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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을 쓴 사티쉬 쿠마르는 인도 라자스탄 태생으로 아힘사(생물을 해치지 않음) 원칙에 충실한 자이나교 신자인 모친의 영향을 받아 9살 밖에 안 된 나이에 자이나교 승려가 되어 9년 간 인도 전역을 걸어서 횡단했습니다. 이 때의 경험으로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영성을 깊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 간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토지 개혁 운동에 참여하여 불가촉 천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줄 것을 부유한 지주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이후 버틀런드 러셀에게 영감을 받아 그 당시 핵무기 보유국가인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의 지도자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평화 순례 도보 여행을 떠나 약 8천 마일의 대장정을 마치기도 했습니다.
1973년부터는 영국에서 '소생Resurgence'이라는 잡지의 편집일을 맡는 동시에 E. F. 슈마허의 생태적 시각을 조명하고 가르치는 슈마허 칼리지 설립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노바 바베, 크리슈나무르티, 버트란트 러셀, 마틴 루터 킹, E. F. 슈마허, 반다나 시바 등 동 시대의 저명한 사상가와 철학자와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내적 성찰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 훔 So Hum'이라는 산스크리트어 격언을 바탕으로 한 관계 중심적 세계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는 지혜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이 진리에 도달한 여정을 구술로 기록한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버트란트 러셀과 E. F. 슈마허 모두 좋아하는 사상가이지만 사티쉬 쿠마르처럼 종차별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사상가는 본 적이 없어서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인류에게는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제게 그래도 아직 일말의 희망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강한 메시지를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사티쉬 쿠마르가 이야기한 관계의 그물망을 과연 인류가 구축해 낼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겠지만요.
닫기
* 명상은 행동을 자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과 기술과 방법이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 단지 그렇게 되게 하는 것, 깨어 있으면서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 만트라는 끊임없는 반복으로 계속해서 채워지는 성스러운 단어이다. 산스트리트어로 '만man'은 정신이나 마음을 말하고, '트라tra'는 해방을 뜻한다.
* 이 시대에는 '땅, 영혼, 사회' 이 세 가지가 더욱 신성하면서도 진정한 사고를 하게 만들 수 있다. 자연과 인간애와 영성을 동시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 "성취할 것도 없고 목표도 없고 결과도 없다면 뭔가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행위 자체를 그만둘 수 없습니다. 행위는 우리 앞에 있고, 우리 뒤에도 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행위입니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으면 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결과를 향한 욕구입니다"
* "종교가 해결 방법이 아니고 문제란 말씀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진리는 신념이나 교리, 철학에 대한 지식이나 심리학 기술, 이데올로기나 종교의식, 이론체계 같은 것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매 순간, 관계의 그물 안에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 비폭력 문화는 서양의 합리주의와 인도의 전통을 초월해 있다. 진보 그룹의 자각이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와 종교적 과민증과 같은 폭력을 없애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그룹들은 내가 '종차별주의'라 부르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 종차별주의는 인류라는 종이 다른 종에 앞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동물과 숲과 모든 생물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는 태도는 폭력문화의 기초이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이중의 사고방식은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생각으로 옮아간다. 모든 생명의 화합을 깨우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모든 생명체가 단순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도 단순한 삶을 배워야 한다.
* '지하드'라는 말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투쟁이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우리의 첫 번째 주된 투쟁은 우리의 에고와 싸워 자만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를 일으키는 힘을 패배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지하드입니다.
* 필요한 것은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생태 공경론(Reverential Ecology)'이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취할 때 다른 생명체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라고 생각하기보다 겸손하고 주의하며 억제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의 세계관은 매우 이원론적이고, 개인적이고, 고립된 세계관입니다. 이 말은 '나는'이라는 에고로 시작합니다. 반면에 힌두교에서 말하는 '소훔-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신이나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있어야 존재합니다. 이것이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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