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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ner 방식의 로르샤하 해석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수련 내내 지긋지긋하게 채점을 하는 임상심리전문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는 2006년에 포스팅 한 '로샤 검사 해석 시 Structural Summary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서도 설명드린 것처럼 Exner의 채점 체계에 헛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1970년 후반에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5개의 채점 체계를 통합하려는 Exner의 의지 결정체입니다. Klopfer, Piotowski, Beck, Hertz와 차례로 만나 의견을 나누었고 이후 수십 년동안 자료를 업데이트하면서 판올림하였는데 이 책은 2005년에 출판된 3판의 번역서입니다. 이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새로운 개정판이 나오지 않은 걸 보면 더 이상의 업데이트를 포기한(또는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습니다.
1장 최근 연구 결과와 해석 전략, 2장 심리평가 자문모델은 이미 20년 전의 내용이니 영양가가 별로 없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3장부터 시작되는 실제 사례의 해석인데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3장 스트레스 관리
4장 우울 및 자살 위험
5장 공황 발작
6장 망상적 사고
7장 해리 문제
8장 불안과 수면 문제
9장 급성 정신병적 삽화
10장 약물 남용 평가
11장 약물 남용 치료에 대한 동기의 문제
12장 충동 통제 문제
13장 대인 관계 문제
14장 자해 및 타해 관련 문제
15장 법적 분별력 및 능력 문제
16장 개인 상해 소송과정에서의 통증 문제
17장 학업 수행 부진 문제
18장 공격성 문제
19장 청소년기 약물과다 복용
20장 꾀병 문제
21장 긍정적 적응으로 가장하기
주제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15, 16, 19장은 다분히 미국 문화 특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각 장은 대표적인 사례 설명 후 사례 개념화와 함께 주제와 관련된 채점 체계 내의 변인을 일별하고 실제 채점한 내용을 제시하고 제언과 함께 치료 결과를 에필로그에서 설명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뭔가 특별한 내용이 있을 것 같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제공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Exner의 책과 구성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채점의 정확도는 여전히 높지 않으며 무엇보다 사례에 대한 formulation에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언과 치료 방법도 제 기준에서는 의아한 부분이 많고요. 그나마 건질 내용은 각 장의 주제와 관련하여 정리된 기존 연구 결과들인데 그마저도 옛날 연구들이 많아서 잘 걸러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700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에 32,000원이나 하는 하드커버 전공 서적이지만 굳이 구입까지 해서 읽을 책은 아닙니다. 궁금한 분들은 도서관이나 지인에게 빌려서 일독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소장하고 재독할 수준의 책은 아니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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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와 불안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로르샤하 종합 채점체계의 변인은 음영확산 반응(FY, YF, Y), m, D와 Adjusted D(Adj D)이다.
* Beck(1945)은 음영확산 반응이 무기력하여 행동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Klopfer는 free-floating anxiety를 의미한다고 제안했고 Piotrowski는 무생물운동 반응이 일반적인 좌절과 긴장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 현재 문헌들에서 무생물운동 반응은 외적 스트레스에 대한 일반적 경험을 나타내고, 음영확산 반응은 개인의 통제 밖에 있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두 반응의 의미를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 음영확산 반응(FY, YF, Y)이 특히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 경험에 민감하여 무생물운동 반응은 일반적인 스트레스 지표이나, 둘 다 불안 수준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상태 변인임을 알 수 있다. 상태 불안과 특성 불안의 변별은 로르샤하 평가 문헌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 S-CON 총점(7점 이상)은 일반적인 충동성이나 자기파괴적 경향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생태학적으로 타당하고 실제 존재하는 심각한 자살 시도 행동과 관련된다.
* DEPI가 우울 장애 진단에 제한적이라고 밝힌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DSM의 주요우울장애 진단 목적으로 DEPI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했다. Exner(2003)는 유의한 DEPI는 특정한 진단 범주와 일치하기보다는 정서적 문제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제안하였다.
* Belyi(1991)는 체계적 망상이 있는 수검자들의 로르샤흐는 정상 대조군들과 유사하고 세부적인 요소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면에서만 차이가 있다고 했다.
* 잘 조직화된 편집증 망상 체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신중하고 세부 사항에 초점을 둔 로르샤흐의 정보처리 양식이다. Rapaport, Gill & Schafer(1968)는 이러한 신중함은 적은 수의 반응, 카드 거부, 적은 수의 색채 결정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요약하자면, 해리성 장애 사람들의 로르샤흐는 인지적인 복잡성과 내용의 정교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 능동적인 인지 관여(Zf)와 혼란스럽고 양가적인 대인 관계 표현들(낮은 COP, 높은 AG와 상승된 SumT와 같은 역설적인 조합)이 심리치료 참여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예측 변인이다. 반면, 자기애의 특징은 치료 중단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 충동 통제 평가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로르샤흐 변인은 운동, 인지, 혹은 정동 억제(M), 그리고 정동이 포함될 때 표현을 조절하는 능력(FC:CF+C)이었다.
* SumC'은 감정을 내재화하는 지속적인 경향성을 나타내며 SumT는 만성적인 결핍과 외로움을 반영한다.
* Hx 반응은 대개 자기상과 관련하여 주지화를 형성한다.
* 공격성 변인들은 연극성이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전체 기준과는 관계가 없었으나 MOR의 감소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전체 기준의 유의한 예측 변수로 나타났다. MOR의 증가는 경계선 성격장애 기술어들의 전체 수에 대한 유의한 예측 변수였다.
* 반사 반응의 존재는 과장된 자기관여와 자기가치감의 팽창을 나타낸다. 이것은 개인적 온전함을 보호하고자 종종 과도하게 방어를 사용하는 특질과 비슷한 특성이다.
* 특수점수 AB를 함께 포함하는 Hx 반응은 자기상 또는 자기관여와 관련된 문제를 현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주지화 방식으로 다루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 불안을 보여주는 로르샤흐의 내용 범주를 구름, 불, 연기, 지도, 이상하고 기괴한 개념, 즐겁지 않고 불쾌한 지각, 기하학적 형태, X-ray 등과 같이 정리하였다.
* DEPI가 DSM 규준에 따라 우울 진단을 받은 아동과 청소년들의 행동과 관련 없음을 시사한다.
* V 반응은 부정적으로 여기는 자기상에 대해 내성적으로 반추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 S와 관련하여 얼굴이나 얼굴의 부분을 강조한 경우는 대개 불안정감 또는 소외감과 관련된 조심성을 내포한다.
* 상당히 많은 PER 반응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온전함에 대한 지각된 도전을 방어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 X-%(.30)는 광범위한 현실 검증력의 문제를 포함하는 결과로 심각한 중재적 손상을 나타낸다.
* Ganellen 등(1996)은 MMPI F척도 90T를 절단점으로 이용하여 꾀병 집단과 솔직하게 반응하는 집단으로 나누고 로르샤흐 자료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극적인 내용과 특수점수(혈액, 성, 불, 폭발, 병적 반응, 공격 반응)만이 꾀병 집단에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 지금까지의 해석 지침에 따르면 프로토콜에 3개의 S 반응은 그 개인이 환경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것으로 추정한다(Exner, 2000, 2003). 그러나 새로운 표본에서 나온 결과에 따르면 앞의 해석적 가정은 다음의 경우에만 적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S가 3개가 아닌 4개의 경우, 혹은 S가 3개라면 1번 카드에서 일반적인 동물 얼굴이나 가면을, 그리고 2번 카드에서 로켓이나 우주선 반응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 적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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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정규 수련 과정 중이거나 이를 완료한 전문가들인데도 자신의 역량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상담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지금도 놀라곤 합니다.
저는 가장 큰 원인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강압적인 수련 과정에 있다고 보는데 정작 자신은 노하우도 경험도 부족한 주제에 그저 박사, 교수, 자격번호 앞 순위 선배라는 타이틀 하나만 갖고 supervisee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알량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supervisor가 너무 많습니다. 임상, 상담 따질 것도 없습니다. 다 똑같아요.
상담의 경우는 회기 제한의 단기 상담으로 시스템이 고착화되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심화와 함께 예산 배정을 건수 실적 중심으로 하다보니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인데 이로 인해 내담자가 완전하게 치유되는 걸 경험한 상담자의 수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수련 과정 내지는 초심 전문가 시기에 자신의 주력 분야 선정을 위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과 함께 가능한 한 최기 제한이 없는 세팅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겠습니다. 급여가 줄어드는 것까지 감수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강압적인 수련 과정, 단기 상담 중심의 환경 등은 쉽사리 바뀔 수 없는 것이니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다지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으로 보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임상 전공자여서 제대로 된 상담 수련 과정을 밟은 적이 없지만 반대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상담을 시작해서 앞서 언급한 강압적인 상담 수련 과정의 악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웠고(꼰대갑질을 당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 상담에 대해 사실 상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편견 없이 다양한 상담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으며 운 좋게도 회기 제한이 없는 공익 기관(?)에서 자율적으로 근무하면서 중독, 아동/청소년, 부부, EAP 등 다양한 상담을 원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상담자로서 밟아온 단계를 말씀드리면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거친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1단계 : 조기 종결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
회기 제한이 있든 없든 대부분의 초심 상담자들은 상담을 구조화하는 것도, 초기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서투릅니다. 하다 못해 내담자가 상담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마음을 읽어주는 것도, 카리스마있게 보이는 것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기 3년 간 제 목표 중 하나가 10회기 이상을 유지하는 비율을 50%로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2단계 : 성공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
2단계부터 단기 상담 세팅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상담 목표가 무엇이 되었든 내담자에게 치유 경험이 나타나는 걸 상담자가 확인하면서 세밀하게 조율을 하려면 장기 상담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담자의 치유 극대화를 위해 다양한 치료적 기법을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메우려고 미친듯이 노력하는 것이 2단계입니다. 2단계 중반이 되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서 상담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끼고 자신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담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5년차에서 10년차 기간이 그랬습니다.
3단계 : 자신이 어떤 상담자인지 알게 되고 자신에게 맞는 세팅을 완성하는 단계
3단계부터는 스스로 초심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누가 봐도 초심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를 가진 내담자를 만나든 별로 두렵지 않게 되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다. 꽤 많은 성공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상담이 치유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의구심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내담자를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상담자인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구로 확장됩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 기법이나 접근법을 확립하게 되고 때로는 여러가지 기법을 혼용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도 알게 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이 약한지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고 다른 전문가와 협업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11년차에서 15년차 기간이 3단계였습니다.
4단계 :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정리하는 단계
3단계를 성공적으로 지나왔다면 상담자로서의 강,약점 분석과 노하우 등을 잘 정리한 것에 더하여 자신이 상담자, 분석가, 평가자, 교수, 강연자, 작가, 프로그램 시행자, supervisor 중 어느 세부 직역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알게 됩니다. 3단계가 끝나가는 기간에 저는 제가 내담자를 직접 만나는 상담자나 치료자보다는 그동안 익힌 노하우를 전문가에게 알려주는 supervisor, 강연자 역할을 더 좋아하고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기관에 사표를 던지고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 Season 2를 시작합니다').
모든 상담자가 저와 똑같은 길을 거치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참고하여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대략이라도 점검해 보시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포스팅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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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상담 전공자 중에 로르샤하 검사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드리는 조언은 항상 똑같습니다.
MMPI-2, TCI와 같은 구조화된 검사를 마스터하고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느낄 때 도전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이라면 으레 뭔가 막혔다는 생각이 들면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충동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 나오기는 했는데 뭔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걸 떠올리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현장에서 종합심리평가를 해야 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의 경우 로르샤하 검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에 반드시 익혀야 하지만 상담이 주 업무인 상담자는 굳이 익힐 필요가 없는 검사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임상 전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화방어기제검사나 성격강점검사 같은 검사 도구를 굳이 익힐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건 종합심리평가를 마스터하고 그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 추가로 공부해도 됩니다.
어쨌든 좀 더 많은 심리검사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면 좋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심리검사 도구를 알고 있다고 해도 현장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장기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한 핵심 자격을 외면하고 워크샵만 들으면 딸 수 있는 손쉬운 자격증만 수집하는 것도 같은 도피 행동입니다. 그래봤자 실력이 늘기는 커녕 계속 자신을 속이다 종국에는 현타가 올 수 밖에 없고 계속 실력없는 자신을 속이며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뭔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일수록 항상 'back to basics'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현란한 장식을 한다 해도 결국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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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 허심양 선생님이 최근에 출판하신 '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2022)'를 북 크로싱합니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상담을 받기 전 워밍업을 위해 읽는 용도로는 좋지만 현장 임상가에게 추천하는 책은 아닙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읽기에는 너무 평이한 수준의 책이고 이 책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는 수준이라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굳이 확인하고 싶은 분은 국민 도서관을 통해 빌려 보세요.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든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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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 허심양 선생님이 쓰신 이 책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셨던 경험과 노하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올해 10월 초에 출판되었는데 10.29 참사 이후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도움을 받을 분들을 생각하면 때맞춰 세상에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저자가 4년 전인 2018년 10월에 일어난 교통 사고 트라우마를 극복했던 경험자여서 더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는 트라우마 생존자입니다. 본격적인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 전 워밍업 단계에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현장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임상가들에게는 굳이 읽어보라고 추천하지 않습니다. 보통 저 같은 임상가들은 이런 류의 책을 집어들 때 내가 모르는 새로운 노하우나 전문 지식을 알게 되기를 기대하는데 이 책은 일반인 대상으로 씌여진 책이라 전문가 입장에서는 너무 평이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참신하고 전문적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임상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해야 할 수준입니다.
저는 제가 읽은 전공 서적을 소개할 때 소개 포스팅의 말미에 '월든지기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을 정리해 두는데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담아둔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책장이 잘 넘어가는 것에 비해 별로 인상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트라우마 생존자를 상담하는 임상가이면서 자신의 내담자에게 워밍업을 위한 책을 소개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할 수 있지만 현장 임상가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 없습니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며 읽으라는 의도로 handy하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40여 페이지의 문고판으로 출판하면서 16,000원이라는 책값을 책정해 놓은 걸 보면 적은 분량을 숨기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상했습니다.
덧. 이 책은 국민 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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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 이상 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2018년 6월에 사표를 던져 5,435일 동안 상담자로 살았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인생 season 2를 시작한 이후로 상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관련 포스팅 :
'인생 Season 2를 시작합니다')
그건 제가 상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어리석게도 상담에 뛰어든 지 15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담을 계속한다 해도 뛰어난 상담자가 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아서 입니다.
저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갖고 있지만 수련 과정에서 제대로 된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교육과 supervision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른 포스팅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15년의 제 상담 경력은 그야말로 길거리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멘땅에 헤딩하는 무모한 시도와 공부와 고민으로 쌓아올린 겁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무모하기 그지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건축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 눈 짐작으로 지은 집이 특이함으로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진 것이나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대충 넣어서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야말로 우연히 기가 막힌 맛이 나서 맛집이 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상담 및 심리치료 수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제가 도박 중독과 관련하여 책까지 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 문외한이 수공구로 자신의 한 몸을 누일 오두막을 지을 수는 있지만 고층 아파트는 건설할 수 없는 것이죠. 건축 공학에 대한 기본이 없으니까요. 그 기가 막힌 맛집이 프렌차이즈 매장을 내는 순간 그 맛의 균일함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죠. 재료의 성질과 요리에 대한 기본이 없으니까요. 정확하게는 기본기가 없는 것이고 이 포스팅의 제목인 '격(格)'이 없기 때문입니다. 파격도 결국은 격이 있어야만 가능한 겁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여도 격이 없으면 잔재주는 어디까지나 잔재주일 뿐이죠.
게다가 건축 문외한이 지은 집이 무너지면 자기나 깔려 죽을 것이고, 요리 문외한이 만든 음식이 상하면 자신이나 식중독에 걸리고 말겠지만 상담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상담은 상담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담자 하나만 믿고 자신의 가장 깊은 마음 속 어려움을 꺼낸 내담자를 두 번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단순히 자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수련을 받고 상담을 한다는 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전문화된 수영 및 구조 기술을 갖추느냐의 문제입니다. 자신만 물에 떠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수영을 못하는 사람까지 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상담을 하고자 하는 분은 우선 자신이 상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상담이 자신의 기질과 성격에 맞는지 분석해 본 후, 그 다음에 제대로 된 '격'을 갖추기 바랍니다. 제대로 된 교육과 수련을 통해서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현란해 보이는 언변과 말기술로 유명해져도 그건 상담이 아닙니다. 그냥 말장난이자 사람의 마음으로 장난치는 사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을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세요.
덧. 그러면 상담자도 아닌 니가 왜 상담 supervision을 하고 있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 제 잔기술은 정통 훈련을 받은 상담자에게는 도움이 되거든요. 그야말로 파격까지 배우고 싶은 고수에게 필요한 비법 소스라고 할 수 있죠. 그 소스를 언제까지 팔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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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때는 학력고사 후기 출신이었고, 졸업하고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에 대학원에서는 타대 출신이었으며,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병원 수련을 받을 때는 타 전공 출신이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상담 영역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타 직군이었고, 상담 영역에서도 도박 중독 치료를 주로 했기 때문에 계속 비주류였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기에 무리짓기, 배제, 차별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91학번이니 심리학을 공부한 지 거의 30년이 되어 가네요. 그동안 임상심리전문가 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대 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 상담심리학회 대 상담학회의 헤게모니 싸움과 알력이 반복되는 것도 충분히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임상과 상담이 내가 더 잘났네, 니가 더 못났네 하며 싸우는 꼴까지 보고 있습니다.
임상에서 수련을 받았지만 상담에서 15년 이상 일을 했고 지금도 임상과 상담 양 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그래봤자 편가르기에 참전하는 사람들만 점점 더 한심해지는 쓸데없는 소모전일 뿐입니다.
임상이 심리평가에 대해 뭘 아느냐고 상담을 공격하고(주로 MBTI가 요새 화두더군요), 니네는 상담 수련도 제대로 받지 않으니 어디가서 심리치료 한다고 나대지 말라며 상담이 임상에게 반격하고 싸움박질을 하는 동안....
현명한 임상가는 임상과 상담 양쪽의 강점을 무기삼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심리평가와 정신병리 지식을 보강한 상담 전문가는 내담자를 이해하는 폭이 웬만한 임상심리전문가를 능가하고 심리치료와 상담 수련을 보강한 임상 전문가는 상담심리전문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임상이 우월하냐, 상담이 뛰어나냐 하는 논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더군요.
그저 실력있고 유능한 임상가와 입만 나불거리는 엉터리 임상가가 존재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임상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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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임상심리전문가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엿본 상담 영역은 전반적으로 개별 상담자의 노하우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근거 중심 접근에 입각해 메뉴얼을 따르도록 훈련받는 임상과 비교하면 상담은 신비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주관적인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임상에서 상담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 제게는 상담 효과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상담을 종결하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가 굉장히 시급하고 중요했는데 정작 누구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상담자에 따라 다른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
그렇다면 오늘 포스팅의 주제인 상담 종결은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원칙적으로는 상담 목표가 달성되면 종결을 고려해야겠지만 지금과 같은 단기 상담 체제에서는 현실적으로 상담 회기가 끝나면 종결할 수 밖에 없죠;;;;
아마도 상담자마다 상담의 종결 시점을 고려하는 기준이 다를텐데 제가 갖고 있는 기준은 TCI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겁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기준입니다.
'자율성, 연대감이 백분위 기준 30%ile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종결하지 마라'
아시다시피 자율성, 연대감은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을 가늠하는 핵심 영역입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이 백분위 30%ile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취약한 기질을 가진 내담자의 경우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 두 가지 차원이 백분위 30%ile 이상, 즉 medium level 이상으로 유지되면 취약한 기질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하게 됩니다. 따라서 TCI 결과를 상담에 적용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자율성, 연대감이 모두 30%ile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한 상담을 종결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많은 내담자가 자율성, 연대감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기 때문에 단기 상담으로는 이걸 끌어올리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TCI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단기 상담의 효용성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율성, 연대감의 상승 없는 상담은 증상만 완화하는 땜질식 접근에 불과합니다. 결국 다른 문제가 또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기준에서 중요한 건 자율성과 연대감 어느 하나도 30%ile 이하로 두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율성이 더 중요한 영역이기는 하지만 자율성이 아무리 높은 수준이어도 연대감이 낮다면 소용 없거든요. 이는 실증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HLH : 편집성
HLM : 괴롭히는
HLL : 독재적인
보시는 것처럼 자율성이 높아도 연대감이 낮다면 자기 초월의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대인 관계에서 역기능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자율성이 높다고 해도 이런 성격을 우리는 건강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율성이 낮아도 연대감만 높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LHH : 감정적인
LHM : 복종적인
LHL : 의존적인
보시는 것처럼 자율성이 낮으면 연대감이 아무리 높아도 자율성이 낮아서 생긴 문제를 외부의 힘을 빌어 해결하고자 하는 성격 유형이 되기 때문에 결국 환경에 종속되게 됩니다.
그러니 자율성과 연대감은 모두 최소한 medium level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고 그 기준이 백분위 30%ile이므로 내담자의 자율성, 연대감 수준이 그 이하일때는 상담 종결을 신중하게 고려하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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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분야에서 상담 supervision은 필수 불가결한 수련 과정입니다. 그러니 상담 분야의 수련 과정 중인 분들이라면 상담 supervision의 장, 단점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후 곧바로 상담 현장에 뛰어들어 작년에 독립할 때까지 15년 동안을 일했지만 한번도 상담 supervision을 받은 적이 없는 저는 상담 supervision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이라고는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흉내만 내는 게 전부였던 제게 초기 3년 정도의 상담 일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맨땅에 헤딩했던 시행착오의 혼란기였습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상담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물론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들어가지는 않았고(그 때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상담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심리평가 supervision은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 수련을 받는 선생님들의 다양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죠.
그래서 상담 supervision에는 장, 단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3년의 기간 동안 저는 나름 정말 치열하게 상담을 독학했습니다. 상담과 관련된 중요한 텍스트는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렇게 배운 걸 실제 상담에 적용하고자 항상 애를 썼는데 그 과정에서 유명한 텍스트라고 해도 실제 상담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엄청 많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시대 배경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유명한 고수가 쓴 내용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상담의 근본이 없는 무자격 파이터에게는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필요했는데 실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내용이 의외로 꽤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무리 대단해보이는 심리치료나 상담 기법을 접하게 되어도 실제 내담자와 상담할 때 적용해서 유용하다는 걸 체감하기 전까지는 극도의 회의주의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반대로 기존 이론에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supervision을 받을 때의 장점은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받아본 적도 없는 것의 장점을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아마도 실전 고수의 현장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게 무조건 장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어깨 너머로 엿본 상담 supervision은 뭔가 정석 틀을 알려준다기보다는 supervisor의 치료 사조, 그 supervisor의 supervisor가 누구인지, 심하게는 supervisor의 가치관과 인품이 오히려 supervision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상담 supervision을 다른 supervisor에게 여러 번 받은 케이스를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제각각 다른 supervisor의 comment(때로는 정반대의 접근인)로 supervisee 선생님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니까 심리평가 결과로는 상당히 분명하게 formulation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누구를 supervisor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제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접근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느낀 거지만 상담도 임상만큼 수련 환경과 양적, 질적 경험에 따라 내공의 차이가 크더군요.
배움의 장이 늘 그렇듯이 상담 supervision에서도(당연히 심리평가 supervision에서도) 항상 회의주의적인 시각에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뒤집어보고, 실제로 사례에 적용했을 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comment, 접근, 시각, 조언만 신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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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보고서는 심리평가 결과를 수검자, 보호자, 의뢰(인, 기관)에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죠. 상담자라면 case formulation을 하는데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를 전달하는 대상이 다른 임상가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유관 분야 전문가일 경우에는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검사 sign을 동원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검사 sign을 사용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고 심하게는 전문성을 의심받기도 합니다.
'심리평가보고서 작성 시 기술 근거는 어떻게 제시하나' 포스팅에서 저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항상 매 문구마다 이를 지지하는 검사 sign을 함께 쓰는 방식을 권고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여전히 저도 이 방식으로 기술 근거를 제시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예외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수검자에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직접 제공하는 경우입니다. 수검자에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제공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실거라면 이 글을 더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만 저는 그게 어떠한 이유든 수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에 접근할 기회를 막는 방향으로 가는 정책은 결코 치료적이지 않고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MMPI-2/A, TCI/JTCI, 로르샤하 검사의 구조적 요약 지표 등 수검자의 응답 내용이 가공되어 수검자가 기술 근거를 알았다고 해도 재검사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검사 sign은 제시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검사들, 주로 투사 검사들인데 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로샤 검사의 반응 내용 등은 심리평가보고서에 직접 기술하면 안 되며 가능하면 해석 상담에서도 직접적인 제시를 피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변별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이 중요한 병원 장면에서 재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검사 sign을 적나라하게 보고서에 기술하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학습 효과를 배제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재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실정에서 무신경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포스팅을 인용하느라고 중언부언 말이 길어졌는데 핵심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 수검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근거를 제시할 때는 가공되어 수검자의 재검사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검사 sign들(MMPI-2/A, TCI/JTCI, 로르샤하 검사의 구조적 요약 지표 등)만 사용하고 그림검사, 문장완성검사, 로르샤하 검사의 반응 내용 등은 보고서와 해석 상담에서 제시하지 않는 것을 권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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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인생 season 2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제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3년 동안 다닌 병원은 월급을 받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수련 기관이라서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 스스로는 이 직장이 제 생애 첫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녔습니다(마지막 직장이기를 바랍니다).
2003년 8월 13일에 입사했으니 15년에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일했던 곳인데 짧다면 짧을 수 있고 길다면 길 수 있는 5,435일 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이제 접으려고 합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다니던 직장은 정부 위탁형 공기업 산하 상담센터였기 때문에 연봉 수준 높고,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신분이었으니 이 어려운 시기에 그 안정적이고 조건 좋은 직장을 아깝게 왜 그만두냐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저 역시 그 부분에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결국은 가치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쪽에는 직업 안정성을 두었고 다른 쪽에는 직업 정체성을 두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직업 정체성이 직업 안정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지면이 좁아서 자세한 내용을 모두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직장의 명분을 위해 제 내담자를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고 그래도 애정을 갖고 다니던 첫 직장이 계속 망가지고 있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어서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제가 상담자를 위한 강의에 나가면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상담자가 field에 남을 것인지 관리자로 옮겨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대략 15년 정도이다. 15년 차 이상의 중간 관리자가 상담을 하도록 놔두는 조직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상담자로 남고 싶은 임상가의 최종 목표는 개업 상담가일 수 밖에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를 위한 예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하며 인생 season 2를 살 것인지, 제 거취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대략적인 방향만 말씀드리면 일단 'Walden3 Academy'로 시작합니다. 낮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외부 강의와 supervision을 소화하면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전 강의들을 선보일까 합니다. 내년에는 숙원 사업이었던 심리평가 관련 책을 마무리하거나 심리평가를 접목한 라이프 코칭을 시작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TCI 자율성 차원 99.8%의 인간이 그동안 조직에 묶여서 답답했는데 인생 season 2에서는 저 하고 싶은 걸 마음껏하면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자 합니다.
임상, 상담 영역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곧 제 소문을 들어 알게 되시겠지만 월덴3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에게 먼저 보고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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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나 수퍼비전 때 임상가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는데 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인데도 공통점이 하나 있더군요. 바로 실수를 너무 두려워하는 겁니다.
내담자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면 어쩌지?
심리평가 해석이 잘못되어 오진하면 어쩌지?
교육이나 해석 상담 때 말 실수를 해서 부모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지? 등등
실수가 두려운 건 당연합니다. 임상/상담 분야처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라면 더더욱 두려울 수 있죠.
게다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일처리 자세는 임상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 안 되는 건 실수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는거지요. 이 바닥에서 일을 하는 한 언젠가는 실수를 하게 되고 때로는 그 실수가 굉장히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 하게 될 실수라면 최대한 빨리 당겨서 미리 하는 게 좋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실수를 찾아가며 해 봐야 할 수도 있어요.
임상/상담심리전문가 자격을 예로 들면 자격증을 취득한 후 3년 이내에 할 수 있는 실수는 모두 하는 게 좋습니다. 3년까지는 본인도 아직 초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책이 덜 심하고 주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실수를 양해합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면 내담자/환자들부터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실수의 경중을 따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초보적인 실수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오히려 가능하면 다양한 실수를 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해 배우세요. 그 배움이 진짜 고수로 만들어 줄 겁니다.
덧.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포스팅도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직 고수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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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산하의 기관 중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각종 폭력 생존자에게 상담 뿐 아니라 의료, 법률 등의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핵심 기관입니다.
폭력의 생존자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이들이기 때문에 해바라기 센터의 존재감이 남다를 수 밖에 없고 어찌 보면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많은 심리지원 기관 중 최전방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런데 저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해바라기센터 내 심리치료사 직군의 자격 요건이 너무도 허술하더군요. 임상심리직군과 왜 별개의 심리치료사 직군을 두었는지부터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비교적 체계적인 수련 과정을 갖추고 있고 자격 요건도 까다로운 임상심리직군과 달리 심리치료사 직군은 심각한 폭력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현장 역할과 동떨어진 사회복지학, 아동학, 여성학 등의 학위와 관련 기관에서의 경력(석사의 경우는 1년, 학사의 경우는 3년)만 갖고 일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복지학, 아동학, 여성학 전공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사 직군의 업무 특성 상 꼭 필요한 정신병리학,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관련 전문 지식 습득 및 수련 과정이 없더라도 심리치료사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3년 간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전문적인 수련을 거친 임상심리전문가라고 해도 해바라기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외상 치료에 대한 별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거의 경악할 정도의 안이한 채용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자격도 갖추지 않고 개업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차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사이비 상담자들이 넘치는 판국에 국가 기관마저 이런 황당한 상황이라뇨.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다행히 사명감이 투철한 현장 전문가 선생님 한 분이 앞장서서 잘못된 제도 개선을 위한 국민청원을 시작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한 청원 내용을 읽어보시고 그 뜻에 동참하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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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
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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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임상가들이 심리치료와 심리평가를 별개의 독립된 영역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예외가 아니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한데 아무래도 상담과 심리치료 영역은 상담 심리학자가 담당하고 심리평가는 임상 심리학자가 전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임상을 전공하고 상담 영역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은 수련 과정에서 질리게 배운 심리평가를 어떻게 하면 상담과 접목하여 활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tephen E. Finn의 이 책이 교두보가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Finn은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접목하는 치료적 평가라는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데 의뢰 목적에 따라 기계적으로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전달하기만 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과정에 내담자를 적극적으로 동참시켜 치료적 효과를 얻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의뢰 목적이 아니라 철저히 내담자의 관점과 치료적 목적에 따라 심리평가를 진행하는 것이죠.
이 책은 "Theory and Techniques of Therapeutic Assessment"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치료적 평가의 이론과 기법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상담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지적 자극을 주는 참신한 내용이 별로 없더군요. 부부 치료에 공동 로샤를 적용하는 정도가 좀 색다를 뿐 대부분 이미 어느 정도 변형시켜 적용하고 있거나 제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더군요. 그래서 읽으면서 좀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번역서의 문제일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사례들은 미국의 문화적 배경에 근거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임상/상담 현장에 잘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라서 집중이 더 안 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을 번역하신 부산가톨릭의료원 메리놀병원의 최성진 선생님이 앞장서서 치료적 평가의 도입과 전파에 애쓰고 계신 것 같은데요. 올해 임상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관련 주제로 발표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련 현장인 병원에서는 이게 거의 유일한 돌파구입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가 병원에서 전권을 갖고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치료적 평가가 우리나라 병원 장면에 정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그러니 최성진 선생님의 혜안에는 공감하지만 앞으로 지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봅니다.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굳이 읽어볼 필요없지만 병원 장면에 계속 몸 담으면서 심리치료나 상담을 하고 싶은 임상가라면 반드시 치료적 평가를 습득하셔야 할 겁니다. 단, 이 책이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라고는 말씀 못 드립니다. 대신 치료적 평가가 대체 무엇인지 감이라도 잡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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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피드백 정보를 어떤 순서로 제시할 것인가
- 수준 1부터 시작하라. 이것은 내담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 다음으로 내담자가 자신에 대해 평소 생각하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수준 2를 소개한다.
-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내담자에게 수준 3을 소개한다.
* 심리검사는 전통적으로 치료와 분리되어 개념화되어 왔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내담자의 목표를 강조하지 않는 대신 의뢰된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치료적 평가는 내담자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내담자와 관련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 검사 무효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내담자가 직면한 변화의 딜레마를 평가자가 줄여주는 것이다.
* 나는 내담자와 결과를 공유하지 않는 평가는 내담자의 삶을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임상심리학자는 환자를 공감하고, 딜레마를 이해하며, 문제에 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마지못해 하는 방법은 공감적 실수에 의한 것이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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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들을 위한 맞춤형 글입니다.
대형 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으면서 상담이라고는 수련 요구 조건을 충족할 정도의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접했는데 전문가가 되자마자 덜렁 중독 상담이라는 하드코어 영역으로 떨어져 맨 땅에 헤딩하면서 상담을 몸으로 익힌 제가 상담, 심리치료를 익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같잖게 보일 수 있지만 병원 장면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가들은 사실 상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본격적인 supervision이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매우 부족하기에 제 경험이라도 도움이 되실까 하여 정리해 봅니다.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기본적인 방법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이 상담 내지는 개인 분석을 받는다. 이건 상담 전공을 하신 임상가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데 정작 임상 전공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본인이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상태가 아니라면 경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게슈탈트 집단상담을 30시간 받았지만 개인 상담이나 교육 분석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집단 상담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당시에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련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담자가 반드시 상담을 받을 필요는 없겠다는 선입견만 잔뜩 생긴 것이 아닌가 후회합니다.
2)
supervisor의 지도 하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내담자를 상담한다. 이것 역시 상담 전공자라면 당연한 수련 과정이겠지만 임상 영역에 계신 분들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임상의 supervisor들도 대부분 임상 전공자라서 본인이 상담 supervision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무엇보다 상담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담 supervision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저도 제 supervisor가 상담 supervision을 해 줄 능력이 안 되기에 외부 상담 기관의 supervisor를 찾아가 supervision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었지만 제가 상담한 케이스의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죠.
3)
관심 분야를 찾아서 좀 더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 기법이나 상담 접근법의 자격을 취득하거나 학회, 연구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EMDR, ACT, MBSR, MBCT, 사이코드라마 등이 있는데 전문성을 배가하고 자신의 상담/심리치료 내공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죠. 저는 단체나 조직, 집단으로 뭘 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병리연구회에 회비를 냄으로써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관심과 여력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면 좋습니다.
문제는 임상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순서와 방식으로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환경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국 저처럼 self-help training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했냐 하면,
우선 상담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을 읽었습니다. 임상 전공은 상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없기 때문에 춤으로 말하자면 소위 기본 스텝을 익히는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이 때 대학원 등에서 주로 보는 상담 이론서, 치료 이론서를 읽으면 안 됩니다. 그건 나중에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추가로 읽어도 됩니다. 지금은 춤의 원리와 이론을 익힐 때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책은 클라라 힐과 캐런 오브라이언이 공저한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스캇 마이어와 수잔 데이비스가 공저한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김환,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상담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Interview)'입니다. 이 3권의 책만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반대로 이 3권의 책만큼은 꼭 읽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도 안 읽고 상담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약간은 무식하게도 무조건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본 스텝을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보지 않으면 춤을 익힐 수 없듯이 어설프고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어도 내담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못할 짓 하는게 아니냐고 비판하실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경우는 supervisor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상담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내담자의 치유가 최우선이죠. 하지만 임상도 그렇고 상담도 그렇고 수련 과정의 특성 상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상태란 건 노선이 바뀌어 더 이상 오지 않는 버스와 같은 겁니다. 어찌 되었든 상담을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내담자부터 상담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임상 전공자라면 이 때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익숙한 심리평가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상담을 하다보면 당연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중요한 건 실수에서 배우는 겁니다. 모든 상담을 철저히 복기하고, 놓친 부분을 챙기고,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좌절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밀려드는 내담자를 기계적으로 만나는 것만큼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안무가는 없으니까 좌절할 시간에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세요.
예약한 상담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내담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상담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중요한 건 깊이를 추구하는 겁니다. 춤으로 따지자면 익히기 쉬운 스윙으로 시작했지만 탭 댄스로 갈 것인지, 탱고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상담에서도 generalist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문제에 좀 더 전문적으로, 좀 더 깊이,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로 상담하는 내담자의 유형이 대상 관계 이론의 틀로 접근할 때 잘 보인다면, 그리고 그러한 틀이 본인에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본격적으로 대상관계이론과 그에 따른 기술을 공부하는 겁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회나 모임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제가 드린 설명이 임상 전공이면서 상담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선험자 입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조언이니 가끔은 유용한 조언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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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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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 3를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면 이제쯤은 D.K. Academy의 명성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재야 고수 임상심리전문가 두 분이 실전에 특화된 심리평가 워크샵을 운영하는 걸로 유명하죠.
지금까지 로샤와 관련해서는 '로샤 완전 정복 워크샵'과 '로샤, 실시부터 해석까지' 워크샵을 차례로 열었는데 이번에는 검사 실시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끼는 초심자를 위한 실전 워크샵을 엽니다.
10월 1일부터 4주간 매일 3시간씩(총 12시간) 로샤의 실시와 코딩부터 차근차근 다룬다고 합니다. 강의와 연습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4번 모두 꼭 참석할 수 있는 분만 신청을 받는다네요.
대상은 대학원에서 심리평가 수업을 듣기는 했으나 Rorschach 검사에 대해 실시부터 차근차근 배우기를 원하는 분이라고 하네요. 임상심리전문가나 수련 중인 레지던트 선생님일 필요는 없는 것 같으나 대학원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최소한 심리학 전공자로 임상이나 상담 분야에서 일하거나 수련 중인 분들이 들으면 좋은 기초 워크샵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을 참고하시고 신청은 아래의 링크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신청하실 분들만 클릭~
로샤의 완전 기초부터 다지실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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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상담심리학회의 자격증인 상담심리사 자격 인정 기간입니다. 수련 수첩을 제출해서 그동안 수련받은 내용을 점검받는 기간이죠.
제대로 된 수련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그 자격의 전문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의 인기 과열과 맞물려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수가 급증하면서 심사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 것도, 그래서 학회의 고충이 커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련 인정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정을 안 해 주거나 '트집'을 잡아 그렇지 않아도 수련 받느라 힘든 선생님들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올해는 그런 '트집'들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로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고자 제보를 받겠습니다.
제보할 내용은 간단합니다.
본인이 수련 인정과 관련해서 직접 경험한 내용 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주관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면 됩니다.
이 포스팅에 댓글(비밀 댓글도 괜찮습니다)로 남겨 주시거나 walden3@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여러 supervisor에게 받지 않고 한 명에게 몰아서 받았다고 문제삼음
: 대체 이게 왜 시비거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이 바닥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심리평가 supervisor를 일일이 찾아서 제각기 다른 supervision fee를 내고 자기랑 맞지 않거나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든 말든 supervisor의 수만 늘려서 수첩을 채우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건 supervisee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월권 행위입니다. 그런 강요를 할거면 supervision fee를 학회에서 지원이라도 해 주면서 오지랖을 떨든지....
* supervisor의 사인이 아닌 도장이 찍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배짱
: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바로 전의 수첩에는 '서명'으로 인쇄되어 있지만 구 버전의 수련 수첩에는 엄연히 '인'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하였을 때 임상심리학회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 전문가 자격 번호까지 각인된, 비교적 quality가 괜찮은 전문가용 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전에 제대로 공지하지도 않고 갑자기 서명이 아닌 도장은 인정할 수 없다니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무엇보다 왜 도장을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가 없습니다.
-> 상담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재차 문의한 결과 전문가용 도장은 일단 인정하는 걸로 일단락 되었으나 차후에 도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검증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저보고 도장을 갖고 학회로 출석하라고 소환장이라도 발부하려나 봅니다.
* supervisor의 자격 번호가 앞 번호가 아닌 경우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박사 학위가 없는 경우 1급 자격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최근에 제보 받은 내용인데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지만 직접 경험한 내용은 아니라고 해서 일단 잠정 포스팅합니다. 이와 관련해 불이익을 직접 당한 선생님께서는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용 확정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신 것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딴지'를 위한 '딴지 걸기' 행태를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황당 사례들은 정리해서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덧. 이번에 자격 취득을 목표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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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을 당시만 해도 심리평가보고서에 긍정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는 수검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필요한 경우 정확한 변별 진단을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수검자의 심리적 자원이나 긍정적인 가치관, 태도, 대처 양식 등을 찾을 생각도 안 했고 설사 검사 sign을 통해 어렵사리 발견했다고 해도 보고서에 수록하려는 노력조차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을 병리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반성과 함께 긍정 심리학의 영향으로 인해 수검자의 긍정적인 자원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갖는 임상가의 수가 점차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검자의 핵심 문제도, 긍정적인 자원도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쓰여진 심리평가보고서가 가장 잘 쓴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더라도 막상 써 보면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그럼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밍밍한 보고서가 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자니 수검자가 받을 상처가 신경쓰여 두루뭉술하게 기술하기 쉽고 잘 보이지도 않는 수검자의 심리적 자원을 억지로 찾아내 적자니 평가자 스스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다 수검자의 비위나 맞추는, 아부하는 보고서를 쓰는 것 같은 찜찜한 불편함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임상가 중에도 수검자의 심리적 문제를 잘 찾아내는 평가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긍정적인 부분을 더 잘 발견하는 평가자도 있거든요. 둘 다 잘하는 평가자보다는 어느 한 쪽에 특화된 평가자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둘 다 확실히 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어느 한 쪽을 확실히 하는 방식으로 연습하실 것을 권합니다.
아니면 자신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기술 방법을 우선적으로 확실히 마스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장애 진단을 비롯해 정확한 문제 양상 파악 및 원인 확인이 필요한 분야(대개 병원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어설프게 긍정적인 내용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수검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러한 고통감에 영향을 미치는 잠정적인 변인들은 무엇이 있는지, 예후는 어떻고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등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낫습니다.
이와 달리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병리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관계 갈등 등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수검자를 많이 만나는 분야(일반적인 상담 장면)라면 상담 효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내담자의 긍정적 심리 자원을 찾아내기 위해 주력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솔직히 긍정적인 것보다는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진입로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내는 데 좀 더 익숙한데(아무래도 수련 환경의 영향이 크겠지요), 그러면서도 주로 몸 담고 있는 분야는 상담이라서 둘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있습니다만 심리평가를 하는 임상가라면 자신이 주로 일하는 영역과 어떤 내용을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는지 점검해서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방향을 잡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포스팅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 같은데 단점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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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 간 엘리시아 강촌 리조트에서 열렸던 한국임상심리학회 봄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보통은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를 통해 임상심리전문가 연수평점을 채우곤 했는데 그렇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임상심리학회 학술대회가 한국심리학회 연차 대회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quality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갈 때마다 기분이 상했기 때문입니다(올해도 이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고요). 그래서 매년 가는 해외 여행 시기를 여름철에서 다른 계절로 분산하기 시작한 이후로 여름철에 열리는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를 참석하지 못할 실질적인 원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에 참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왜 임상심리학회 학회에 참석했냐하면, 8월에 몽골, 12월에 대만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자칫하면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 기간과 겹칠 위험성이 있었고 휴가 기간이 모자라 학회 참석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왠일인지 올해부터 직장에서 학회 등록비를 지원하고 출장 처리까지 해 주는 바람에 아예 초반에 다녀오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미리미리 챙기고자 이번 봄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저는 2일차인 29, 30일 일정만 소화했습니다.
장소가 강촌인지라 가는 것도 일이어서(저희 집에서 itx 백양리역까지 지하철로만 꼬박 2시간이 걸리니까요;;;) 셔틀 버스 신청을 했습니다. 가격도 적당하고 대행사 일처리도 꼼꼼했는데 결과적으로 7시 20분까지 모이라고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길이 막혀서 버스 자체가 늦게 온데다 늦게 온 사람들을 태우느라고 7시 40분에 출발했는데 겨우 1시간 남짓 걸려서 8시 45분에 도착했으니까요. 미리 서두른 건 좋았는데 덕분에 저는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죠. ㅠ.ㅠ
이번 학술대회의 가장 큰 진행 상 문제 중 하나는 안내 표지판 설치가 부실했다는 겁니다. 수는 충분했지만 참석자 눈높이에서 부착한 것이 아니라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셔틀 버스 하차 장소에서 등록 데스크까지 안내문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감으로 찾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강의동 건물이 2개 밖에 없기는 했지만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 가는 길 중간 실외에는 안내문이 하나도 없어서 역시 감으로 찾아갈 수 밖에 없더군요. B, C, D Room이 위치한 건물에 진행 요원이 있지만 1층에 있는데다 그냥 책상 하나 달랑 놓고 앉아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학회 참석자가 앉아서 쉬는 줄 알았습니다.
등록 데스크도 동선이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전 등록과 현장 등록을 나눠 놓기는 했지만 제 경우는 사전 등록 후 환불 신청을 한 기관 신청자인데 별도의 안내가 없어서 사전 등록 데스크에 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현장 등록 데스크로 옮겨 가야 했습니다. 게다가 기관 신청자 명단에는 당일 등록만 한 걸로 표시되어 있어 확인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기도 했고요. 뭔가 딱딱 들어맞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등록자에게는 선물을 줬는데 내용물이 우산과 수건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인 30일에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었고 요새 수건을 기념품으로 주는 곳이 많지 않아서 무겁기만 한 머그컵이나 별로 쓸 데도 없는 USB 메모리 따위보다는 훨씬 실속있었지만 엄청난 길이의 종이박스에 담아서 불필요한 포장까지 해서 주는 바람에 아이디어가 빛이 바랬습니다. 다들 선물을 받자마자 내용물만 빼고 박스를 버리느라고 한바탕 북새통이었고 그나마 많지도 않은 쓰레기통이 가득 차더군요. 제가 기본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허식을 워낙 싫어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마지막 날도 이름표를 반납하려고 하니 재활용하지 않는다고 그냥 버리라고 해서 또 기분이 상했습니다. 이름표 규격이 통일이 되지 않아 재활용하지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들었지만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차원에서 모든 이름표를 통일해서 일괄 구매하고 남은 걸 회수해서 재활용하면 쓸데없이 버려지는 자원을 충분히 아낄 수 있을텐데 그냥 그럴 생각이 없는 무성의라는 생각만 들었죠,.
그런 무성의는 식사 제공에서도 드러나는데 저처럼 채식을 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까지는 기대도 안 했지만 엘리시아 강촌이 고립된 리조트인데다 자체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이 어마무시하기에 중식 도시락 사전 주문을 받은 건 적절한 조치(그래도 모든 메뉴가 육식 위주라서 기분은 씁쓸했습니다)였지만 그걸 1회용품과 비닐 봉지에 담아서 준데다 식사를 할 공간이 부족해 사람들이 야외에서 도시락을 까먹은 뒤 버린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다음 강의가 있는 강의장(C room)에서도 냄새를 풍기며 점심을 먹게 했더군요. 누가 강의장에서 식사를 하도록 안내했는지 찾아봤지만 진행 요원 한 명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와 비교해서 임상심리학회는 연수 평점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기 때문에 조기 탈락 방지를 위해 평점표를 강의 끝나고 제출하게 하는데 그거야 큰 불만없지만 그러면 연수 평점표를 제대로 수거해야죠. 셋째 날 R 통계방법론 강의 끝나고 조금 늦게 나갔더니 평점표를 수거하는 진행 요원이 가버려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멘붕에 빠졌습니다. 강의 시작 전에는 반드시 강의 끝나고 제출한 것만 인정된다고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으면서 말이죠,
정작 그 강의는 9시에 시작하는데 8시 45분까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도착해서 강의장에 불을 켜고 들어갔으니까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역시나 진행 요원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안내 방송도 없었고 하다 못해 강사도 안 와 있더군요. 처음에 강의장이 바뀐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돌아올 때 셔틀 버스를 타야했기에 시간표와 탑승 장소를 진행 요원에게 물어봤는데 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토스하더군요. 귀찮아서가 아니라 정말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정보도 숙지시키지 않고 진행 요원들에게 무슨 오리엔테이션을 한 건지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참석자의 눈높이에서 진행하지 않는 미숙함은 이번 학회에서도 여전했고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번 학회 장소처럼 고립된 곳이라면 그런 세심한 안내가 굉장히 중요한데 말이죠. 앞으로 엘리시아 강촌을 비롯해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하는 임상심리학회는 가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항상 학회를 다녀오면 제가 들은 강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평가와 소개를 해왔습니다만 이번에는 일부러 안 하겠습니다. 그저 이 말씀만 드리고 싶군요. 임상심리학회는 학회 행사를 준비할 때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타겟팅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련을 받고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인지, 올해 전문가가 된 신임 임상심리전문가인지, 현장에서 꽤 오래 practice를 한 senior 전문가인지, 아니면 대학원생 등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인지.... 제 생각에는 이도저도 아니었습니다.
타겟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개설한 강의들 같았습니다. 어떤 강의는 너무 기초적인 이론 설명에 치중하느라 하품만 나왔고, 어떤 강의는 너무 뻔한 기술적인 이야기에 시간을 들여서 실제 사례를 다룰 것으로 기대했다가 실망했으며 또 어떤 강의는 현장과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황당했습니다. 전문가를 타겟으로 한 강의는 하나도 없었고 더 큰 문제는 이런 강의들은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최소한 강의를 들으면 도움이 될 추천 대상을 명시하기만 했어도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씁쓸한 마음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체 왜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 때 개설되는 강좌에 비해 이처럼 quality차이가 나는 건가요?
앞으로는 꼭 듣고 싶은 강좌가 개설되지 않는 한(그것도 미리 아주 신중하게 알아보겠지요) 가능하면 임상심리학회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럼 이번 학회에는 좋은 점이 없었냐 하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엘리시아 강촌 리조트 2층에 우양정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봄철 한정 메뉴인 것 같은데 봄나물 막국수라고 있더군요. 12,000원으로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는데 결코 돈이 아깝지 않은 맛입니다. 꼭 드셔보세요. 불쾌한 기분을 싹 날려주는 힐링 메뉴였습니다.
다시 쓰고 싶지 않은 학회 후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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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전문가가 되고 난 뒤 가장 번거롭고 귀찮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전문가 자격 유지를 위한 연수 평점을 채우는 겁니다.
일년에 고작 10점(정확히는 9점)만 채우면 되는건데 그깟 것도 귀찮아하느냐고 나무라실 수 있지만 일상이 바쁘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작년까지는 천금같은 휴가를 쪼개서 학회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번거로운 연례 행사였는데요.
이게 어쩐 일인지 올해부터 직장에서 직원 교육비로 (연수 평점을 채우기 위한) 학회 참석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연차 휴가를 사용하지 않도록 출장 처리까지 해 주겠다고 하네요. 이게 왠 떡입니까!!
올해는 8월에 몽골, 12월에는 대만 여행까지 계획하고 있어서 최대한 많은 휴가 기간을 확보해야하는 저로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얼마만인지 모르겠지만(아마도 처음?) 이번 임상심리학회 봄 학술대회에는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어차피 하루 참석으로는 연수 평점을 다 채울 수 없다능;;;).
7시 20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 하는데 아직 짐을 못 쌌습니다(그러면서 왠 포스팅?;;)
학회에서 딴 짓하면서 노는 거야 늘 익숙하게 하던 일(!!)이니 괜찮지만 먹는 걸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전 중식 신청을 받기에 메뉴를 보니 제가 모두 먹을 수 없는 거라서 아무래도 바리바리 싸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현지 식당 이용은 최대한 자제하는 걸로(너무 비싸!!)...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놀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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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얼마전에 포스팅한
'주로 병원에서만 수련받은 임상심리전문가를 위한 조언'과 댓구를 이루는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가지를 말씀드리겠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상담자도 과학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임상/상담의 현장 모델을 흔히 scientist-practitioner model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담 전문가들은 practice에 초점을 맞춘 수련을 집중적으로 받는 반면 scientist가 되어야 할 필요성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흔히 scientist-practitioner model에서 scientist를 탐정으로, practitioner를 성직자로 비유하곤 하는데 내담자와 동고동락하고 내담자의 편에서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애쓰는 건 잘합니다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때로는 회의주의자의 자세로 객관적인 근거를 비판적으로 살피는 탐정의 역할은 간과되거나 때로는 폄하되기까지 합니다.
저는 3년을 병원에서 수련받고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자마자 상담 현장에서 지금까지 practice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심리전문가 수련을 받고 계신 선생님들께 이 말씀을 꼭 한번쯤 드리고 싶었습니다.
1. 회의주의자의 시각을 추가할 것
: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공감적으로 경청하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담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감추거나 방어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담자를 조종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담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상담자가 너무 많은 것에 굉장히 놀랐고 사실 지금도 놀라고 있습니다. 심리평가 수퍼비전을 하다보면 자신이 상담했던 내담자의 모습과 심리평가를 통해 드러난 모습이 다른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지는 상담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믿는 것을 치유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믿는다고 치유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상담자는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판정하기 위한 fact finding 자체가 아닙니다. 내담자도 (당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상담에 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내담자가 그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내담자의 주관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할 수 있게 됩니다.
2. 심리평가에 입각한 formulation을 연습할 것
: 내담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상담을 하게 되면 무엇이 객관적 진실이고 무엇이 주관적 거짓말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므로 상담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담은 fact finding을 해서 옳고 그름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내담자가 한 말과 호소하는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고 심리평가가 그러한 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상담의 다양한 모델과 접근법에 의해 내담자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심리평가를 통해 심리검사 도구가 측정하는 심리적 속성과 개념을 중심으로 내담자를 이해해 보는 것이죠. 심리검사는 분석적이고 계량화된 자료를 다루므로 내담자를 계량화하여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다룬다며 거부감을 느끼는 상담자도 있지만 그건 검사 도구 나름입니다. 어떤 심리검사도구(특히 투사 검사와 기질/성격 검사)는 상담자에게 익숙한 story telling을 통해 내담자의 모습을 드러내주기도 하니까요. 심리평가는 굉장히 용도가 다양한 칼과 같습니다. 그 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상담자가 도축자가 될 것이냐 검객이 될 것이냐의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그러니 심리검사를 공부하고 활용에 익숙해질수록 굉장히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됨을 아시게 될 겁니다.
3. 가설을 설정하고 접근하는 법을 익힐 것
: 상담자 중 상당수는 상담 중에 느끼는 막막함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만 심리검사를 사용하지만 그건 심리평가를 반쪽만 활용하는 겁니다. 심리평가는 일단 던져서 뭐가 걸렸는지 살펴보는 그물로만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도구니까요. 심리평가는 상담의 초기에 상담의 목표와 접근법, 과정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주된 문제와 증상, 어려움 등의 초기 정보를 토대로 가설을 설정(이를 위해서는 정신병리학이나 다양한 임상 관련 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겁니다. 가설을 설정할 때는 특정한 이론적 접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만 하면 항상 같은 가설을 설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family system theory의 차원에서만 내담자의 문제를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애착 이론으로만 내담자의 문제를 설명하려고 한다면요? 가설을 설정할 때는 내담자의 표면적 주 호소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다양한 가설을 세워보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를 옮겨타는 파격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담자를 보는 시각이 넓어집니다. 깊이보다는 넓이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되어 일가를 이루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상담은 어차피 평생 작업이니까요. 한 우물만 무작정 깊이 파다 보면 그 우물에 갇히게 됩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입니다.
4. 다다익선이 아니라 소소익선
: 상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을 주문받습니다만 앞으로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소소익선을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내담자의 어려움을 파악하는게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단기 상담이 주된 접근법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무엇보다 비용 대비/시간 대비 효율성을 따지게 될 테니까요. 라포를 형성할 회기 수를 확보하는 것마저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텐데 내담자의 개인 정보를 상담을 통해 모으는 건 내담자와 작업해야 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유관 전문가가 더 잘하는 부분은 분업해서 전담하도록 맡기고 상담자가 잘 하는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
소소익선을 통해 핵심적인 정보를 도출하려면 앞에서 말씀드린 가설을 설정하고 접근하는 법을 반드시 익혀야 하고 가설을 잘 설정하려면 회의주의자의 시각으로 내담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설정한 가설을 검증하려면 심리평가에 익숙해야 하니 이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모든 조언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 수련 중에 배운 것만 갖고 소속 기관에서 수퍼바이저나 선배가 시키는대로 history taking에 가계도 그리기, 매번 문장완성검사 결과까지 타이핑하면서 정해진 회기가 줄어드는 것에 발 동동 구르는, 번갯불에 콩 볶는 상담을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상담자라면 제 조언을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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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 파트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상담심리학 전공의 임상가들이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로 과거 치료력을 그대로 신뢰하는 게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상담이나 심리평가를 받으러 내방한 내담자가 과거에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다면 그 진단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죠. 하지만 막상 심리평가를 실시해보면 과거의 그 진단이라는 것과 얼토당토 않게 다른 결과를 받아들고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과거에 아무리 유명한 병원에서, 이름난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든 말든 간에 일단 모든 진단은 의심해야 합니다.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외래, 입원, 약물 치료를 막론하고)를 받은 병력이 있는 내담자를 보게 되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 진단이나 치료의 근거가 무엇인가
문진이나 BDI 등 false positive error 확률이 높은 자기 보고형 검사 결과가 그 근거라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기존 진단은 머릿속에서 싹 지우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진단을 받은 지 오래 지난 환자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맨 처음 진단이 틀렸을 경우 환자가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다니며 진료를 받을 때 나중에 환자를 문진한 의사가 기존 진단을 뒤집고 전혀 새로운 진단을 내리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존 진단이 옳다는 전제 하에 약을 바꾸거나 증량하는 등의 수정 조치를 취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는 첫 진단을 잘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2.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하였고 그것에 근거해 진단이 내려진 경우
일단 기존 진단을 신뢰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갖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다음의 두 가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1. 심리평가보고서 사본 확보. 2.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한 임상가의 전문성 확인. 심리평가보고서에 기인해 진단을 내렸다는 건 전해들었지만 내용을 볼 수 없다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반드시 심리평가보고서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또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임상가가 작성한 보고서라면 이 역시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임상가가 심리평가를 잘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 희박한 가능성에 내 내담자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3. (종합)심리평가보고서의 내용이 미심쩍은 경우
내담자 또는 보호자에게 이야기 해 심리평가 원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원자료를 복사해 오라고만 하면 절대로 제대로 된 자료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심리평가 원자료를 선뜻 내주는 병원이나 기관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MMPI-2의 결과지 1번에서 6번까지, 문장완성검사 앞, 뒷면 사본, 로샤 검사의 반응 기록지와 반응 영역 기록지, 구조적 요약지 등등 필요한
원자료 목록을 정확하게 적어서 그대로 의무 기록 복사를 해 오라고 주문해야 합니다. 병원의 원무과나 의무기록과로 직접 간다고 해도 어차피 정신건강의학과의 담당의나 심리평가를 실시한 임상가에게 연락이 가기 때문에 그들과 직접 통화해서 검사 원자료를 보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기관이나 임상가라면 취지를 이해하고 복사해 줄 겁니다. 만약 내규, 원칙, 규정 등을 내세우면서 복사 안 해주려고 버티면 고발하는 등의 조치(엄밀하게는 친고죄로 고소하는 것이며 의무기록 복사를 거부하는 의료인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의거 자격정지 15일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됩니다(그런 일은 가능한 한 있으면 안 되겠지만요).
간혹 심리평가를 실시한 기관이 폐업을 했거나 기간이 오래되어 파기를 했거나 아니면 망실된 경우도 꽤 많은데 그럴 경우는 결국 심리평가를 다시 실시해야 합니다.
단계적으로 살펴보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제 경우는 예전에 Big 5에 속하는 종합병원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supervisor가 supervision한 심리평가보고서에서 떡 하니 Paranoid SPR로 진단받은 환자가 미심쩍어 다시 평가해봤더니 Malingering이어서 큰 충격을 받은 이후 어떤 기관에서 어떤 전문가가 실시한 심리평가보고서도 거의 믿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실시하고 제 눈으로 확인한 검사 결과만 믿습니다.
그러니 상담자 선생님들은, 특히 심리평가에 약하다고 자인하는 선생님들일수록 항상 회의주의적인 자세를 굳건히 유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엄한 내담자에게 낙인을 찍지 않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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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병원에서만 꼬박 3년 동안 수련받은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주된 수련 현장이 병원 장면인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말씀드리겠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client를 병리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조금 심한 표현을 쓰자면 병원 독을 반드시 빼야 합니다. 대표적인 병원 독으로는 진단을 남발하는 것(진단을 붙이지 않은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불안해지는 증상), 성격적인 문제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나르니 히스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낙인찍기, 내가 치료할 거 아니니 보고서만 내면 땡이라는 식으로 치료적 관점에서 수검자를 바라보지 않는 무사안일주의 등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전문가가 되자마자 곧바로 상담 현장에서 상담을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상관없이 병원 독을 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임상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 이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년이 채 안 된 junior 전문가 선생님들께는 이 말씀을 꼭 한번쯤 드리고 싶었습니다.
1. 어떻게든 개인 상담을 많이 할 것
: 요새는 병원 수련 현장에서도 개인 상담 수련을 늘리고 있지만 제가 볼 때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전히 집단 치료의 보조 치료자로 들어가서 자리만 채우고 앉아 있는 정도이고 낮 병원 등에서 activity를 진행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걸로는 어림 없습니다. 전문가가 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개인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local NP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개업을 하든, 상담 센터에 취업하든 간에 무조건 개인 상담을 빨리, 많이 해야 합니다.
개인 상담을 많이 하는 것이 수련 중에 얼마나 인간을 병리적으로만 바라봤는지를 체험하고 교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2.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노력을 기울일 것
: 병원에서야 진단이 붙지 않으면 여러가지로 곤란해집니다. 처방을 하는 것도, 추가 치료를 하는 것도 껄끄러워지죠. 그래서 꼭 진단이 붙지 않아도 되는 client들까지 진단을 붙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을 내,외부에서 받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으로 나와보면 도움을 줘야 하는 수많은 client들 중에서 진단을 꼭 붙여야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히 소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수련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진단을 붙이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진단 없이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하지 않아도 그냥 비슷한 진단을 내리는 비슷비슷한 보고서를 자동적으로 쓰게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려고 노력해야만 내가 이 수검자를 담당한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상담을 진행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단만 내리기 위한 심리평가를 진행했을 때와 다른 내담자의 심리적 면모가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동일한 문제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 진단을 붙이지 않고 수검자의 문제를 formulation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세요.
3. chart 등을 보지 말고 case formulation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이끌어 내도록 연습할 것
: 병원에서야 chart만 훑어봐도 전문의가 이미 임상적 진단도 붙여 놓았고, 사회복지전문가가 history taking도 꼼꼼히 해 놓았기 때문에 별도의 면담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그저 변별 진단에 필요한 진단 기준들만 몇 가지 확인하면 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진단적 면담일 뿐입니다. 진단명을 붙이지 않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려면 그 정도 정보로는 어림 없습니다. 대부분의 진단은 현재 이 수검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줄 뿐이지만 치료적 관점에서 client를 보려면 영향을 미쳤거나 현재도 미치고 있는 다양한 원인들을 일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문가 수련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넓은 조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멀게는 부모-자녀 관계에서의 애착 외상 문제부터 분리-개별화 문제, 성역할 동일시의 문제, 성 정체감의 문제, sibling rivalry 문제, 가족 내 소외 문제, 기본적인 신뢰의 형성 및 일반화 문제, 의존 대 독립의 문제까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양한 영역의 공부를 새로 해야 합니다. 대학원 때의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정신병리학과 심리평가에 대한 공부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4. 종단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심리검사 도구를 추가할 것
: 앞서 병원 수련 과정에서 히스니 나르니 보더니 하는 성격 문제를 기본으로 깔고 보는 못된 버릇이 생긴다는 지적을 했습니다만 우스운 건 그러면서도 정작 성격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 심리상태를 횡단적으로 잘라서 보는 종합심리평가로는 한 개인의 사회화 과정이 종단적으로 녹아들어간 성격 문제를 명징하게 보여주지 못하니까요. 로샤 검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특히 Exner 방식의 양적 해석 방식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수검자의 기질이나 성격, 성격 역동을 살펴볼 수 있는 추가적인 검사 도구를 공부해서 심리평가 과정에 추가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TCI, TAT, 로샤의 질적 해석 방법을 추천합니다. TCI로는 좀 더 구조화된 방식으로 기질 및 성격 문제에 접근할 수 있으며 TAT로는 성격적인 문제가 녹아들어간 관계 역동을 살펴볼 수 있고 로샤의 질적 해석 방법으로는 원가족 역동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병원의 임상심리실에 소속되어 의사가 이미 내린 임상적 진단을 그대로 베껴 내는 보고서만 줄창 쓰면서 살 게 아니라면 제 조언을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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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upervision을 하면서 그동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supervisee 선생님들에게 느낀 것인데요. 하나는 전공, 출신 학교, 수련 과정의 차이 없이 대부분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겁니다. 돌려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supervisee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아마 저도 수련을 받을 때는 똑같았겠지요)
formulation도 잘 되었고 작성한 심리평가보고서도 훌륭해서 진심으로 칭찬을 하거나 감탄을 하면 속으로는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운이 좋은거지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멀었는데요 뭐"라는 반응이 나와서 맥이 풀립니다.
하도 답답해서 2010년에는 관련 포스팅('supervisee를 혼내야 실력이 는다고 착각하는 supervisor')을 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저하되어 있는 supervisee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를 저는 수련 과정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처벌 위주의 도제 중심이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명감과 겸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임상가가 전문가가 되고 난 뒤에는 자기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supervisor가 됩니다. 그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자신이 supervisor가 되면 그저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겁니다.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첫 번째 문제와도 연결될텐데 많은 supervisee 선생님들이 자신이 제대로 심리검사를 진행했는지, 채점은 틀리지 않았는지, 터무니 없는 진단 가설을 세운 건 아닌지, 심리평가보고서는 제대로 쓴 건지 등등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저도 흔히 하는 실수라서 지적하면 제가 놀랄 정도로 미안해 하거나 심하게 주눅이 드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굉장히 불리합니다. 그 불리함은 심리평가를 진행할 때 뿐 아니라 심리치료나 상담을 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자신감이 없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고 불안 수준이 높으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없고 라포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상담 회기를 늘려 치유를 더디게 만듭니다.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북돋고,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불안을 애써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임상가라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내담자가 알아차릴 정도로 불안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절대로 훌륭한 임상가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품질의 진주라도 시궁창 깊숙이 쳐박아 놓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자신감 없고 불안 수준이 높은 임상가가 과연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 수준은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되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기 전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하세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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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아마존
Applied Clinical Psychology 시리즈에서 나온 책으로 내용은 책 제목 그대로 임상 심리 인턴을 위한 지침들을 모아놓은 겁니다.
대표 저자인 Zammit와 Hull을 포함해 8명의 저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이고 주된 내용은 선발 과정, 인턴십 과정의 세팅, 관련 전문가에 대한 소개 및 관계 맺기, 수련 과정 적응하기, 실습하기, DSM-IV를 이용해 진단하기, 심리평가하기, 심리치료하기, 차트 기록하고 심리평가보고서 작성하기, 정신약물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 등입니다.
저야 수련을 다시 받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련을 앞두고 있거나 현재 수련 중인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까 하여 읽기 시작했으나 다 읽고 나서 1995년 발간된 책이란 건 알게 되었습니다(역시나 별 내용이 없더라니;;;). 20년이나 된 오래된 지식이라 별로 건질 건 없었습니다. 너무 구태의연한 내용들 뿐이에요.
게다가 그 당시 기준으로도 심리학과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 과정 입문 지침서 정도의 책이라서 우리나라 대학원생 수준에서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오히려 놀라운 건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아마존에서 135불이라는 가히 엽기적인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는 점!!
그래도 다음과 같은 (당연한) 수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하나의 수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APPIC 인턴십 프로그램의 요구 조건
1. 최소한 두 명 이상의 supervisor가 supervision을 제공해야 함.
2. 인턴 수련 과정 중 최소한 25% 이상의 시간이 직접 환자를 만나는 데 사용되어야 함.
3. 일주일에 각각 최소 2시간 이상의 면 대면 supervision과 seminar/case conference가 제공되어야 함.
4. 인턴십 프로그램은 최소 1,500시간, 24개월 연속으로 진행되어야 함.
5. 인턴에게는 급료가 제공되어야 함(무급 인턴 불허).
일부 조건만 가져왔지만 우리나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는 저 조건이라도 모두 충족하는 수련 기관이 거의 없을 겁니다. 두 명 이상의 supervisor로부터 supervision을 받을 수 있는 기관 자체가 전무하니까요. 첫 번째 조건만 적용해도 우리나라 수련 기관의 99% 이상이 탈락할겁니다. 게다가 20년 전에도 미국에서는 불허했던 무급 수련생 제도를 떡하니 악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지침서 자체가 아예 없죠. 임상심리학의 역사가 반 백년이 넘는데도 말이죠.
마음만 답답해진 독서였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혹시라도 책 내용을 궁금해 하실 분이 계실까 싶어 북 크로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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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담사 자격 연수 때 매번 로샤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만 해놓고 책임도 못 지는 무책임한 월덴지기입니다. ㅠ.ㅠ
올해는 아예 저보고 로샤 워크샵을 진행해 달라고 직접 문의를 주신 선생님까지 계셨는데 제가 하는 일도 없이 바쁜 통에 그 청을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실력 충만한 선생님들께 연결했는데 제 push가 통했는지 올해가 가기 전에 다행히 로샤 워크샵이 열렸네요.
10월 3일부터 12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5시에서 8시까지 3시간 동안 10주에 걸쳐 진행되는 로샤 집중 워크샵입니다.
작년에 4주 동안 진행되는 로샤 미니 워크샵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은 10주로 대폭 강화되었네요. 기대가 큽니다.
로샤 검사의 실시, 채점, 해석 3단계를 모두 다룰 뿐 아니라 사례 supervision까지 진행되는 알찬 워크샵이네요.
강사는 제가 실력을 보장하는 두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입니다.
이 참에 로샤를 정복해야겠다고 마음 단단히 드신 분이나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 정원이 8명에 불과하니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quality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 접수를 안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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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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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아카데미의 심리평가 워크샵 : Rorschach, 실시에서 해석까지 워크샵을 엽니다. (드디어!) 일 년 만에 D.K. Academy의 심리평가 워크샵이 열립니다. 로샤에 대한 워크샵 요청이 있어서, 올해가 가..
심리학이 언제부터 이렇게 붐을 일으켰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참 많은 분들이 상담자가 되고 싶다거나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상담하는 내담자들(특히 청소년들)이 그런 이야기를 특히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듣고 넘겼죠.
그런데 이 문제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이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상이나 상담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있는 분들의 진학, 수련 동기를 들어보면 과거에 비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세 줄로 결론부터 요약해서 말씀드리고 나머지를 설명하겠습니다.
1. 마음이 건강한 사람만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2. 마음이 건강한 상담자만 내담자를 온전히 도울 수 있다
3. 따라서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치유하고 난 뒤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or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중에서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자가 되려고 하죠.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넘치는 분들이 상담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문제를 자가 치유하려고 상담자가 되는 분들은 문제입니다. 자가 치유 과정도 결국은 배움의 과정인만큼 어디까지가 치유이고 어디까지가 배움인지를 단칼에 나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아픈 마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내담자를 돕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다친 마음이 내담자를 대할 때 온전한 도움을 주는 걸 방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상담자가 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다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내담자를 온전히 받아 안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상담 과정만큼은 확실히 책임져야 합니다. 그건 상담자에게 주어진 직무니까요. 상담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아픈 마음을 움켜쥐고 내담자 앞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자나 임상가가 되려는 분들은 마음을 바꾸세요. 자신의 상처 치유가 먼저입니다. 상담자나 임상가가 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나서 생각하세요. 자신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고 난 이후에도 상담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변화가 없다면(또는 오히려 더 강해진다면) 그 때 상담자의 길을 걸어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길은 어차피 평생 걸어야 할 길이니까요.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만 상담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 뒤 상담자가 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바닥에서 내담자보다도 건강하지 못한 상담자를 보는 것만큼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덧. 이 포스팅은 네이버 블로거 '서늘한 여름밤'님의
'마음의 고민은 대학원이 아니라 상담소에서!' 포스팅을 보고 영감을 얻어 평소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본 겁니다. (개인적인 첨언 : 잘 살고 계실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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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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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덴님의 블로그에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치유한 후에 상담가가 되는 것을 권한다고 하는 글을 보고 적습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마음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가..
작년 3월에 한국심리주식회사에서 Beck 관련 척도의 판권을 산 뒤 임상심리학회 정회원들에게
협조협박 문건을 발송한 내용을 포스팅한 적(
'한국심리주식회사가 Beck 척도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만' 포스팅 참조)이 있습니다.
그 때의 제 논조는 Beck 척도를 사용하는 관련자를 그렇게 잠재적 범죄자 취급까지 했어야 했냐는 감정적인 질타에 가까운 것이었는데요.
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척도들이 사용된 심리평가 케이스를 다수 supervision하면서 문제가 제가 생각하던 수준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봤던 건 BDI와 BAI인데요.
가장 큰 문제는 증상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 수검자에게 MMPI-2/A와 BDI를 동시에 실시하면(기관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검사 수가를 맞추기 위해서 둘 다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수검자에게 떠넘기는 불합리한 관행입니다만)
전혀 우울하지 않은 타당한 MMPI-2/A 프로파일을 보이는 수검자의 경우에도 대부분 BDI 결과에서는 우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BDI 결과에서 우울하지 않은 정상 수준으로 나타나려면 MMPI-2/A에서는 정상 수준이 아닌 S나 K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상승한 방어적 프로파일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BDI, BAI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해서 의미 그대로 해석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우울, 불안하지도 않은 수검자를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잘못 진단할 수 있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다는 말입니다.
물론 MMPI-2/A와 BDI, BAI가 함께 상승한 수검자의 경우는 BDI, BAI의 문항 내용 분석을 통해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이 또한 MMPI-2/A의 문항 분석(결정적 문항 등)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불필요한 비용과 심리적인 부담을 수검자에게 전가하는 BDI, BAI를 굳이 실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나마 MMPI-2/A를 함께 실시하는 경우라면 그래도 해결책이 있는데 선별평가에서 BDI, BAI만 사용하는 경우는 정말 큰일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없거나 파트 타임 임상가로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local NP에서 여전히 BDI, BAI만 사용해서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진단하고 약물치료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저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게 나타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BDI, BAI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덧. BDI의 경우 높은 수준으로 측정된 사례의 문항 내용을 살펴보면 endogenous depression에서 흔히 나타나는 vegetative symptom 관련 문항보다는 guilty feeling, punishment, internal attribution 관련 문항이 높게 평정된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역기능적인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 교정, 대인 관계 역동 분석을 해야 하는 수검자를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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