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Culture가 세계적인 붐입니다. 유투브에는 한식 먹방이 넘쳐 흐르고, 케이팝은 BTS가 세몰이를 하고 있고, 할리우드는 기생충, 미나리가 점령하더니 이제는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K 드라마까지 세계를 정복할 기세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K-Culture가 왜 인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기의 이유를 분석한 전문가의 분석글을 읽어봐도 그냥 우연히 물이 들어와서 노 저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만 들거든요.
한식 먹방은 맨날 치맥, 바베큐, 분식의 돌려막기 같고, BTS 노래는 전혀 귀에 와 감기지 않으며,
기생충은 보면서 끔찍했고, 오징어 게임도 보다 말았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냉소적인 인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원래 국뽕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K-Culture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음식이 다양한 건 인정하고 맛있는 게 많은 것도 맞지만 세상에는 한식 못지 않게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도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고 세상 이곳저곳의 음식을 많이 찾아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음식은 나름의 맛과 향과 비쥬얼이 있고 맛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제게 한식은 그냥 음식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BTS의 Butter는 딱 한 소절 듣고 접었습니다. 이전에 나온 아이돌 그룹과 무슨 차별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TS가 처음 나왔을 때에 비해 더 세련된 것처럼 보이는 군무를 제외하면 가창력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요. 그냥 마케팅의 승리라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영화도 최근에 본 영화는 모두 별로였습니다.
극한직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기생충,
승리호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 눈이 높아진 것일수도 있지만 설정이 억지스럽거나, 너무 잔인하거나, 성차별적이거나 해서 결국은 기분이 나빠졌거든요. 그러고 보면 제가 참 까다로운 인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싫은 건 드라마입니다. 스위트 홈, DP, 오징어 게임, 지옥 등 최근 인기몰이를 하는 드라마 모두 보자마자 눈만 버렸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설정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잔인함을 창의적인 사실감으로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는 게 아니거든요.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어보면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나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걸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왜 재미있나요?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부서지고 내장이 터지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보는 게 재미있어서 찾아서 보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잔인하고 적나라한 것을 접하면 마음에 상처가 납니다. 그리고 상처가 쌓이면 그 상처가 곪아서 정신을 병들게 만듭니다. 조미료를 넣은 음식은 처음 먹을 때는 감칠맛이 나지만 그 맛에 길들여지면 점점 간이 세지고 위벽을 상하게 만들고 결국은 건강을 망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자극적인 게 짜릿하고 좋았습니다. 피가 끓고 흥분되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게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반백년의 반환점을 돌고 보니 그런 게 결국 건강한 정신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K-Culture의 모든 분야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최근의 K-Culture는 제게 너무 간이 세고,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그래서 날카롭고 아픕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K-Culture를 의도적으로 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이 K-Culture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반대로 백안시하는 것도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이게 왜 좋은건지는 개인적으로 한번쯤 곰곰히 따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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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있는 마스 힐 바이블 교회의 개척 목사이자 '교계의 록스타'로 불리는 랍 벨(Rob Bell)이 쓴 책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 여덟 글자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신자들에게 공포 마케팅을 펼쳐 먹고 사는데 비해 정작 '하나님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가', '영원한 사랑이신 하나님이 왜 그렇게 죽음의 순간에는 잔인한 존재가 되시는지', '하나님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천국에 보내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목회자입니다. 랍 벨은 그 모든 것의 대답이 정죄도, 교리도 아닌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 말씀이 곧 살아있는 성경이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아마도 이단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법한 전복적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승의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신자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세주의, 정죄주의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세상의 삶을 내동댕이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비난도 좋고 비판도 좋지만 신앙인이라면 제발 이 책을 한 번쯤 읽고나서 그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볼 귀중한 기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김규항의 예수전 이후로 이렇게 유익하며, 재미있고, 통쾌한 책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강추합니다.
닫기
* 내세주의는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데 믿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이 땅에서 천국을 발견하고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어가는 소명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잘못을 범한다.
* 나는 예수의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그 사랑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고 품이 넓으며,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이다.
*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죽으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작된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을 지금 경험하는 것이다.
*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이, 지금 이 땅에 천국이 임하게 하는 것 - 예수는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 대해서는 가장 적게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 훗날 이곳을 떠나 다른 어딘가로 대피할 것이라면 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천국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면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온전히 참여한다. 현재 하늘에서 그러한 것처럼 이 땅에서도 그렇게 될 날을 내다보면서 말이다.
* 예수는 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전혀 다른 취향과 태도와 관점을 가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신다. 바울은 우리의 참 자아가 드러날 것이고, 일단 죄와 습관과, 심한 편견과 교만과 사소한 질투들이 다 금지되고 제거되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죽는 순간 시작되는 그러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지금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의 질과 생의 활력이다.
*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다. 그러나 예수는 또한 어느 한 문화로 차출되거나 그에 소유되지 않으신다. 거기에는 기독교 문화도 포함된다. 교단, 교회, 신학과 관련된 제반 제도가 다 포함된다. 우리는 예수를 가리킬 수 있고, 예수계 이름을 붙일 수도 있고, 예수를 따를 수도 있고, 토론할 수도 있고,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믿을 수도 있지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는 문화 위에 계시다. 예수는 모든 문화 안에 계시면서 동시에 어느 문화에도 속하지 않으신다.
* 때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예수 뒤에 어른거리는 하나님이 안전하거나 사랑이 많거나 선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조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와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음은 두려움과 결핍에 휩싸인 복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재밌게 살면서 정말로 인생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지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한다. 특히 선교사들이나 목회자 가정 혹은 하나님은 노예 감독관이라는 생각을 습득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희생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슬며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만족스런 설명 방법으로 지옥이 등장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저 사람들은 파티에 다니면서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언젠가 우리는 천국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지옥에 가서 엄청 고생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덧.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지만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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