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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학의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죠. 이 책을 쓴 에드워드 쇼터가 의학의 사회적 변천과 추이를 탐구하는 대표적인 의학사학자입니다. 쇼터는 의학사 뿐 아니라 의사-환자의 관계 변화, 정신약리학의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토론토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입니다.
이 책으로 캐나다 왕립협회의 제이슨 A. 헤나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정신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직선적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학의 흐름을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 그리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저만 재미있을지도;;;;).
에드워드 쇼터는 이 책에서 18세기 말에서 20세기 말에 이르는 200여 년의 기간 동안 정신의학이 겪은 세 차례의 격변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격변기는 1세대 생물정신의학이 자가당착에 빠지던 19세기 말이며, 두 번째 격변기는 일대를 풍미하던 정신분석이 몰락하던 20세기 중반 이후,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위기는 정신약물학의 발달로 인해 마음의 병이 신체적 질병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신과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던 1990년 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가 주장했던 '대감금' 현상이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반론을 당시 통계와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펼치는 곳이었습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특히 임상심리학) 전공자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심리학도가 심리학사를 당연히 공부하듯이 특히 임상심리학자라면 이 책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총 655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며 주석만 해도 1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이지만 술술 읽힙니다(저를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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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말 이전까지 정신과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 푸코는 정신의학이 국가권력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 통제가 강력했던 독일에서도 19세기까지는 정신과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 1960년대 학계의 유행으로 회자되었던 바와 같이, 정신병자들은 자본주의에 저항해서 혹은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거나 사회질서를 소란케 했다는 이유로 감금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 미셀 푸코는 '광기와 문명'에서 17세기 광인들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자로 예찬받았다고 기술했다. 푸코는 정신의학의 역사를 속죄주의로 편향되도록 몰아가는 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저서이다. 본서의 저자인 쇼터는 푸코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 1808년 레일은 새로운 전문분야를 칭하는 단어인 정신의학, 혹은 Psychiaterie라는 말을 만들었고, 1816년 Psychiatrie로 줄였다.
* 놀라운 것은 도덕치료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아니고, 이 치료 원칙이 가까운 장래에 수용소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 신경과학적 시각은 생물정신의학이라 불리게 되었고, 사회에 중점을 두는 시각은 질병의 '생물-정신-사회적' 모델을 낳기에 이르렀다.
* 중요한 것은 초기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병이 기질적 원인일 것이라는 매우 직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환자의 고통이 너무나 강렬하고 환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괴이한 데다 체질 또한 극심하게 변질되기 때문에 이를 뇌와 연관시키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 정신의학 탄생의 순간부터 유전론은 존재하고 있었다.
* 정신의학은 탄생 시초부터 신경과학이라는 한쪽 날개와, 정신사회적 관점이라는 다른쪽 날개로 비상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쪽 날개의 힘이 약해지면서 균형을 잃고 19세기 내내 생물학적 정신의학기 득세를 하게 되었고, 이는 에밀 크레펠린의 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 정신의학이 물려받은 유산의 핵심인 수용소 정신의학은 애초에는 선의로부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자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었다.
* 19세기에 수용소 환자가 급증하게 된 현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기존의 환자가 '재배치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환자가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 18세기 이전 영국에는 수용소라는 것이 아예 없었고, 유럽 대륙도 19세기 이후에야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 수용소 입원이 증가한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는 가족이 정신질환을 용인하기 어려워졌다는 데에 있다. 가정에서 치료하던 정신질환자들이 이에 수용소로 위임된 것이다.
* 19세기 동안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정신질환은 신경매독이었다.
* 수용소 초만원 사태를 초래한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알코올 관련 환자의 급증에 의한 것이다.
* 정신분열증이 그동안 점진적으로 증가해 왔다 하더라도 그 근거는 잠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동안만큼은 확실히 증가했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 1900년 즈음 정신과 의사의 지위는 맨 밑바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정신의학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려던 초창기 시도는 수용소로 인해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용소 밖에 있던 정신과 의사들은 신경과학을 응용하여 환자 치료에 적용하려 했고, 이들이야말로 '1세대 생물정신의학자'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1세대 생물정신의학도 실패하게 되는데,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유전학적 뿌리를 드려내려던 야심찬 시도가 '퇴행성'이라는 도깨비 같은 이론으로 종말을 맞았던 것이다.
*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교육의 필요성과 과학에의 호기심이 동시에 작용하여 추진되었던 것이다.
* 그리징거는 1세대 생물정신의학의 대표적 인물로서 생물정신의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병원 정신과의 근대적 모델을 창립한 사람이다. 그리징거에 의하여 대학 정신의학이 수용소 정신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 마이네르트는 선구자였다. 1868년 그가 일깨운 것은 정신의학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증상을 분류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정신질환의 근저에 있는 해부학적 원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네르트의 과업은 1세대 생물정신의학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음을 뜻하는 신호였다. 즉, 해부학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1880년대 이후로 정신의학을 현미경으로 연구하려는 광적인 열풍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대학들을 휩쓸었다.
* 영국 정신의학의 아킬레스건은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만 있고 과학 연구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 미국 정신의학 발달의 특징은 교육과 연구가 분리되어 있는 형식이어서 유럽 대륙 모델과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 19세기 정신과 의사들은 뇌에 관한 유전학과 생물학을 현대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선구자들이었다.
* 특정 질병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내려가면서 크기가 확장된다(삼핵산 반복 변이).
-> 삼핵산이 특정 염색체 상에서 반복 변이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fragile X syndrome, 헌팅턴 병, 근이양증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세대를 통해 가중되어 물려받음으로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유전적 운명이라는 의미의 퇴행이론은 정신의학 내부에서 비교적 빨리 소멸되었다. 벨 에폭 시대가 다가오자 퇴행이론은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1933년 이후부터 퇴행이론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공식 얼굴이 되었다.
* 1세대 생물정신의학의 죽음은 실은 나치 출현 이전에 이미 임상분야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연구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때 획기적인 것으로 여겼던 뇌해부학에 그저 단순히 흥미를 잃어갔던 것이다. 이제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은 질병을 횡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적으로 설명하는 시각이었다. 이 새로운 종적 방식을 도입한 대표적인 인물이 에밀 크레펠린이다.
* 정신질환의 귀추를 지켜보는 것, 이 귀추에 근거해서 질병을 감별하는 것이 크레펠린주의적 대변혁의 본질이었다.
* 원인이 아니라, 예후라는 단어야말로 크레펠린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이다.
* 1899년 제 6판에서 크레펠린의 생각은 최종적인 형태에 달하여, 이것 이후에 우리 시대 국제정신의학의 권위적 지침이 된, 미국 정신의학회의 DSM의 질병 분류 근거가 되었다.
* 스스로를 크레펠린의 충실한 제자라고 자처하는 오이겐 블로일러가 조발성 치매 대신에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 '크레펠린주의'의 마지막 주안점은 모든 정신과적 판단은 '의학적 모델'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후세에 나타나 크레펠린 모델과 갈등하게 될 '생물-정신-사회적 모델'과의 뚜렷한 구분이 이때 그어진 셈이다.
* 영국 정신의학의 자랑거리가 환자를 묶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면, 프랑스 정신의학은 증상과 적용 기준에 근거해 세심하게 개인별로 적용하는 온천치료가 자랑거리였다.
* 1883년 이후부터 베르넹은 비 최면 암시의 효과에 대해 널리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근대 의학적 정신치료가 시작된 시점이다.
* 분석의 바람이 휘몰아치자 정신의학계 내에서는 거대한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정신의학이 오래전부터 심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을 지향해 왔기 때문이었다. 막판에 정신분석이 승리하게 된 이유는 프로이트 이론이 탄탄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 의원들이 번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으로, 정신병자로 꽉 찬 수용소라는 공간에서부터 일상 생활의 문제인 신경증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던 것이다.
* 중앙유럽 정신의학계에서 정신분석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세 방향으로부터 일어났다. 첫째, 의사-환자 관계에서 심리적 측면에 더 심세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둘째, 개원가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끝으로 공공의료 분야에서 정신분석을 도입하려 했던 이유는 치료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 미국 정신분석에서 정통이라 함은 '자아 심리학'으로서, 프로이트가 1923년 처음으로 정신의 구조에 관해 고안한 이론이었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가 자아 심리학의 기수가 되었다. 미국의 자아 심리학은 성에 초점을 맞춘 이드 심리학에서 벗어나 성인 환자의 사회적 적응 부담에 초점을 맞추었다.
*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은 역동 정신의학을 정신의학의 선도적 경향으로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 엘렌버거(1955)
* '정신분열증을 만드는 어머니'(가정에서 지배적이고 동시에 과보호적이며 기본적으로는 거부하는 어머니가 자식을 정신분열증으로 만든다는 이론으로, 이 이론을 필두로 하여 모든 정신질환과 성격장애, 심지어 동성애조차도 그 원인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소위 엄마 사냥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라는 악명 높은 주제에 관한 프롬 라이히만의 저서가 1948년 출간되자, 미국의 어머니들은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 정신분석가들이 정신의학계를 지배하려고 공들였던 노력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모순적인 사실 하나는, 지난 100여 년간 정신의학의 지적 핵심에 자리잡고 있던 진단분류법을 멸시했다는 점이다.
* 쇼크요법은 정신의학이 신경학의 그늘을 벗어나는 시점을 나타내는 이정표로 이해된다.
* 정신의학 역사상 나라마다 자신의 뚜렷한 족적을 남겨 왔다. 독일은 1차 생물정신의학의 기반을 마련했고, 프랑스는 치료적 수용소를 열었다. 미국은 정신분석을 한껏 꽃피우게 했고, 나중에는 2차 생물정신의학 시대를 열었다. 영국이 전 세계에 내놓을 만한 것은, 정신질환의 기저에는 인간관계의 폐해가 깔려 있다는 이론이었다.
* 치료적 공동체는 한쪽 극단인 정신분석과 다른쪽 극단인 수용소 보호관리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고자 했던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 낮 병원 운동의 의의는 주요정신질환의 치료 장소를 수용소에서부터 지역사회로 옮기려 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이다.
* 클로르프로마진이 정신의학계에 일으킨 혁명은 페니실린이 의학계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할 수 있다.
* 정신의학계 최초의 이중맹검 대조법이 1952년 모겐스 쇼우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 이미프라민은 정신의학 역사 상 첫 우울증 특효약으로 등장했다.
* 탈기관화는 반정신의학 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은 이차 생물정신의학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는 진단명보다는 치료 가능한 진단명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 정신의학의 주된 관심사가 19세기에는 입원한 정신병 환자였고, 20세기 초에는 외래 신경증 환자였다면,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과거에는 병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던 상태 혹은 가정의가 보았어야 할 그러한 상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 동성애자와 베트남 참전 군인의 전례가 심어준 것은 정신과적 진단은 조작이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 정신분석의 쇠락은 특히 "생물-심리-사회" 모델 분야에 혼란을 가중시켰는데, 이 분야는 그때까지도 심리 영역의 대부분을 프로이트 이론을 차용해 설명해 왔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 분석이 아니라면 다른 그 무엇으로 정신치료를 할 것인가? 대안적 정신치료로 대두된 다른 방식 거의 모두가 효과 면에서는 비슷비슷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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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가마타 히로키 교토대 교수가 쓴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14권의 과학 고전을 선별하고 뒷 이야기를 통해 각 책의 내용을 재미나게 풀어내면서 매 장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양서까지 추천하는 좋은 책이었죠.
오늘 소개하는 강신주 선생의 이 책이 이와 흡사한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내용이 철학이고 시를 통해 풀어낸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목차를 보시죠.
1. 기쁨의 연대 - 네그리와 박노해
2. 언어의 뼈 -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3. 사유의 의무 - 아렌트와 김남주
4. 삶의 우발성 - 알튀세르와 강은교
5.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시즘 - 바타이유와 박정대
6. 소비사회의 유혹 - 벤야민과 유하
7. 무한으로서의 타자 - 레비나스와 원재훈
8. 망각의 지혜 - 니체와 황동규
9. 미시정치학 - 푸코와 김수영
10. 대화의 재발견 - 가라타니 고진과 도종환
11. 밝음의 존재론 - 하이데거와 김춘수
12. 주름과 리좀의 사유 - 들뢰즈와 최두석
13. 애무의 비밀 - 사르트르와 최영미
14. 작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 - 아도르노와 최명란
15. 해탈을 위한 해체론 - 데리다와 오규원
16. 미래 정치철학의 화두 - 아감벤과 한하운
17. 육화된 마음 - 메를로 퐁티와 정현종
18. 포스트모던의 모던함 - 리오타르와 이상
19.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 - 바디우와 황지우
20. 인정에 목마른 인간 - 호네트와 박찬일
21. 한국 사유의 논리 - 박동환과 김준태
보시는 것처럼 굉장히 다양한 철학 사상가와 시인을 짝지었습니다. 총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시인이 등장합니다. 그 연결의 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저자가 시집도 꽤나 읽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책을 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거든요.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에서처럼 나중에 읽기 위해 찜해 놓을 책들을 여러 권 건졌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저처럼 철학을 곁눈질만 하는 문외한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는 겁니다. 강신주 선생도 글을 쉽게 쓰는 재주가 있어서 참 고맙더군요. 모쪼록 남모를 고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건 이제 그만두고(그들을 돕는 일은 저 같은 상담자들에게 맡겨두고), 본업인 철학 분야에서 좋은 책을 많이 써 주기를 바랍니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훌륭한 책이고 훌륭한 시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마당쓸고 돈 줍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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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너무 어려워서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시집과 철학책을 멀리 하는 진정한 이유는 시나 철학에서 자신의 일상적 삶을 동요시키는 듯한 불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네그리와 박노해'를 통해 민중 아닌 다중의 논리가,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를 통해 언어에는 뼈가 있다는 사실이, '아렌트와 김남주'를 통해 사유는 곧 의무라는 판단이, '알튀세르와 강은교'를 통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바타이유와 박정대'를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의 비밀이, '벤야민과 유하'를 통해 자본주의의 소비 논리가, '레비나스와 원재훈'을 통해 기다림의 신비가, '니체와 황동규'를 통해 망각의 지혜가, '푸코와 김수영'을 통해 자발적 복종의 무서움이, '고진과 도종환'을 통해 타자로의 비약이 지닌 신비가, '하이데거와 김춘수'를 통해 존재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들뢰즈와 최두석'을 통해 마주침과 주름의 논리가, '사르트르와 최영미'를 통해 애무와 섹스의 비밀이, '아도르노와 최명란'을 통해 교환 불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데리다와 오규원'을 통해 죽음과 삶의 관계가, '아감벤과 한하운'을 통해 생명 정치의 무서움이, '메를로-퐁티와 정현종'을 통해 사랑과 고독의 진실이, '리오타르와 이상'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가, '바디우와 황지우'를 통해 사랑의 내적 구조가, '호네트와 박찬일'을 통해 인정투쟁의 심리학이, '박동환과 김준태'를 통해 한국 사유의 가능성이 펼쳐집니다.
* 촛불 집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가자들은 네그리가 말한 것처럼 '공통되기(becoming common)'를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힘을 주면서 참가자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분리시키고 단절시켰던 간극을 극복하고 공통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처음 맛보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경제 개발은 자본가 계층을 양성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농지를 정리하고 기계화함으로써 농촌에서 남아도는 인력을 양산해 내야 했던 것이지요.
*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철저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 우발성과 마주침의 철학을 주장한 루이 알튀세르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집요하게 마주침의 문제와 그것의 효과에 대해 숙고했던 인물이었지요.
*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인간의 성적인 욕망에 일종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바타이유 이후에 에로티즘을 사유할 때 우리는 매번 금기라는 문제에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레비나스는 그다지도 집요하게 타자라는 문제에 집착했지요.
* 과거는 우리에게 기억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도 기대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물론 현재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 푸코는 우리의 자유를 길들이고 억압하려는 권력이 청와대나 국회 같은 거시적 층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도처의 개인들이 의식하기 힘든 미시적인 차원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ㅁ을 밝혀 냅니다. 이 때문에 흔히 푸코의 정치철학을 미시정치학이라고도 부르지요.
* 대화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부터 고진은 다음과 같은 타자론을 전개합니다. "타자는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런 타자와의 관계는 비대칭적인 것이다".
* 고진은 철학, 언어학, 경제학 등도 모두 예외 없이 타자에 대한 비약, 혹은 도약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사랑이란 감정이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사르트르의 철학 전체는 '존재와 무'라는 제목으로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무(nothingness)'는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현재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해체주의자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는 데리다입니다. 그는 '차이'가 모든 것의 의미를 구성한다고 통찰했던 철학자였지요.
* 이탈리아의 현대 철학자 아감벤이라면 문둥이들을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을 겁니다.
*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적대 관계가 공동체 외부의 벌거벗은 생명(조에)과 공동체 내부의 정치적 존재(비오스) 사이에 그어졌다면, 이제 근대 민주주의에서 그것이 한 개체 내부에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를 함께 각인시키는 식으로 이행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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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그리 사상의 진화(2008, 갈무리, 마이클 하트, 박서현/정남영 옮김)
* 다중(2008, 세종서적,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서창현 외 옮김)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천재의 의무(2000, 문화과학사, 레이 몽크, 남기창 옮김)
* 기형도 전집(1999, 문학과지성사, 기형도)
* 철학적 탐구(2006, 책세상,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옮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 한길사,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2008, 이매진, 알튀세르, 권은미 옮김)
* 에로티즘의 역사(1998, 민음사, 바타이유, 조한경 옮김)
* 시간과 타자(1996, 문예출판사, 레비나스, 강영안 옮김)
* 들뢰즈의 니체(2007, 철학과현실사, 들뢰즈, 박찬국 옮김)
* 들뢰즈 커넥션(2005, 현실문화연구, 존 라이크만, 김재인 옮김)
* 천 개의 고원(2001, 새물결,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 차이와 반복(2004, 민음사)
* 존재와 무(2009, 동서문화사, 사르트르, 정소성 옮김)
* 해체론 시대의 철학(1996, 문학과지성사, 김상환)
* 목소리와 현상(2004, 인간사랑, 데리다, 김상록 옮김)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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