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장애에 대한 책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장 전문가를 위한 전문 서적과 일반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볼거리 위주로 가볍게 쓴 책이죠.
이 책은 현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들이 너무 극적이다보니 그만큼 읽는 재미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만큼 유용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인을 위한 책이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반인들이 편하게 보기에는 전문적인 내용이 너무 많거든요.
이 책의 저자인 Yudofsky 박사가 사실 특수분야(?) 중 하나인 신경정신의학(Neuropsychiatry) 분야의 임상가이기 때문에 과연 이 분이 성격장애 치료의 대가일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습니다. 실제로 책 내용 중에 성격 장애의 유전학적, 뇌영상 연구 결과 소개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거든요. 494p에는 '분열형 성격 장애의 결정적 요인 중에는 뇌와 관련된 것이 있을 것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라는 단정적인 말까지 나오죠.
Clonninger 교수의 TCI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뭔가 시사점을 많이 던져줄 것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게 깊이 고민한 것 같지는 않고 성격 장애를 이해하는 하나의 tool 정도로 가볍게 보고 만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또한 서두에 주변 사람들이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는 성격 장애가 의심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알려줄 것처럼 소개했지만 실상 대처 방법은 그저 확인했으면 피하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이 책에는 연극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반사회적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편집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분열형 성격장애, 중독성 성격장애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분들은 일반인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가도 아니고 정신병리학 기본 수업을 들은 심리학과 대학원생 정도입니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중독성 성격 장애(DSM으로는 진단되지 않는 성격장애)에 대한 부분은 제게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Addiction-prone Personality'에 대한 논의에서 별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행위 중독보다는 약물 중독에 대한 예만 다루고 있어 제 입장에서는 좋다 말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장 임상가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 없는 책이고 수련을 앞두고 있는 대학원 졸업반 학생이라면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쉬엄쉬엄 한번 정도 읽으면 좋습니다.
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준 부분도 별로 없어서 '월덴지기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도 작성하지 못했네요;;;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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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종합심리평가에 포함된 6가지 검사 도구만으로는 성격장애를 진단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로샤와 TAT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함)하기에 대안 중 하나로 TCI를 추천하곤 합니다.
Cloninger가 애시당초 자극 추구, 위험 회피, 사회적 민감성 기질 차원의 조합을 통해 전통적인 성격장애 진단 가능성을 타진했죠. 이 중에는 DSM 체계에 속하는 성격 장애가 5개(
반사회성, 연극성, 경계선, 분열성, 강박성)나 포함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TCI와 MMPI-2의 조합으로 진단하고, 또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TCI에서
반사회성 성격장애 기질 유형은 HLL 유형입니다.
자극추구 : High
위험회피 : Low
사회적민감성: Low
물론 HLL 기질은 모험가 타입도 포함하기 때문에 각 기질의 점수가 극단적으로 높을 때에 한해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진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제 경험 상으로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이면서 점수가 높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대개 극단적인 백분위값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극단값을 갖는 HLL 기질 유형은 모두 반사회성 성격장애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 상으로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TCI 성격 유형은 다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유형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성격 차원도 자율성은 극단적으로 높고, 연대감은 극단적으로 낮은 것은 공통적이며 자기초월 차원의 차이에 따라 양상이 달리 나타납니다.
1. HLH 성격 유형 : 편집성(paranoid)
자율성 : High
연대감 : Low
자기초월 : High
HLH 성격 유형은 얼핏 보면 편집성 성격장애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살짝 헷갈립니다. 상담을 요청하는 이유도 대부분은 관계사고나 피해의식 때문이며 심한 경우는 박해망상의 수준을 보이기도 합니다. 일이 잘못되면 관계사고의 대상인 사람에게 모든 원인을 귀인하고 책임을 돌려 탓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민원 제기, 법적 소송 등으로 물의를 일으킵니다. 특정 인물들이 나름의 비밀 결사를 만들어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박해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이유는 자신이 너무 공정하고 착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 HLM 성격 유형 : 괴롭히는
자율성 : High
연대감 : Low
자기초월 : Medium
자기초월 차원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겉보기에는 별로 문제없는 듯 보이지만 자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아랫사람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식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이면서도 일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둘러대지만 정작 성공하고 나면 자신의 공헌만을 뻥튀기하고 다른 사람의 노력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승부욕이 매우 강해서 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며 동료, 후배, 부하 직원 할 것 없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스타일입니다. 그래도 아래의 HLL 유형처럼 노골적으로 거만하지는 않습니다.
3. HLL 성격 유형 : 독재적인(Autocratic)
자율성 : High
연대감 : Low
자기초월 : Low
말 그대로 독재자의 면모를 보이는 유형입니다. 자기초월 차원이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지극히 속물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특성을 많이 보입니다. 목적 의식이 분명하고 목표 지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일이 잘 돌아갈 때는 자신의 행동을 효율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굉장히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관대함이나 참을성이 거의 없고 실수를 잘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독히 처벌하는(그러면서도 자신은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전형적인 화이트 컬러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바로 이런 사람이죠.
그래서 상담 장면에서 만날 수 있는 경우 중에서는
HLL 기질 유형과 HLL 성격 유형 조합이 전형적인 반사회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MMPI-2에서는 어떨까요? 미안하지만 범죄자가 아닌 사회 적응이 어느 정도 가능한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경우 흔히 예상하듯이 Pd2(권위불화) 임상 소척도, ASP1(반사회적 태도), ASP2(반사회적 행동) 내용 소척도가 상승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척도들이 노골적으로 상승한 사람들은 이미 범죄 경력이 있거나 아예 교도소에 있거나 하겠죠. 당연히 상담을 받으러 오지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예상 밖으로 상승하는 척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격병리척도 중 AGGR 척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고 특히 HLH 성격 유형인 경우 실제 행동화 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신체적인 위협이나 협박을 흔히 사용합니다.
DISC 성격병리척도가 동반상승하면 더욱 위험.
HLL 성격 유형의 남성인 경우
GM, ES 보충척도가 동시 상승(70T 이상)한 경우 마초적 기질이 농후하고 굉장히 완고하며 고집 또한 세기 때문에 상담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겉으로는 순응적으로 보이지만(특히 S척도 상승 시), insight가 없기 때문에 상담 진행에 애로가 많습니다.
함께 살펴본 것처럼 MMPI-2만 갖고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진단하려고 한다면 굉장히 좌절스러운 결과를 맞게 됩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반사회성 관련 척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단은 TCI의 반사회성 기질과 HLH, HLM, HLL 성격 유형 조합으로 하고 MMPI-2를 통해서는 일상 생활에서 이들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일지에 초점을 맞추어 formulation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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