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검사는 왜 하는 걸까요?
신경심리평가처럼 특수한 목적이 있는 경우와 선별심리평가로 실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종합심리평가를 위시한 대부분의 심리평가 배터리에는 대부분 지능 검사가 포함됩니다. 지적 장애 판정 등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능 검사를 실시해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능 검사가 심리평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그 이유가 뭔지를 모르는 임상가가 의외로 많습니다. 의뢰가 되니 관습적으로 한다는 대답도;;;;
임상 심리학 분야에서는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 부담 충만한 검사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수가는 엄청 낮아서 제가 수련 받을 당시 실제 수가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죠. 지금도 현실화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상담 심리학 분야, 특히 검사 도구의 선택권이 있는 상담 현장에서는 평가자와 내담자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는 지능 검사를 굳이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종합심리평가가 아닌 경우 배터리를 구성할 때 지능 검사를 굳이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될 수 있죠.
그렇다면 지능 검사를 실시해야 하는 상황은 무엇이고 왜 실시해야 하는 걸까요?
원론적인 말씀부터 드리자면, 수검자의 인지 기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지능 검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너무 단순한가요?
인지 기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1. 원인 탐색 상황 : 지적 제한 확인
: 지적 장애 판정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당연히 지능 지수(IQ)를 산출해야 하고(물론 DSM-5에서도 강조되고 있듯이 IQ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검자가 호소하고 있는 증상이나 문제의 원인이 지적 제한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 부적응이 의심되는 아동/청소년의 경우 꼭 지능 검사를 실시할 것'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동/청소년이 보이는 학교 부적응(왕따, 등교 거부, 성적 저하 등)의 이유가 낮은 인지적 능력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능 검사를 실시하는 겁니다.
2. 결과 탐색 상황 : 심리적 고통감이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 확인
:
수검자가 호소하는 심리적 고통감이 변별 진단을 필요로 하는 상황인지, 그러한 심리적 장해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인지 기능의 양상과 수준을 통해 가늠하고자 할 때 지능 검사를 실시합니다. 다양한 인지 기능은 수검자가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고통감의 종류에 따라, 심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영향을 받게 되니까요.
예를 들어, 수행 불안이 높을 때 저하되는 소검사와 강박 행동이 심할 때 저하되는 소검사가 다르기 때문에(물론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profile을 확인함으로써 진단의 근거와 장해의 심각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지요.
단순하게 IQ만 알아보기 위해 routine하게 지능 검사를 실시했던 임상가라면 지능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 대해 관심을 조금만 더 가지신다면 지능 검사를 실시하는 만큼의 수고를 보상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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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해야 하는 임상가라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심리검사도구를 사용해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겁니다.
그러자면 수많은 심리검사도구의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러한 도구 중 적절한 것을 선별해서 사용할 줄 아는 법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런데 매뉴얼을 열심히 외운다고 해서, 또는 무조건 검사만 많이 한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절로 생기는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심리평가가 상시화된 병원 장면을 중심으로 어떤 순서로 심리검사도구를 활용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심리평가를 숙달할 수 있는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심리평가를 익히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장애 판정 -> 소아 발달 장애 평가 -> 소아 관련 장애 평가 -> 보호 병동 평가 -> 낮 병동 평가 -> 개방 병동 평가 -> 성인 외래 평가
1. 지적 장애 판정
: 지능 검사 도구는 평가자의 시간과 노력은 많이 요구하면서도 수가가 낮아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검사 중 하나지만 종합심리평가의 메인 검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검사죠. MMPI-2/A나 로샤와 달리 지능 검사는 따로 익히기가 쉽지 않은 검사이기 때문에 지적 장애 판정을 많이 하게 되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익숙해 질 수 있습니다. 대개는 지능 검사 도구를 중심으로 사회 성숙도 검사까지만 하기도 하고 거기에 BGT 정도가 추가되거나 표준화된 지능 검사를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 지능 추정 검사인 그림 어휘력 검사와 VMI를 대신 실시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 않죠. 지적 장애 판정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오는 수검자들은 대개 Mental Retardation인 경우가 많아 검사 결과를 실시하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 소아 발달 장애 평가
: 지능 검사 도구에 익숙해지고 Mental Retardation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그 다음은 말이 늦다고 방문하는 소아와 관련있는 장애를 변별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Communication Disorder, 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 NOS, Mental Retardation을 변별하게 되는데 가능하면 지능 검사 뿐 아니라 Bayley-2와 같은 발달 검사 도구를 집중적으로 익히는 기회로 삼으면 좋습니다.
3. 소아 관련 장애 평가
: 발달 장애와 지적 장애의 변별에 익숙해지고 나면 영역을 조금 더 넓혀서 소아 Full Battery를 기본으로 해서 ADHD, Learning Disorder 등 다양한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훈련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Continuous Performance Test처럼 주의력 전문 검사 도구나 기초 학습 기능 검사 등 특수 검사 등을 추가하는 연습을 하게 되죠. 이 때는 PCRP, Family Problem, Sibling Rivalry, Peer Relationship Problem 등 가정 및 학교에서 아동의 부적응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변인들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욕심을 낸 김에 청소년 영역까지 넓혀서 Conduct Disorder, Adolescent Depression, Anxiety Disorder 계열의 장애까지 경험하면 더욱 좋겠지요.
4. 보호 병동 평가
: 소아/청소년 영역의 심리평가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보호 병동 입원이 필요한 환자군의 평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된 장애군은 SPR Spectrum 장애와 Mood Disorder 군입니다. 보호 병동은 그야말로 외부의 사소한 스트레스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방어가 약해져 보호가 필요한 급성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두 영역에 속한 다양한 장애들의 주 증상들을 충분히 관찰하고 그것이 심리검사 sign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숙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훈련장이죠.
5. 낮 병동 평가
: 조현병과 기분 장애 군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중에서도 조현병 만성 장애 환자들을 볼 수 있는 낮 병동에서 수련을 받으면 좋습니다만 낮 병동까지 보유한 수련 기관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은 skip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증상이 완전 관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성 증상보다 음성 증상이 주 증상일 경우 심리검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익히는데는 꼭 필요한 환경이니 정신보건증진센터 등 만성 조현병 환자를 볼 수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실 생각이라면 가능한 한 경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6. 개방 병동 평가
: 보호 병동 수련까지 마치고 나면 심리평가가 주 업무인 병원 세팅에서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은 마련된 셈입니다. 하지만 특정 장애만 다루는 클리닉이나 상담 센터에서 일하려면 이 정도의 수련 배경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왜냐하면 다양한 Neurosis 환자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개방 병동은 자해, 타해 위험이 크지 않은 다양한 Neurosis 환자가 입원하는 병동인데 주로 화병, Pain Disorder, Conversion Disorder, Somatoform Disorder 등으로 진단되는 성인들이 많습니다. 보호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만큼 증상이 dramatic하지 않기 때문에 심리검사 profile이 전형적이지 않으며 통합 해석이 상당히 어렵죠. 심리검사 결과 뿐 아니라 신체검사결과, 간호기록지, 이전 병력 등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설정한 가설을 검증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세팅입니다.
7. 성인 외래 평가
: 성인 외래 환경은 초진 환자를 비롯해 퇴원 후 재진 환자, 거기에 성격 장애 환자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환자군이 존재하는 곳이며 요새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갈등 해결이나 스트레스 문제 때문에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진단 뿐 아니라 case formulation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담이나 심리치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특히 중요한 환경이죠. 게다가 재진 환자의 재평가와 다른 기관에서 치료받던 환자의 변별 평가까지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평가 환경의 총 집결판이자 '끝판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성인 외래에서 심리평가를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면 신경심리평가와 같은 특수 평가를 제외한 Full Battery 평가에는 고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순서는 제 나름의 경험과 생각에 따른 심리평가를 익히는 최적의 순서일 뿐입니다. 그러니 심리평가 숙련에 관심있는 임상가 선생님들은 자기 나름의 순서를 찾아내는 별도의 노력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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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의 최종 결과는 심리평가보고서입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심리평가를 실시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심리평가보고서가 심리평가의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니만큼 심리평가를 실시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실시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의뢰 사유를 명확히 한 상태에서 심리평가를 실시했어야 합니다. 변별 진단을 위해서인지, 지적 장애 판정을 위한 지능 지수 산출이 필요해서인지, 현재 피검자가 경험하고 있는 우울감이 어느 정도로 심한 것인지 등등.
그런데 그냥 단순히 의뢰 사유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피검자를 괴롭힌(?) 댓가로는 뭔가 부족하죠.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하면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면 좋습니다.
일명 ABC 모델에 맞춘 심리평가보고서 작성입니다. 인지 행동 치료의 ABC 모형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냥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가져다 쓴 것 뿐입니다.
A -> B -> C
A: Explanation(설명)
B: Description(기술)
C: Prediction(예측)
가장 먼저 설명드릴 부분은 B입니다. 기술(description)하기 위해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현재 피검자가 다양한 심리측정영역에서 어떤 상태인지를 기술하는 것이죠. 지능이 얼마이고, 정서 상태는 어떻고, 주의력은 어떻고 등등. 아무리 엉터리 보고서라도 B에 해당하는 기술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근거에 기반해야 합니다. 기술도 제대로 되지 않은 걸 심리평가보고서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A입니다. 설명(Explanation)을 하기 위해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단순히 피검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기술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추론과 가설을 설정하고 심리검사 결과를 통해 검증해서 원인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겁니다. 왜 이 피검자에게 발표 불안이 생겼는지, tic 증상이 왜 더 심해지는지 등에 대한 원인을 알려주는 것이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심리평가보고서는 최소한 B(기술)와 A(설명)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C입니다. 예측(Prediction)까지 하는 것이죠. 현재 피검자의 심리 상태 기술과 원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어떠한 개입을 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예상과 제언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이 C에 해당합니다.
A, B, C 모두를 포함할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B, 가능하면 A -> B, 목표는 A -> B -> C를 모두 포함하게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토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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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장애인 연금법 개악으로 인해 수혜 대상이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현재 장애인 연금을 받고 있는 모든 대상에 대한 재평가 지시가 내려왔나 봅니다.
이 때문에 지적 장애 재판정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심리평가를 제공하는 일선 정신과의 업무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능검사 또는 지능추정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판정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회 성숙도 검사(SMS)를 반드시 실시하고 이 중 높은 지수로 판정을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와 나름의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정신지체 판정을 위한 심리평가 시 지능 지수와 사회성숙도 지수의 차이 교정 문제'라는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문제는 지능 검사 자체의 문제입니다.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검사 자체의 요인에 의해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능 검사 도구의 차이인데 대개 아동용 지능검사 도구인 K-WISC-III나 KEDI-WISC로 평가한 뒤 성인이 되어 K-WAIS로 평가하면 검사 도구의 차이에 따른 지능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또 하나는
동일한 지능 검사 도구를 사용하였으나 규준 연령대가 달라지면서 지능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인데 이 문제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지적 장애인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19세 때 성인용 지능 검사 도구인 K-WAIS를 실시해 중등도의 정신 지체(Moderate Mental Retardation) 수준의 지능으로 평가되었다고 할 때 20년 뒤인 39세 때 동일한 K-WAIS를 실시해도 규준(norm)의 문제로 인해 지능이 경계선이나 평균 하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어 지적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지능이 낮게 측정되는 것보다 높게 측정되는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러한 방향성은 분명 규준의 문제입니다. 특히 나이가 더 많은 지적 장애인의 경우에는 원점수에서 0점을 받았다고 해도 경계선 수준 이상의 지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데도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현재 일선 현장에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지침을 엄격하게 지키라는 윗선의 지시를 받다보니 융통성을 발휘할 수가 없어 나온 지능 지수 그대로 판정을 하고 이로 인해 많은 지적 장애인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능 검사 도구의 한계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제 경우는 피검자가 대부분의 과제에서 전혀 수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원점수 자체를 산출하지 않고 심한 지체로 인한 검사 불가로 판정합니다. 미봉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없고 반대로 피검자를 위한답시고 지능 지수를 조작할 수도 없으니까요.
빨리 지적 장애 판정을 위한 제대로 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도 (역시나) 아무런 문제 제기 및 대안 마련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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