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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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이 책을 쓴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ouis Bernays)는 프로이트의 조카(친조카 겸 처조카)입니다. 아버지가 프로이트의 아내인 마사 버네이스의 오빠이고 어머니가 프로이트의 여동생인 안나 프로이트거든요.
코넬 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뉴욕시상품거래소에서 곡물 유통 업무를 하다가 그만둔 뒤 들어간 잡지사에서 자신에게 홍보의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PR 영역으로 뛰어들어 PR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을 듣는 사람입니다.
버네이스는 구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의
'군중심리'는 전에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과 월프레드 트로터(Wilfred Trotter)의 대중 심리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시켜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하면서 홍보를 과학, 산업으로 최초 정립하기도 했죠. 이후에는 바넘(P. T. Barnum)과 이반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의 학문 업적까지 끌어들였다고 하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의 업적을 보고 아돌프 히틀러가 그에게 나치 제국의 선전 전략을 맡기려고 열심히 회유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실패했지만.
이 책에서는 선전의 태동, 기업과 대중, 정치, 여성, 교육, 사회사업, 예술과 과학에 미친 선전의 영향을 면밀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버네이스가 '선전'에서 불길한 기운을 걷어내고 원래의 의미대로 순수성과 중립성을 되찾아주는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이라고 애써 밝혔지만 책 안에서조차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사례를 소개하면서도 자신이 했다는 표현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입증되었다'는 식의 표현으로 마치 제 3자가 이루어놓은 일을 자신은 단지 소개하고 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음험한 가면을 벗지 않고 있죠.
특히 자신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고 아내의 흡연조차 극구 반대했으면서도 러키 스트라이크 담배 회사의 홍보를 의뢰받아 담배 시장을 여성으로 크게 확대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일과 여론을 조작해 과테말라를 소련의 공산주의 전초기지로 낙인찍음으로써 CIA를 움직여 1954년 과테말라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미 성향의 과두정부가 들어서게 했던 일까지 있어 일각에서는 그를 '민주주의의 암살자'라고 부르며 격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선전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애 많이 썼습니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오히려 선전, 선동이 무지한 대중을 얼마나 쉽게 농락할 수 있는지, 얼마나 나쁘게 악용해 민중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노엄 촘스키 교수의 말처럼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르는 것이니 상대방의 선전 전략이 어떠한 것인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알아차리려면 이런 책도 읽어줘야 합니다.
덧. 1928년에 나온 이 책의 머리말을 2004년 뉴욕 대학교의 마크 크리스핀 밀러 미디어학 교수가 썼는데 주석까지 꼼꼼히 붙여서 무려 54페이지나 주절거려놨더군요. 저자 본인의 말인 줄 알고 진지하게 읽었는데 내용이 뭔가 이상하길래 확인했더니만 이렇습니다. 대체 뭐하는 겁니까? 이런 건 서평처럼 뒤에 부록으로 붙여놓든지 해야지...
닫기
* 선전가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의 패러다임을 이렇게 요약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중은 정확히 선전가의 의도대로 따른다. 그 사실을 모른 채.
* 집단화와 제휴라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 교류 구조야말로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집단 사고를 조직하고 대중의 생각을 단순화해온 방식이다.
*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선전이 좋은지 나쁜지는 내세우고자 하는 명분의 가치와 발표되는 정보의 정확성에 달려 있다.
*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 대중의 의중을 파악해 대중에게 제작자의 목표를 이해시키는 것이 PR의 이상이다.
* 트로터와 르봉은 집단 심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사고 대신 충동, 습관, 감정이 자리한다.
* 자본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이윤율이 얼마나 높으냐, 서비스의 질이 얼마나 좋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여론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실패하고 만다.
* 정치는 미국 최초의 대기업이었다. 따라서 기업은 정치에서 모든 것을 배운 데 비해 정작 정치는 기업으로부터 생각과 제품의 대량 보급 방법을 별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오늘날의 정치인이 기업계에서는 흔한 방법을 채택하는 데 굼뜬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언제든 언론 매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선전이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목표를 설정한 뒤 대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선전의 현명한 사용을 통해서만 국민의 지속적인 행정 기구인 정부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대중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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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글루스에서 라깡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들이 있는 것 같은데 라깡에 대해 제가 문외한이기는 해도 다른 차원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기에 포스팅합니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논쟁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트랙백과 댓글 논쟁은 사양합니다. 지인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저는 논쟁은 학문 발전이나 정신 건강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논쟁은 전혀 쓸데없는 짓이다' 참조). 따라서 트랙백은 거는 족족 삭제할 것이고 댓글 논쟁을 점화하는 분은 삭제 및 차단 콤보로 대응합니다(대문의
'월덴 3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글 참조).
우선 저는 지금까지 심리학을 공부해 오면서 라깡에 대해서 체계적으로든 사변적으로든 들은 적이 전혀 없는데 그것은 제가 배운 심리학이 미국 심리학을 따르기 때문이지, 라깡이 그렇게 대충 취급받아도 상관없는 듣보잡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유럽 심리학의 계보를 따르는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도매금으로 듣보잡이 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닙니다. 그러니 시야를 넓히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라깡이 심리학자라는 논란에 대해서는 역시 지식이 부족하여 길게 말씀은 못 드리나 '정신분석학=심리학' 또는 '정신분석학=임상심리학'이라는 공식만 대입해서는 아무리 열심히 논쟁하고 토론해도 답 안 나옵니다. 라깡이 정신분석학자이자 언어학자(같이 사는 사람이 불어불문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라깡에 대해 세미나를 했을 정도로 저 보다는 더 많이 아는데 그렇다고 하는군요)라고 하더라도 심리학자내지는 임상심리학자라고 규정짓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위에서 제시한 공식을 자꾸 대입하려고 하면 라깡이 임상심리학자가 되고 심리치료전문가가 되고 그러니 사이비가 되고 그러다 보니 정신분석을 따르는 치료자들도 또 도매금으로 사이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심리학을 처음 접했을 때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정신분석은 프로이드 빼면 시체고, 검증도 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분야라서 심리학에서는 사이비 취급하고 그러니 별로 중요한 포지션이 아니라고 배우겠지만 이게 현장에 나오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치료의 효과성 어쩌고 저쩌고 따지는 것도 이미 구 시대의 유물이고 치료 기법이 400개가 넘어가는 요즈음에는 치료만 잘 되면 어떤 치료적 개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합-절충주의의 시대입니다. 저 또한 절충주의자고요. 정신분석치료는 치료가 안 되고, 인지행동치료는 치료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주장이에요. 메타분석한 결과를 보면 특정 기법이 효과적인 장애(예를 들어 공황장애에는 CBT가 특별히 효과적이라는 것)가 분명 있기는 하지만 치료 기법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그리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과가 이미 대세에요. 이 바닥에서는 오히려 환자/내담자의 치료 선택권까지 주제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정신분석이 치료 효과가 없느니 어쩌니 하는 영양가 전혀 없는 주장은 저기 안드로메다에나 가서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현장에 대해서 개뿔도 모르는 학생들은 쓸데없는 논쟁을 할 시간에 공부나 더 열심히 하세요. 특히 임상심리학자가 될 사람들은 더 말하면 입 아프고요. 현장에 나오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말해도 참....
3줄 요약하겠습니다. 요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지만...
1. 미국 심리학을 맹종하는 한국 심리학계에서 라깡이 차지하는 위상이 확실히 형편없기는 하지만(사실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인문학 분야에서까지 라깡이 듣보잡인 것은 아닙니다.
2. 심리학은 임상심리학을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하위 분파가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은 심리학이라는 광대한 바다에 뜬 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심리학=임상심리학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저 같은 임상심리학자들이 기뻐할리도 없고 뿌듯하지도 않습니다.
3. 정신분석 또한 임상심리학이라는 광대한 바다에 떠 있는 것은 맞지만 결코 그 위상과 효용성이 작은 섬 정도는 아닙니다. 최소한 하나의 대륙 정도는 됩니다. 미국 심리학의 관점에서만 임상심리학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 심리학 전공자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아직 못 느끼고 있다면 앞날이 캄캄하니 전직을 고려해 보시거나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시려면 빨리 발상의 전환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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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책
이 책은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이용하는 저명한 심리치료자인 Nancy McWilliams의 Psychoanalytic Case Formulation(1999)을 서울대의 권석만 선생님을 위시한 5명의 임상심리전문가가 공동으로 번역한 책입니다.
Nancy McWilliams는 이미 1994년에 'Psychoanalytic Diagnosis'라는 책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신분석 치료분야의 권위자로 현장에서의 오랜 치료 경험을 아주 쉽고도 편안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저도 원서를 읽어보려고 욕심을 내던 차에 번역이 잘 된 책이라는 소문을 듣고 도전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5명이나 되는 전문가가 공동으로 번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매끄럽고 어색한 점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권석만 선생님이 역자대표로 수고를 해 주셨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워낙에 쉽지 않은 일이라 감탄이 나옵니다. 게다가 McWilliams의 글솜씨도 정말 탁월합니다. 상당히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쓰는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는 타이틀이 걸린 책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못하는 편입니다만, 이 책은 그럴만한 훌륭한 책(2006년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학술도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서문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확립된 체계(DSM)에 따른 진단을 위해 필요한 '증상들'을 찾는 법을 알려주지 않으며, 오히려 진단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변화가 불가능한 요인, 발달적 문제, 방어, 감정, 동일시, 관계양상, 자존감, 병리유발적 신념 등 정신역동적 접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담자의 다양한 측면을 깊이있게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를 통해 보다 충실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장에서 빠른 시간내에 심리검사도구를 사용해 환자(또는 내담자)의 문제를 밝혀내고 DSM, ICD체계에 따라 진단을 해 내야 하는 전문가들과 달리 상담/치료 장면에서 일하는 전문가는 점점 더 특정한 범주에 따라 환자/내담자를 분류하는 방식의 유용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진단 체계에 입각한 치료적 접근은 특정한 장애를 제외하고는 환자/내담자를 복합적인 전체로 이해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내담자/환자의 건강한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현장의 치료자들은 정신역동적인 접근에 끌릴 수 밖에 없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담자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제 확신이 더 굳어지고 체계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독을 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합니다. Yalom의 책을 제외하고 2번 읽는 책도 오랜만이네요.
DSM, ICD진단 체계에 따라 칼로 자르듯이 내담자/환자를 구분짓는 문제에 공감하는 현장의 치료자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자신이 정신역동적인 접근을 따르는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훌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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