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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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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된 격월간 잡지로 좌파 진보운동의 나팔수(좋은 의미에서) 역할을 하는 잡지입니다. 진보 좌파를 대표하는 잡지임에도 마르크스 이론의 취약점을 자기 반성하는 stance를 취하는 글이 많이 실리는 것이 특징이죠. 일베에 서식하는 인간들이 볼 때에는 완전 빨갱이 책일 겁니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 레비 스트로스, 장-폴 사르트르, 루이 알튀세르, 자크 라캉 등 지성계와 문화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글이 자주 실리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책은 2000년 부터 2008년까지 실렸던 글 중에서 18개를 뽑아 엮었으며 잡지 본연의 취지를 살려 정치, 이론, 문화라는 세 영역에 따라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세계정세의 현황
1. 21세기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 페리 앤더슨
2. 세계 경제위기의 신호탄, 서브프라임 위기 ― 로빈 블랙번
3.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로크적 유럽? ― 키스 반 데어 페일
4. 미국에 종속된 역사 속의 유엔 ― 피터 고언
5. 세계경제의 남반구 목조르기 ― 로버트 웨이드
제2부 각 지역의 쟁점들
6.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중동 정세 ― 타리크 알리
7. 탈정치화된 정치, 동에서 서로 ― 왕후이
8. 두바이의 공포와 돈 ― 마이크 데이비스
9. 실험되는 가치들 : 인도의 임상실험과 잉여건강 ― 커식 선더 라한
10. (대담) 티베트인의 정체성과 중국 ― 체링 샤카
제3부 정치사상의 재구성
11. 사르코지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 : 공산주의적 가설 ― 알랭 바디우
12. 매체론으로 본 사회주의의 역사 ― 레지 드브레
13. 생명정치적인 것의 벡터들 ― 맬컴 불
14. 세계화되는 현실에서의 정의, 새로운 틀구성 ― 낸시 프레이저
제4부 자본주의와 미학
15. 미학 혁명과 그 결과 : 자율성과 타율성의 서사 만들기 ― 자크 랑시에르
16. 문화적 포장지로서의 예술 : 일본의 터미널 데파트 ― 우친타오
17. 자본주의와 형식 ― 테리 이글턴
제5부 회고
18. (회고) 격변의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와 삶 : 밀라노에서 온 동지 ― 로사나 로산다
좋은 글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피터 고언이 쓴 '미국에 종속된 역사 속의 유엔'과 레지 드브레가 쓴 '매체론으로 본 사회주의의 역사'가 제일 좋았습니다.
구입한 지 상당히 오래된 책인데 이제서야 다 읽었네요.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진도를 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에 이미 3권까지 나왔네요.
이 책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번역의 quality 조절이 잘 되지 않은건지 쉽게 읽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격차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그래서 높게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지식 수준의 격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ㅠ.ㅠ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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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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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적으로 김규항 선생만큼 아끼는 논객인 박권일 선생이 7월에 새로 내놓은 책입니다.
진보 또는 좌파로 자리매김을 한 많은 논객 중 제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은 김규항, 박권일을 포함해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이 책의 소개글에서는 일단 통과하고요.
김규항 선생처럼 박권일 선생도 글의 논지가 분명한 글쓰기를 하는 논객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어떤 글꼭지이든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느낌을 주고요. 그게 매번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게 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겠더군요. '다수'와 '세상'에 반하지만 굴하지 않는 옹골찬 소수의견이었네요(물론 상처는 솔찮게 받은 것 같지만).
여전히 필력 좋고 글의 내용도 후련하지만 '시사IN'에 연재했던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어 저는 이미 다 읽어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살짝 속은 느낌이었고 편집 과정에서 골라내지 못한 문제인 것 같은데 비슷한 시기에 쓴 칼럼들의 내용 중 중복된 부분이 많아서 좋은 평가를 하기가 어렵겠습니다. 게다가 e-book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파본처럼 보이는 부분이 몇 군데 있더군요. 이런 걸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 출판사의 무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인데 미운털 제대로 박히는군요.
내용을 읽어보니 시사IN과 프레시안, 한겨레의 칼럼,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 글, 그리고 황해문화에 올린 글이 대부분이던데 황해문화에 쓴 호흡이 긴 글이 저는 좀 더 좋더군요. 앞으로도 좀 더 긴 칼럼을 읽고 싶은 욕심을 부려봅니다.
시사IN을 구독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으면서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뒤흔들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닫기
* 부르주아지에게는 '법'이 있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단결'이 있다면 중간 계급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상식'이다. 법이나 계급의 언어가 외관상 논리 체계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반면, 상식의 언어는 논리 체계라기보다 감수성의 체계에 가깝다.
* 불행을 경쟁하게 만드는 체제는 존속할 가치가 없다.
* 소셜 맥거핀은 첨예한 적대들과 달리 실체가 없거나 매우 사소한 적대인데도 엄청난 사회적 갈등인 양 부풀려진 것들이다.
덧. YES24의 e-book앱을 사용해 읽었는데 결제하고 보니 제가 보이콧하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책이더군요. 결제 버튼을 누르고 아차 싶었습니다. e-book이니 북 크로싱을 할 일이 없다는 게 작은 위안이랄까요. 앞으로 책을 구입할 때 더욱 신중해야겠습니다.
덧1. 박권일 선생이 계간 '자음과 모음R'의 편집위원이던데 제가 보이콧하고 있는 출판사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습니다.
덧2. 이 책은 e-book으로 읽기도 했지만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책이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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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생의 글은 월덴 3에서도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2005)'와
'예수전(2009)'을 통해 두어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김규항 선생은 진보로 평가되는 인물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드리지만 김규항 선생의 글에 대한 평가는 제 높은 선호도를 어느 정도 감안하여 보셔야 합니다.
이 책은 2005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각종 매체에 실린 기고글과 일기, 각종 단상을 모아서 펴낸 것입니다. 연도 별로 글꼭지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왜냐?
출판사인 리더스하우스의 편집자도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사회적 맥락을 알고 읽어야만 글 속의 함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길게 소개할 필요가 없는 책입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읽을 때마다 저를 변화시킵니다. 제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요즘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진모씨의 화려하지만 뒷맛 쓴 글빨과는 그래서 차원을 달리한다고 평가합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곰씹어 볼수록 달고 몸에도 이롭죠.
닫기
*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 상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그에게서 배우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만 혹은 위로만 흐르지 않는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도 위로도 흐른다. 그럴 때 예의는 비로소 품위가 된다. *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지배 체제와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를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런 자들은 실은 예수의 명성을 빌려 제 말을 할 뿐이다. * 회개란 교회에 안 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 지금 우리의 적은 군사 파시즘이나 그 잔재들이 아니라 새로운 파시즘, 자본의 파시즘입니다. * 세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눈, 즉 교양이다. 물론 교양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정직한 태도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 결국 세상에 대한 견해나 태도는 세상을 세로로 나누려는 세력과 가로로 나누려는 세력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 태도나 견해란 민족이나 국가로 은폐된 세상을 애써 계급으로 나누어보려는, 그 실체를 보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노력의 가장 실제적인 방해물이 이른바 '국익'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이라는 것, 인민에게 필요한 건 국익이 아니라 계급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바로 개혁 우파 세력이다. 개혁 세력은 수구 세력의 도움으로 진보로 포장할 수 있었고 개혁이 진보를 자처하니 극우파인 수구는 아주 멀쩡한 보수로 행세할 수 있었다. * 실천으로 드러낼 수 없다면 다른 게 아니다. * 지배계급은 언제나 인민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개념 흐리기'를 사용한다. *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리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 오늘 한국 사회가 미궁에 빠지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민주화가 실은 자본화(신자유주의화)였다는 것,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국가권력이 자본을 거느리는(박정희가 이병철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에서 자본이 국가권력을 거느리는(이건희가 노무현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로 변화했다. * 비폭력주의는 서재나 연구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사자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 현장의 아픔과 당사자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비폭력주의는 폭력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옹호자이자 당사자에겐 폭력보다 더 가혹한 폭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비폭력주의자가 아닙니다. * 우리가 늘 잊곤 하는 사실은,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은 보수 반동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라도 어딘데' 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 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더해질 때 비로소 그 최소한의 꼴을 갖춘다.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눔은,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 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을 대변한다. * 진실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존경이든. *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 * 듣기 싫든 좋든 그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에 집중하면 돼. 그래야 똑똑한 사람이다. *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실제 삶에 실천하는 것.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특히 친노(노빠라 부르기는 저도 참 싫군요)들께서는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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