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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이 참에 정리를 해 두려고 포스팅합니다. LGBT 전문 상담자가 아닌 경우 오해가 없도록 오늘 포스팅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정리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저는 '성적 지향'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누구는 성 정체성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도 하고 누구는 성적인 끌림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두 가지 용어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성 정체성(Gender Idendity) : 내가 어떤 Gender의 소유자인가에 대한 issue
* 성욕(Sexual Desire) : 내가 어떤 성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가에 대한 issue
성 정체성은 내 영혼이 어떤 gender에 깃들어 있는가와 관련있기 때문에 실존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정체성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Gender Dysphoria는 내 gender가 여성인데 남성의 육체에 깃들여 있거나 반대로 내 gender가 남성인데 여성의 육체로 태어난 경우를 말합니다. 그 discrepancy를 해소해야 하는데 영혼을 교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육체를 바꿔서 이를 일치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MTF(Male to Female), FTM(Female to Male)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죠.
성욕은 내가 어떤 성에게 성적으로 끌림을 느끼는가와 관련된 내용으로 내 gender가 남성인데 남성에게 성욕을 느끼면 gay, 내 gender가 여성인데 여성에게 성욕을 느끼면 lesbian, 내 gender가 남성인데 여성에게, 내 gender가 여성인데 남성에게 성욕을 느끼면 straight이라고 합니다. 내 gender가 무엇이냐와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성욕을 느끼면 bisexual(bi-gender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이 되겠죠.
시스젠더(Cisgender)는 자신의 육체와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Gender Dysphoria가 아닌 모든 사람을 일컫습니다. 이 때 성욕(sexual desire)은 고려하지 않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시스젠더 gay, 시스젠더 lesbian, 시스젠더 bisexual, 시스젠더 straight(heterosexual)이 모두 가능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퀴즈 나갑니다.
육체는 남성인데 gender가 여성인 MTF Gender Dysphoria가 있다고 해 보죠. 이 사람은 누구에게 성욕을 느낄까요?
정답은 '알 수 없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이 사람은 결국 여성이니 성 전환 수술을 마치고 나면 남성에게 성욕을 느껴 남성과 결혼할거라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람의 gender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람의 성욕(sexual desire)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성인 gender와 육체를 일치시킨 이후에 남성에게 성욕을 느낀다면 straight이, 여성에게 성욕을 느낀다면 lesbian이, 양쪽 모두에게 성욕을 느낀다면 bisexual이 되는 겁니다.
그럼 이제 범성애자(Pan Sexual)에 대해 궁금해 하실 수 있는데 범성애자는 시스젠더를 포함한 다른 모든 젠더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말합니다. 왜 성욕이 아닌 연애 감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냐면 범성애자 스스로도 이 부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기 때문(또는 본인들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성애자 중에도 성욕이 아닌 사랑에 국한해서 Pan Romantic으로 자신들을 따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장 임상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개념화 할 수 있을까요?
우선 TCI/JTCI 결과 성격 미발달 문제가 드러난 미성숙한 수검자의 경우 신체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gender identity와 sexual desire 모두 아직 정립되기 전인 상태로 가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격 미발달 문제를 먼저 해소한 후에 천천히 생각해봐도 됩니다. 예를 들어 여고생이 자신을 bisexual이라고 주장하거나 30대 남성 직장인이 본인을 범성애자 또는 무성애자라고 믿고 있을 수 있으나 성격이 미발달되어 있다면 그대로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성격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아직 gender와 sexual desire를 확립하는 단계까지 발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종의 과도기인 것이죠.
반대로 TCI/JTCI에서 성숙한 성격 유형으로 평가된 수검자라면 gender 및 sexual issue가 이미 확립되고 정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상담 주제로 다룰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상담 주제(성폭력 피해, 가족 및 지인 대인 갈등 등)라면 당신이 아닌 LGBT 전문 상담자를 찾아갔을 겁니다.
빠짐없이 이야기를 하려는 바람에 글이 좀 길어졌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관심있는 전문가들은 아래에 링크한 관련 포스팅들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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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의 유병률이 매우 낮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매우 드문 정신장애이고 평생 유병률이 대략 0.03%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선택적 함구증 전문 클리닉에서 일하는 임상가가 아니라면 평생 한 명도 보기 어렵습니다. 바꿔 말하면 선택적 함구증 진단은 대부분 오진으로 다른 문제를 선택적 함구증으로 착각한거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점은 발병 시점이 5세 이하라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ADHD보다도 더 어린 연령에서 시작되는 장애인데 주변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시점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에서 나타나는 말 안하는 증상은 선택적 함구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세 번째, 전형적인 선택적 함구증 아이는 집에서는 말을 잘 하지만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하면 헛기침이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비언어적 발성도 하지 않기 떄문에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집 밖에서는 아동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네 번째, 선택적 함구증이려면 지적 장애, 언어 장애, 학습 장애, 자폐 장애가 아니어야 합니다. 또한 조음 곤란 등 이비인후과적인 문제 또한 없어야 합니다. 선택적 함구증은 불안 장애군에 속하고 공존 유병률이 가장 높은 장애가 Social Anxiety Disorder이므로 불안에 의해서가 아닌 어떠한 이유에서도 함구 증세가 설명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조음 장애가 있는지 이비인후과적 문제를 먼저 변별하고 지능 검사 등으로 지적 장애를, 마지막으로 언어, 학습 장애를 변별한 뒤 모두 아닐 때에만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선택적 함구증이 의심되는 경우 반드시 가족 역동을 확인해야 합니다. 과잉보호하는 부모에게서 양육되는 경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녀에게 자물쇠를 채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선택적 함구증이 의심되는 아동을 보면 온 가족에 대한 심리평가가 필수입니다.
여섯 번째, 치료적 접근은 결국 함묵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불안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역동이 중요한 것이고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집안일수록(아동이 부모의 높은 위험회피 기질을 물려 받았을수록), 성격 미발달 문제가 심각할 수록 불안 수준이 높고 함묵 증세도 심각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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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때 우울증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성인 ADHD를 거쳐 이제는 양극성 장애 진단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무슨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하나같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내리는 학교 앞 정신건강의학과 의원까지 있다고 하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양극성 장애라면 결국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cycle이 있다는 것이니 꽤 오랜 기간 동안 종단적으로 기분의 변화 과정을 추적해봐야 비교적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것인데 그냥 문진만으로 턱하니 양극성 장애 진단을 내리는 무모한 병원이 너무 많습니다.
양극성 장애 진단을 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준은 결국 조증 상태(manic state)의 유무인데 문제는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과 '주의력'을 기준으로 조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조증 상태일 때도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고 주의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역방향으로 해석하는 건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충동적이고 파괴적 행동은 파괴적 관심 끌기 행동일 수 있어서 양극성 장애보다는 성격 장애(특히 B군)를 먼저 변별해야 하고 주의력 문제는 더더군다나 워낙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증부터 의심하면 안 됩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증상은 'irritability'입니다. 실제로 조증의 진단 기준 중에 '과민한 기분'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주의력처럼 우리나라에서는 mania보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청소년/초기 성인기의 우울 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irritability이며, 자극추구, 위험회피 기질이 모두 높지만 성격 미발달로 인해 이러한 접근-회피 갈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도 irritability이고, 신체화 불안 수준이 매우 높을 때도 irritability가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irritability 증상으로 mania 가설을 세우는 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증의 핵심 증상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건 'up된 기분'입니다. 기분이 좋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냥 기분이 붕 떠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에너지가 넘치며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만 가득 차 있고 이로 인해 잠을 전혀 안 자도 피곤하지 않고 의욕 과잉으로 뒷감당이 안 되는 이런 저런 일을 계속 벌이는 게 조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다른 증상들은 모두 up된 기분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증상들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들 사례를 심리평가 supervision하는 경우가 최근에 늘고 있는데 열에 아홉은 도무지 조증 상태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기존에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내담자를 상담하는 선생님들은 무엇보다 먼저 'up된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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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supervision 때 흥미로운 질문을 받아서 이에 대한 답변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의존성 성격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 수검자였는데 '아무리 의존성 성격 장애라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평생 의존할 수 있는 배우자를 잘 찾으면 제한적이더라도 치료를 받지 않고 적응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목처럼 의존성 성격 장애는 의존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은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건강한 성격의 사람에게 끌리지 않습니다. 의존성 성격 장애의 입장에서 그런 건강한 성격의 사람은 의존하고 싶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존성 성격 장애 여성들이 이상하게 나쁜 남자와 엮이는 걸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둘째, 우연히 건강한 성격의 사람과 잠시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건강한 성격의 사람이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끌리지 않습니다. 외모 같은 외적인 요인에 의해 잠시 매력을 느낄 순 있지만 조금만 관계가 깊어지면 의존성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엄청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멀리하고 싶어집니다.
셋째,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에게 반복해서 끌리는 사람은 건강한 성격이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모든 걸 의존하는 사람이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구원자'의 역할에 취해 있거나, 그러한 역할로 인해 '자기애'를 충족하는 사람이거나 상대방의 의존을 이용해 착취하려는 사람 뿐입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의존성 성격 장애가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없으며 그런 대상이 설사 있다고 해도 그 역동은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넷째,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고 해도 모든 영역에서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혈육인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 있다고 해도(사실은 융합된 상태일텐데) 회사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의존해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은 가정에 국한되니까요. 그나마도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동안 뿐입니다.
다섯째, 강력한 의존 대상을 찾았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의존 대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의존성 성격 장애는 그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타인에게 의존해오면서 실패의 두려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성공도 외부 귀인했기 때문에 유능감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서 그 의존 대상의 기대 수준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의존 대상이 강력한 사람일수록 그 대상의 요구 수준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존성 성격 장애가 가야할 길은 강력한 의존 대상을 찾아서 그에 안주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 미발달 문제를 해결한 후 자신의 의존성 기질을 수용하고 다시 건강해진 성격으로 기질을 잘 조절해서 자신에 대한 의존과 타인에 대한 의존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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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상담 영역에는 일종의 트랜드가 있습니다. 먼 과거에는 우울증이 있었고 몇 년 전부터 성인 ADHD가 유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가 관심을 받고 있죠. 명칭이 그래서 그렇지 자살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내담자가 자해를 한 적이 있다고 하면 어떤 임상가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해도 이유와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심각도의 순으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1. PTSD에서 보이는 자해
: 주관적인 고통감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고통감을 상쇄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경우입니다. 내담자가 겪는 고통감이 비현실적인 수준이라 그야말로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냄으로써 현실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하는 겁니다. 칼로 하는 자해가 가장 많으며 자상을 입으면 느끼게 되는 날카로운 고통감과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를 보면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면서 내가 미쳐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잠시나마 느끼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게 됩니다. 고통감이 심해질수록 자해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빠른 개입이 필요합니다. 심리평가 결과도 당장 입원을 시켜서 수검자를 보호해야 하나 싶은 수준으로 심각한 상태로 나옵니다. 손목 자해만 해도 다른 목적의 자해에 비해 깊게 긋기 때문에 상처가 깊게 나고 손상 정도도 심한데 만약 약물이나 hanging, 투신 등의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자살 성공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우울 장애에서 보이는 자살 위험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개입하는 게 안전합니다.
2. 파괴적 관심끌기인 자해
: 자해가 의지 대상(부모, 애인, 보호자 등)의 관심을 끄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관심, 애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거죠. 파괴적 관심 끌기의 수단은 항상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고자 하는 대상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해인지를 확인하면 입증됩니다. 관심을 받는 게 중요한 LHL, HLH 기질 유형 등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관심을 받고 싶을 뿐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처 없이 극적인 자해 위협이나 협박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자해를 하더라도 손상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손목 자해의 경우 꿰맬 정도의 상처가 나지 않음).
3. 방어 행동인 자해
: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자해 협박(또는 시도)를 하는 경우입니다. 지나치게 억압적이거나 통제하려는 부모, 주 양육자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압력을 경감시키거나 기대를 좌절시키려는 목적으로 자해를 사용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파괴적 관심끌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자해보다 위험도가 낮아보이지만 투신 등 역전 불가능한(시도하면 되돌릴 수 없는) 협박을 사용하는 경우는 실수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해 시도의 치명도(fatality)를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 지향적인 우리나라 문화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HML, LML 기질 유형인 자녀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 행동입니다.
자해는 자살 위험성 평가만큼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향후 상담의 진행 방향을 결정하고 임상가와 라포를 형성하는데도 중요하기 때문에 자해의 목적을 이해하는 건 임상가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에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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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모 카페에 A군 성격 장애와 Bipolar Disorder의 공병율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는데(하필 A군 성격 장애라는 것도 뜬금없기는 합니다) 달린 댓글들을 보고 복장이 터져서입니다.
관련 문헌을 보면 성격 장애(특히 B군)와 Bipolar Disorder의 공병율이 높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부 좀 했다 하는 임상가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고 실제로 그런 reference에 근거해 심리평가보고서에 공존 진단을 내린 적도 많습니다. 당연히 의사도 그런 문헌에 의거해 변별 진단을 해 달라고 의뢰했으니 의사의 의중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상담을 하게 되면서 문헌에 있다고, 연구 결과가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뼈저린 경험을 많이 하게 된 이후로 저는 항상 모든 결과는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실제로 그런지 제가 직접 보고, 만지고, 씹고, 뜯어 맛보고, 확인한, 그런 것들만 믿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 상 Bipolar Disorder와 성격 장애의 공병율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걸 병원 장면에서 확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격 장애와 Bipolar Disorder 모두 횡단적인 심리평가로는 진단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종단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장애인데 병원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과거력을 바탕으로 성격 역동이나 Bipolarity를 retrospective한 방식으로 추정해야 하는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당연히 확증 편향이 생기기 쉽습니다. 게다가
'과연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가'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Bipolar Disorder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환자의 경우에도 Bipolar Disorder인지, Acute Stress Disorder인지, Brief Psychotic Disorder인지, Schizoaffective Disorder인지, 약물 남용에 의한 급성 정신증 증상인지 변별 진단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런 환자는 증상이 완화되어 퇴원을 한 후 외래로 올 수 있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지만 그것도 의사들이나 가능하지 임상심리학자가 그 경과를 끝까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랬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 뿐이죠. 사실 의사도 별 차이 없는 게 이미 진단을 받은 환자를 외래에서 치료할 때 정신 역동 치료를 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과거에 내려진 진단에 맞는 약물 치료만 follow up할 뿐입니다. 진단이 틀렸을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병원에서 Bipolar Disorder와 성격 장애의 공존 진단을 받고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들을 재평가하고 추적 관찰하다 보면 진단이 맞는 경우가 하나도 없습니다. 가끔 틀리는 경우도 있다 정도가 아니라 진단이 맞은 적이 없을 정도로 죄다 틀립니다. 종합병원 급의 큰 병원일수록 진단 정확도가 더 떨어집니다.
그럼 이런 사례는 어떤 양상으로 많이 나타나느냐 하면,
성격 장애로 볼 수 있는 사례는 많습니다. TCI를 보면 기질 상의 취약성이 존재하고 성격 미발달로 인해 기질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그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가지 문제, 즉, 자살 시도나 자해로 나타나는 PTSD 증상, 중독으로 나타나는 파괴적 관심 끌기, 내면 아이 미성숙으로 야기되는 수면 장해 등의 문제를 과도하게 Bipolar Disorder의 진단 기준에 끼워맞춰 진단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성격 장애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익숙한 Bipolar Disorder 진단을 먼저 내리고(증상 완화적 접근을 해야 하는 병원의 특성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걸로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을 성격 장애 범주에 꿰맞춥니다. 그러니 엉뚱한 공존 진단이 붙을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저는 성격 장애와 Bipolar Disorder의 공병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1. 문헌과 연구 결과를 아무런 비판적 태도없이 현장에서 확인도 해 보지 않고 맹신하는 매우 순진한 분들
2. 수련 중이라서 뭔가 미심쩍더라도 supervisor나 선배 레지던트의 말이 옳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분들
3. 전문가지만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장기로 진행해 본 경험이 거의 없이 심리평가만 주로 하는 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성격 장애와 Bipolar Disorder의 공병율이 높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만약 본인이 심리치료나 장기 상담을 많이 해 봤는데 성격 장애와 Bipolar Disorder의 공병율이 실제로 높은 걸 확인한 선생님은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그런 사례가 있다면 저도 제 선입견을 깰 소중한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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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DSM-5가 출시된 이후 성인 ADHD로 진단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 진단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중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듯하여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성인 ADHD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성인 ADHD는 어릴 때 발병하였으나 성인이 되기까지 제대로 치료되지 못했거나 성인이 되어서야 발견된 'Known ADHD'가 아닌, 그야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성인이 되어 새롭게 발병한 경우를 말합니다.
저는 미국 정신건강의학회가 주의력 문제가 있는 어른들에게까지 약을 팔아먹기 위해 성인 ADHD를 진단 편람에 억지로 끼워넣었다는 음모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정신의학적 진단의 핵심 : DSM-5의 변화와 쟁점에 대한 대응(2013)'에서 Allen Francis 박사가 '성인 ADHD 진단 기준이 느슨해져 정상 범주의 산만함과 쉽게 혼동될 수 있다', 'DSM-5에서 ADHD의 발병 연령을 12세까지 늦춘 것은 실수이다. ADHD와 다른 과잉활동, 충동성, 주의 산만함을 일으킬 수 있는 정신장애가 혼동스럽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내용을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오진하기 쉬운 장애가 성인 ADHD니까요.
그렇다면 제 기준에서 성인 ADHD로 진단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래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만 성인 ADHD로 진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직까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 내담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 ADHD는 제게 이론 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 같은 존재입니다. 아직까지는요.
1. 성인이 되어 새롭게 발병해야 한다
: 어렸을 때 발병하였으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ADHD 증상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성인 ADHD가 아니라 'Known ADHD'로 봐야 합니다. 또한 설사 어렸을 때 발병했더라도 ADHD인지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에도 어른이 된 ADHD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준을 통과한 내담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증상이 있었거나 있었는데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된 내담자가 대부분이더군요.
2. 기질 상의 취약성이 없어야 한다
: 성인 ADHD라고 주장하거나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내담자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면 TCI의 자극추구 기질 중 '충동성' 하위차원이 매우 높은데 성격 미발달로 인해 이러한 기질이 조절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동성 기질이 높다고 성인 ADHD가 발병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확실하고 안전하게 성인 ADHD라고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충동성 기질이 높지 않거나 설사 높더라도 성격에 의해 제대로 조절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충동성 기질이 조절되지 않아서 주의력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냥 성격 발달을 통해 기질을 조절하면 끝나니까요. 진단도, 약물 치료도 필요 없죠.
3. 약물 반응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 가끔 성인 ADHD로 진단받은 내담자들이 약을 먹었더니 주의력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약물 반응성을 성인 ADHD의 근거로 삼는데 이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ADHD에 처방하는 약물은 stimulant로 각성제입니다. 그러니까 성인 ADHD가 아니더라도 복용하면 alert 해지는 각성 효과에 따라 주의력이 향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약물 반응성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4. 주의력 문제가 다른 정신 장애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 공교롭게도 주의력은 굉장히 취약한 인지 기능이어서 매우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울, 불안 장애와 같은 주요 정신 장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가벼운 스트레스마저도 주의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문제에 의한 주의력 손상, 저하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5. 심리평가 결과로 명확히 입증되어야 한다
:
'주의력 전문 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포스팅에서 상세히 말씀드린 것처럼 평정 척도를 포함한 관찰형 tool, 표준화된 지능 검사의 주의력 소검사, 기구를 사용하는 주의력 전문 검사에서 일관되게 주의력 문제를 보여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정확하게 ADHD 양상을 보이는 성인 내담자를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주의력 전문 검사의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는 기관이 매우 드물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임상심리학논문] ADHD의 ADS 및 KEDI-WISC의 반응 특성 연구 요약'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응시간평균'과 '반응시간 표준편차' 점수를 주의력 문제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참 민망한 이야기인데 저는 CPT(Continuous Performance Test)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는 기관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모두 그야말로 지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미 ADHD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결과를 끼워맞추는 식으로 해석하더군요.
위에 링크한 ADHD 관련 책 소개글만 봐도 ADHD가 얼마나 잘못 진단되기 쉬운 장애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ADHD도 오진이 쉬운데 하물며 성인 ADHD는 말할 것도 없죠.
제가 제시한 조건은 성인 ADHD로 진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므로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성인을 만날 때까지 저는 성인 ADHD는 허구의 개념이라는 신념을 유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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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를 중요시하는 DSM 체계 같은 정신병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울과 불안은 확연히 구분되는 별개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우울 장애냐 불안 장애냐의 변별 진단을 위한 이분법을 사용하여 바라보게 됩니다. 우울 장애는 항우울제를 투여하고 불안 장애는 항불안제를 투여하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죠.
하지만 상담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죠. 저는 MMPI-2/A를 활용할 때 code pattern 분석을 거의 하지 않고 권하지도 않지만(사실은 code pattern 분석을 적용할 수 있는 내담자가 거의 없다는 게 정확한 워딩이지만요) 다음과 같은 code pattern을 보이는 내담자가 있다고 해 보죠.
2-7 or 2-7-0
흔히 병원 장면에서는 주요 우울 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내지는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 진단을 받게 되는 code pattern입니다. 그런데 왜 2번 단독 상승 또는 2-0 code pattern이 아닌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대체 7번 척도는 왜 상승하는거야? 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게 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7번 척도는 특성 불안이고 이건 TCI의 위험회피기질과 상관이 높은데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 중 상당수가 위험회피기질이 높으니 그런 게 아닐까요?"라고 설명하실 수 있습니다. 정확한 현상 파악과 지적이죠. 하지만 그게 말이 되려면 7, RC7, NEGE 척도처럼 특성 불안을 반영하는 척도만 상승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경우 ANX, A처럼 상태 불안을 평가하는 척도도 함께 상승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2-7, 2-7-0 code pattern이 위험회피기질이 높은 수검자에게 우울 장애가 발병했을 때를 시사하는 게 아니라는거지요.
서론이 길었는데 상담에서는 우울과 불안이 확연히 구분되는 전혀 다른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spectrum처럼 이해하셔야 합니다. 즉,
불안 ----------> 우울
이런 식으로 불안이 먼저 나타나고(또는 특성 불안이 원래 존재하고), 이러한 불안이 조절되지 않으면(성격 미발달 문제 등으로 인해) 점차 우울로 이환되는 것이죠. 여기에 인지삼제(cognitive triad)가 우울로 이환되는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우울에 취약한 성격 병리(INTR, 위험회피기질 중 '예기불안' 하위차원이 높음)까지 있다면 더더욱 우울로 이환되는 확률이 증가하겠죠.
그래서 우리가 보는 2-7, 2-7-0 code pattern은 정확하게는 7번 단독 상승이나 7-0 code pattern으로부터 시작해서 ANX, A 상태 불안 척도들이 상승하고 거기에 OBS 척도 상승으로 인해 escalation 되다가 최종적으로 2, RC2 척도가 상승해 2-7, 2-7-0 code pattern에 이르는 경로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2-7, 2-7-0 code pattern은 항우울제만 처방해서는 증상 완화가 잘 안 되고 항불안제나 신경안정제를 복합 처방해야 어느 정도 증상 관리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럼 왜 7번 단독 상승이나 7-0 code pattern을 보이는 내담자가 없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7번 척도는 특성 불안이라 위험회피기질과 상관이 높고, 0번 척도는 그야말로 성격 척도라서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기질들, 예를 들어 LHL, MHL과 같은 기질 유형들에서 상승하기 때문에 증상이라기보다는 기질 차원에서 이해가 되니 내담자 스스로도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아서 상담을 받으러 나오지 않아서 보기가 힘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2-7, 2-7-0 code pattern을 보시면 순수한 우울(?)보다는 우울과 불안이 혼재하는 Mixed Anxiety & Depressive Disorder 진단에 부합하는 내담자라고 가정하시는 게 안전한 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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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격 장애에 비해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상담 현장에서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성격 역동의 특성 상 기능이 좋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기능이 좋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다릅니다. 최근에 기능이 좋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 케이스를 보게 된 참에 정리를 해 봅니다.
기능이 좋지 않은(단순히 지능이 낮다거나 사회 부적응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라 심리 상태가 불안정할 정도로 damage를 입은 경우를 말합니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가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뭘까요?
바로 자살 위험성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반사회성 성격 장애의 자살 위험성은 의외로 굉장히 높은 편이고 자살 시도를 했을 때도 성공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른 B군 성격 장애의 양상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연극성(HLH) 성격 장애는 가장 중요한 역동이 최대한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험회피기질도 낮아서 두려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살 시도 빈도는 가장 높고 자살에 대한 보고도 많지만 대개는 제스쳐(gesture)에 그칩니다. 왜냐하면 자살 시도의 의도 자체가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가장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상 자살 위험성은 가장 낮은 편입니다.
이에 비해 자기애성(HMH) 성격 장애는 자기애 상처(Narcissistic Injury)의 고통을 둔화시키려고 자살 시도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평소 죽음에 대해 숙고하지 않지만 자기애 상처를 심하게 입은 경우 이 상처를 곰씹는 것보다는 자신을 해함으로써 고통을 견디는 것이 더 낫다고 믿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빈도가 높고(연극성 성격에 비해서도 자해 심각도가 높은 편입니다) 자살 시도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죽으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선택하는 도구의 치명도(fatality)가 높기 때문에 자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연극성 성격이 손목을 긋는다면 자기애성 성격은 목을 긋는 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도가 지나쳐 사망하는 경우이죠.
마지막으로 반사회성(HLL) 성격은 연극성이나 자기애성과 달리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유형이므로 다른 사람을 개의치 않습니다. 반사회성 성격이 자살을 고려하는 이유는 자신의 평판과 명예, 지위가 추락하는 걸 참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살 도구도 가장 치명적인 걸 택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고려하는 다른 B군 성격과 달리 사후에 자신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든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목을 매거나 투신처럼 육신의 손상 정도가 큰 방법을 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살 위험성을 기준으로 대략 순위를 매기면,
반사회성 > 자기애성(수동-공격성) > 연극성 순이 됩니다.
그러므로 B군 성격인 내담자를 상담하실 때는 겉으로 느껴지는 느낌과 자살 위험성이 반대 방향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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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때는 학력고사 후기 출신이었고, 졸업하고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에 대학원에서는 타대 출신이었으며,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병원 수련을 받을 때는 타 전공 출신이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상담 영역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타 직군이었고, 상담 영역에서도 도박 중독 치료를 주로 했기 때문에 계속 비주류였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기에 무리짓기, 배제, 차별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91학번이니 심리학을 공부한 지 거의 30년이 되어 가네요. 그동안 임상심리전문가 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대 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 상담심리학회 대 상담학회의 헤게모니 싸움과 알력이 반복되는 것도 충분히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임상과 상담이 내가 더 잘났네, 니가 더 못났네 하며 싸우는 꼴까지 보고 있습니다.
임상에서 수련을 받았지만 상담에서 15년 이상 일을 했고 지금도 임상과 상담 양 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그래봤자 편가르기에 참전하는 사람들만 점점 더 한심해지는 쓸데없는 소모전일 뿐입니다.
임상이 심리평가에 대해 뭘 아느냐고 상담을 공격하고(주로 MBTI가 요새 화두더군요), 니네는 상담 수련도 제대로 받지 않으니 어디가서 심리치료 한다고 나대지 말라며 상담이 임상에게 반격하고 싸움박질을 하는 동안....
현명한 임상가는 임상과 상담 양쪽의 강점을 무기삼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심리평가와 정신병리 지식을 보강한 상담 전문가는 내담자를 이해하는 폭이 웬만한 임상심리전문가를 능가하고 심리치료와 상담 수련을 보강한 임상 전문가는 상담심리전문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임상이 우월하냐, 상담이 뛰어나냐 하는 논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더군요.
그저 실력있고 유능한 임상가와 입만 나불거리는 엉터리 임상가가 존재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임상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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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나 수퍼비전 때 임상가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는데 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인데도 공통점이 하나 있더군요. 바로 실수를 너무 두려워하는 겁니다.
내담자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면 어쩌지?
심리평가 해석이 잘못되어 오진하면 어쩌지?
교육이나 해석 상담 때 말 실수를 해서 부모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지? 등등
실수가 두려운 건 당연합니다. 임상/상담 분야처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라면 더더욱 두려울 수 있죠.
게다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일처리 자세는 임상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 안 되는 건 실수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는거지요. 이 바닥에서 일을 하는 한 언젠가는 실수를 하게 되고 때로는 그 실수가 굉장히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 하게 될 실수라면 최대한 빨리 당겨서 미리 하는 게 좋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실수를 찾아가며 해 봐야 할 수도 있어요.
임상/상담심리전문가 자격을 예로 들면 자격증을 취득한 후 3년 이내에 할 수 있는 실수는 모두 하는 게 좋습니다. 3년까지는 본인도 아직 초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책이 덜 심하고 주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실수를 양해합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면 내담자/환자들부터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실수의 경중을 따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초보적인 실수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오히려 가능하면 다양한 실수를 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해 배우세요. 그 배움이 진짜 고수로 만들어 줄 겁니다.
덧.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포스팅도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직 고수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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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진단받을 정도의 성격 문제를 보이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경계선 기질이라고 하면 TCI 결과에서 HHH 유형으로 구분되는 기질인데 이러한 기질을 성격이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경계선 성격 문제가 되고 심하면 경계선 성격장애로 발전하게 되는거지요.
하지만 성격 발달에 문제가 없어서 건강한 성격을 발달시킨 사람이라면 경계선 기질을 가졌다고 모두 경계선 성격장애로 이환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격으로 기질의 조절 기능에 문제가 없는 경계선 기질의 소유자는 일상 생활의 대인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할까요?
자극추구기질과 위험회피기질의 상대적 상승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계선 기질의 소유자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기질이 모두 높은 수준이고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일'과 '사랑' 중 일의 영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해도 '사랑'의 영역인 대인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경계선 기질인 사람은 다가감과 물러섬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경계선 기질인 사람을 흔히 '북극에 사는 고슴도치'에 비유하는데 북극에 살기 때문에 추우니 체온을 나눌 대상을 찾지만(자극추구 기질의 작동, 다가감의 동력)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방의 가시에 찔려서 아프기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떨어지게 됩니다(위험회피 기질의 작동, 물러섬의 동력). 떨어지면 다시 추워지니 또 상대방을 찾게 되고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다가감과 물러섬을 계속 반복하게 되니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겁다는 불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다가가면 가시에 찔려서 아프다는 건 고슴도치인 상대방만 찾기 때문에 그런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고슴도치가 아니더라도 경계선 기질의 사람은 상대방을 고슴도치인 양 대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만든 고슴도치 이미지에 찔려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경계선 기질인 사람은 적당한 거리(너무 물러서서 춥지 않고 너무 다가가서 찔리지 않는)를 유지하는 걸 배워야 하고 다가감과 물러섬을 반복할 때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그 적당한 거리라는게 얼마나 되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게 스스로 안 되는 분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좀 더 수월하겠지요.
이 포스팅을 위해 고슴도치의 비유를 들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경계선 기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등의 혈육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왜 이런 불편한 기질을 타고났는지 자책하지 않는 겁니다.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착취하려는 '노예상인 유형'이나 자신에게 기생하려는 '기생충 유형'을 변별하고 걸러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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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병원에서만 꼬박 3년 동안 수련받은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주된 수련 현장이 병원 장면인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말씀드리겠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client를 병리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조금 심한 표현을 쓰자면 병원 독을 반드시 빼야 합니다. 대표적인 병원 독으로는 진단을 남발하는 것(진단을 붙이지 않은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불안해지는 증상), 성격적인 문제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나르니 히스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낙인찍기, 내가 치료할 거 아니니 보고서만 내면 땡이라는 식으로 치료적 관점에서 수검자를 바라보지 않는 무사안일주의 등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전문가가 되자마자 곧바로 상담 현장에서 상담을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상관없이 병원 독을 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임상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 이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년이 채 안 된 junior 전문가 선생님들께는 이 말씀을 꼭 한번쯤 드리고 싶었습니다.
1. 어떻게든 개인 상담을 많이 할 것
: 요새는 병원 수련 현장에서도 개인 상담 수련을 늘리고 있지만 제가 볼 때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전히 집단 치료의 보조 치료자로 들어가서 자리만 채우고 앉아 있는 정도이고 낮 병원 등에서 activity를 진행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걸로는 어림 없습니다. 전문가가 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개인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local NP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개업을 하든, 상담 센터에 취업하든 간에 무조건 개인 상담을 빨리, 많이 해야 합니다.
개인 상담을 많이 하는 것이 수련 중에 얼마나 인간을 병리적으로만 바라봤는지를 체험하고 교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2.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노력을 기울일 것
: 병원에서야 진단이 붙지 않으면 여러가지로 곤란해집니다. 처방을 하는 것도, 추가 치료를 하는 것도 껄끄러워지죠. 그래서 꼭 진단이 붙지 않아도 되는 client들까지 진단을 붙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을 내,외부에서 받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으로 나와보면 도움을 줘야 하는 수많은 client들 중에서 진단을 꼭 붙여야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히 소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수련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진단을 붙이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진단 없이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하지 않아도 그냥 비슷한 진단을 내리는 비슷비슷한 보고서를 자동적으로 쓰게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려고 노력해야만 내가 이 수검자를 담당한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상담을 진행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단만 내리기 위한 심리평가를 진행했을 때와 다른 내담자의 심리적 면모가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동일한 문제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 진단을 붙이지 않고 수검자의 문제를 formulation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3. chart 등을 보지 말고 case formulation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이끌어 내도록 연습할 것
: 병원에서야 chart만 훑어봐도 전문의가 이미 임상적 진단도 붙여 놓았고, 사회복지전문가가 history taking도 꼼꼼히 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의 면담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그저 변별 진단에 필요한 진단 기준들만 몇 가지 확인하면 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진단적 면담일 뿐입니다. 진단명을 붙이지 않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려면 그 정도 정보로는 어림 없습니다. 대부분의 진단은 현재 이 수검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줄 뿐이지만 치료적 관점에서 client를 보려면 영향을 미쳤거나 현재도 미치고 있는 다양한 원인들을 일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문가 수련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넓은 조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멀게는 부모-자녀 관계에서의 애착 외상 문제부터 분리-개별화 문제, 성역할 동일시의 문제, 성 정체감의 문제, sibling rivalry 문제, 가족 내 소외 문제, 기본적인 신뢰의 형성 및 일반화 문제, 의존 대 독립의 문제까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양한 영역의 공부를 새로 해야 합니다. 대학원 때의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정신병리학과 심리평가에 대한 공부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4. 종단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심리검사 도구를 추가할 것
: 앞서 병원 수련 과정에서 히스니 나르니 보더니 하는 성격 문제를 기본으로 깔고 보는 못된 버릇이 생긴다는 지적을 했습니다만 우스운 건 그러면서도 정작 성격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 심리상태를 횡단적으로 잘라서 보는 종합심리평가로는 한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 종단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격 문제를 명징하게 보여주지 못하니까요. 로샤 검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특히 Exner 방식의 양적 해석 방식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수검자의 기질이나 성격, 성격 역동을 살펴볼 수 있는 추가적인 검사 도구를 공부해서 심리평가 과정에 추가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TCI, TAT, 로샤의 질적 해석 방법을 추천합니다. TCI로는 좀 더 구조화된 방식으로 기질 및 성격 문제에 접근할 수 있으며 TAT로는 성격적인 문제가 녹아들어간 관계 역동을 살펴볼 수 있고 로샤의 질적 해석 방법으로는 원가족 역동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병원의 임상심리실에 소속되어 의사가 이미 내린 임상적 진단을 그대로 베껴 내는 보고서만 줄창 쓰면서 살 게 아니라면 제 조언을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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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분이 다른 포스팅에 댓글로 랜드마크 포럼에 대해 문의를 해 오셨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하다가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정식으로 포스팅합니다.
우선 랜드마크 포럼이 뭔지 설명을 드리자면,
1970~80년대 EST 또는 에르하르트 세미나 훈련으로 알려진 잠재력 개발 훈련의 일종으로 먹고 사는 다단계 자기계발회사입니다. 정확하게는 다단계라고 하기 힘든데 이 부분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
랜드마크 포럼은 미국의 중고차 세일즈맨인 존 폴 로젠버그가 전신입니다. 데일 카네기, 실존주의 철학, 선(Zen),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 론 허버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나름의 코칭 기법을 개발하고 이를 에르하르트 세미나 트레이닝(Erhard Seminal Training; EST)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게 대박을 치면서 그는 엄청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고 자신의 이름도 베르너 한스 에르하르트로 개명했습니다. 나중에 이 EST가 랜드마크 교육 포럼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죠.
회의주의자의 사전에서는 랜드마크 포럼을 링크 내용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랜드마크 포럼(회의주의자의 사전)
이런 류의 자기계발사업(리더십, 코칭, 영성 등)을 사이비로 분류하는 제 나름의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누가 만들었나
: 심리학 또는 관련 분야에서 제대로 된 수업과 훈련, 연구, 현장 경험을 갖춘 사람이 만들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하고 잘 알려진 사람이라 한 들 아무 소용 없습니다. 돈 받고 이름만 빌려줬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런 류의 사기극에 가장 잘 놀아나는 사람들이 바로 유명인들입니다(사이비일수록 이걸 더 전면으로 내세워 홍보합니다).
2. 관련 근거가 무엇인가
: 공신력 있는 학술지에 출판된(또는 인용된) 논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학술서로 출판된 내용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전 세계 수십 개국에서 수 백만 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삶이 변화되었다는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용입니다. 세뇌된 사람의 수가 그만큼 많음을 보여주는 것일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기준으로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레벨측정법(의식 혁명에 나오는)을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합니다(관련글 http://walden3.kr/1836 ).
3. 기적과 같은 급격한 변화를 선전하고 고무하는가
: 사이비일수록 한 순간의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며 그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인생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기들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가능하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급격한 변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방식은 맥락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이차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이지 진리에 눈 감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이비는 그렇다고 주장합니다만.
4. 제약이나 강압이 존재하는가
: 신체적, 정신적 강압이 존재하느냐는 중요한 사이비 판단 기준 중 하나입니다. 랜드마크 포럼의 전신인 EST에서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거나 하루에 한 끼만 먹게 하는 등으로 욕구 조절을 강제하는 신체적 강압이 있었고, LF에서는 두려움에 직면하게 한다는 미명 하에 참석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아웃팅하게 하는 정신적 강압(상담자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심리치료와 상담에 대한 훈련이 안 된 비전문가가 마음의 힘이 약한 사람에게 trauma의 재경험을 강요하는 겁니다)도 있었고, 그 밖에도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친구에게 프로그램 참석을 권유하게끔 하는 심리적 강압도 있습니다. 사이비가 참석자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을 만들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다단계도 비슷한 종류의 강압인데 랜드마크 포럼에서 다단계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지만(경험자들의 전언으로는 다단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비슷한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참석자들의 참가기를 훑어보니 Burns의 TA 일부를 활용해 리더는 부모의 역할을 맡고 참석자에게는 어린 아이의 역할을 강제함으로써 복종을 세뇌시키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더군요(사실은 거의 폭로성 리얼리티 쇼 같음).
자, 이제 위의 기준(4번에 대해서는 당연히 검증 불가하겠지만)으로 랜드마크 포럼 한국 사이트를 알려드릴테니 들어가서 직접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랜드마크 포럼 코리아 사이트 클릭!
참고하시라고 랜드마크 포럼의 입문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뛰쳐나온 분의 블로그도 소개합니다. 이 분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랜드마크 포럼을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일반인의 상식적인 시각으로 봐도 확실히 랜드마크 포럼은 이상합니다.
랜드마크 포럼과 기독교(세인트님의 네이버 블로그) 클릭!
하나 더. 랜드마크 포럼의 연관 검색어를 찾아보시면 컬트, 사이언톨로지, 뉴 에이지와 같은 단어들이 리더십, 코칭, 자기계발 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실제로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프랑스의 르포르타쥬 클립을 보시면 전직 사이언톨로지 관계자가 나와서 사이언톨로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와 랜드마크 포럼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용례가 거의 흡사하다고 증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프랑스 르포르타쥬 링크 클릭!
제가 이런 류의 포스팅을 할 때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의 경험자인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네가 뭘 알고 이런 글을 올리는거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꼭 있던데 안타깝지만 제가 볼 때 이 분들은 심리적 기법의 악용 피해자들입니다. 바넘 효과나 인지 부조화, 자기 고양적 편향 등등의 무수히 많은 심리적 개념으로 충분히 이 분들의 판타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지 않겠습니다. 본인들의 삶이 바뀌었고(바뀌었다고 믿고 있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대신 본인들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당신들의 판타지 세계에서 행복하고, 난 내 현실 세계에서 행복하니까. 그럼 됐지요?
제가 볼 때 이 분들은 심리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분들입니다만 저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의 선택이므로 존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르포르타쥬를 보니 랜드마크 포럼에 세뇌된 많은 사람들이 volunteer로 무급 자원 봉사를 하면서 착취당하고 있던데 본인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사이비들이 인간을 착취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렇게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면 왜 리더들부터 솔선수범하여 인류를 위해 무급으로 자원봉사하지 않고 부담스럽게 비싼 수강료를 요구할까요?
덧. 랜드마크 포럼에 세뇌된 분들의 난입을 방지하기 위해 덧글을 막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기 블로그 당당하게 오픈하고 트랙백 걸어주세요. 대체 랜드마크 포럼에서 뭘 그렇게 대단한 걸 배울 수 있는지 좀 들어봅시다(녹음, 녹화, 필기도 절대로 안 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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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그동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느낀 것인데요. 하나는 전공, 출신 학교, 수련 과정의 차이 없이 대부분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겁니다. 돌려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supervisee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아마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똑같았겠지요)
formulation도 잘 되었고 작성한 심리평가보고서도 훌륭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하거나 감탄을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운이 좋은거지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멀었는데요 뭐"라는 반응이 나와서 맥이 풀립니다.
하도 답답해서 2010년에는 관련 포스팅('supervisee를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착각하는 supervisor')을 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supervisee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를 저는 수련 과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처벌 위주의 도제 중심이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명감과 겸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임상가가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자기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supervisor가 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자신이 supervisor가 되면 그저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첫 번째 문제와도 연결될텐데 많은 supervisee 선생님들이 자신이 제대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는지, 채점은 틀리지 않았는지, 터무니 없는 진단 가설을 세운 건 아닌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쓴 건지 등등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저도 흔히 하는 실수라서 지적하면 제가 놀랄 정도로 미안해 하거나 심하게 주눅이 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굉장히 불리합니다. 그 불리함은 심리평가를 진행할 때 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자신감이 없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고 불안 수준이 높으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라포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상담 회기를 늘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북돋고,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불안을 애써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임상가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내담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불안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절대로 훌륭한 임상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진주라도 시궁창 깊숙이 쳐박아 놓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자신감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가 과연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 수준은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기 전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하세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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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상담을 하다보면 중독자의 원 가정에 다른 중독자가 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거나 어머니가 도박 중독자였거나 하는 경우 말이죠. 유전적인 경향성이 밝혀진 물질 중독 말고도 다양한 중독 문제가 원가족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도박 중독자의 배우자 원가족에도 중독자 구성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가정에서 자란 딸은 대체 왜 도박 중독자와 결혼하게 되는 걸까요?
이 무시무시한 중독의 대물림은 사실 타당한 심리적 이유가 많습니다.
첫째, 중독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독이냐에 따라 각기 고유한 특징은 있지만 그만큼 공통된 특징도 많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중독자에게 일종의 친밀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래서 술만 안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지 그 사람이 도박에 빠져 있을거라고는 생각 못하면서도 왠지 모를 익숙함을 쉽게 가까워지는것이죠.
둘째, 중독자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정작 중독자가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잘 모릅니다. 항상 가족 내의 중독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진 상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그러러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나 관습의 틀이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도통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일종의 외계인처럼 생경한거죠.
셋째, 상대방이 중독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자신은 다르다고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술 문제를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지만 이 사람은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니 비교적 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뿐 아니라,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니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무력했던 엄마와 달리 자신은 얼마든지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이런 이유들로 인해 중독은 대물림되어 계속 아래로 흘러가게 됩니다.
중독적인 관계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중독자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진단해서 어떤 부분에 취약점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한 번은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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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뭔가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별 거 아닙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현장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에 대한 개인적인 예측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심각한 정신병리적 문제로 진단이 필요한 수검자(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임상심리실을 방문하여 심리평가를 받았습니다. 상대적으로 학교나 민간 상담센터에는 그렇게 심한 문제를 가진 수검자가 별로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병원만큼 심리평가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더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심리학의 발전(질적인 발전까지 견인하지는 못하고 있지만)과 홍보의 영향(시대의 추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으로 일반인들의 심리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다양한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져서 심리적 문제가 생겼을 때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기 이전에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특히 어떤 증상때문이 아니라 대인 관계 갈등 문제나 직무 부적응 등 사회 생활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로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수도 많이 늘었죠.
다른 한편에서는 팍팍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게 되면서 예전보다 정신과적 문제를 겪는 사람의 수 자체가 많아졌습니다. 수요 자체가 폭증하게 된 것이죠. 이 수요를 병원에서 모두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상담 센터를 방문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상담 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 심리학자들에게 심리평가 능력이 요구되고 실제로 심리평가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심리평가에 대한 강의나 supervision을 원하는 개별 상담자와 기관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할 때 접하는 케이스도 예전에는 주로 연애 실패, 학교 부적응, 부모-자녀 관계 등의 다소 mild한 문제에서 요새는 강박 장애, 섭식 장애, 성격 장애, 심지어는 조현병까지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새 입버릇처럼 상담자들에게 DSM 진단 체계와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합니다.
이와 반대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는 진단을 내리기에 애매한 문제를 가진 수검자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호소하는 증상만 보면 뭔가 변별 진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아서 종합심리평가를 해 보면 검사 sign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호소하는 증상만큼 심한 수준이 아닌 경우가 많아진 거지요. 그러나 여전히 의사들은 진단을 선호(그래야 약물 치료를 편하게 할 수 있으니)하기 때문에 진단 없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임상 심리학자들은 혼란에 빠지는거지요. 게다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심리치료나 상담을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 병원 임상가들이 많다 보니 진단을 내리지 못할 때 어떤 제언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심리평가 실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병리학 공부와 함께 DSM 진단 체계에 익숙해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임상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더 이상 변별 진단에만 치중하는 심리평가 의존에서 벗어나 심리치료와 상담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러한 치료적 목표에 따른 제언을 심리평가보고서에 작성하는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case formulation을 하는 틀이 지금과 다르게 바뀌는 것이죠.
사실 이건 예측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고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상담 심리학회에서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 중 5년차 이상의 임상심리전문가에게 심리평가 supervision 받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임상 심리학회에서 치료 기법에 대한 워크샵을 대대적으로 열고 전문가의 치료 사례 회의를 강화하는 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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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전공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죠. 사회 심리학 전공자는 사회의 심리 현상에 끌리는 것이고, 범죄 심리학 전공자는 범죄자의 심리에 끌리는 것이죠. 조직 심리학 전공자는 조직 내의 심리 현상에 끌려야 맞겠지만 저는 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갔기 때문에 저같은 예외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무작정 일반화는 금물). ^^;;;
또한 임상 심리 전공자들에게 회자되는 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석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자신의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강박 장애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이거나 평소 강박적이기 때문이고, 사회적 지지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사회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등등. 이 역시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보면 선,후배, 동기의 논문 주제와 그들의 특성을 맞춰 봤을 때 의외로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제가 앞에서 심리학계, 임상심리학계에서 회자되는 농담을 왜 구구절절히 이야기했냐 하면 그만큼 임상, 상담 분야에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처럼 임상, 상담 심리학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때문에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도 많거든요. 전문가가 되었다고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병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임상가가 되었을 경우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가 없고 그로 인해 치유가 답보 상태에 이르거나 도리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환자/내담자는 건강한 임상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산술적 기회라도 있으니 환자/내담자를 신체적/정신적으로 가해하는 예외 경우가 아니라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두 번째 경우인데요. 바로 그런 임상가가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임상 현장에서 supervisor로 일하는 겁니다. 수련 과정이 철저한 도제 관계 시스템을 따르는 임상, 상담 심리학의 경우 그런 병리적인 임상가를 만나는 경우 전문가가 되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추는 건 둘째치고 영혼과 마음의 상처를 입어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꺾이게 됩니다.
제 경험만해도 충분히 우수하고 재능있는 임상가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훨훨 날지 못하는 걸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봤고 지금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는 임상,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많으니 좋은 학교, 좋은 시험 성적, 좋은 스펙 등만 따지지 병리적인 사람을 걸러내는 건 별로 관심도 없고 설사 사전에 알고 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할 임상가들의 마음이 병들게 되고, 일단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갇혀 치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에서 자신만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지도 교수나 supervisor에게 인신공격을 당했거나, 폭언을 들었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어서 우울하고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자신이 가는 길이 후회되는 분이 있다면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당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선,후배, 동료 세 사람에게 그 지도교수내지는 supervisor에 대한 의견을 물으세요. 세 명 모두 한 입으로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당했던, 혹은 당하고 있는 것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임상, 상담 현장에는 존경스러운 선배들도 물론 계시지만 실력과 인격 모두 형편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임상가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이 길러질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세요. 그건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합니다.
수련 때는 어떻게 해도 시간이 가니 힘들더라도 중도에 그만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버텨서 전문가가 되라는 말을 들었던 저도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전문가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짜배기 전문가와 허당을 구분하는 눈은 확실히 생기니 염려하지 마시고요.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나와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할 때까지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말고 흘려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꼭 명심하세요.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덧. 내 지도교수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내 supervisor는 존경할 만한 임상가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거냐고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로또를 맞았기 때문이고 그 행운은 축하합니다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이 바닥에 병적인 임상가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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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상담 불문하고 최소한 supervisor라면 이 정도의 역할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정확한 지식 전달
임상가들이 수련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지식과 정보를 그동안 학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면 이미 현장 supervisor들의 애로사항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만 제가 10년 이상 학회를 지켜본 결과 난망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각개격파, 구명도생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수련 현장에 따른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인데 그나마 많은 환자가 몰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과 접점이 많아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밖에 없는 종합병원급 기관은 일이 많아서 힘들어 죽을지언정 실력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or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니까요(물론 그런 기관에서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만 죽이고 앉아 있는 무능한 supervisor도 있습니다만 그건 개인적인 문제이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고요). 예를 들어 최근에 DSM-5가 출시되었는데 번역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눈치만 보는 건 supervisor의 자세가 아닙니다. DSM-5는 도입 시점이 문제이지 DSM-IV를 계속 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당장 원판을 구입해서 읽고 정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북 세미나 한답시고 엄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에게 번역, 정리 맡기는 짓 하지 마시고요.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reference가 있는 지식과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지식을 구분해서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윗 supervisor에게 배웠던 지식만 알음알음 끌어모아서 울궈먹을 수 있거든요. 제가 최근에 제 supervisee 선생님들께 reference를 자주 물어보는데 제대로 답변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supervisor들께서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그 지식이 항상 업데이트되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2. 동기 부여
첫 번째 역할로 말씀드린 정확한 지식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 부여이며,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확한 지식 전달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임상, 상담 현장의 일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샘솟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야 계속 하고 싶고 그래야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련 과정에서 동기마저 충천하지 않다면 수련 과정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에 빠지거나 쉽게 질려서 무력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건 supervisor 스스로가 동기 부여가 안 되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 없거나 무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진 supervisor라면 이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supervisee들까지 함정에 빠뜨려 공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가능하면 동기 부여는 사명감보다는 흥미 유발과 재미 찾기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임상, 상담 현장은 사명감과 소명 의식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내담자/피검자의 문제를 다룰 때 진지해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임상가들에게 엄숙주의를 강요하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도제식 수련제도 때문에 힘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이상한 교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3. 핵우산 기능
이건 다른 직능 영역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는 supervisor에게만 해당됩니다만 개업 상담센터나 대학 교수가 아닌 이상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supervisor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맞을 겁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들과 일을 하거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의 선생님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관에 속한 supervisor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핵우산 기능합니다. 여러 직종이나 직능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는 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사전달과정이 모호하거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때로는 똥물이 튀는 것이 싫어서 희생양을 찾아서 떠넘기는 일도 생기게 되고, 업무 진행 상 약한 부서나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죠. 그런데 그럴 때 자기 하나 살자고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옆으로 비켜서거나 의사를 비롯한 다른 직능 전문가의 뒤에 숨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서서 나 하나만 믿고 의지하는 supervisee들을 위해 산화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뭐 그런다고 supervisor가 잘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엄살 부리지 마시고요). 유능한 중재자가 못 된다면 최소한 싸움닭이 되는 것 만큼은 피하면 안 됩니다.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론조사하면 supervisor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만 내빼거나 쏟아지는 압력을 몸으로 막아내기는 커녕 완장찬 마름처럼 되려 횡포를 부릴 때가 당당히 1위가 될거라는데 제 금쪽같은 돈 500원을 걸겠습니다.
존경받는 supervisor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력과 성품을 겸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쓰며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랫사람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supervisor의 역할이고요.
오늘도 현장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계신 수많은 supervisor 선생님들 힘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장래의 동반자가 될 supervisee 선생님들이 모두 잠재적인 우군이니까요. 그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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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ADHD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건 학교에서 집단으로 실시한 정서 행동 평가 결과가 그렇다는 통보를 받거나 예민한 담임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해 ADHD가 의심되니 평가를 받아보라고 권유를 하는 두 가지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두 가지 모두 별로 믿을만한 정보가 아닙니다. 간혹 ADHD 아동을 다룬 경험이 많은 선생님의 관찰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선생님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설사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라고 해도 착석 불가능과 같은 두드러진 행동 상의 특징이 아닌 ADHD 증상에 대한 변별 정확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정서 행동 평가 결과의 경우는 정확도가 더 떨어져서 허위 긍정 오류(False Positive Error)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제 경험 상 정서 행동 평가에서 ADHD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관심군 이상으로 분류되어 종합심리평가를 비롯한 재평가를 받은 아동/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별다른 문제가 없더군요. 앞의 두 경우만으로 내 아이가 ADHD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확실하게 확인하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까요? 저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1.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아동/청소년을 전문으로 상담/심리치료하는 상담센터를 찾습니다.
ADHD를 전문으로 보는 소아/청소년 클리닉의 수는 굉장히 적으며(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 전문 클리닉이라고 해도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을 제.대.로. 전공한 전문의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나 클리닉을 방문하실 때에는 소아/청소년 Fellow를 어느 종합병원에서 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소아/청소년 Fellow 과정을 정식으로 이수했다고 해도 그것이 ADHD 전문가라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Big 5에 속하는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워낙 다양한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밀려들기 때문에 ADHD에 특화된 수련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아주 전형적인 ADHD 아동을 변별하는 기술은 분명히 뛰어나겠지만 그 정도의 아동이라면 전문화된 심리평가 도구로도 충분히 변별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상당히 많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문진만으로 ADHD로 진단하고 일단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ADHD 문제만큼은 정신건강의학과 우선 방문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2. 아동/청소년을 전문으로 상담/심리치료하는 상담센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정확한 진단을 위한 평가입니다. 다음과 같은 조합으로 구성된 심리평가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 부모용 선별검사도구(KPRC, K-CBCL 등) + 종합심리평가 + 전문화된 주의력 검사 도구(CAT, ADS 등의 전문화된 CPT)
CPT 도구의 경우 기계 자체의 비용이 비싸 보유한 전문기관 자체도 그리 많지 않지만 이 검사 도구의 경험적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주의력 영역의 문제를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장점은 있어도 주의력의 문제가 있는지의 여부만 알려줄 뿐 ADHD와 다른 정서장애로 인한 주의력 문제를 정확하게 변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CPT 결과만으로는 ADHD를 변별하지 못합니다. 물론 결과지에는 떡하니 ADHD라고 인쇄되어 나갑니다만....
그래서 CPT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부모용 선별검사도구와 종합심리평가를 함께 실시하는 겁니다. 셋 중에서 하나만 빼라면 저는 CPT를 빼라고 할 정도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만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CPT 실시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빼도 무방하겠습니다. 오히려
ADHD 검사 경험이 많은 임상심리학자가 실시하는 구조화된 면담이 CPT보다 정확도가 높은 편입니다.
3. 심리평가 결과 R/O이 붙지 않은 ADHD, combined type으로 진단이 내려졌다면 해석 상담에서 임상가에게 약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것인지 꼭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약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는 전형적인 ADHD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약물 치료없이 심리치료만으로 호전될 수 있는 아동/청소년이라면 굳이 약물 치료를 병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물 치료는 꼭 적용해야 하는 경우에만 제한해서 사용해야하니까요.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 자녀가 ADHD인지는 학교의 정서 행동 평가 결과나 선생님의 감이 아니라 경험많은 임상심리학자가 실시한 심리평가 결과에 의해서만 확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ADHD로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ADHD가 아동/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심리 장애 중 비교적 흔한 장애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너도나도 ADHD로 진단받는 수준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모든 ADHD에게 약물 치료가 효과적인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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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글에 사용된 사례가 심리평가에 대한 내용이라서 그냥 '임상심리' 카테고리로 분류합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임상심리전문가 중 심리평가, 그 중에서도 MMPI-2/A 강의를 의뢰받고 고민하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강의를 의뢰받았을 때 맨 먼저 점검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뭐 강의의 대가도 아니고 저도 강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 중 하나이니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강의 준비하시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보통 전문가가 된지 2~3년 정도 지나 junior에서 senior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임상심리전문가들에게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대학 강의는 아니고 일회성 내지는 시리즈 워크샵 형태의 강의들이죠.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특강 형식으로 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고 알음알음으로 외부에서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2~3년차라는 위치가 좀 애매해서 그동안 쌓은 실력에 비해 아직 자신감이 확실히 붙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냥 고사하는 바람에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 할 귀중한 기회를 날리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느 책에선가 본 이후 제 모토 중 하나가 된 것이 있는데 바로
'거절해야 할 절대절명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상 모든 요청을 기회로 받아들이고 승낙한다'는 겁니다. 물론 재미없으면 단박에 거절합니다만.
가끔 내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 거절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강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수도 있지만 임상, 상담심리전문가에게 들어오는 강의는 최소한 심리학 관련 지식이 필요한 강의입니다. 설마 제게 주택 경매 관련 강의 의뢰가 들어오겠어요? 그러니 무조건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 사설이 길었는데 예를 하나 들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수도권의 어떤 시 교육청에서 학교 상담 교사를 대상으로 MMPI-2/A와 SCT를 엮어서 2시간 정도 특강을 해 달라는 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강의를 듣는 수강자의 욕구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수강자의 배경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야 제대로 된 맞춤 강의안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 강사와 수강생이 모두 윈-윈하는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는 참석 대상이 학교 상담 교사이니 강의 요청을 한 담당자를 통해 참석하는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이 MMPI-2/A, SCT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인지, 아니면 아동/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심리평가 결과를 formulation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담당자가 그 정도도 모르고 있거나 참석자의 의견 조사를 안 해주는 강의는 거절하는 게 낫습니다. 그냥 대충 시간이나 때우라는 말이니까요. 이것이 수강자의 욕구 조사입니다. 방금 설명드린 것처럼 참석자의 욕구가 이론인지, 사례인지에 따라 강의안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참석자가 강의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심리학 전공자가 얼마나 되는지, 참석자의 전공 베이스가 어떻게 분포되는지,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수련 중인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MMPI-2/A, SCT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아예 처음 듣는 수준인지 아니면 실제로 현장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인지 등. 수강생의 배경 지식 수준을 파악하게 되면 강의 내용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죠. 이것이 능력 조사입니다.
강의를 많이 하시는 전문가 선생님들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내용이겠지만 강의안의 틀을 잡는 것부터 막연하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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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뭘까요?
바로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술이 아직 무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는 지식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정보의 무더기에 불과합니다.
대학 교수든 학원 강사든 간에 그들의 강의가 훌륭한 것은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물론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만) 반복된 강의로 인해 그들의 지식이 매우 정교하게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무술의 고수가 된 것이지요.
강의 기술만 연마해도 될 것 같지만 결국은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고수는 자신이 고수라도 결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면서 폼만 재는 고수는 결국 더 뛰어난 고수의 칼날에 스러지게 되죠.
임상이든, 상담이든 3년차 이하의 전문가 선생님들은 잘 들으세요. 전문가가 되고 난 뒤 3년이 지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심리평가, 심리치료, 상담 supervision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supervisor에게 supervision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뭘 알아야 하지’,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야지’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세요.
supervision은 supervisee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지식을 통합해 진짜 전문가, 진짜 고수가 되기 위해 하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supervisee도 함께 성장하게 되지만요.
본인이 supervision을 해도 괜찮다고 자평하게 되는 그런 전문가가 되는 그 날은 지금 당장 supervision을 시작해야 비로소 오는 겁니다.
고수가 되고 나서 supervision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에요. supervision을 시작해야 고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된 지 3년이 지나고 사람들이 선생님을 senior로 평가하게 되면 실력과 상관없이 그 때 가서는 supervision을 시작할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게 되니까요.
물론 나중에라도 학교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된 후 교수라는 타이틀의 힘으로 supervision을 시작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supervision이 과연 제대로 된 supervision일까요?
내가 뭘 알아야 supervision을 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본인이 아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하세요. 어디에 정리하건 상관없습니다. 저처럼 블로그에 정리하건, 녹음을 하건, 워딩해서 파일에 모아두건. 자신이 아는 것들을 꾸준히 정리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깁니다. 그걸 supervision의 재료로 사용하면 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분들은 더 이상 늦기 전에 어떤 영역에서든 supervision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supervision은 능력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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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임상심리학자가 개인 심리치료(아직까지는 구조화된 접근에 국한되기는 하지만)를 담당하고 있고 그 수요가 너무 빨리 늘어나 과부하까지 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Big 5에 해당하는 대형 병원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에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글에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로 '심리치료 분야의 강화'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 생각 이상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도 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수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재는 CBT 수가를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치료 권한이 의사에게만 있기 때문에 담당 의사의 코사인이 들어가야 하는 등의 제약은 있지만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임상심리학자의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오늘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임상심리 분야가 아닌 상담심리 분야의 이야기입니다. 임상은 심리치료 분야로 확장하게 되고 상담은 심리평가 분야를 확대하게 되어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임상심리 분야의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지요.
오늘 드리려고 하는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상담심리 분야에서 심리치료/상담을 하고 계신 상담심리학자들께서는 좀 더 공격적으로 심리평가를 배우고, 현장에 적용하고, 전문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미 대학교의 학생생활상담연구소의 경우 재학생의 상담 회기 제한을 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상담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아져서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장기 상담을 제공할 수가 없는 것이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바뀌기 어려울 겁니다.
고액의 비용을 내지 않는 이상 모든 상담 현장에서 단기 상담을 하는 경향성이 강화되면 상담 프로토콜이 구조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짧은 시간 안에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고 치료 계획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초기에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Full Battery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MMPI-2와 SCT에 한 두 가지의 질문지가 추가되는 형태의 screening battery는 routine하게 실시될 겁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심리평가는 안 해도 되고 상담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로는 금방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담심리학자들에게 심리평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될 것인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상심리학자만큼 로샤 검사를 잘 해석하는 상담심리학자라면 어떨까요? 기본적인 치료 기술과 경험에 평가 능력까지 갖춘다면 그야말로 날개를 단 것이 될 겁니다.
저는 임상심리학자로 훈련을 받았고 상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잘 보입니다. 임상심리학자가 심리치료/상담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상담심리학자가 심리평가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가 이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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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진단이 중요한 심리평가에서는 왕따는 Adjustment Disorder를 진단하기 위한 identifiable stressor로 작동하느냐, 그 정도가 PTSD로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느냐 등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지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접근방법을 찾아야 하는 심리치료와 상담 영역에서는 왕따를 임의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집단 따돌림(소극적 왕따)과 집단 괴롭힘(적극적 왕따)로 구분하는 것이죠.
집단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을 동시에 당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지만 둘 중 어느 하나에만 국한된 경우 주로 당하는 왕따의 종류에 따라 아이들이 보일 수 있는 증상과 대처 행동, 치료적 접근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집단 따돌림의 경우에는 주로 사회적 철회(social withdrawal)가 일어나는 대신 고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지지 체계가 공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장기간 방치될 수 있고 적절한 개입의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큽니다. 지적 제한이 있거나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이의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에 더욱 취약합니다.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부족한 지적 능력 및 사회적 기술, 의사소통기술 등을 보강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집단 괴롭힘의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에 비해 아이가 겪는 고통감이 훨씬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눈에 띕니다. 고통감이 너무 심한 경우에 자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하고 일부 아이의 경우에는 집단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다른 아이를 희생양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능력 부족보다는 외양을 포함한 신체적 특징의 차이 등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환경의 개선이 주가 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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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 포스팅에서 예고한 것처럼 임상심리학의 어두운 미래 예상에도 불구하고 소위 블루 오션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대한 제 예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예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인생 진로를 이곳에 올인하시면 안 됩니다. 뭐, 하셔도 좋습니다만 제가 전혀 책임질 수 없으니 나중에 내 인생 책임지라고 연락하지 마세요~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의 블루 오션은 크게 네 가지 분야입니다.
첫째.
노인 관련 분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피할 수 없는 미래이고, 미래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향후 전체 인구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할 노년층에 대한 정신건강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가 알기로 이 분야는 거의 불모지 상태입니다. 그나마 독거 어르신의 daily care와 관련된 분야만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 치매 등 노인성 정신장애에 대한 신경심리평가, 치료, 재활, 예방 등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은 말할 것도 없고 세부 분야의 전문가 수마저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할 말로 치매, 파킨슨 병 등 노인성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신경심리평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전문가의 수는 인프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신경심리평가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대우도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어서 호화로운 실버타운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다루는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의 복지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국가 정책의 방향이 이 분야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격적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수요에 비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노인 상담에 대한 경험 축적, 노인성 장애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지식, 신경심리평가 도구의 숙달에 미리미리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둘째,
애착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 말씀드린 초고령화 사회의 대두와도 맞물려 있는데 노인층이 늘어나는 만큼 출산율은 더욱 떨어져서 가구 당 1.0의 출산율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소아과, 산부인과 등이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지요. 소아정신과도 특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줄어들고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 두드러지는 핵심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애착 문제입니다. 맞벌이 가정에서 태어난 독자들이 늘고 있고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어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주 양육자로부터 강제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몇 년 전부터 불안정 애착 문제가 아이가 보이는 다양한 증상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ADHD, Anxiety Disorder, Conduct Disorder 등의 진단이 의심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부모-자녀 관계, 특히 불안정 애착이 원인인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의 경우에도 애착 문제가 심화되어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이 많더군요.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그럼에도 경쟁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안정 애착을 하는 건강한 아이들을 점점 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애착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별로 없습니다. 애착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의 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애착 치료를 다루는 전문 서적 마저도 거의 없습니다(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검색해 보세요). 그만큼 이 문제의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죠. 아동에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애착 문제에 대한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셋째,
상실 문제입니다. 대가족 체계에서는 삶과 죽음이 그리 많이 분리되지 않았고 죽음이나 상실의 충격을 완화시켜 줄 장치가 그나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이제는 독거 가정, 비혼 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상실의 충격을 감소시켜 줄 완화 장치가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픔을 함께 나눌 형제가 없고, 친구의 수도 부족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자가 많기 때문에 배우자와 슬픔을 나누지도 못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반려 동물을 입양하지만 대부분의 반려 동물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아서 오히려 더 자주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물며 오랫동안 정들었던 물건을 버리는 것 마저도 상실의 서운함과 아쉬움을 주는데 가족, 가족과 같은 반려 동물을 잃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방법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상실의 문제는 단지 죽음과 관련된 것 뿐 아니라 이별의 아픔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용과 인정만을 강조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현재 상실의 문제만을 특화시켜 다루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우울증, 적응 장애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제가 볼 때에는 역부족이고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들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지만 상실에 초점을 정확하게 맞춘 것이 아니라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하려면 지금부터 자신의 specialty를 정해서 전문성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넷째,
중독 문제입니다. 그 중 한 영역은 제 전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문 분야라고 말할 때에는 딴 데 정신팔지 않고 적어도 10년 정도를 현장에서 굴러서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예전에는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나누곤 했습니다만 최근 추세는 모든 중독을 행위 중독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약을 주사하는 행위, 손에 든 담배를 입으로 빨아들이는 행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중독 메카니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쨌거나 기존의 물질 중독 뿐 아니라 도박, 인터넷, 게임, 섹스, 쇼핑, 관계 중독 등 다양한 행위 중독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어 앞으로는 여러 분야에서 중독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기존 상담 영역에서도 중독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가능한 전문가를 요구할 겁니다.
현대 사회는 삶의 폭폭함을 잊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가족 제도의 해체와 핵가족의 확대, 물질 만능주의의 만연, 개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해 중독적 삶의 확산이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중독 분야의 수요는 점차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중독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해당 분야의 지식과 전문성, 현장 경험을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 애착, 상실, 중독, 이 네 가지 키워드를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Generalist는 가고 Specialist가 온다'는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는 specialist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대우받을 수 없는 시대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을 미리미리 개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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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을 만들기 이전 소위 임상심리학 1세대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학과 병원에서 맨 땅에 헤딩하면서 임상심리학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몸으로 굴렀습니다.
그 엄청난 고생의 결과로 임상심리학이 태동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임상심리학자의 양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세대도 사실 심리학과 교수의 자리는 차지했지만 병원은 의사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터라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장착할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임상심리학자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요.
임상심리학 2세대 또한 1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리를 지키고 양적으로 확장하는데 전력했기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만 역시나 수련 과정의 체계화는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성과를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각개전투로 점철된 세월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학번들이 임상심리학 3세대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본격적으로 수여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체계적인 수련을 받은 세대입니다(그 이전에 수련도 받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소급해서 챙긴 분들은 당장 내놓으셔야 합니다. 그거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는 분들이 왜 그렇게 찌질하게 자격증에 집착하십니까? supervision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더 이상 후학들 망쳐놓지 말고 반납하세요).
문제는 1세대에서 2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표준화된 수련과정의 틀이 마련되지 않은터라 3세대가 수련 받은 환경의 차이가 병원마다 너무 큰데다 이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여전히 표준화된 수련 절차라는 것이 없었던 겁니다(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그래도 거의 비슷한 상황(열악한 측면에서 동등한 것이지만)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많고 체화된 노하우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세대부터는 수련 받은 기관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3세대가 supervisor가 되면서부터는 개인차에 따라 그 아래에서 수련받은 supervisee의 quality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3세대에게서 수련을 받은 4세대 임상심리학자들이 supervisor로 포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자리는 이미 선배들이 어느 정도 닦아놓은 길입니다. 그래서 일의 양은 많아도 모든 걸 몸소 처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는 무급 '수련생'을 뽑아서 맡기고 연구는 연구원 뽑아서 하고, supervision은 자기가 배운 만큼만 가르치니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 시간에 학연따라 지도 교수에게 인사 다니거나 같은 병원 출신들끼리 뭉쳐서 책을 번역하든 검사 도구를 표준화하든 하면서 의사들 비위 맞추고(이건 의사들의 잠정적인 진단에 맞춰 심리평가보고서의 진단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바꾸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띵까띵까 살아도 됩니다.
그래서 생기는 단적인 문제는 심리평가보고서 quality의 하락입니다. 물론 예전에 제가 수련을 받을 당시에도 심리평가보고서의 질적인 차이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Big 5에 해당하는 대형병원에서 나오는 보고서까지 의심받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자인 제가 봐도 그대로 믿을 만한 보고서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략 2년 전부터 어느 누가 쓴 보고서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원자료를 복사해 오라고 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reading합니다. 그만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관에 소속되어 전담 supervisor가 버젓이 있는데도 수련 curriculum을 신뢰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 유급 supervisor를 찾아다니는(그나마도 거의 없지만) 상황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부터 잊을만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련 제도의 정비와 표준화된 체계 마련을 목소리 높여왔던 겁니다.
제가 꿈꾸고 있는 심리치료의 보강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심리평가마저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 된 이상 임상심리전문가의 몰락은 명약관화합니다.
임상심리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은근히 사회복지전문가를 무시하지만(참 한심한 정신머리입니다만) 그럴 것 없습니다. 그 분들이 하는 고생과 처우를 임상심리전문가들도 똑같이 받게 될테니까요. 이미 사회복지전문가의 명령을 받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있죠. 그게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입니다.
학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접은 이상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조만간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 분야의 블루 오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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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자격증은 정통 임상심리학 분야에서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계속 일을 할 전문가라면 어느 정도는 옥석 구분을 할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에(그런 눈이 생기지 않으면 어차피 도태되고 말 터이니) 큰 걱정이 되지 않지만 임상 심리 분야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사탕발림의 제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따 놓는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 전혀 쓸모가 없으며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자격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는 것이 이 포스팅의 목표입니다.
보시는 것은 사단법인 한국심리상담협회라는 곳에서 시행 및 수여하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홍보하는 광고 문구입니다.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이는 곳이 '고객상담실'과 '고객상담 전화번호'입니다. 자격을 취득하려는 전문가를 고객 취급하는 것을 보니 자격증을 팔아먹으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이사장이라는 분의 약력 및 경력을 보니 3선 국회의원에 대한민국국회헌정회 운영위원, 성균관유도협회 총본부 상임고문, 민족문화보존협회 이사장입니다. 대체 이런 분이 심리학이나 상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더 웃긴 건 조직도만 있지, 누가 이 협회를 구성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흔한 자문단 명단 하나 없습니다.
심리 검사 소개란을 보면 '가정환경진단검사', '친자관계진단검사' 등의 황당무계한 검사명이 보입니다. '로사타르검사'같은 건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심리상담사 자격증의 응시 자격을 보면 고등학교 이상 졸업자, 상담관련 업무 1년 이상 실무 종사자 정도가 눈에 띄입니다. 가산점 기준을 보면 4년제 심리학과 졸업자에게 5% 가산을 준다면서 정작 현장에서 가장 많이 활동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상담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같은 자격자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알 턱이 없겠지요.
그러면서 응시 수수료는 5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응시 수수료 장사한다는데 100만 원 걸겠습니다.
이 협회는 심리상담사 자격으로도 모자라서 아동심리상담사, 노인심리상담지도사, 치매예방관리사 등의 자격증으로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같은 급으로 금연상담사, 장례지도관리사, 성교육상담지도사 등이 있군요. ㅡㅡ;;;
전국 5대 광역시에서 시험을 실시하고 1월에도 시험을 본 것을 보면 이 협회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을 보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임상 심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자격증 중 하나인 임상심리전문가는 임상심리학 대학원의 석사 학위자가 인증받은 수련 기관에서 3년을 수련받아야 하며, 그 중 1년을 반드시 정신과 병동이 있는 필수 수련 기관에서 수련받아야 합니다. 대충만 비교해 보셔도 이 협회에서 주는 자격이 얼마나 엉성한 지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지금까지 현장에서 10년 이상 일했지만 이 협회에서 준 자격증을 갖고 정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있다면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니 다가오는 미래에는 심리상담사가 유망 직업이라는 말에만 솔깃하지 말고 요모조모 잘 따져보셔야 합니다.
사단법인 한국심리상담협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분들은
클릭!
임상 심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은 분들은 월덴 3의 '심리학 이야기>자격증' 디렉토리에 있는 글을 일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이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덧. 위에서 제시한 것과 비슷한 곳 한 곳을 더 알려드릴테니 함께 살펴보세요. 거의 대등한 수준입니다. (사) 한국청소년육성회부설상담교육원 : http://cafe.daum.net/kays.cedu -> 여기는 용감하게도 도박중독상담사라는 자격증도 주네요. 나 원 참 웃기지도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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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임상심리전문가는 한국심리학회 산하 임상심리학회에서 관리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007년 1월 초에
'임상심리학의 위기'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글은 총론적인 위기에 대해 쓴 것이고 오늘 내용이 각론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맘대로의 예측이며 개인적으로는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임상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만든 자격이지요. 이후에 국회에서 관련 자격에 대해 입법을 하게 되자 임상심리전문가를 국가공인자격증으로 만들려고 학회에서 애를 썼지만(개인적으로는 전략의 부재로 평가합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보건복지부에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만들어지고 두 개의 자격 제도가 생기게 됩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급조된 자격으로 수련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상심리학회에서 수련위원회를 꾸려 수련 감독을 대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수련을 받았던 임상심리 레지던트 중 일부는 3년의 기간 동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동시에 취득하는 행운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 이관해서 총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오니 반발하지만 역시나 진압되고 결국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자격을 동시 취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전과 달리 자격 요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당시 수련 인정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수련 레지던트가 꽤 많았지만 학회에서는 아무런 대책 마련도 못 했습니다. 그 피해는 레지던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에 이전처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하면서 대충 정신보건센터에서 시간을 때우고 수련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인 이원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때까지는 임상심리학자가 두 가지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때부터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면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수가 늘면서 임상심리학회의 기반을 위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심리학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감이 없거든요. 상담 심리학회 회원들에게 모 학회인 심리학회에서 회비를 통합 징수하려고 할 때 일어났던 문제의 이유와 유사하죠. 임상심리학회에서는 산하의 임상심리전문가들을 정신보건전문요원협회에 가입하도록 독려하면서까지 밀월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임상심리학회와 상관이 없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바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에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인정해서 그대로 자격을 수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 몇 교수들이 바로 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즉,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은 갖고 있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없는 임상심리학 교수에게 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그냥 준 것이죠. 당연히 정상적인 수련 과정 없이요. 물론 이런 부당한 혜택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도 심리학과에서 강단에 서고 있는 임상/상담 심리학 교수 중 상당수가 정상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소급해서 그냥 준 것이죠. 뭐 원로 대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필요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불공정한 정책이 임상심리학계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의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부실한 수련마저도 받지 않고 자격을 얻은 교수들이 심리평가, 심리치료에 대한 개념이 있을리가 만무하니까요. 뭘 알아야 가르치죠.
어쨌거나 이런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전문가의 관계는 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의 위치가 어정쩡한 것이지만요.
문제는 이후에 산업인력공단에서 임상심리사 자격이 국가 공인 자격으로 또 만들어진 것이죠. 이 자격은 수련 과정 없이 시험으로만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 임상심리사 2급의 수가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을 합한 수보다 많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2급 자격자만 있다가 최근에 1급 취득과 승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현장에서 각축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 그럼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종합병원급의 수련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가 아닌 전문가(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며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이 대표적인 경우)가 supervisor가 되는 순간부터 임상심리전문가가 마음 편히 누리던 수련 과정의 핵심축이 붕괴되기 시작할 겁니다. 현재는 supervisor가 임상심리전문가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카르텔에 의해 모교 출신이나 최소한 심리학회 회원만 수련 레지던트로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supervisor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기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심리평가의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속도가 더 빨라졌거든요. 임상심리전문가는 지금까지 '정신과 병동 수련'과 '심리평가'라는 유용한 tool을 가진 이득을 배타적으로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상담심리학회에서 심리평가 수련을 위해 문호를 대폭 개방하고 상담심리전문가 자격까지 갖추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그 교육을 담당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의 유일한 무기였던 심리평가의 잇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요?
저만 해도 제게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supervisee 선생님 중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지 않는 수가 이미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나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만 취득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말입니다. 이게 저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상황일까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만 놓고 볼 때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격차는 이미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supervisor의 지도를 받았느냐가 더 큰 차이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이 격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임상심리전문가의 가장 큰 무기였던 심리평가가 앞으로는 현장에서 그다지 우위가 되는 기술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투입된 노력과 시간 대비로 비교해보면 임상심리전문가는 메리트가 별로 없습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quality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굳이 임상심리전문가를 써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를 우위로 생각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각 병원의 supervisor의 실력에만 맡겨놓고 수련 제도를 방기하고 있는 학회의 책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회가 수련 제도 정비를 위해서 뭘 했습니까?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기본 교재가 있습니까? 아니면 supervision을 위한 manual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미 자격 번호 600 번대의 junior supervisor가 종합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supervis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아무런 orientation도 없이요. 이런 supervisor에게 수련을 받은 레지던트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나오는 건 금방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나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임상심리전문가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밀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학교가 아닌 임상 현장 이야기입니다. 저는 솔직히 학교는 생각도 않고 있고 기대도 안 합니다. 이미 개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암울한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수련 제도를 정비하고 supervision을 표준화, 강화해야 합니다. 수련 현장 나름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표준화된 manual을 만들어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교육이 되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취득하면 임상 현장에서 이 정도는 기대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supervisor가 자신이 수련받을 때 배웠던 것만 달랑달랑 가르치는 수준으로는 질적 하락이 불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supervisor가 심리평가, 심리치료 하나 안 하면서 수련 레지던트만 착취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임상심리전문가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둘째, 심리치료 분야를 강화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답답한게 뭔지 아십니까? 제 분야가 아닌 내담자의 문제를 의뢰하고 싶어도 전문가가 하나도 없다(혹은 모른다)는 겁니다. 가정 폭력 문제가 있는 도박자의 가정에 개입하고 싶어도 가정 폭력 전문 치료자가 없어서, 하다 못해 청소년 우울증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가가 누군지 몰라서 속앓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현행 의료보험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심리치료를 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충족시켜줘야 하나요? 임상심리전문가가 뛰어들지 않는다면 계속 심리평가나 하면서 수지 타산이나 맞추고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요?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심리평가 분야를 잠식해서 벼랑으로 떠밀릴 때까지요. 심리치료만 놓고 보면 임상심리학회는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나 다름 없습니다. 수련 레지던트의 사례 발표나 하는 수준이지 전문가의 사례 발표는 눈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고명하신 교수님들은 정년 보장이 되니까 심리학의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달콤한 꿀빨기에 여념이 없으시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장이 죽으면 학교도 죽습니다. 아닐 것 같습니까?
수련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과 정비, 그리고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매진,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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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심리평가/심리치료의 supervision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supervisee 선생님의 수가 어느새 30명이 넘었습니다. 거의 40명에 육박하는군요.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제가 6년 째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고 있지만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는 소리를 여전히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수님들은 대체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건지...
그나마 supervisor랍시고 supervision을 제공하는 전문가들도 자질 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제 얼굴에 침뱉기에 해당하는 이런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런 전문가들에게 주제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저도 언제든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글로 남겨 미리 제게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면 supervision을 한 뒤 원하는 분들에 한해 수정한 내용을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점검하는 소위 '첨삭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워낙 손 볼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잘 써온 분도 계시고 대면 supervision이 끝난 뒤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게 되어(이제와서 생각을 해 보면 보고서에 들이는 정성과 고민은 저보다 나은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감을 잡고 키워드를 찾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을 도와드리는 것 뿐이죠) 첨삭 지도를 해도 문구를 매끄럽게 다듬거나 오, 탈자를 점검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comment를 한 보고서를 발송하면서 formulation이 잘 되었다는 솔직한 평을 보내면 '너무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우울한 일상에 힘을 얻었다'는 식의 어리둥절한 답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positive feedback마저도 인색한 harsh한 supervisor가 천지라는 사실을 말이죠. 대면 supervision에서도 온통 '네가 준비해 온 만큼만 supervision을 봐 준다', '어떻게 레지던트가 이런 것도 모르냐', '이 용어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썼냐,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어떻게 건방지게 다른 superviser에게 supervision을 받겠다는 말을 하냐'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고 상처를 주는 supervisor가 얼마나 많은 지 알게 되었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가 주로 군 생활 할 때 많이 들은 말인데 살상을 목적으로 한 조직에서 듣던 말을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는 전문가 조직에서 또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하게 키워야 강군이 된다는 말도 군대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전쟁이 나면 그 상사부터 쏴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적개심 가득한 사람들만 양산하지 군 전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과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무기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전 학교에 있을 때에도, 군에 있을 때에도, 수련을 받을 때에도 혼이 나면서, 면박을 당하면서 배웠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밉기만 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던 기억만 있습니다.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는 supervisor들에게 진심으로 묻습니다. 정말 그렇게 면박주고 모욕하고 혼을 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실력자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열등감을 supervisee에게 투사하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acting out하는 히스테리 supervisor에 대해서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말해봤자 제 입만 아프고 그 사람의 인생에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임상 분야가 얼마나 좁은데 그렇게 평판 관리를 안 하십니까? 저처럼 사람 가리고 외곽에서 은둔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온 정보만 모아도 당장 퇴출되어야 할 전문가(명칭이 아깝습니다)가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제가 편하게 대해도 명색이 제가 superviser인데 supervisee들이 실상을 모두 말 할리가 없을텐데도 남 부끄러워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책으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미 몇 차례 비슷한 포스팅을 했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supervisee들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고 미래의 내 동료입니다. 어려운 길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들이고요. 그리고 야단치고, 화내고, 혼 낸다고 실력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더 격려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읽어보라고 참고 자료를 주세요. 화만 내지 말고요.
제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잣대로 삼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supervisee가 못 돼고 글러먹었어도 이들이 약자입니다. 그러니 저는 앞으로도 이들의 편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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