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포스팅에서는 또래 동성 베프만 다루고 있지만 베프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관계에 적용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베프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통 관심사로만 연결되거나 거래 관계가 아니어야 함
2. 비교적 평등한 관계여야 함
3.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여야 함
최소한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어야 비로소 베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선 공통 관심사만 공유하는 건 베프 관계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그 관심사가 없어졌을 때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베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동호회 회원 사이입니다. 무언가를 주고 받는 것으로만 국한된 사이도 베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냥 계약 당사자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계약이 끝나면 둘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게 됩니다.
두 번째 기준은 상호 호혜성에 관한 것인데 주고 받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도 베프 관계가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지나치게 베풀거나,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사이, 반대로 받기는 하는데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사이는 베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호의를 기부하거나 후원하는 사이이며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에 기반한 사이라서 오히려 일반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병리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한데 상대방이 배신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설사 배신한다해도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신뢰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의외로 베프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고 상당히 건강한 사람만 베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맞습니다. 베프를 갖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베프가 되어야 하니까요.
사실 부모와 건강하게 분리-개별화하여 독립하는 것도, 아무런 이해 득실을 따지지 않고 동년배의 동성인 한 인간과 우정에 기반한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자신과 반대 성인 사람과 성욕을 넘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모두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건 또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요. 그러니 모든 관계는 신중해야 하고 자신이 성숙해지는 것부터 단단히 챙겨야 합니다.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자신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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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그로 끌기 죄송합니다;;;
나는 왜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연인 없이 쓸쓸하게 연말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물론 일이 너무나 많아서와 같은, 자신도 어찌 못할 외부 요인 때문에 연애 자체를 할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은 이 포스팅을 보지 않을테니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연애 실패를 외모, 재력, 학력 등의 스펙이나 플러팅 기술 또는 공감 능력 등의 소프트웨어 부족에 귀인하고 있을텐데 정말 그럴까요? 수십 만원짜리 온라인 연애 강의를 수강하고 연애 강사에게 일대 일 코칭을 받으면 연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의외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할 때 연애 자체가 안 되거나 연애를 하기만 하면 지랄맞은 상대방을 만나 지옥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성의 또래 친구와 우정을 쌓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겁니다. 친구가 아니라 베프여야 합니다. 친구는 그냥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숫자가 얼마나 되든 우정을 기반으로 한 베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격 장애의 대인 관계 문제는 동성 (또래)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성숙한 사람은 또래의 동성 베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 또래 동성 베프가 한 명도 없다면 앞 단계로 올라가서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와 적당한 물리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지나치게 냉담하지도,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는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분리-개별화' 과제를 완수했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의 고리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 -> 또래 동성 베프 관계 -> 연애 관계
이 단계는 반드시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분리-개별화가 잘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또래의 동성 친구와 건강한 우정을 맺을 수 있으며 그게 가능해야 비로소 연애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순서는 인간의 발달 단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단계가 완료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딱딱 끊어지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과도기가 존재하지만 순서가 뒤바뀌거나 skip하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순서가 어긋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계속 연애에 실패하고 있다면 또래 동성 베프가 있는지부터 점검하시고 그마저도 없다면 부모-자녀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고 망가진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덧.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망가져서 회복이 불가능해 보여도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상담과 같은 전문적인 심리 서비스를 통해 상담자가 대리 부모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고장난 관계를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관절이 망가졌을 때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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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근본을 바꾸는 변화를 야기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직접 경험입니다. 간접 경험도 좋기는 하지만 impact면에서는 직접 경험만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깨달음을 얻고 변화하기 위해 모든 아프고 슬픈 경험을 직접 할 수는 없으니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깨달은 지혜를 정리해 놓은 산물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것이 좋겠지요.
간접 경험은 직접 경험만 못해도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직접 경험 못지 않은 깨달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혜가 담긴 책들을 많이 읽다 보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소름끼칠 정도로 겹치는 걸 보게 되는데요. 상담을 많이 하다보면 공통된 주제, 공통된 해결 방법 등이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은 됴코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인 야스토미 아유무라는 분이 썼습니다. 나름 고학력 엘리트로 경제학 분야에서 촉망받는 인재인데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듯 보였지만 부모의 정서적 학대 속에서 자랐고 그 영향으로 인해 잘못된 배우자를 선택해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자살 충동과 싸우며 불행한 삶을 살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서 삶을 바꾸었고 그 결과를 '당신이 살기 힘든 것은 자기혐오 때문이다'와 이 책으로 엮어서 내놨습니다.
200페이지에 불과한 작은 포켓북에 자립, 친구, 사랑, 화폐, 자유, 꿈의 실현, 자기혐오, 성장이라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 저자 나름의 명제를 달면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사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동감인 내용이라 그냥 읽어보시면 되는데요. 대표적인 몇 가지 명제를 소개하면,
* 누구하고든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면 누구하고도 사이좋게 될 수 없다
* 조금이라도 싫다고 느끼는 사람과 친구인 척해서는 안 된다
*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모두 자기혐오의 결과이다
* 자유는 선택지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 인생의 목적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 꿈은 실현하는 자체가 아니라 실현하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
* 행복은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 뭔가를 강하게 동경한다면 자기혐오에 속박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떤가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명제들이죠?
하지만 다음의 것은 좀 다릅니다.
* 자립은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
* 의존할 대상이 감소할 때 사람은 더욱 종속된다
* 종속은 의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 도와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자립한 것이다
저자는 '자립은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다'를 자신의 핵심 명제로 규정하고 세상은 이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립은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마 저자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독이 되는 부모와 절연하는데 큰 도움을 준 친구들이 있었고 이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위와 같은 명제를 찾은 것 같은데 제 생각은 같으면서도 좀 다릅니다.
저자는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고 그 대상이 늘어날 때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의존과 의존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게 바로 자립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립을 먼저 해야 의존을 해도 더더욱 자립하게 되고 의존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되는 것이죠. 의존해야 자립할 수 있다는 건 1) 세상은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2) 악한 사람의 수가 훨씬 적은 집단에서도 그들의 파괴적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3) 자립하기 전 인간의 악에 대한 저항력은 매우 약하다는 걸 간과하는데서 오는 착각입니다. 제 생각에 저자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그건 저자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기득권층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저자 말마따나 일본이 '입장'을 중요시하는 입장사회라서 그동안 자립할 시간을 벌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와 경우가 다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가 잦죠. 건강하게 살려면 병균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야 하니 다양한 보균자와 접촉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원했던 항체가 생겨서 왠만한 병균에는 끄덕도 않는 건강한 체질이 될까요 아님 운 나쁘게 심각한 전염병에 걸려서 죽게 될 가능성이 클까요.
마음이 약해 상처를 자주 받는 사람일수록 간절히 자립을 원합니다. 그런데 홀로 서는 연습도 안 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면 자립하게 되는게 아니라 착취당하거나 심하면 더 큰 상처를 입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명제에는 모두 동감하지만 '자립은 의존하는 것이다' 명제는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은 홀로 설 힘을 갖는 것이다. 자립한 사람은 의존할 필요가 없고 실제로 의존하지 않으며, 의존하게 되더라도 더욱 자립하게 된다.
자립을 하게 되면 사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도 없지만 의존을 하게 되더라도 의존 대상의 영향에 개의치 않으며 의존해도 좋은 사람을 알아볼 눈을 갖추었기 때문에 의존하더라도 자립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죠.
자립과 의존에 대한 부분이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이기 때문에 길게 토를 달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에 소개되는 명제는 저 또한 전적으로 동감하는 좋은 내용입니다. 실제로 저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삶의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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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상담 현장에서 청소년을 상담하는 임상가라면 우리나라의 '왕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들 절감하고 계실 겁니다. 저도 친구 문제로 힘들어 하는 청소년을 거의 매일 만나고 있고요.
작년에 상담을 시작한 한 여학생을 통해 또래 집단 속에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를 간접적이지만 적나라하게 접하게 되면서 제가 그동안 소녀들의 집단 역동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도움을 받으려고 관련 서적을 뒤지다가 찾은 책이 이겁니다.
저자인 레이첼 시먼스는 본인이 따돌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자신의 과거 경험과 관련하여 자료를 찾다가 소녀들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연구나 문헌이 거의 없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듭니다. 그 이후 3년 간 수많은 여성 피해자, 희생자, 가해자, 방관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놨습니다.
이 책은 소녀들의 비신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책입니다. 저자는 이를 대체 공격(alternative aggression)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소년들이 주로 조금 아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하는 것과 달리 문화적인 특성 상 소녀들의 세계에서는 갈등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어렵고, 흉보기, 따돌리기, 소문내기, 욕하기, 조종하기 등을 통해 친구들로 구성된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은밀하게 심리적 고통을 주기 때문에 알아내기가 훨씬 더 어렵고 희생자가 입는 상처도 훨씬 깊죠.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를 풍부한 인터뷰와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책입니다. 소녀들의 왕따 문제를 이 책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책을 저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소녀들의 갈등 문화에 관심있는 임상가라면 꼭 한번 읽기를 권하는 명저입니다. 사례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은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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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아동은 삶에서 세 가지를 원한다(Michael Thompson)
: 관계, 인정, 권력
* 공격적인 행동의 세 가지 범주
1. 관계적 공격
: 관계나 수용, 우정, 소속감의 느낌을 훼손(혹은 훼손하겠다고 위협)하여 타인을 해치는 행동. 이 때 가해자는 피해자의 우정을 무기로 사용.
2. 간접적 공격
: 표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장치로 타인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문내기가 있음.
3. 사회적 공격
: 자존감이나 집단 내의 사회적 지위를 훼손하는 것이 목적으로 소문내기나 사회적 배제 등 간접적 공격을 일부 포함함.
* 은밀히 공격하는 소녀들이 모인 교실에서는 교사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도 희생자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 소녀들에게 삶의 위험은 고립, 특히 무리에서 눈에 띄면 버려질 거라고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다. 한편 소년들은 위험을 함정에 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 공격하지 않도록 사회화되고 '완벽한 관계'를 맺는 착한 여자로 키워지므로, 소녀들은 갈등이 있을 때 타협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 결과 사소한 다툼 때문에 관계 자체가 의문에 빠진다. 두 소녀 중 어느 쪽도 '착하지 않은 소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문제는 관계 자체로 확장된다. 갈등에서 사용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관계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소녀들에게 갈등은 곧 상실이다.
* 소녀들에게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적인 것이다. 실제로 따돌림의 희생자들은 외로움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 소녀들 사이의 대체공격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 소녀들의 따돌림은 통과의례이며 이겨내야 하는 단계라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관점이 따돌림을 방지하는 전략의 개발을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 학교에는 대체공격을 다루는 일관된 전략이 없다. 일과의 구조로 볼 때 교사의 개입은 더 어렵다. 예컨대 쉬는 시간에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 대체공격은 일반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왔다. 예컨대 많은 학교에서 "이렇게 하면 너랑 안 놀아"라는 식의 위협을 관계적 공격이 아니라 또래의 압력으로 여긴다. 연구자들은 학술지에서 소녀들의 관계 조종을 조숙함의 한 형태, 혹은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의 경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설명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조롱과 심술궂은 농담을 발달상 건강한 경험으로 분류한다. 소문내기와 험담하기는 '경계 유지'라고 부른다.
* 여성 따돌림의 대다수는 주모자의 지시에 따라 일어난다. 주모자의 힘은 지속적이고 은밀한 학대가 진행되는 동안 표면적으로 여성적인 차분함을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또한 주모자는 집단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 관계적 공격은 유치원에서 시작되고, 성별의 차이도 이때 처음 보인다. 이 공격 행위는 아동이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가 되면 곧 시작되는데 관계적 공격은 '관계나 수용, 우정, 소속감의 느낌을 훼손(혹은 훼손하겠다고 위협)하여 타인을 해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종을 포함하여 관계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무엇이든 포함된다. 관계적 공격은 간접적인 공격(예컨대 침묵으로 대하는 것)과 일부 사회적 공격(예컨대 소문내기)을 포함한다.
* 소녀들의 사회에서 가장 지독한 공격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격이고, 그것이 감정의 독처럼 퍼지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 화내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희생자는 이렇게 된 이유를 자기 잘못으로 여기기 쉽다.
*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나기 위해 소녀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의심하는 법과, 위장된 모습 아래에 있는 진짜 감정을 탐색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소녀들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속성이다.
* 싸늘한 표정과 침묵은 위장된 공격의 궁극적인 형태다.
* 가해자들 또한 '소유욕'과 '지배욕'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 관계의 조건을 통제하는 것은 관계적 공격의 신호다.
* 따돌림의 희생자들이 공통으로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믿기가 두려워요"
* 따돌리는 소녀들이 흔히 무리에서 가장 사회적 기술이 발달한 아이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 안타까운 사실은 문제가 심각할수록 태연한 척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는 것이다.
* '미안하다'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갈등을 끝내는 건 소녀들의 신기한 능력이다. 소녀들은 갈등을 거의 동화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강렬한 고통과 분노의 감정은 이 마지막 소모적인 행위로 느닷없이 끝이 난다.
*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소녀들에게 기본 명제 같은 것이다.
* 여자애들은 늘 지난번에 상대방이 어떻게 했는지 돌이켜 생각한다.
* 인기란 대체로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 친구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능력에 따라 정의된다. 소녀들에게 고립이 정신적 외상이라면 관계는 힘을 주는 것이다.
* 동맹 결성이 소녀들에게 더없이 매혹적인 것은 공격의 경험이 정당화되는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일대일 공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편이 없는 쪽이 잘못한 사람이 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무작위에 가깝다.
* 연구에 의하면 소녀들이 공격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죄의식은 다른 사람들과 책임을 공유할 때 현저히 감소한다고 한다.
* 중재자의 중요성은 갈등 공개가 금지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더욱 커진다.
* 소녀들의 분노는 가슴속에 깊이 박힌 악의 뿌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분노는 오히려 친절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비롯된다. 소녀들은 일상의 분노와 상처와 배반과 질투를 다룰 도구가 부족하다. 따라서 그런 감정들은 넘치거나 방출되기 전에 곪아터진다.
* 소녀들의 사회적 자본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으므로 고립은 그들의 정체성에 직결된 문제다. 대부분의 소녀들에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
* 소녀들의 자존감 상실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 이상적인 소녀의 진정한 완벽함은 억제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에 있다.
* 가장 힘든 부분은 잘못된 우정을 학대라는 진짜 이름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될 것이다.
* 진실 말하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알아서 그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까닭은 적대적인 문화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이 비밀을 나누는 것과 비밀을 나눈다는 사실 자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 구분은 소녀들끼리의 공격이 얼마나 미묘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다.
* 소녀들이 가담하는 대체공격은 의사소통의 만족스럽지 앟은 형태이며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소녀들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표현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 가장 좋은 부모는 경청하는 부모
* 인정하기 싶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 추방된 아이에게 새로운 활동은 새로운 세상이나 다름없다.
* 담당자나 다른 학부모와 상의하여 미리 그 활동의 사회적 체온을 재라. 아이가 성공할 수 있거나, 적어도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하라.
* 아이가 몹시 힘들어한다면 숨쉴 장소를 찾아주어야 한다.
* 일반적으로 가해자의 부모에게는 전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자신들의 양육 기술, 더 나쁘게는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학교에서 대체공격이 폭력의 실제로 인식될 때까지 부모는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 잘못된 반응의 예
- "다 지나갈거야"
- "누구나 다 겪는 일이란다" -> "너 같은 실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란다"라고 들림
*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 문화는 침묵과 고립 위에서 지속된다. 메리 파이퍼가 썼듯이 "우리는 가족을 병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화할 필요가 있다". 부분적으로 이 말은 집 밖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힘과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의문과 두려움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대체공격과 갈등회피가 소녀들의 삶의 세 가지 영역에서 교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리더십, 관계 폭력,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자존감 상실
* 소녀들의 경우 공격의 사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격의 부재다. 소녀들은 공격을 표출할 올바른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표출하지 않는 법을 배울 뿐이다.
* 소녀들에게 건강한 관계를 선택하도록 가르칠 때에는, 소녀들의 관계에서 복종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인식하게 해야 한다.
* 그렇다면 소녀들에게 공격적이 되라고 가르치라는 말인가? 그렇다. 소녀들의 자존감 상실에 대해 다시 살펴보면, 그 주요 증상은 이상화되고 갈등 없는 관계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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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중독자와 가족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도박은 가정을 파탄시킨 주범이요, 악의 축이요, 상종 못할 끔찍한 존재입니다. 도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이야기하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도박자는 가족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재산 상의 피해를 입히고, 가족과 갈등을 야기하는 등 많은 피해를 주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었고, 무료하고 심심할 때 시간을 때울 수 있었으며, 가끔 따기도 할 때에는 짜릿함을 선사하고, 흥미진진한 스릴감을 맛보게도 해 주는 고마운 역할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도박자에게 도박은 '나쁜 친구'와 같습니다. 영화 '친구'를 보면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구들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처럼 되어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래도 한 때 그들은 의리로 뭉친 절친이었지요.
도박도 비슷합니다. 도박은 계속 가까이 하면 결국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지만 그래도 과거를 회상해 보면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인 것이죠.
그런데
가족이 워낙 도박을 미워하니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차마 털어놓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니 가족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강제로 갈라놓듯이 무조건 도박을 끊을 것을 요구하면 도박자는 머리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양가 갈등에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도박자의 이런 마음을 읽어주고 도박의 '득'과 '실'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수용, 인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자면
주변 사람들부터 도박이 한 때 도박자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박자가 도박과 함께 하던 당시에는 즐거웠을 지 몰라도 더 이상 어울리게 되면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절교할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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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지만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한 도덕성과 질서의식으로 무장한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적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유야무야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완전히 다른 개념이죠.
모든 것을 수용(accept)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그릇이 큰 선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일상 생활에서 마찰을 빚는 경우가 없을 수는 없죠.
그런데도 적이 없다는 것은 진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공격당하기 싫다는 회피주의의 발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때로는 그런 태도도 필요하고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 태도, 더 나아가서는 (상대적) 진실이 왜곡당할 때에도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한다면 그런 자세는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자신의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변석개 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없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 무한신뢰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친구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이 많아도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끝까지 싸워서 밝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데?", "그렇게 밉보여서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그 사람에게 찍히면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세상일이란 게 아무도 모르는건데 적으로 삼았던 사람과 일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말 그대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건데 그동안 제 양심을 속이면서,그것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이 드는데도 내 몸 하나 아끼자고 참고 겉으로 아닌 척 그러는 거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아닌 건 때려 죽어도 아닌거고, 앞으로도 제 생각이 틀렸다면 박터지게 싸워서 머리가 깨진 다음에 몸에 사무치도록 깨달을 생각입니다
그게 인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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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일하는 분야도 여성이 대다수이고, 개인적인 취향도 여성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남자를 만나면 사실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스포츠 중계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집이나 자동차에도 관심이 없고, 독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싫어하거든요.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화제가 금방 끊깁니다.
여행, 사진, 커피, 공연이나 전시회, 책, 춤, 맛집 이런거 좋아라 하는 남자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제 주변은 그렇습니다.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유일한 죽마고우도 직업이 메이크 업 아티스트입니다. 쩝...
어쨌거나 그래서 단 둘이 만나서 그나마 죽이 맞는 친구의 수가 세 손가락 안에 듭니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그저께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오전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길래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줄 알고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녀석이 숨을 거두었다는군요. 뺑소니 사고랍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어제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그냥 머릿속으로 담담히 그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환히 웃는 사진 속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울컥 올라오더군요. 마음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나 봅니다.
속으로 꺽꺽거리며 울었습니다. 마음이 한결 정리되었는데도 이놈의 미친 눈물은 주책없이 한동안 계속 흘러나오더군요.
인생의 반도 채 살지 못하고 갑자기 가 버린 그 녀석의 인생이 안타까워서, 그 녀석을 떠나보내고 남은 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취기에 어깨 걸고 비틀거리면서 밤거리를 휘저을 수 있는 평생 친구를 먼저 보낸 게 억울해서 가슴이 저밉니다.
인생이란게 참 덧없습니다. 그 녀석은 올해가 자기 인생의 마지막 해가 될 줄 짐작이라도 했을까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녀석 몫까지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그 녀석도 저 위에서 그걸 바랄 거라고 제 마음대로 단정하면서요.
친구여, 편히 쉬게나.
나중에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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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씨네21
현실과 영화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세상을 살다보니 이제는 영화도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눈길이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자극적이냐는 잣대를 들이대면 거의 뒤에서 1, 2등을 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입니다. 그래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해서 잠시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세븐 파운즈'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총 수익 1억 달러도 가볍게 돌파했고요.
오웬 윌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은 둘 다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나오는 배우라서 스크린에서도 요절복통하고 시시덕거리고 그래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둘 다 상당히 진지하게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반려동물 말리(밥 말리에서 따온)이기 때문이죠.
야심만만하고 자유분방했던 두 사람은 천방지축 말리와 함께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상당히 교과서적인 설명인데도 참 잘 어울린다는게 이 영화의 묘미... -_-;;;
초반에 엉망진창으로 집을 휘젓고 다니는 말리의 모습을 보면 정말 때려주고 싶습니다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떠나는 말리를 보면서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오웬 윌슨은 기자가 되고 싶은데 기사를 쓰는 것은 재능이 별로 없고 오히려 쓰기 싫은 칼럼의 호응이 너무 좋아 계속 칼럼니스트로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예전에 포스팅한
'좋아하는 것은 잘 못하고 싫어하는 것은 잘 한다면'이 떠오르네요.
옥의 티 하나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동원된 22마리의 리트리버가 자세히 보면 구분이 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는 거. 그래서 눈에 약간 거슬립니다.
어쩄거나 동물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데다 리트리버는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때로는 콧등이 시큰함을 느끼면서 2시간 동안 잘 봤습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영화를 원하는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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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x i4R은 캐논 IXUS에 이은 제 2번째 디카이자 유일하게 재구입을 한 전자기기였습니다. 2005년부터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제 일상의 기록을 충실히 남겨왔던 친구였죠. 해외 여행도 5번이나 같이 갔고요.
2007년 가을에 회사 야유회를 갔다가 택시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휴대성과 쨍한 색감 때문에 다른 디카를 구입하지 못하고 결국 '옥션'에서 새 것 같은 중고를 다시 구입했습니다.
올 초에
DSLR을 구입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찬밥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이번 체코 여행에도 혹시 몰라서 가지고 갔는데 사용할 일이 있어서 꺼내보니 작동을 하지 않더군요.
예전 A/S를 받은 부분이 완전히 수리가 되지 않은 줄 알고 귀국하자마자 다시 점검을 맡겼습니다. 며칠 전
'디카 수리'에서 연락이 왔는데 렌즈 덮개의 문제가 아니라 메인 칩이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아마도 가방이 책상에서 떨어지면서 i4R에 무리한 충격이 가해졌나봅니다. 수리비가 25만 원 이상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중고가 37만 원에 샀는데 수리비 25만 원이라... 아무리 돈이 덤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별로 함께 하지 못했던 두 번째 녀석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원하는 분께 입양을 할 지, 배터리와 충전기, 메모리 카드 등이 그대로 있으니 나눠서 팔 지...
지금이야 D300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다시 디카를 구입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명품이었던 Contax i4R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품이 단종되어 섭섭함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잘 가라 Contax i4R, 내 좋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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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이 그 친구의 압력에 의한 거라고는 죽어도 말 못합니다. ^^
이 친구는 제 30년지기로 소위 말하는 XX친구입니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같은 학교를 다닌 적도 없는 동네 친구입니다만 아직까지도 서로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나만 그럴지도~)하는 친구입니다.
직업은 보시다시피 메이크 업 아티스트인데 현재 베트남에서 메이크 업 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5년 이상을 한 우물만 팠죠. 지금은 남자 메이크 업 아티스트를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 친구가 그 시장에 뛰어들었을 90년대 초만 해도 남자 메이크 업 아티스트는 거의 없었습니다. 개척자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부르주아, 캐사랑 파사랑에서 일을 했었고 몇 군데 더 있었을 겁니다. 회사에 전속되어 일을 하기도 했고 샵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원체 역마살이 좀 있는데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해서 몇 년 전 베트남으로 넘어간 후 LG 드봉에서 운영하는 메이크 업 아카데미의 메인 강사로 베트남의 메이크 업 아티스트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부르즈아와 공동으로 메이크 업 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는 친구가 운영하는 샵의 잡지광고용 화보입니다. 베트남의 인터넷 발달이 아직은 미약한지라 주로 잡지를 위주로 광고 홍보가 이루어진답니다. 홈페이지도 운영하지 않고요. 가운데 보이는 것이 제 친구인데 생긴 것도 범상치 않죠? ^^
아직 초기라서 먹고 살 정도는 되지만 흡족한 수준은 아니랍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친구가 멋집니다.
내년 4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운때가 맞으면 베트남 여행도 할 겸 날아가서 축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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