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가라는 압력을 도처에서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의 사생활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건 매우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하신 말씀은 아닐테니 그건 넘어가고요.
대체 박사 학위는 왜 따려고 하는 겁니까? 실질적으로 박사 학위가 필수 요건인 교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박사를 따야 할 이유가 정말 있나요? 혹시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나도 불안한 마음에 혹은 덩달아 하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두 번 사는 인생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그저 박사 학위가 있어야 어느 위치에 있던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막연한 기대로 너도나도 박사 과정에 들어가는데 대체 그 좋은 기회라는 것이 뭡니까? 결국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연봉 좀 더 받고 그 댓가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어서 충분히 행복하고 돈도 더 벌 생각이 없고, 더 많은 일을 하느라 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뭐하러 지금의 행복한 인생을 희생하면서 필요도 없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수 년의 시간과 수 천 만원의 돈, 그리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현장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교수에게 굽실거려야 한답니까?
학회의 supervisor들은 언제나 의사처럼 전문가 자격만 있으면 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의 제자, 수련 레지던트들에게는 박사 학위를 따도록 종용합니다. 자신만의 라인만을 구축하려고 혈안이 된 자격 미달의 supervisor들도 있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후학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full time 박사가 된 이들이 교수가 될 수 없다면(대개는 나이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없죠)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요? 학교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프로젝트가 생기면 투입되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허울좋은 인생이 아닌지요.
박사도 박사 나름이고 박사 학위가 그 사람의 실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막말로 말해서 박사 학위를 따면 논문을 더 잘 쓰게 된답니까? 연구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아니면 치료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현장에서 겪어 보면 학위에 따른 차이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박사는 이론에 경도되다보니 현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앞으로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치료자를 뽑을 때에도 박사는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어차피 교수의 꿈을 접은 저로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할 아무런 이유와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박사를 못 따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다든지 하는. -_-;;;)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엄한 짓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제가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정말 박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큰 일이 생긴 줄 아시면 됩니다).
그러니 저를 아는 분들은 제발 제 앞에서 박사 학위 이야기를 꺼내지 말기 바랍니다. 행복한 제 인생에 똥물 튀기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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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개업의사 '돈거래' 사실로> - 연합뉴스(코리아닷컴 재배포)
기사 내용은 석,박사 학위가 필요한 개업 의사가 전북 지역의 의대 교수에게 청탁해 학위를 돈으로 사고 팔았던 사실이 적발되었다는 겁니다. 어디 이런 고질적인 관행이 전북 지역뿐이겠습니까?
기자는 2001년부터 각 대학이 학위수여업무를 교육부로부터 이관받으면서부터 이러한 부정행위가 쉬워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는데 제가 알기로 이 관행은 뿌리가 훨씬 깊으며 역사도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위 논문을 처음(idea generation)부터 끝(논문 작성)까지 자기 힘으로 쓰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요? 잘은 몰라도 저는 많아야 열에 하나를 넘기가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통계 방법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매우 취약합니다. 교과 과목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익혀야 할 부분이 산더미입니다. 그래서 일부 대형 병원에서 실험 설계 및 통계 분석을 위한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레지던트는 전문의가 되어 개업을 하면서 자신이 수련을 받은 병원의 staff(당연히 그 대학병원의 교수입니다)과 계속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그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대부분은 박사 과정이지요. 학위가 필요한 의사들은 레지던트 3년차가 되면 석사 과정에 진학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 대학원 과정의 수업, 과제, 연구와 양적, 질적 차이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소위 대충입니다. 논문도 당연히 대충이지요. 박사 과정은 더 심합니다. 환자보느라 정신없는 개업의가 박사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가능할리가 없지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저는 의대에서 대학원은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의가 되어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면 되는 것이지 뭐하러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석, 박사 학위를 따도록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연구 인력이 아니고 임상 장면에서 실무를 수행하는 인력이 아닌가요?
연구 수행에 적합한 능력과 교육 자체가 부족한 의사에게 학위를 요구하니 부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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