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 덕분에 모처럼 생긴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심야 영화를 보러가기로 의기투합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볼 영화가 마땅치 않더군요. 국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지금 극장가에 걸린 영화들이 대부분 국내 영화들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골라서 보고 왔습니다.
관상-궁합-명당으로 이어지는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이지만 관상과 궁합 어디쯤에 위치한 영화라는 평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대충 동의합니다.
연기력만큼은 어디 내놔도 뒤떨어지지지 않는 폭발력 있는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서 배치했기 때문에 이들의 흡인력있는 연기만 봐도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땅에 대한 집착과 연결하여 풀어낸 소재도 괜찮고 어차피 픽션 사극이라는 걸 감안하면 고증의 실수도 넘어가 줄 만합니다.
하지만 벡델 테스트 통과는 고사하고 여전히 단 한 명 뿐인 연기형 여성 캐릭터를 그냥 소품처럼 소모시켜버리는 무신경(그나마 섹스 어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걸 감사해야겠지만 문채원이 그런 캐릭터도 아니니까요)이나 아무리 안동 김씨(영화에서는 장동 김씨)의 세도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지만 좌상이 임금을 무릎꿇려 빌게 만드는 억지 분노 유발씬 등은 확실히 아쉽습니다.
박희곤 감독이 2009년 인사동 스캔들로 입봉해서 2011년 퍼펙트 게임 후 별다른 활약을 못 보여주다가 최근에 찍은 영화라는 점과 첫 사극 연출이라는 걸 감안하면 화면 처리나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괜찮지만 이제는 우리 관객의 기대치가 많이 높아져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이를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수익 분기점인 300만 명은 넘을 것 같지만 관상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범작 수준에서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명절 연휴에 큰 부담없이 볼 영화로는 괜찮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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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생의 글은 월덴 3에서도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2005)'와
'예수전(2009)'을 통해 두어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김규항 선생은 진보로 평가되는 인물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드리지만 김규항 선생의 글에 대한 평가는 제 높은 선호도를 어느 정도 감안하여 보셔야 합니다.
이 책은 2005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각종 매체에 실린 기고글과 일기, 각종 단상을 모아서 펴낸 것입니다. 연도 별로 글꼭지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왜냐?
출판사인 리더스하우스의 편집자도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사회적 맥락을 알고 읽어야만 글 속의 함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길게 소개할 필요가 없는 책입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읽을 때마다 저를 변화시킵니다. 제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요즘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진모씨의 화려하지만 뒷맛 쓴 글빨과는 그래서 차원을 달리한다고 평가합니다. 김규항 선생의 글은 곰씹어 볼수록 달고 몸에도 이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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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 상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그에게서 배우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만 혹은 위로만 흐르지 않는다. 진정한 예의는 아래로도 위로도 흐른다. 그럴 때 예의는 비로소 품위가 된다. *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지배 체제와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를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런 자들은 실은 예수의 명성을 빌려 제 말을 할 뿐이다. * 회개란 교회에 안 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 지금 우리의 적은 군사 파시즘이나 그 잔재들이 아니라 새로운 파시즘, 자본의 파시즘입니다. * 세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제대로 된 눈, 즉 교양이다. 물론 교양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정직한 태도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 결국 세상에 대한 견해나 태도는 세상을 세로로 나누려는 세력과 가로로 나누려는 세력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 태도나 견해란 민족이나 국가로 은폐된 세상을 애써 계급으로 나누어보려는, 그 실체를 보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노력의 가장 실제적인 방해물이 이른바 '국익'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이라는 것, 인민에게 필요한 건 국익이 아니라 계급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 오늘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바로 개혁 우파 세력이다. 개혁 세력은 수구 세력의 도움으로 진보로 포장할 수 있었고 개혁이 진보를 자처하니 극우파인 수구는 아주 멀쩡한 보수로 행세할 수 있었다. * 실천으로 드러낼 수 없다면 다른 게 아니다. * 지배계급은 언제나 인민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개념 흐리기'를 사용한다. *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리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 오늘 한국 사회가 미궁에 빠지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민주화가 실은 자본화(신자유주의화)였다는 것,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통해 국가권력이 자본을 거느리는(박정희가 이병철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에서 자본이 국가권력을 거느리는(이건희가 노무현을 거느리는) 지배 체제로 변화했다. * 비폭력주의는 서재나 연구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사자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 현장의 아픔과 당사자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비폭력주의는 폭력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옹호자이자 당사자에겐 폭력보다 더 가혹한 폭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비폭력주의자가 아닙니다. * 우리가 늘 잊곤 하는 사실은,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힘은 보수 반동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만큼이라도 어딘데' 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 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더해질 때 비로소 그 최소한의 꼴을 갖춘다.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눔은, 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 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을 대변한다. * 진실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존경이든. *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다. * 듣기 싫든 좋든 그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에 집중하면 돼. 그래야 똑똑한 사람이다. *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실제 삶에 실천하는 것.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특히 친노(노빠라 부르기는 저도 참 싫군요)들께서는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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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명인 버트런드 러셀의 책은 이미 월덴 3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드린 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있습니다.
두 권 다 필독 도서지만 사실 버트런드 러셀이라면 뭐니뭐니해도 '행복의 정복' 아니겠습니까? ^^
1930년에 나온 저술인데도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근대 고전(?)은 크게 '1부. 행복이 당신을 떠난 이유'와 '2부. 행복으로 가는 길'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한 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2부에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각 장의 제목만 보면 버트런드 러셀이 하고자 하는 주장이 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죠.
1부. 행복이 당신을 떠난 이유1. 자기 안에 갇힌 사람2. 이유 없이 불행한 당신3.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4. 인생의 끝, 권태5. 걱정의 심리학6. 질투의 함정7. 불합리한 죄의식8. 모두가 나만 미워해9.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지 아시겠어요? ^^
제가 가끔 도박자들에게 도박으로 딴 돈으로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으면 도박에 먹히고 만다고 겁을 주곤 하는데 버트런드 러셀은 3장에서 '성공한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지 배워두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후에 권태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싱크로율이 참 높죠?
2부. 행복으로 가는 길10. 인간이 느끼는 행복11.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12. 사랑의 기쁨13. 좋은 부모가 되려면14. 일하는 사람이 덜 불행하다15. 폭넓은 관심, 튼튼한 인생16. 노력과 체념 사이17. 나는 행복한 존재다
이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아시겠어요? ^^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이 책을 읽으러 고고씽~
행복하고 싶으나 방법을 몰라 고민했던 분이라면 버트런드 러셀의 현명한 지혜를 빌려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버트런드 러셀의 풍자적인 멘트 하나를 소개드립니다.
"때로 죄의식이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것을 신의 계시나 더 고귀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질병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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