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이글루스에서 라깡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들이 있는 것 같은데 라깡에 대해 제가 문외한이기는 해도 다른 차원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기에 포스팅합니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논쟁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트랙백과 댓글 논쟁은 사양합니다. 지인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저는 논쟁은 학문 발전이나 정신 건강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논쟁은 전혀 쓸데없는 짓이다' 참조). 따라서 트랙백은 거는 족족 삭제할 것이고 댓글 논쟁을 점화하는 분은 삭제 및 차단 콤보로 대응합니다(대문의
'월덴 3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글 참조).
우선 저는 지금까지 심리학을 공부해 오면서 라깡에 대해서 체계적으로든 사변적으로든 들은 적이 전혀 없는데 그것은 제가 배운 심리학이 미국 심리학을 따르기 때문이지, 라깡이 그렇게 대충 취급받아도 상관없는 듣보잡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유럽 심리학의 계보를 따르는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도매금으로 듣보잡이 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닙니다. 그러니 시야를 넓히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라깡이 심리학자라는 논란에 대해서는 역시 지식이 부족하여 길게 말씀은 못 드리나 '정신분석학=심리학' 또는 '정신분석학=임상심리학'이라는 공식만 대입해서는 아무리 열심히 논쟁하고 토론해도 답 안 나옵니다. 라깡이 정신분석학자이자 언어학자(같이 사는 사람이 불어불문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라깡에 대해 세미나를 했을 정도로 저 보다는 더 많이 아는데 그렇다고 하는군요)라고 하더라도 심리학자내지는 임상심리학자라고 규정짓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위에서 제시한 공식을 자꾸 대입하려고 하면 라깡이 임상심리학자가 되고 심리치료전문가가 되고 그러니 사이비가 되고 그러다 보니 정신분석을 따르는 치료자들도 또 도매금으로 사이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심리학을 처음 접했을 때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정신분석은 프로이드 빼면 시체고, 검증도 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분야라서 심리학에서는 사이비 취급하고 그러니 별로 중요한 포지션이 아니라고 배우겠지만 이게 현장에 나오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치료의 효과성 어쩌고 저쩌고 따지는 것도 이미 구 시대의 유물이고 치료 기법이 400개가 넘어가는 요즈음에는 치료만 잘 되면 어떤 치료적 개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합-절충주의의 시대입니다. 저 또한 절충주의자고요. 정신분석치료는 치료가 안 되고, 인지행동치료는 치료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주장이에요. 메타분석한 결과를 보면 특정 기법이 효과적인 장애(예를 들어 공황장애에는 CBT가 특별히 효과적이라는 것)가 분명 있기는 하지만 치료 기법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그리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과가 이미 대세에요. 이 바닥에서는 오히려 환자/내담자의 치료 선택권까지 주제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정신분석이 치료 효과가 없느니 어쩌니 하는 영양가 전혀 없는 주장은 저기 안드로메다에나 가서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현장에 대해서 개뿔도 모르는 학생들은 쓸데없는 논쟁을 할 시간에 공부나 더 열심히 하세요. 특히 임상심리학자가 될 사람들은 더 말하면 입 아프고요. 현장에 나오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말해도 참....
3줄 요약하겠습니다. 요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지만...
1. 미국 심리학을 맹종하는 한국 심리학계에서 라깡이 차지하는 위상이 확실히 형편없기는 하지만(사실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인문학 분야에서까지 라깡이 듣보잡인 것은 아닙니다.
2. 심리학은 임상심리학을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하위 분파가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은 심리학이라는 광대한 바다에 뜬 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심리학=임상심리학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저 같은 임상심리학자들이 기뻐할리도 없고 뿌듯하지도 않습니다.
3. 정신분석 또한 임상심리학이라는 광대한 바다에 떠 있는 것은 맞지만 결코 그 위상과 효용성이 작은 섬 정도는 아닙니다. 최소한 하나의 대륙 정도는 됩니다. 미국 심리학의 관점에서만 임상심리학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 심리학 전공자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아직 못 느끼고 있다면 앞날이 캄캄하니 전직을 고려해 보시거나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시려면 빨리 발상의 전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