBSR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중간에 휴가가 겹치는 바람에 4주 밖에 참석을 못 했지만요.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냥 8주 코스를 수료한 것으로 해 줄테니 MBSR 학회에 가입하고 전문가 과정에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만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MBSR 수련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게 편법으로 이수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대충해도 수료하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수련했던 8주 코스는 그야말로 초보자를 위한 기초 과정인데 MBSR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이 객원멤버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전문가이면서도 기초 과정을 한번도 끝까지 이수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더군요. 그야말로 깜놀했습니다. 대체 뭡니까? 기초 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증이 현장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그래도 3년 동안 혹독한 임상 수련을 거치고 엄격한 심사와 시험 등의 선발 과정을 거쳐 전문가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몇 십 시간의 워크샵이나 수련만을 요구하는 자격증은 상대적으로 더욱 엄격하게 quality 관리를 해야 합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개나 고양이나 돈과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으로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MBSR이 판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수를 늘리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제가 경험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결국은 현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이 일로 인해 MBSR 전문가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소비자는 어떨 것 같습니까? 과연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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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문가가 쓴 심리평가 보고서를 읽다 보면 상당히 잘 쓴 보고서인 것 같은데 다 읽고 나서도 피검자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심리평가 보고서의 분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분량을 늘이는데 치중한 나머지 중언부언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읽는 사람이 핵심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량을 줄여서 간략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가 지속된다면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이 피검자는 부적응 상태에 있어 일상 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할 것으로 보임"이라는 어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저도 자주 이렇게 씁니다. ㅠ.ㅠ).
물론 틀린 기술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일반적인 어구로만 이루어져 있어 피검자가 어떤 부적응 상태인지, 일상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는지 읽는 사람이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피검자는 최근에 경험한 이별로 인해 중등도 이상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어 의기소침, 무기력한 상태이므로 대인 관계 상의 접촉이 필요한 현재 직업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임"처럼 될 수 있는 한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읽는 이가 이 피검자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최소한의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은 써야 합니다.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잘 몰라서이기도 합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련을 받을 때 어떤 용어를 선별해서 사용하는지에 대해 어떤 supervisor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으니까요. 현재 수련 실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용어 사용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데도 자꾸 애매모호하게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이 틀렸을 때, 피검자의 정서 상태를 잘못 평가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유,무형의 비난과 질책을 피하기 위해 모호하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죠.
최대한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해 정확하게 보고서를 쓰려고 노력할 때만이 전문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 그대로를 직면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얄팍한 전문가 자격의 껍질 뒤에 숨어서 자신이 평가한 피검자를 기만하면서 계속 죄책감때문에 불편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형편없는 전문가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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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가 고위험군이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하는 일의 특성 상 신종플루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는 임상 현장에서 심리평가 및 심리치료를 담당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인 접촉 빈도가 높습니다. 그렇다고 상담을 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상담자가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하면 내담자가 그런 상담자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상담을 많이 하는 임상심리전문가는 아무래도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성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데 따르는 위험입니다.
물론 심리평가도 피검자와 일 대 일로 마주보고 실시하지만 그보다는 심리검사 도구로 인한 감염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심리검사 도구에 사용하는 자극은 많은 경우 피검자가 직접 손으로 동작하며 또한 평가자도 피검자만큼 그 자극을 손으로 만지기(펼쳐놓고 다시 수거하는 등의 일련의 작업 때문에)때문에 신종플루의 바이러스가 검사 도구를 통해 전파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기관에 비치된 심리검사 도구는 여러 피검자에게 돌아가며 사용되면서도 제대로 소독할 수 없기 때문(대부분 종이 재질이거든요)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전문가들은 검사 시 검사 자극을 만진 손을 얼굴 근처로 가져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검사가 끝나면 반드시 손 세정제로 손을 닦아야 합니다.
제가 전에 소개한
휴대용 자외선 살균기가 있으면 그걸로 약식으로라도 검사 도구를 살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임상심리전문가들은 특히 주의하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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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연한 것까지 포스팅을 해야 하다니 마음이 참 착잡합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당연히 평가자인 임상심리학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심리평가라는 것이 의뢰받은 피검자에 대한 의뢰 사유 확인, 의뢰 사유에 따른 심리검사 도구의 선정, 검사, 채점, 해석, 보고서 작성, 해석 상담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이니 어떤 검사 도구를 사용할 것인가는 평가자의 권리이며 그게 누구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겁니다.
물론 수련 과정에 있는 레지던트에게 supervisor가 교육 차원에서 검사 도구 선정에 대한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책임은 평가자가 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ADS를 무조건 실시하라는 둥, SMS를 빼라는 둥 요구를 하는 건 그게 의사이든, 사회복지사이든, 그 누구이든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월권 행위입니다(개인적으로 저는 이걸 요구할 수 있다는게 이해가 안 됩니다. 함께 일하는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평가자의 권한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니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평가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겁니다.
의사가 하라는대로 보고서 양식에 맞추어 쓰고, 사회복지사가 하라는대로 검사 도구를 넣고 빼고.... 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좋습니다. 까짓거 심리학자가 능력이 없어서, 책임이 없어서 그랬다고 칩시다.
그러면
피검자의 검사 받지 않을 권리는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불필요한 검사로 피검자를 괴롭혀도 됩니까? 게다가 불필요한 비용 청구는요? 그게 과잉 진료랑 차이가 있을까요?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건 그 나름대로 세금 포탈이나 다름없는 비윤리적인 행동입니다.
원래 심리평가는 임상심리학자가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선별적으로 실시하는 겁니다. 그러니 심리평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임상심리학자가 피검자에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검사 도구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요. 현재는 검사 수가 문제 때문에 이런 저런 검사 도구를 battery로 묶어서 실시하지만 현실적인 이유에서 그런 것일 뿐 그게 옳은 방법이어서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임상심리학자들도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보니 위에서 시키는대로 그냥 습관적으로 심리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상심리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심리검사 도구의 선정은 피검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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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학자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심리치료와 상담이라고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봐도 아직까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물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임상 심리학자에게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숨을 쉬는 것과도 같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죽게 되는(이거 중요한 말입니다. 밑줄~) 그런 것이죠.
그런데 매일 하는 일이 되어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보고서가 틀에 박힌 것 같고 사용하는 문구도 매번 똑같아서 정체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Somatization Disorder와 Conversion Disorder, Dysthymic Disorder 등 Neurosis 계열의 장애를 진단하는 각각의 보고서를 진단 명만 바꾸어 내도 별 무리가 없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아무런 고민 없이 공부도 안 하고 그냥 항상 쓰던대로 보고서를 쓰는 전문가는 어차피 제 발로 무덤을 파는거니까 신경쓰지 말도록 하고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이 되실까 해서 제가 사용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 드립니다.
첫째, 다양한 문구를 사용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영어를 배울 때 미국인들은 똑같은 단어를 다시 사용하지 않고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바꾸어 쓴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실 겁니다. 이걸 보고서 작성에 적용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인다'는 흔히 사용되는 종결 문구입니다. 이걸 동일 보고서에서 '~생각된다', '~나타났다', '~드러났다', '~시사한다' 등으로 다양하게 바꾸어 보는 겁니다. 물론 앞뒤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문구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상된다'도 '~가능성이 있겠다'로 바꾸어서 사용할 수 있고 '~가능성이 커 보인다'와 같은 변형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방법만으로 보고서 작성의 매너리즘에서 곧장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보고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읽는 사람의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여주고 본인에게는 문장력을 높여주는 연습이 되기 때문에 적극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다른 평가자의 보고서를 탐독한다.
: 다양한 문구를 사용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는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든 전문가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럴 때에는 다른 전문가가 쓴 보고서를 읽는 것이 도움이됩니다. local NP에서 프리랜서로 평가를 하는 선생님이라면 다른 선생님이 쓴 보고서를, 수련 레지던트라면 윗년차가 쓴 보고서를 자꾸 읽는 겁니다. 이 때 매너리즘에 자주 빠지는 특정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에 대해 다른 선생님이 쓴 보고서를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어떻게 formulation을 하는 지 눈여겨 보는 겁니다. 제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보고서를 매일 읽으니까 저도 모르게 표현력이 늘게 되더군요. 이것도 모르고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안 하는 supervisor들은 어리석은 바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supervision을 귀찮은 일이라고만 생각하겠지요. 그런 썩어빠진 정신의 supervisor는 뭘 해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합니다.
셋째, 다양한 표현을 수집하고 변형해 내 것으로 만든다.
: 다른 평가자의 보고서를 읽는 것과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법인데 보고서를 읽으면서 인상깊은 표현이나 구절을 적어서 나름의 관용어구 사전을 만들어 두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소개한
'글쓰기의 공중 부양'에서 이외수옹이 추천했던 방법이지요(참고로 말씀드리면 외국에는 이미 심리평가 보고서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모아 놓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걸 그대로 베껴쓰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체화시켜 사용하는 겁니다.
지겹다~ 지겹다고만 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지겨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를 쓰는 일이 지겹다고 느껴질 땐 나름의 재미를 찾아보세요.
제가 설명드린 방법 말고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분들은 제보를 해 주시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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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이상 상담한 케이스를 장기 상담으로 분류하여 통계를 냅니다. 사실 도박 중독 상담은 상담 횟수가 얼마나 되느냐보다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다만 도박 중독자가 워낙 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치료받고자 하는 동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정신 장애 분야는 말 할 것도 없고 중독 분야에서도 워낙 조기 탈락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5회 정도는 상담이 이루어져야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어느 정도의 치료적 동맹 관계가 형성되고 경험적으로 볼 때,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편의 상 그렇게 분류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 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5회 이상을 장기 상담으로 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며 트집을 잡으면서 전문가들(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뻔한 바닥에서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형식적인 운영을 질타하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논리가 지난 달인가 사감위에서 모 언론에 사행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센터(제가 근무하는 기관을 콕 집어서)가 유명무실하고 형식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할 때 근거로 내세웠던 것과 똑같다는 것이죠.
뭐 이 질의를 한 국회의원이 그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이런 분류 기준에 따른 통계 자료를 요구한 시초가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었다는 것(국정감사 이전에는 이런 분류를 한 적이 없습니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 민망하고 우습지만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상담한 것은 상담 축에도 못 듭니다. 2~30회 상담한 내담자가 수두룩한데다 제가 어제도 상담한 내담자는 50회(그것도 지금은 종결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 한 달에 1번 만나는 것이라서 50회이지 실제 햇수로는 3년 째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에 육박하니 5회 상담을 장기 상담이라고 우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도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내담자 중에서 10회가 넘지 않은 내담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오히려 궁금한 것이 국가기관인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는 대체 얼마나 장기 상담을 잘 하고 있기에 다른 기관을 그렇게 폄하하느냐는 것이죠. 과연 저희처럼 모든 내담자의 개인 chart 관리를 하고 있을까요? 5회는 장기 상담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쉬운 5회를 넘기는 내담자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집단으로 돌리는 프로그램 말고 개인 상담으로 말이죠. 저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원래 다른 사람 옷에 묻은 겨는 보여도 지 몸에 묻은 똥은 보이지 않는 법이죠.
그래도 악취는 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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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초기에 심리적인 문제를 꼼꼼히 살피는 편입니다.
그래서 MMPI-2를 비롯한 다양한 심리평가 도구를 사용해 도박 중독자가 기타 중독, 우울 장애, 불안 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은 지 평가하고 해석 상담도 꼭 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실제로 보면 교과서에서 보듯이 도박 중독자에게 공존 질환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문제를 반드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에 하나 놓친 심리적 문제가 재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 장애가 기저에 있는 사람의 치료 목표를 도박 중독에만 맞출 경우 설사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울 장애에 의해(우울한 기분을 잊기 위해 다시 도박을 하는 등)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도박 중독 치료는 도박 중독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도박 중독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에 있어서도 다양한 재발 요인을 꼼꼼히 챙겨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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