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 상담 수련 레지던트들을 위한 책은 비교적 많지만 정작 이들을 수련하는 감독자들을 위한 책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상담 수퍼비전을 하지 않지만 심리평가 수퍼비전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관련된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상담 수퍼비전에 관해 번역된,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로(그래서인지 원서가 2005년 판입니다. 이미 출판된 지 16년이나 된 책이죠) 방기연, 김만지 선생님이 번역하셨습니다.
수퍼바이저라면 당연히 supervisee에게 supervision을 하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체계적 노하우가 정리되어 있을 것을 기대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충족하는 책이 아닙니다. 일단 목차를 보시면,
1장. 사건 중심으로 수퍼비전 과정 이해하기
2장. 기술적 어려움과 기술 결함 다루기
3장. 다문화적 인식 높이기
4장. 역할 갈등 협상하기
5장. 수퍼비전에서 역전이 다루기
6장. 성적 이끌림 다루기
7장. 성에 관한 오해를 풀고 성에 대한 간과 교정하기
8장. 문제가 되는 감정, 태도, 행동 다루기
9장.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생각
다문화, 성적 이끌림, 성에 관한 오해 등 미국 문화에서 중요한 issue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상당한 분량을 손해보고 있고 실질적인 supervision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굉장히 많은 예가 실려 있는데 문제는 이 예가 우리 문화에 적절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의 예를 보면 미국 수련 레지던트들의 멘탈이 우리보다도 훨씬 더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supervisor의 아주 간단한 직면도 견뎌내지를 못하는 유리 멘탈들인지 supervisor가 supervisee 눈치를 보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거의 우쭈쭈 하는 수준입니다. 이건 뭐 수련을 받을 게 아니라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도 와 닿지 않고 생동감도 떨어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예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산만하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supervisee는 당연하고 supervisor에게도 자신있게 추천드릴 수 없는 책입니다. 읽는다고 나쁠 건 없지만 시간을 들여 굳이 읽어야 하나 싶은 정도입니다. 저라면 다시 안 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장하지 않고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어차피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제 책을 빌려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닫기
* 상담자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기(예; 자기 개방, 간간히 웃거나 울기)와 치료적으로 존재하기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균형은 쉽게 이해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 수련생의 초기 훈련 과정에서는 역전이가 치료작 관계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기술적 어려움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 수퍼비전의 첫 과제는 역할 모호와 역할 갈등의 지표를 식별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기대를 명확하게 언급함으로 역할 모호는 효율적으로 수정되어질 수 있지만 역할 갈등은 좀 더 지속적인 주의를 필요로 한다. 역할 모호의 지표는 수련생이 수퍼비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혹은 수퍼비전에서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질문할 때 가장 분명해진다. 역할 갈등은 불신을 암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수퍼비전 관계의 긴장감은 역할 모호보다는 역할 갈등을 암시한다.
* 역할 갈등 사건의 과업 환경은 최소한 1) 감정 탐색하기와 2) 수퍼비전 동맹에 초점 맞추기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 수련생의 기대에 관한 한 연구(Friedlander & Snyder, 1983)에서 고급 수련생뿐만 아니라, 초보 수련생도 자신의 수퍼바이저가 '매력적인 지지자'라기보다는 '평가 전문가'처럼 행동하기를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자로서 자기 효능감이 강한 수련생일수록 수퍼바이저가 믿음직스럽고, 지지적인 전문가여야 한다고 기대했고, 수퍼비전이 자신과 내담자의 향상을 도모한다고 기대했다.
* 역전이의 한 종류로 주제 방해(theme interference)가 있다. 주제 방해는 상담자가 내담자와 비슷한 사람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내담자에 대한 객관성을 잃을 때 일어난다.
* 수퍼비전은 상담자의 외상 혹은, 발달 경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내적 딜레마나 발달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 관계 내 긴장의 원인에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오해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첫 걸음이다.
* 자신을 구원자로 간주하고 내담자에게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수련생은 내담자가 이 구원자 환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쉽게 자신감을 잃는다.
* 덜 숙련되고 경험이 적은 수련생에게는 정보와 뚜렷한 피드백, 기술에 근거한 개입을 제공하는 과제 지향적 수퍼비전 스타일이 적절하다. 반면 숙련된 수련생은 평행 과정과 역전이에 포함된 의미를 이해하면서 평행 과정과 역전이에 다양한 관점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161
대부분의 상담자가 상담을 하면서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위기는 '내가 과연 내담자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와 관련된 무력감입니다.
어떤 이유로 상담에 입문하게 되었든 간에 결국은 내담자를 돕고자 하는 이타성이나 소명 의식이 없다면 상담일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을 하는 상담자는 누구든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합니다.
임상이든, 상담이든 간에 수련 과정이 너무나 길고 혹독하며 도제식 교육 과정인지라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많은 임상가들이 자존감이 한껏 낮아진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 과정 자체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길은 요원하고 가능할 지의 여부도 매우 불투명합니다(아마 안 될 겁니다). 따라서 상담자들은 각자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자신을 잘 추스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supervisee 선생님 중에 자신감이 지나쳐 교만하게 느껴지는 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픕니다. 하나같이 자신감이 부족하고, supervisor가 틀렸을 수 있다는 가정조차 하지 못하더군요. 심하게는 저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분도 봤지만 아무리 객관적인 피드백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게 몸에 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력감을 극복하는 게 현장 임상가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 이 이야기를 하려했던 것은 아니고요. 반대로 무력감이 전능감과 맞닿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무력감과 전능감은 양 극단에 위치한 반대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샴 쌍둥이 같은 존재입니다. 같은 존재의 다른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나는 이 내담자를 도울 능력이 도무지 없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나는 이 내담자를 구원할 것이다'는 전능감이 깔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전능감이 좌절되니 더욱 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나는 내가 가진 능력과 소명의식으로 최선을 다해 내담자를 돕겠다는 수준에서 일한다면, '내가 이 내담자를 구원하고 말 것이다'라는 강박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더 넓은 조망 하에서 내담자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고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하여 결과적으로는 내담자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내담자를 구원하기 위해 임상, 상담을 전공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저처럼 단순히 심리학이 재미있어서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심리학이 고마워서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건 간에 구원자의 역할을 포기해야만, 전능자의 신화에서 벗어나야만 우리와 내담자 모두를 진정으로 도울 방법을 찾게 될 겁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구원자의 환상을 깨면서부터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더군요.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선생님들은 최소한 전능감과 무력감 사이의 어디에선가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052
상담 분야에서 상담 supervision은 필수 불가결한 수련 과정입니다. 그러니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 중인 분들이라면 상담 supervision의 장, 단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후 곧바로 상담 현장에 뛰어들어 작년에 독립할 때까지 15년 동안을 일했지만 한번도 상담 supervision을 받은 적이 없는 저는 상담 supervision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이라고는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흉내만 내는 게 전부였던 제게 초기 3년 정도의 상담 일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맨땅에 헤딩했던 시행착오의 혼란기였습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상담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물론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들어가지는 않았고(그 때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상담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심리평가 supervision은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 수련을 받는 선생님들의 다양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죠.
그래서 상담 supervision에는 장, 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3년의 기간 동안 저는 나름 정말 치열하게 상담을 독학했습니다. 상담과 관련된 중요한 텍스트는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렇게 배운 걸 실제 상담에 적용하고자 항상 애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유명한 텍스트라고 해도 실제 상담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엄청 많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시대 배경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유명한 고수가 쓴 내용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상담의 근본이 없는 무자격 파이터에게는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필요했는데 실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내용이 의외로 꽤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무리 대단해보이는 심리치료나 상담 기법을 접하게 되어도 실제 내담자와 상담할 때 적용해서 유용하다는 걸 체감하기 전까지는 극도의 회의주의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반대로 기존 이론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supervision을 받을 때의 장점은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받아본 적도 없는 것의 장점을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아마도 실전 고수의 현장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게 무조건 장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어깨 너머로 엿본 상담 supervision은 뭔가 정석 틀을 알려준다기보다는 supervisor의 치료 사조, 그 supervisor의 supervisor가 누구인지, 심하게는 supervisor의 가치관과 인품이 오히려 supervision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상담 supervision을 다른 supervisor에게 여러 번 받은 케이스를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제각각 다른 supervisor의 comment(때로는 정반대의 접근인)로 supervisee 선생님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니까 심리평가 결과로는 상당히 분명하게 formulation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누구를 supervisor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제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접근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느낀 거지만 상담도 임상만큼 수련 환경과 양적, 질적 경험에 따라 내공의 차이가 크더군요.
배움의 장이 늘 그렇듯이 상담 supervision에서도(당연히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도) 항상 회의주의적인 시각에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뒤집어보고, 실제로 사례에 적용했을 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comment, 접근, 시각, 조언만 신뢰해야 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782
다른 supervisor들은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지만 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시작할 때 항상 supervision point를 물어봅니다.
사례를 준비한 supervisee가 발표의 대부분을 맡는 일반적인 supervision과 달리 저는 formulation을 제가 혼자 다 하기 때문에 좋게 보자면 발표자가 아주 편하지만 사례만 준비하면 아무 것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 있게 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는 매번 새로운 사례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formulation해야 하기 때문에 supervision 시간 자체가 제게는 엄청난 도전과 공부의 장이 되지만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무언가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거라고 하지요.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매 supervision 시간이 새로운 가설을 검증하고 결과물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시험장이 되었습니다.
제 supervision이 아니더라도 심리평가이든 상담이든 대개 사례를 준비하는 선생님은 굉장한 압박을 받지만 참관만 하는 선생님들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참석할텐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항상 본인이 발표를 하듯이 각 사례를 살펴볼 때 하나라도 확실하게 가져가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게 사례 발표에 동의한 수검자에게도 보답하는 길이고요.
그러려면 항상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수검자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어려움의 원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진단이 필요한 사례일까, 나라면 어떻게 상담 방향을 잡고 들어갈까 등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가설을 세우고 물어봐야 합니다.
상담자가 심리평가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임상에 비해 사례 수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주력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동성의 영향도 있습니다.
임상이든 상담이든 지금 내 일 네 일 가릴 때가 아닙니다. 심리평가, 상담, 심리치료, 센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해야 한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평가 supervision부터라도 항상 point를 찾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773
수요과 공급의 법칙에 따라 상담자의 공급이 수요 폭증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담 현장은 점차 단기 상담이 기본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도 이미 체계화된 상담 현장(대학, 청소년 등)에서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죠.
단기 상담의 시간적 한계(내담자의 심리적 상태와 특성을 알아내기 위한 최소 회기 수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심리평가를 도입할 수 밖에 없고 심리평가의 실시 시기를 결정하는 상담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임상 현장처럼 무조건 초기에 실시하는 routine system의 도입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은 대학의 학생상담센터에서 내담자가 방문하면 접수 시 선별심리평가(MMPI-2, SCT)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담자를 배정하는 시스템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기계적으로 MMPI-2에서 상승한 임상 척도가 많을수록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정해 supervisor급 상담자에게 배정하고 상승한 임상 척도가 별로 없으면 문제가 경미하다고 잘못 판정해 인턴 supervisee에게 배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나 통하는 판정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상담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정신장애로 진단받을 정도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보다 기질/성격 상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가 더 많이 방문하고 자아 동질성이 강한 성격 장애일수록 MMPI-2와 같은 구조화된 검사에서 심리적 불편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MMPI-2의 임상 척도만 높게 상승한 경우는 심리적 불편감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예후도 좋은 편입니다. 결코 지도 교수급 상담자의 능력이 뛰어나서 쉽게 호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MMPI-2에서 별다른 척도 상승이 없는데 상담자가 강렬한 전이-역전이를 경험하거나 투사, 반동형성, 조종 등의 방어 기제에 노출됨으로써 정서적 소진을 경험하고 상담이 조기 종결되는 건 이 내담자가 기질/성격 상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큰 것이지 인턴 선생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선별심리평가를 routine하게 실시하는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겠으면 최소한 선별심리평가에 TCI라도 추가하기 바랍니다. 적어도 상담자 배정이 반대로 되는 것만이라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테니까요.
태그 -
MMPI-2,
SCT,
supervisee,
supervisor,
TCI,
내담자,
단기 상담,
상담,
상담자,
선별심리평가,
심리평가,
정신건강의학과,
학생상담센터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520
다음 주는 상담심리학회의 자격증인 상담심리사 자격 인정 기간입니다. 수련 수첩을 제출해서 그동안 수련받은 내용을 점검받는 기간이죠.
제대로 된 수련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그 자격의 전문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의 인기 과열과 맞물려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수가 급증하면서 심사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 것도, 그래서 학회의 고충이 커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련 인정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정을 안 해 주거나 '트집'을 잡아 그렇지 않아도 수련 받느라 힘든 선생님들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올해는 그런 '트집'들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로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고자 제보를 받겠습니다.
제보할 내용은 간단합니다.
본인이 수련 인정과 관련해서 직접 경험한 내용 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주관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면 됩니다.
이 포스팅에 댓글(비밀 댓글도 괜찮습니다)로 남겨 주시거나 walden3@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여러 supervisor에게 받지 않고 한 명에게 몰아서 받았다고 문제삼음
: 대체 이게 왜 시비거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이 바닥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심리평가 supervisor를 일일이 찾아서 제각기 다른 supervision fee를 내고 자기랑 맞지 않거나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든 말든 supervisor의 수만 늘려서 수첩을 채우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건 supervisee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월권 행위입니다. 그런 강요를 할거면 supervision fee를 학회에서 지원이라도 해 주면서 오지랖을 떨든지....
* supervisor의 사인이 아닌 도장이 찍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배짱
: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바로 전의 수첩에는 '서명'으로 인쇄되어 있지만 구 버전의 수련 수첩에는 엄연히 '인'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하였을 때 임상심리학회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 전문가 자격 번호까지 각인된, 비교적 quality가 괜찮은 전문가용 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전에 제대로 공지하지도 않고 갑자기 서명이 아닌 도장은 인정할 수 없다니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무엇보다 왜 도장을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가 없습니다.
-> 상담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재차 문의한 결과 전문가용 도장은 일단 인정하는 걸로 일단락 되었으나 차후에 도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검증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저보고 도장을 갖고 학회로 출석하라고 소환장이라도 발부하려나 봅니다.
* supervisor의 자격 번호가 앞 번호가 아닌 경우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박사 학위가 없는 경우 1급 자격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최근에 제보 받은 내용인데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지만 직접 경험한 내용은 아니라고 해서 일단 잠정 포스팅합니다. 이와 관련해 불이익을 직접 당한 선생님께서는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용 확정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신 것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딴지'를 위한 '딴지 걸기' 행태를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황당 사례들은 정리해서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덧. 이번에 자격 취득을 목표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182
★★★☆☆
이미지 출처 :
아마존
supervision을 하면 할수록 좀 더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있습니다.
Carol Falender와 Edward Shafranske가 함께 쓴 이 책은 임상 현장의 supervision을 받으려는 인턴들을 위한 가이드 북입니다.
이전에 소개한
'Guidebook for Clinical Psychology Interns(1995)'가 너무 오래된 구닥다리 책이라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이 책은 2012년에 나와서 그래도 따끈따끈한 편입니다.
10개의 chapter들이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제시되고 있는데
I. Becoming a Competent Supervisee
1장. Beginning Clinical Practice Under Supervision
2장. Entering Competency-Based Supervision
3장. Expectations and the Path to Good Supervision
II. Developing Clinical Competence Through Supervision
4장. Developing Competence to Practice in a Diverse World
5장. Developing the Therapeutic Alliance and Managing Strain and Ruptures
6장. The Use of the Self in Psychotherapy
7장. Case Conceptualization: The Practice of Clinical Understanding
8장. Practicing Ethically
III. Advancing Reflective Practice in Supervision
9장. Transforming Supervision to Be More Successful
10장. Becoming a Reflective Clinician
목차만 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이드 북이라고는 해도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실질적인 tip이나 기술적인 부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인 조언을 원하는 분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supervisor의 입장에서 알아둬야 할 내용이 많지 않아서 다소 실망한 독서였습니다. 책 내용 상 그럴 수 밖에 없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대상은 임상, 상담 대학원생이지만 수련 환경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면 과연 바쁜 시간을 쪼개 이 책까지 읽는 게 수련을 받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이니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굳이 구입하지 마시고 북 크로싱 포스팅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175
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그동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느낀 것인데요. 하나는 전공, 출신 학교, 수련 과정의 차이 없이 대부분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겁니다. 돌려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supervisee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아마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똑같았겠지요)
formulation도 잘 되었고 작성한 심리평가보고서도 훌륭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하거나 감탄을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운이 좋은거지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멀었는데요 뭐"라는 반응이 나와서 맥이 풀립니다.
하도 답답해서 2010년에는 관련 포스팅('supervisee를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착각하는 supervisor')을 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supervisee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를 저는 수련 과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처벌 위주의 도제 중심이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명감과 겸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임상가가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자기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supervisor가 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자신이 supervisor가 되면 그저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첫 번째 문제와도 연결될텐데 많은 supervisee 선생님들이 자신이 제대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는지, 채점은 틀리지 않았는지, 터무니 없는 진단 가설을 세운 건 아닌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쓴 건지 등등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저도 흔히 하는 실수라서 지적하면 제가 놀랄 정도로 미안해 하거나 심하게 주눅이 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굉장히 불리합니다. 그 불리함은 심리평가를 진행할 때 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자신감이 없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고 불안 수준이 높으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라포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상담 회기를 늘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북돋고,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불안을 애써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임상가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내담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불안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절대로 훌륭한 임상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진주라도 시궁창 깊숙이 쳐박아 놓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자신감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가 과연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 수준은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기 전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하세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결함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067
제목만 읽으면 좀 복잡해 보이지만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임상,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는 지인으로부터 상담을 해 달라거나 심리평가를 해 달라는 의뢰를 드물지 않게 받습니다. 당연히 본인이 해서는 안 되죠(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후배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해 주는 것도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는 심리검사에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고, 선배는 수련 과정의 심리검사 requirement를 충족할 수 있어 win-win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이중 관계입니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평가받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supervisor나 선배에게 지인을 심리평가, 상담해 달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의뢰를 받은 임상가가 그냥 진행하면 될 것 같지만 이 역시 다중 관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supervisor-supervisee 관계에 임상가-의뢰인의 관계가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supervisee 선생님이 지인을 평가, 상담 의뢰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 다중 관계를 피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됩니다.
1.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말고 의뢰하려는 지인이 직접 contact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이메일 주소, 소속 기관의 유선 번호 등)만 제공합니다.
2. 이 때 연결하고자 하는 임상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지인에게 제공하면 안 됩니다. 연락을 받은 임상가가 무심결에 누구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인지 client에게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의뢰된 것인지를 아는 순간 실질적인 이중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좀 더 엄중하게 하려면 의뢰받은 임상가가 자신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가르쳐 주지 말라고 지인에게 당부를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3. 의뢰하고자 하는 임상가에 대한 연락처 정보를 지인에게 알려주는 순간 이후 과정과 내용에 대한 모든 호기심을 내려놔야 합니다. 심리평가 결과나 상담 내용에 대한 feedback을 지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 지인의 심리평가나 심리치료/상담을 아는 임상가에게 맡길 때,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중 관계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901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전직 스포츠 기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John Karter가 심리치료전문가가 되기 위한 6년의 수련 기간 동안 자신이 경험한 내용과 동료들로부터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영국의 'The Psychotherapy Review(현재는 절판됨)'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겁니다.
저자가 현재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Gambling Care'에서 도박 중독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이력이 제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치료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니만큼 수련을 준비하는 supervisee들이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 있을 것 같다는 제 기대도 한 몫 했지요.
그러나 이 책은 어느 쪽으로도 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우선 내용. 목차를 먼저 보시죠.
1장. 불가능에의 도전
2장. 더 나아지기 위한 변화
3장. 길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술
4장. 책을 의존하는 데서 오는 위험들
5장. 수퍼비전 증후군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
6장. 주의 : 천천히 나아가기
7장. 밀착상담
8장. 자유의 쓴맛
차례를 읽으면서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임상/상담 수련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뻔한 내용 뿐입니다. 그다지 공감이 되지도 않거니와 문제는 저자가 글을 쓰는 스타일인데요. 스포츠 기자라서 그런건지, 칼럼니스트라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체가 시니컬한데다 겉멋과 말장난이 가득해서 경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심리치료자가 되었지? 영국은 이런 사람도 전문가가 될 수 있을만큼 수련 과정이 어설픈가?'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저자가 정신역동적인 치료자로 훈련받았기는 했지만 인본주의, 실존주의 등을 통합하는 접근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서 나름 꽤 기대했는데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다음으로 번역. '프로이트와 인간의 영혼(2001)' 이후로 이렇게 형편없는 번역서는 정말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제 기준으로 형편없는 번역서란 읽으면서 차라리 원서를 읽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데 이 책이 바로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오상우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다고 해서 저를 더 충격에 빠뜨렸는데요. 오상우 선생님의 번역서를 읽어본 기억이 없는 저로서는 이런 quality의 번역서를 내셨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수준입니다. 차라리 초벌 번역가가 직역을 했는데 오상우 선생님이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출판하셨다는 말을 믿겠습니다.
어쨌거나 내용도 건질 것이 없는데다 번역도 엉망이어서 임상/상담 수련을 받는 분들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권할 수가 없는 책입니다.
2014년 벽두부터 제 심리학 공부 의욕을 팍 꺾은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ㅠㅜ
덧.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북 크로싱 하지 않습니다.
태그 -
John Karter,
supervisee,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Gambling Care,
The Psychotherapy Review,
도박 중독자,
상담,
수퍼비전,
심리치료전문가,
오상우,
임상,
치료자,
프로이트와 인간의 영혼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531
임상, 상담 불문하고 최소한 supervisor라면 이 정도의 역할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정확한 지식 전달
임상가들이 수련 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지식과 정보를 그동안 학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면 이미 현장 supervisor들의 애로사항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만 제가 10년 이상 학회를 지켜본 결과 난망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각개격파, 구명도생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수련 현장에 따른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인데 그나마 많은 환자가 몰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과 접점이 많아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밖에 없는 종합병원급 기관은 일이 많아서 힘들어 죽을지언정 실력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or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니까요(물론 그런 기관에서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만 죽이고 앉아 있는 무능한 supervisor도 있습니다만 그건 개인적인 문제이니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고요). 예를 들어 최근에 DSM-5가 출시되었는데 번역판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눈치만 보는 건 supervisor의 자세가 아닙니다. DSM-5는 도입 시점이 문제이지 DSM-IV를 계속 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당장 원판을 구입해서 읽고 정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북 세미나 한답시고 엄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에게 번역, 정리 맡기는 짓 하지 마시고요.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reference가 있는 지식과 자신의 체험에 기반한 지식을 구분해서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윗 supervisor에게 배웠던 지식만 알음알음 끌어모아서 울궈먹을 수 있거든요. 제가 최근에 제 supervisee 선생님들께 reference를 자주 물어보는데 제대로 답변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supervisor들께서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그 지식이 항상 업데이트되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2. 동기 부여
첫 번째 역할로 말씀드린 정확한 지식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 부여이며,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확한 지식 전달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임상, 상담 현장의 일이 재미있고, 호기심이 샘솟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야 계속 하고 싶고 그래야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련 과정에서 동기마저 충천하지 않다면 수련 과정을 버티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에 빠지거나 쉽게 질려서 무력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건 supervisor 스스로가 동기 부여가 안 되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 없거나 무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진 supervisor라면 이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supervisee들까지 함정에 빠뜨려 공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가능하면 동기 부여는 사명감보다는 흥미 유발과 재미 찾기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임상, 상담 현장은 사명감과 소명 의식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내담자/피검자의 문제를 다룰 때 진지해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임상가들에게 엄숙주의를 강요하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도제식 수련제도 때문에 힘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이상한 교조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3. 핵우산 기능
이건 다른 직능 영역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는 supervisor에게만 해당됩니다만 개업 상담센터나 대학 교수가 아닌 이상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supervisor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맞을 겁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들과 일을 하거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의 선생님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관에 속한 supervisor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핵우산 기능합니다. 여러 직종이나 직능의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는 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의사전달과정이 모호하거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때로는 똥물이 튀는 것이 싫어서 희생양을 찾아서 떠넘기는 일도 생기게 되고, 업무 진행 상 약한 부서나 조직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죠. 그런데 그럴 때 자기 하나 살자고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옆으로 비켜서거나 의사를 비롯한 다른 직능 전문가의 뒤에 숨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서서 나 하나만 믿고 의지하는 supervisee들을 위해 산화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뭐 그런다고 supervisor가 잘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엄살 부리지 마시고요). 유능한 중재자가 못 된다면 최소한 싸움닭이 되는 것 만큼은 피하면 안 됩니다.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론조사하면 supervisor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만 내빼거나 쏟아지는 압력을 몸으로 막아내기는 커녕 완장찬 마름처럼 되려 횡포를 부릴 때가 당당히 1위가 될거라는데 제 금쪽같은 돈 500원을 걸겠습니다.
존경받는 supervisor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실력과 성품을 겸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쓰며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랫사람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supervisor의 역할이고요.
오늘도 현장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계신 수많은 supervisor 선생님들 힘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장래의 동반자가 될 supervisee 선생님들이 모두 잠재적인 우군이니까요. 그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태그 -
DSM-5,
DSM-IV,
Reference,
supervisee,
supervision,
supervisor,
교수,
동기 부여,
레지던트,
상담,
상담센터,
역할,
임상,
임상가,
정신건강의학과,
지식 전달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396
전능 환상은 멜라니 클라인이 주창한 개념인데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치유를 위한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내담자의 치유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오판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전능 환상은 내담자가 진정한 치유와 회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담자의 성장도 저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라서 상담자는 전능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상담자가 초심자일 때는 전능 환상보다 낮은 자존감 문제나 전이-역전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전능 환상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상담이 몸에 익으면 어떤 상담자라도 한번쯤은 전능 환상의 시험대에 서게 됩니다.
전능 환상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거기에 빠져 있을 때는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저 뭔가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좋은 느낌과 함께 상담 전반이 어렵지 않게 파악되고 내담자에게 어떤 말을 할 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도 대화가 술술 풀려가는 기분이라서 상담이 재미있다고 느끼고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전능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상황을 한 두가지 정리해봤습니다. 두 상황 모두 건설적인 비판은 없고 칭찬만 난무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경우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내담자가 상담 장면에서 더 이상 갈등이나 어려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상담자를 칭찬만 하는 경우입니다. 보통 상담자를 이상화하기 때문에 상담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상담자의 일거수 일투족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출석 및 과제 수행이 완벽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담자는 라포가 굳건히 형성되고 상담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습니다만 두 가지를 통해 전능 환상 유무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하나는 상담 목표의 중간 점검입니다. 상담 목표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상담자가 내담자보다 높은 곳에 앉아 내담자를 내려다보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내담자가 상담자의 상담 기법이나 가치관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역전이가 일어나는지를 분석해 봐야 합니다. 생각의 차이는 당연한 것임에도 자신만이 옳고 내담자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면 전능 환상일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상담 현장과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자신의 동료나 선후배, supervisee들이 더 이상 건설적인 비판이나 조언을 하지 못하고 첫 번째 경우처럼 칭찬만 할 때입니다. 물론 실제로 상당한 내공을 갖춰 칭찬받을만한 실력을 보이는 상담자일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런 칭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기분이 마냥 우쭐해지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지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할텐데도 그들의 칭찬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넙죽 받아들이는 건 전능 환상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일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경우보다는 첫 번째 경우가 좀 더 상담자에게 익숙하면서도 쉽게 전능 환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전능 환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상담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초반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초심을 점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태그 -
supervisee,
내담자,
라포,
멜라니 클라인,
상담,
상담 기법,
상담 목표,
상담자,
자존감,
전능 환상,
전이-역전이,
치유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367
2012년 8월과
올해 2월에 이어 세 번째로 추천드리는 종합심리평가 워크샵입니다.
그동안 추천 포스팅을 하면서도 어떤 분들인지 얼버무리면서 대충 소개를 드렸는데 이번에는 이름도 짓고 본격적으로 출범하신 것 같습니다.
이름하야 D.K. Academy의 Full Battery 심리평가 워크샵입니다.
D. K. 아카데미는 '지식 공유'를 목표로 오랜 친구이자 동기인 두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좌우명으로는 '배워서 남주자', '청출어람' 등이 되겠습니다. ^^
이번 워크샵에서는
* 심리검사 도구를 다루는 방법* 면담과 행동 관찰* 검사 실시* 가설 설정* 해석* 보고서 기술 방법
에 이르기까지 Full Battery 심리평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 대상 : 임상심리 supervisee 선생님, 심리평가를 주 업무로 하는 심리전공졸업자(대학원생 제외)* 정원 : 선착순 8명* 참가비 : 10주 과정 총 50만 원(분할납부 가능)* 일시 : 2013년 9월 27일 ~ 11월 29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서 10시(3시간), 총 30시간 과정* 장소 : 지하철 시청역 인근 스페이스 노아, 스파크룸(www.spacenoah.net)
신청을 원하는 분들은
http://timewithmind.tistory.com/106이나
http://cuore123.tistory.com/28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두 블로그는 이 워크샵을 인솔하는 두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이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신청 관련 외 문의 사항은 dkacademy3@gmail.com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제가 3번이나 추천 포스팅을 하는 워크샵이니 quality에 대해서는 두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
태그 -
DK Academy,
Full Battery,
supervisee,
면담,
심리검사,
심리평가,
심리평가 워크샵,
심리평가보고서,
워크샵,
임상심리,
해석,
행동 관찰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348
심리치료나 상담 supervision을 받고자 할 때 정작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supervisee들이 많습니다.
한 회기의 verbatim을 몽땅 풀어 가야 하는지,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을 회기 별로 묶어서 요약해야 하는지, 염두에 두고 있는 심리치료 기법에 대해 정리를 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쉬운데 supervision을 받을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guideline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래의 질문들에 차근차근 답을 하다 보면 뭘 준비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 A : 내담자의 현재 문제를 간단히 설명하라
B : 이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 회기에서 역동(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당신과 내담자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라
* A : 배경 정보를 포함하여 회기 중 알게 된 다른 중요한 정보를 설명하라
B : 회기 중 논의된 주요 문제들을 요약하라
* 현재 문제(들)와 관련된 문화적 또는 발달 정보를 설명하라
* A : 내담자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처음 했던 개념적인 해석은 무엇인가
B :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한 개념적 해석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DSM 체계를 고려할 때 당신의 진단적 인상을 나열하라
* A : 이 내담자에 대한 최초 치료(상담) 계획을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하라
B : 이 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을 바탕으로, 다음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 이 회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당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는가
* 이 사례의 어떤 양상이 당신에게 윤리적 염려를 불러일으키는가
* 회기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무엇이든 공유하라
* 당신의 supervisor에게 어떤 구체적인 질문이 있는가
A : 최초의 상담 회기
B : 현재 상담 회기
출처 : 'Fundamentals of Clinical Supervision, 3rd(by Janine M. Bernard & Rodney K. Goodyear, 2004)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태그 -
DSM,
supervisee,
supervision,
supervisor,
verbatim,
내담자,
상담,
심리치료,
역동,
치료,
회기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265
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뭘까요?
바로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술이 아직 무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는 지식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정보의 무더기에 불과합니다.
대학 교수든 학원 강사든 간에 그들의 강의가 훌륭한 것은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물론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만) 반복된 강의로 인해 그들의 지식이 매우 정교하게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무술의 고수가 된 것이지요.
강의 기술만 연마해도 될 것 같지만 결국은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고수는 자신이 고수라도 결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면서 폼만 재는 고수는 결국 더 뛰어난 고수의 칼날에 스러지게 되죠.
임상이든, 상담이든 3년차 이하의 전문가 선생님들은 잘 들으세요. 전문가가 되고 난 뒤 3년이 지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심리평가, 심리치료, 상담 supervision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supervisor에게 supervision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뭘 알아야 하지’,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 해야지’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세요.
supervision은 supervisee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지식을 통합해 진짜 전문가, 진짜 고수가 되기 위해 하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supervisee도 함께 성장하게 되지만요.
본인이 supervision을 해도 괜찮다고 자평하게 되는 그런 전문가가 되는 그 날은 지금 당장 supervision을 시작해야 비로소 오는 겁니다.
고수가 되고 나서 supervision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에요. supervision을 시작해야 고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된 지 3년이 지나고 사람들이 선생님을 senior로 평가하게 되면 실력과 상관없이 그 때 가서는 supervision을 시작할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게 되니까요.
물론 나중에라도 학교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된 후 교수라는 타이틀의 힘으로 supervision을 시작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supervision이 과연 제대로 된 supervision일까요?
내가 뭘 알아야 supervision을 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본인이 아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하세요. 어디에 정리하건 상관없습니다. 저처럼 블로그에 정리하건, 녹음을 하건, 워딩해서 파일에 모아두건. 자신이 아는 것들을 꾸준히 정리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깁니다. 그걸 supervision의 재료로 사용하면 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분들은 더 이상 늦기 전에 어떤 영역에서든 supervision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supervision은 능력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241
저는 개인적으로 상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제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왜곡된 supervisor-supervisee 도제 제도의 정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지도 교수의 권위에 굴종하고 비합리적인 처사에 굴복하는 걸 습성화했던 패턴이 전문가 수련제도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supervisor는 어디까지나 supervisee가 향후 적절히 기능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support하는 사람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심한 경우 수련 과정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학회가 방임해왔죠.
결국 그 결과로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임상가들의 자존감이 처음부터 바닥인데다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자신감이 올라갈 생각을 안 합니다. 저는 이게 다 무조건 혼내기만 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학문적으로 토론하고 임상적으로 숙의하기는 커녕 무조건 깔아뭉개기만 하는 못된 supervisor들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수련 제도의 시스템 문제라고 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많이 빠졌습니다만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상담자들이 상담을 하게 되면 상담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내담자가 좋아지는 것 같고, 상담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고, 명절이 되면 간단한 선물이라도 챙겨오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상담에 자꾸 빠지고, 연락이 잘 되지 않고, 그러다가 임의 종결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의 무능을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우울에 빠집니다.
내담자의 회복과 치유,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모두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일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에요. 밝게 웃으면서 꼬박꼬박 상담 시간에 참석하는 내담자의 모습이 자기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의 발동일 수도 있고 말없이 상담에 불참한 내담자가 사실은 상담의 효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상담자에게 종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 차마 연락을 못하는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담자가 진정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회복하고 성장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되겠지요.
그럴 때까지
상담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내담자의 회복이 곧 나의 실력이라는 식의 단선적인 결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고 내담자를 통해 배운다는 겸허함입니다.
그러니 상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담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태그 -
supervisee,
supervisor,
내담자,
도제 제도,
상담,
상담심리전문가,
상담자,
성장,
임상심리전문가,
자신감,
자존감,
치유,
회복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181
작년 8월에 한번 소개드렸던
심리평가 워크샵의 두 번째 공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셨던 워크샵이었는데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돌아왔습니다.
Full Battery에 포함된 검사 도구를 모두 포함(TAT까지 포괄)하고 있고 검사의 실시와 해석,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까지 intensive하게 다루는 건 똑같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좀 더 효율적이면서도 집중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참석자의 수를 8명으로 제한한다고 합니다. 지난 번처럼 선착순이고요. 지난 번에는 반개방형이라서 모든 session에 강제 참석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 워크샵은 폐쇄형이라고 하네요. 좀 더 강도높게 진행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레벨 차를 줄이기 위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을 주 대상으로 하고 거기에 심리평가를 주 업무로 하는 심리학전공자까지만 허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인이 참석 가능 대상자인지는 직접 문의를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 10회기로 진행되는 이번 워크샵은 3월 6일에 시작해서 5월 8일에 끝나는데 매 회기는 지난 번처럼 3시간 동안 진행된다고 하네요. 참가비가 30만 원이니 매 회기 3만 원, 시간 당 1만 원 꼴이네요. 너무 저렴하게 책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워크샵을 진행하는 전문가 선생님은 제 supervisee 출신이기도 하고 제가 실력을 보장하는 분이니 quality에 대한 걱정 없이 들으셔도 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첨부 파일을 참고하시고 문의 사항이 있거나 신청하려는 분들은 dkacademy3@gmail.com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175
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 심리평가보고서를 절대로 먼저 보지 않습니다. supervision point를 물어보고 대략적인 배경 정보를 확인(이것도 생략하고 blinded supervision을 할 때가 많음)한 뒤 곧바로 검사 원자료를 살펴봅니다.
검사 실시 순서대로 원자료를 살펴보면서 가설을 검증하고 case formulation을 하고 난 뒤 맨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함께 보면서 진단이 틀린 곳은 없는지, 해석이 잘못된 부분을 찾고 피검자를 기술하는데 더 필요한 내용은 없는지 등을 점검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면 supervisee가 피검자를 보는 인식틀에 자신도 모르게 갇혀서 다른 조망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supervisee가 MDD 진단을 내려왔다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 범주 내에서만 피검자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문구나 수정하고 몇 가지 다른 표현이나 추가하는 선에서 그치고 맙니다. 그건 제 기준에서는 supervision이 아니라 심리평가보고서 교정입니다. 아시겠지만 supervisee가 보고서 교정이나 하자고 supervision을 청하는 것이 아니죠.
물론 심리평가보고서를 보지 않고 원자료 만으로 소위 피검자의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꾹 참고 반복하면 실력이 그야말로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촉'도 날카로워지고요.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고 나면 아무리 어려운 케이스를 가져와도 당황하지 않게 됩니다.
이 내공이 부족한 supervisor일수록 예전에 실시한 보고서, 의사의 진단, chart에 기록된 정보, 피검자의 주관적 호소에만 목을 매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안전지향으로 가게 되죠. 그거야 말로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믿고 온몸으로 버티세요. 심리평가보고서는 맨 나중에 보시고요.
덧. 실력을 더 빨리 늘게 하고 싶다면 원자료도 미리 받지 말고 현장에서 supervisee와 함께 보세요. 온라인으로 미리 전송받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 supervisor로서의 자세는 바람직하지만 그만큼 실력은 더디 늡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045
대면 supervision의 경우 supervisee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습니다.
* 피검자에 대한 정보 요약* 검사 원자료 사본* supervision을 받고 싶은 point 요약* 심리평가보고서 사본
간혹 진단이 중요한 피검자의 경우 심리평가보고서를 열심히 썼는데 막상 supervision을 받아보니 내가 내린 진단이 완전히 틀렸고 당연히 틀을 완전히 다 바꿔야 해서 허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죠. 그러면 앞으로 자신이 없고 formulation도 잘 안 되는 피검자는 아예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자료만 들고가서 supervision을 받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생각하는 supervisee가 많습니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을 때에는 무조건 보고서를 써 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실력이 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진단을 완전히 헛짚은 보고서라도 그걸 쓰는 과정에서 평가자의 고민과 노력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게 됩니다. 보고서를 쓰는 동안에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이 되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데 supervision을 해 보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지 구분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꽤 많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지 그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supervision을 오래 받아도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둘째. supervisor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supervisor와 함께 할 때에는 formulation이 잘 되는 것 같지만 그건 자신의 실력이 아닌 supervisor의 실력입니다. 나중에 혼자서 해 보면 자꾸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그냥 supervisor에게 가서 물어봐야지 하는 식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고민하지 않으니 공부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니 실력이 늘 턱이 없습니다. supervisor에 대한 의존성이 심해지면 나중에 전문가가 되어서도, 교수가 되어서도 계속 supervisor만 찾게 됩니다.
셋째. 자신만의 강점을 살릴 수 없다.
아무리 우수한 supervisor라도 보고서를 읽어 봐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강점인지 코칭할 수 있습니다. 원자료만 갖고 formulation을 하면 당연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하겠지요. 그러면 supervisee의 특징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월덴지기 클론 보고서'가 되는 것이죠.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supervisor에게 supervision을 받으면서 자신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 supervisor들의 강점을 잘 흡수해서 자신만의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부끄럽고 엉터리 진단을 내린 보고서이고, 나중에 거의 새로 쓰는 한이 있어도 supervision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심리평가보고서를 써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935
임상심리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을 만들기 이전 소위 임상심리학 1세대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학과 병원에서 맨 땅에 헤딩하면서 임상심리학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몸으로 굴렀습니다.
그 엄청난 고생의 결과로 임상심리학이 태동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임상심리학자의 양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세대도 사실 심리학과 교수의 자리는 차지했지만 병원은 의사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터라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장착할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임상심리학자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요.
임상심리학 2세대 또한 1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리를 지키고 양적으로 확장하는데 전력했기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만 역시나 수련 과정의 체계화는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성과를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각개전투로 점철된 세월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학번들이 임상심리학 3세대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본격적으로 수여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체계적인 수련을 받은 세대입니다(그 이전에 수련도 받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소급해서 챙긴 분들은 당장 내놓으셔야 합니다. 그거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는 분들이 왜 그렇게 찌질하게 자격증에 집착하십니까? supervision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더 이상 후학들 망쳐놓지 말고 반납하세요).
문제는 1세대에서 2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표준화된 수련과정의 틀이 마련되지 않은터라 3세대가 수련 받은 환경의 차이가 병원마다 너무 큰데다 이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여전히 표준화된 수련 절차라는 것이 없었던 겁니다(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그래도 거의 비슷한 상황(열악한 측면에서 동등한 것이지만)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많고 체화된 노하우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세대부터는 수련 받은 기관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3세대가 supervisor가 되면서부터는 개인차에 따라 그 아래에서 수련받은 supervisee의 quality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3세대에게서 수련을 받은 4세대 임상심리학자들이 supervisor로 포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자리는 이미 선배들이 어느 정도 닦아놓은 길입니다. 그래서 일의 양은 많아도 모든 걸 몸소 처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는 무급 '수련생'을 뽑아서 맡기고 연구는 연구원 뽑아서 하고, supervision은 자기가 배운 만큼만 가르치니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 시간에 학연따라 지도 교수에게 인사 다니거나 같은 병원 출신들끼리 뭉쳐서 책을 번역하든 검사 도구를 표준화하든 하면서 의사들 비위 맞추고(이건 의사들의 잠정적인 진단에 맞춰 심리평가보고서의 진단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바꾸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띵까띵까 살아도 됩니다.
그래서 생기는 단적인 문제는 심리평가보고서 quality의 하락입니다. 물론 예전에 제가 수련을 받을 당시에도 심리평가보고서의 질적인 차이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Big 5에 해당하는 대형병원에서 나오는 보고서까지 의심받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자인 제가 봐도 그대로 믿을 만한 보고서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략 2년 전부터 어느 누가 쓴 보고서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원자료를 복사해 오라고 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reading합니다. 그만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관에 소속되어 전담 supervisor가 버젓이 있는데도 수련 curriculum을 신뢰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 유급 supervisor를 찾아다니는(그나마도 거의 없지만) 상황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부터 잊을만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련 제도의 정비와 표준화된 체계 마련을 목소리 높여왔던 겁니다.
제가 꿈꾸고 있는 심리치료의 보강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심리평가마저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 된 이상 임상심리전문가의 몰락은 명약관화합니다.
임상심리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은근히 사회복지전문가를 무시하지만(참 한심한 정신머리입니다만) 그럴 것 없습니다. 그 분들이 하는 고생과 처우를 임상심리전문가들도 똑같이 받게 될테니까요. 이미 사회복지전문가의 명령을 받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있죠. 그게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입니다.
학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접은 이상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조만간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 분야의 블루 오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기대해주세요.
태그 -
supervisee,
supervision,
supervisor,
사회복지전문가,
심리검사,
심리치료,
심리평가,
심리평가보고서,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
임상심리학회,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531
저는 기본적으로 심리치료나 상담 supervision을 할 때 형식을 별로 따지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마다 새로 상담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구조화 해야 하는지 상의하기 위해 case를 들고 오기도 하고, 이미 어느 정도 상담이 진행되었는데 상담 목표를 중간 점검하기 위해서나 또는 종결 시점과 방법에 대해 궁금해서 오는 선생님도 있죠. 물론 자신이 상담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 회기의 상담 축어록을 풀어서 갖고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상담 supervision을 받았던 선생님들의 경우 당연히 축어록(verbatim)을 풀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 분들일수록 한 줄 한 줄 분석하듯이 소위 '깨부수는' supervision에 익숙하고요.
그런 방식의 supervision이 전혀 필요없다고는 말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상담을 잘하는데 도움이 되는 supervision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supervision 방식이 교수들이 학위 논문을 지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어떤 논문이든지 비판의 눈으로 보면 흠이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능숙한 상담자라고 해도 한 회기를 녹음해서 통째로 풀어내면 흠결투성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개입했냐', '상담자가 내담자가 하는 말의 1/3이상을 말하면 어떻게 하냐', '이 시점에서는 pause를 더 주어야지', '직접적인 조언을 하면 어떡하냐' 등등
말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판적으로 supervision하는 상담자께서는 정말 그렇게나 완벽하게 상담을 하고 계십니까? 본인의 상담 축어록을 풀어서 이름 지우고 내놓으면 비판 하나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또 하나, 그렇게 지적을 당한 부분이 정말 다음 상담에서 개선이 되던가요? 상담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분석되고 적용될 수 있던가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던데요.
제가 경험한 상담은 무술과 같았습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지만 그저 내담자를 돕기 위한 일념 하나로 들어가서 내담자에게 얻어맞고, 깨지고, 그러면서 내담자에게 배우고, 내담자의 감정에 동화되고, 같이 호흡하고 생각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고, 함께 뒹굴다보니 내담자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길을 찾고 용기를 얻어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성장의 무술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초식은 익혀야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무술에 대한 열정과 연습이 고수를 만들듯이 상담은 스캇 펙이 그렇게 강조했던 내담자에 대한 사랑과 사명의식, 그리고 연습만이 진정한 상담자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pause가 25초라도 상담자가 개입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식의 기계적인 분석은 상담자의 기술은 증진될 지 몰라도(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지만) 절대로 내담자와 함께 호흡할 수 없고, 내담자와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상담자는 절대로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supervisee가 원하는 상담 supervision 또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담 supervision은 축어록 교정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414
저는 대면 supervision이 끝날 때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질문이 있는지 꼭 물어봅니다.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더 큽니다.
첫째, supervision을 준비할 때 그냥 습관적으로 오지 않도록 항상 자신이 준비하는 사례에 대해 고민하고 궁금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질문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supervision에 익숙해지게 되면 사례를 점검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supervision을 받으러 오게 됩니다. 그건 저나 supervisee 선생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질문이 있는지 계속 물으면 압력을 해소하기위해서라도 질문거리를 만들기 위해 한번이라도 더 사례를 살펴보게 되더군요.
둘째, supervisee 선생님들이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가 되어 자신도 supervision을 해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이 현재 당면한 일들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또 supervision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고, 또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supervision은 꼭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supervisor가 되어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연습을 하면 새로운 관점에서 사례를 보는 눈이 길러집니다.
저는 가끔 심리평가보고서를 쓰기 전에 supervisee의 입장에서 supervisor에게 질문을 한다고 가정하고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일종의 자문자답을 하는 것이죠.
그게 의외로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385
제게 심리평가/심리치료의 supervision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supervisee 선생님의 수가 어느새 30명이 넘었습니다. 거의 40명에 육박하는군요.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제가 6년 째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고 있지만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는 소리를 여전히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수님들은 대체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건지...
그나마 supervisor랍시고 supervision을 제공하는 전문가들도 자질 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보면 제 얼굴에 침뱉기에 해당하는 이런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런 전문가들에게 주제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저도 언제든 똑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글로 남겨 미리 제게 경고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면 supervision을 한 뒤 원하는 분들에 한해 수정한 내용을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점검하는 소위 '첨삭 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워낙 손 볼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잘 써온 분도 계시고 대면 supervision이 끝난 뒤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게 되어(이제와서 생각을 해 보면 보고서에 들이는 정성과 고민은 저보다 나은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감을 잡고 키워드를 찾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을 도와드리는 것 뿐이죠) 첨삭 지도를 해도 문구를 매끄럽게 다듬거나 오, 탈자를 점검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comment를 한 보고서를 발송하면서 formulation이 잘 되었다는 솔직한 평을 보내면 '너무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우울한 일상에 힘을 얻었다'는 식의 어리둥절한 답장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positive feedback마저도 인색한 harsh한 supervisor가 천지라는 사실을 말이죠. 대면 supervision에서도 온통 '네가 준비해 온 만큼만 supervision을 봐 준다', '어떻게 레지던트가 이런 것도 모르냐', '이 용어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썼냐,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어떻게 건방지게 다른 superviser에게 supervision을 받겠다는 말을 하냐'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고 상처를 주는 supervisor가 얼마나 많은 지 알게 되었고 충격 받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가 주로 군 생활 할 때 많이 들은 말인데 살상을 목적으로 한 조직에서 듣던 말을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는 전문가 조직에서 또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하게 키워야 강군이 된다는 말도 군대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전쟁이 나면 그 상사부터 쏴 죽이겠다고 이를 가는 적개심 가득한 사람들만 양산하지 군 전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과연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무기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전 학교에 있을 때에도, 군에 있을 때에도, 수련을 받을 때에도 혼이 나면서, 면박을 당하면서 배웠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밉기만 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던 기억만 있습니다.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는 supervisor들에게 진심으로 묻습니다. 정말 그렇게 면박주고 모욕하고 혼을 내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실력자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열등감을 supervisee에게 투사하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acting out하는 히스테리 supervisor에 대해서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말해봤자 제 입만 아프고 그 사람의 인생에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임상 분야가 얼마나 좁은데 그렇게 평판 관리를 안 하십니까? 저처럼 사람 가리고 외곽에서 은둔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온 정보만 모아도 당장 퇴출되어야 할 전문가(명칭이 아깝습니다)가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제가 편하게 대해도 명색이 제가 superviser인데 supervisee들이 실상을 모두 말 할리가 없을텐데도 남 부끄러워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책으로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미 몇 차례 비슷한 포스팅을 했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supervisee들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고 미래의 내 동료입니다. 어려운 길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들이고요. 그리고 야단치고, 화내고, 혼 낸다고 실력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더 격려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읽어보라고 참고 자료를 주세요. 화만 내지 말고요.
제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잣대로 삼는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약자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supervisee가 못 돼고 글러먹었어도 이들이 약자입니다. 그러니 저는 앞으로도 이들의 편에 설 겁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354
전에 올린
'임상심리평가보고서 이렇게 쓰면 안 된다' 포스팅에 소설을 쓰는 것도 문제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 포스팅은 그 댓글을 읽었던 당시에 들었던 생각을 나중에 정리한 것입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를 쓰는 방식'이라는 글에서 저는 의뢰 사유와 보고서의 용도, 보고서를 읽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등에 따라 심리평가 보고서를 융통성있게 작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기술 방식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이고요.
하지만 소위 '소설'을 쓰는 것은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S병원의 작성 방식으로 알려진 이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은 소설의 한 대목을 읽듯이 풍부하고 유려한 문체로 드라마틱하게 피검자의 심리를 묘사하는 스타일이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최근에는 S병원 출신들을 중심으로 supervisee에게 이 방식의 작성법을 강요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제 귀에 들려오고 있는데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소설'처럼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의 문제는 평가자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관점에 침잠될 수 있어 결국에는 아집과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고서 작성 시 검사 sign을 함께 기술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evidence-based approach에 따라 그렇게 작성한 근거를 댈 수 있어야만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피검자는 매우 우울한 상태에 있다'고 기술하고는 근거도 없이 '내가 보니까 딱 우울한데 뭘'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평가자는 심리평가를 해서는 안 되고 미아리에 가서 돗자리를 펴는 것이 맞습니다.
단 하나의 검사 sign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다른 검사 sign을 통해 교차 검증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매번 supervision할 때마다 애를 먹는데 '소설가'들까지 rush하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133
아래는 임상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서 올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응시 예정자에게 발송한 메일 중 일부입니다.
닫기
안녕하세요, 수련위원회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 필기 및 면접시험 자격심사에 응시하시는 분들은 다음 사항들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3) 심리평가 -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1항에 따르면, 3년 동안 심리평가 수련 중 최소 30례 이상은 종합평가(Full Battery)를 시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이번 수련완료 심사에는 3년 동안 시행한 심리평가 중 종합평가 30례를 함께 첨부(인쇄물)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 모든 심리평가는 수련감독자의 지도하에 실시되어야 하며 3년 동안 300시간 이상 수련해야 한다. 이중 50%까지는 신경심리평가, 재활기능평가로 할 수 있으며, 종합평 가(FULL BATTERY) 30례 이상으로 한다. (박사 과정생은 총 200시간 및 종합평가 20례 이상, 박사학위 취득자는 총 150시간 및 종합사례 15례 이상으로 한다.) 단, 수 련시간 산정에 있어서 종합평가에 대해 1사례 당 8시간까지만 산정할 수 있다. |
- 수련수첩에 기록 시, 실시검사 란에 “종합평가”“종합신경심리평가”“성격검사” 등으로만 기재하시 마시고, 각 평가들이 어떤 검사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 1항이 심리평가 30례를 인쇄한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도록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위원회의 이 요구에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레지던트 선생님이 잘 정리해 주신 것처럼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요구가 의도가 무엇이었느냐와 상관없이 학회의 행정편의주의에만 입각한 것이라는 겁니다.
우선 제출되는 심리평가 보고서에 포함되는 피검자가 무시되었습니다. 치료 사례를 제출할 때에도 내담자의 동의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학회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구하지 않은 심리평가 보고서를 제출(그것도 30케이스라면 대체 어떻게 동의를 구하라는 말인가요?)하라는 요구는 아무리 익명 처리를 한다고 해도 평가자와 피검자 관계를 생명처럼 생각해야 하는 학회에서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고도 윤리 교육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하겠습니다.
또한 이 요구는 현장의 상황을 무시했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는 의무 기록입니다(물론 학회는 이런 것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련 기관은 병원 장면이고 간단한 의무 기록도 의무 기록 확인을 거쳐 발급하는 의료 기관에서 아무런 절차 없이 의무 기록 제출을 허가할 리 만무하니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입니다. 제가 병원장이라면 허가 안 할겁니다. 수련 레지던트에게 행정 절차를 무시한 기록 제출 부담을 안기는 일입니다.
이 요구는 수련 레지던트도 무시했습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어느 피검자가 그 수련 레지던트 내지는 그 레지던트가 속한 수련 기관을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 때 학회가 과연 수련 레지던트를 방어할 수 있을 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즉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의무 기록에 준하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보안성이 떨어지기 이를 데 없는 문서로 제출하고 문제가 생기면 네가 알아서 책임지라는 식의 매우 무책임한 요구입니다.
이 요구는 supervisor도 무시했습니다. 즉 수련 수첩에 적힌 심리평가의 내용과 supervisor의 관리 감독 능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직무 유기를 자행하는 supervisor의 사례가 왕왕 보고되고 있으니 학회 차원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테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절차는 행정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매년 1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가 서류 형태로 수련위원회에 도착할텐데 아시다시피 수련위원회는 사무실이 없으며 수련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매번 병원과 같은 수련 기관이 수련위원회로 사용됩니다. 즉 A 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B 병원의 어딘가(임상심리실 내지는 검사실 캐비넷, 전공의실 등)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죠. 보안 유지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걸 누가 다 점검할 겁니까? 수련위원회 간사? 간사도 수련 레지던트입니다. 그럼 수련위원장이 다 볼 겁니까? 어느 세월에? 그리고 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적법한 절차를 거쳐 폐기할 겁니까? 아니면 다시 수련 레지던트에게 일일이 비용을 들여 돌려줄겁니까? 이후 생각을 하지 않은 단순한 요구라고 봅니다.
저는 이처럼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supervisee에게만 모든 부담을 떠 넘기는 심리평가 보고서의 문서 형태 제출을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supervision 체계를 바로잡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supervisor의 직무 유기 행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supervisor가 supervision도 제대로 안 하면서 대충 도장이나 찍어주는 행위부터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supervisor가 제대로 supervision을 안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그냥 supervisee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편법, 탈법 행위가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수련 레지던트가 전문가가 되고, supervisor가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겁니다.
그러니 정 수련 내용을 살펴봐야겠다면 표본 추출을 해서 표적 실사를 하고 문제가 적발되면 supervisor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supervisor들이 수련 내용을 꼼꼼히 챙길테고 supervisor들이 학회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게 됩니다.
이 문제 제기에 대해 수련위원회 간사가 너무도 빨리 답변을 했던데 수련위원회 위원들의 회람을 거쳤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다만 이 답변에만 그치지 말고 최초 문제 제기자가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 믿을만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임상심리학회의 핵심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임상심리학회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학회의 용단을 기대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101
너는 왜 그렇게 교수와 박사를 미워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조만간 포스팅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또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김에 정리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어느 정도 상통하는 점은 있지만 제 생각은 심리학, 그 중에서도 임상 심리학 분야에 국한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분야의 사정에 대해서는 관심 자체가 없으며 다른 심리학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은 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 다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리학 하위 분야 중에서도 임상 심리학은 임상심리전문가라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때문에 영역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즉 사회 심리학 교수와 임상 심리학 교수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교수와 박사에 대해 각각 갖고 있는 감정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현재의 제 입장은 임상 심리학 박사 무용론에 가깝기 때문에 제가 박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정심이나 안쓰러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임상 심리학 교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혐오감'에 가깝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왜 임상 심리학 교수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느냐...
이유를 대자면 뭐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파렴치하기 때문입니다. 파렴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임상 심리학 분야에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범하고 있는 직무유기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 개선 노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혹 인식 자체가 없다면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임상 심리학 교수들은 그런 멍청한 인간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득권에 안착한 존재들이며 대개 지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인지 결함으로 면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개는 임상 심리 분야의 현실을 잘 아는 전문가 출신들이지요. 그러니 전혀 면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혐오하지 않는 임상 심리학 교수가 현재 있느냐....
아주 드물게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희망적인 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가 혐오하지 않을 수준의 역할을 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의 기준은 뭘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임상 심리학 분야는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기 때문에 교수들도 이를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자격입니다.
모든 임상 심리학 교수는 최소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대학원이 있는 학교의 경우 부속병원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 개설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거나 부속병원에 연결된 수련 과정을 개설하지 못한 임상 심리학 교수는 부끄러워 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참고로 바로 이 조건의 희생자가 바로 접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지만요.
둘째, 역할입니다. 이건 자격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조건이야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만 역할은 곧 교수의 실력이고 지도 학생의 실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명색이 임상 심리학 교수라면
심리평가/치료/연구 및 supervision의 세 핵심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심리평가의 경우 1주일에 최소 1case의 Full Battery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며(연 52회/비교를 위해 제 경우 연 평균 150여 회를 실시합니다), 심리치료의 경우 역시 1주일에 최소 2case의 치료를 실시해야 하며(연 104시간/제 경우 연 평균 750시간),supervision의 경우에도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각각 최소 주 1회 대면 supervision을 실시해야 합니다(각각 연 52회/제 경우 심리치료와 심리평가 supervision 각각 연 평균 150여 회)연구의 경우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A급 학술지에 단독 저자로 최소 2년에 1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의를 많이 하고 보직을 맡아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와 비교해 볼 때 최소한 1/3의 심리평가/심리치료/supervision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임상심리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수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현장과 유리되어 심리평가와 심리치료의 감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론에만 경도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전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수련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얼뜨기 수련 레지던트만을 양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담이 수련 기관에 그대로 전달되게 되는데 문제는 현재의 수련 기관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능력 부족의 supervisor로 점차 채워지고 있는데다 그나마 숫자 자체가 태부족이라서 점차 임상 현장으로 나오는 전문가의 quality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 심리평가를 못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 심리치료를 못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가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게 당연한 것으로 용인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교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대체 당신들이 일반 강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요새는 오히려 강사가 정교수보다 더 강의를 잘 하지 않습니까? 강의만 잘하면 된다고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임상 심리학 교수 자리는 그 정도로 대충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제시한 기준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충족하지 못하면 욕을 먹어야 하는 수준이지 충족했다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서 대접해 달라고 에헴하는 교수들은 현재 임상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전문가들과 수련 레지던트들이 속으로 얼마나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는지 똑똑히 파악하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수련 기관의 정신빠진 supervisor들에게도 경고합니다. 수련 레지던트는 당신의 심리평가 일을 줄여주기 위해 부려먹는 노예가 아니며 미래에 당신의 자리를 이어나갈 동료이자 후배입니다. 무능한 당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유망한 supervisee들이 혹독한 수련 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소속된 수련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사비를 털어 유료 supervision을 받으러 헤매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언젠가 당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며 성격적으로 문제있는 supervisor였는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해 주겠습니다. 그 때에는 어느 누구도 당신을 동정하지 않으며 침을 뱉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한 저주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임상 심리학 교수나 supervisor가 있다면 그는 임상 심리학계의 현실을 모르는 바보이거나 알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무능력자이거나 그도 아니면 바로 저주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태그 -
Full Battery,
supervisee,
supervision,
supervisor,
교수,
상담,
수련기관,
심리,
심리치료,
심리평가,
심리학,
임상 심리,
임상심리학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026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대학원에서나 전문가 수련 과정에서나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법에 대해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과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Clinician's Thesaurus' 같은 교재가 이미 많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정규 교과 과정에서 별도의 시간을 들여 다루는데 비해 우리나라 심리학과 대학원에는 그런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곳이 (제가 알기로) 한 곳도 없습니다. 참 한심하죠.
전문가 수련 과정에서도 supervisor가 알고 있는 방식을 도제식으로 그대로 답습할 뿐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역시 없으며 그래서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지식을 배울 기회가 없고 알음알음 대충대충 익힐 뿐입니다. 저 역시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현장에 나와 일을 하면서 수많은 supervisee의 다양한 보고서 형태를 접하게 되면서 이런 문제로 나름 고민을 많이 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제 나름의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기준을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빨리 학회 차원에서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를 만들고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의 필요성' 포스트 참조).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에 대해서는 앞으로 포스팅을 할 기회가 있을겁니다. 그것보다 오늘은 보고서를 쓰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의뢰 사유와 심리평가 보고서의 용도, 보고서를 읽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등에 따라 작성 방법이 융통성 있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보고서의 형식적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고 쓰는 방식은 좀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심리평가 의뢰 이유가 장애 판정을 받기 위해 국가 기관에 제출하려는 것과 전문가의 해석 상담 없이 부모에게 직접 제공되는 소아용 심리평가 보고서의 작성 방식은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전자는 행정적인 절차에 부합되게끔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고 그에 비해 후자는 부모가 피검 아동의 상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기술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어로 된 표현을 직접적으로 얼마나 쓸 것인지, 해석 위주로만 기술할 것인지 아니면 검사 sign의 예를 많이 드는 evidence-based approach를 택할 것인지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999
저는 심리평가에만 국한해 말씀드리지만 치료/상담 supervision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수련과정의 일환으로 받는 supervision은 사실 상 종결 시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끝내기가 쉽습니다. 수련이 끝나고 수련수첩을 위원회에 제출하면 더 이상 supervision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supervision이 끝나는 것이죠.
하지만 개인적인 배움의 목적으로 시작한 supervision은 상담처럼 종결 시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supervisee의 입장에서 supervisor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이제 그만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울리가 없지요.
일종의 도제 관계로 치부되는 supervisor-supervisee의 관계는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상당히 껄끄럽습니다.
supervisor의 입장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고 잘 하고 있으니 이제 supervision을 그만하자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종결하는 것처럼 아직 마음의 준비가 채 안 된 supervisee를 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supervisee 선생님들께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supervision의 배움은 supervisor가 위에서 내려주는 성은이 아니라 상호 계약에 의해 시작되고 충분한 경제적 댓가를 통해 얻는 지식 서비스라는 인식을 갖기 바랍니다. 더 이상의 서비스를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이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supervisor가 있다면 그건 그 supervisor의 문제입니다.
덧. 제가 왜 supervision fee를 받을 때 봉투에 넣지 말고 직접 달라고 하는 지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