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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1 [북 크로싱] 글 읽기와 삶 읽기(1992)(국민도서관에 보관 중)
- 2018/03/17 [서적] 글 읽기와 삶 읽기(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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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25 [북 크로싱]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アラスカ 風のような物語, 2000)(국민도서관에 보관 중) (6)
- 2011/11/23 [심리치료] 자살 위험 내담자의 상담 전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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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18 도박 중독은 절호의 기회이다
- 2010/04/01 [북 크로싱] 자유죽음 : 삶의 존엄과 자살의 선택에 대하여(Hand an sich legen Diskurs uber den Freitod, 1976)(국민도서관에 보관 중) (18)
- 2010/03/31 [서적] 자유죽음 : 삶의 존엄과 자살의 선택에 대하여(Hand an sich legen Diskurs uber den Freitod, 1976) (4)
- 2010/02/21 [서적]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2009) (2)
- 2009/11/30 [북 크로싱] 2009년 11월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보관 중) (29)
- 2009/10/17 [북 크로싱]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2007)(국민도서관에 보관 중)
- 2009/10/16 [서적]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2007)
- 2009/10/01 [서적]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2009)
- 2008/12/12 [서적] 사막별 여행자(Y A PAS D'EMBOUTEILLAGE DANS LE DESERT, 2006) (2)
- 2007/09/18 내 인생을 바꾼 이 한 권의 책 (22)
올해 제가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날짜는 7월 1일이었습니다. 그 전에 남은 휴가를 써야 해서 6월 9일 이후로는 회사에 안 나갔고요. 나름 6년 동안 준비를 했음에도 막상 15년을 일했던 직장에서 나오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지더군요. 몸과 마음을 쉬면서 이후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활용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서 소화하느라 한 달 동안 무리를 하는 바람에 심한 감기로 큰 곤욕을 치렀죠.
프리랜서의 삶은 일이 없어도 곤란해지고 일이 많아도 문제가 됩니다. 일이 없으면 생계가 곤란해지고 일이 너무 많으면 삶의 균형이 깨지게 되죠. 저는 다행히 일이 많은 축이었지만 한 달 동안 지옥의 강행군을 하다보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일이 많은 건 다행이지만 평생 이렇게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런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고 일만 하다 후회하며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삶의 패턴이 고정되기 전에 뭔가 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단 하루는 세 부분으로 나눠서 8시간은 수면, 8시간은 일, 8시간은 여가 시간으로 나눴습니다. 12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나고 9시 40분 쯤에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그 다음에 오전 10시부터 2시간 일하고 한 시간 쉬는 걸 반복하면서 8시간 일을 하면 정확하게 밤 9시에 일이 끝나고 퇴근하게 됩니다. 저처럼 시간 단위로 일하는 직업은 일반 직장인의 일과 전혀 다릅니다. 아무래도 client를 상대하는 일이니까요. 일하는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나게 집중해서 밀도있게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가 없더군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8시간을 자면 무엇을 해도 버틸 힘을 확보하게 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잠을 줄이고 그 시간에 딴 짓을 했는데 알고 보니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충분히 자고 남은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매일 이렇게 8시간씩 일하면 결국은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에 주 5일제로 고정했습니다.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닷새만 일하고 월, 화요일은 철저히 쉬는 걸로 정했죠. 아직은 화요일에도 일이 있지만 차차 줄여나가서 월, 화요일은 응급으로 들어오는 외부 강의를 제외하면 모든 일정을 비우고 쉬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분기마다 일주일을 통으로 쉬는 안식주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4/4분기는 그 첫 시도로 12월 24일부터 1월 1일까지 일주일을 쉬기로 했고 앞으로도 3개월마다 일주일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쉬려고 합니다.
최종 목표는 안식월 도입으로 일 년에 한 달은 통째로 쉬는 겁니다. 내년 12월에 버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것과 연결하여 12월 한 달을 쉬려고 계획 중입니다. 그러려면 한 달 생활비를 평소에 따로 저축해놔야겠지요. 11개월 일한 것으로 일 년을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여행비는 따로 모으고 있으니 외부 강의비를 떼어 마련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으니 저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독립해서 일을 시작한 초기에 일과 쉼의 균형을 맞춰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고민만 하다가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에 일단 시작해보고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때 보완해 나가려고 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잘 되어가는지는 나중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일단 포스팅부터 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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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 교수인 조한혜정 선생님이 25년 전에 쓰신 '글 읽기와 삶 읽기(1992)'를 북 크로싱합니다.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으로 읽지 못하는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대학생이었던 분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수업에서 다루었던 주제나 토론 내용을 그다지 가감 없이 싣고 있어서 신선하기는 하지만 완성도가 높지는 않아서 다소 아쉽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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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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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 교수인 조한혜정 선생님이 쓴 '글 읽기와 삶 읽기' 1권입니다. 이 책이 나온 게 1992년이고 나머지 2권과 3권도 1994년에 나왔으니 1997년에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하기 이전이라 지은이 이름이 조혜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글 읽기와 삶 읽기'는 3권으로 된 시리즈로 지금 읽으면 약간 무섭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만 저는 학생 운동의 절정기였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로 돌아간 듯한 친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한혜정 선생님이 이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는 사실 별 거 없습니다. 왜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 창조적으로 읽지 않는가, 왜 글은 겉돌고 삶은 헛도는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책입니다. 1991년 봄 학기에 본인의 '문화이론'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수업 중에 쓴 글과 토론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어떻게 하면 글과 삶을 연결하여 쓰고 읽을 수 있는가를 고민한 책이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제게는 매우 친숙한 시대 배경이기도 하고 그 당시 대학생들의 사고 방식과 고민을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읽히고 이해도 잘 되는 반면 어느새 20년이 넘게 훌쩍 지나 세월의 더께가 쌓인 지금의 제게는 '대체 이런 풋풋하지만 설익은 이야기들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푸념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학 다닐 때 많이 볼 수 있던 사회과학 동아리의 토론집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처럼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던 분들에게는 추억팔이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겠지만 그 외의 분들에게는 선뜻 추천하기 어렵겠습니다. 워낙 시대 배경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용들이 많거든요.
덧. 지인께서 북 크로싱 해 주셔서 이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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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담도 그렇지만 도박 중독 치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개의 축이라면 재정 문제와 관계 문제를 듭니다.
이 두 가지 핵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도박자 뿐 아니라 상담자도 빠지기 쉬운 함정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겁니다. 즉, 상담을 하기 이전에 (-)의 삶을 살았다면 상담을 통해 (0)의 삶으로 끌어올리려는 거지요.
3,000만 원의 빚이 있다면 그 빚을 다 갚는 것, 부끄러워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할 수 있게 되는 것 등이 바로 '제로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진흙 구덩이 속에서 박박 기다가 구덩이 밖으로 올라와 한숨 돌렸다면 안도감이야 들겠지만 그걸로 충분할까요?
도박을 하던 삶과 도박을 그만둔 후의 삶의 모습이 별로 다를 바 없다면 우리는 대체 왜 도박을 그만둔 걸까요? 그 재미있는 도박을 그만둔 댓가가 더 이상 자신을 재정, 관계 면에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거라면 만족하시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삶을 살려고 도박을 그만둔 것이 아니죠.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상담을 하는 것이지 위험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도박을 그만두었다고 갑자기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소원해진 친구와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방법은
도박 이전에 누리던 소소한 삶의 즐거움부터 되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아이와 같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가족들과 워터파크나 눈썰매장으로 놀러가고, 퇴근할 때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가서 나눠먹고,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과 치맥 모임을 하고, 자전거나 등산 동호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고, 문화센터에서 기타를 배우고 등등. 큰 돈이 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찾아보면 참 많습니다.
만약 도박에 빠지기 이전에도 그런 사소한 행복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참 의미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니 어서 빨리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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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의 모토 중 하나는 '최대한 남들과 다르게 살아라'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최대한 모난 돌이 되어라' 정도로 바꿀 수 있겠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튀지마라", "중간만 해라", "남들하는대로만 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건 우리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던 시대에나 효과적인 적응 전략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튀면 가장 먼저 맹수의 습격을 받거나 무리에서 배제되어 생존의 위협을 받았으니까요. 그러한 무리짓기 본능이 DNA로 각인되어 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현대인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분쟁 사회가 아니라면요.
더 이상 안전 지향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들과 비슷하게 살수록 더 위험해집니다. 배에 구멍이 뚫렸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몰려 가면 하중이 쏠려 배가 더 빨리 침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남들이 이게 새로운 투자처라고 우 몰려갈 때 절대로 그리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때 집단 지성을 신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인공 지능의 시대, Know-where의 시대입니다. 사실 그 당시는 집단 지성이 아니라 집단 체력의 시대, 집단 압력의 시대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섞여 살면 안 되는 이유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걔중 앞서 가는 누군가(현명한지는 아무도 모르는)의 판단과 시야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어찌 보면 집단주의의 대표적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는 한 줌도 안 되는 위정자의 판단에 그동안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도박을 해 왔죠.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요?
또한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비교 기준이 내 옆에 서 있는, 내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는 사람에 국한되어 하향 평준화 됩니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냐가 어느 지역 아파트에 살고 있냐로, 어떤 급의 자동차를 타고 있냐로,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로 바뀌었을 뿐 다른 삶의 기준을 고려하지 못하게 됩니다. 직급이 어느 수준이냐로 따진다는 건 조직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것인데도 이후를 고려하지 못하고 충성에 목을 매게 됩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거지요.
그럼 불확실성의 시대에 남들과 최대한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각자 도생의 시대가 도래하면 어차피 남들과 비슷하게 가는 전략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워집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르게 살면 블루 오션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레드 오션은 정보력, 자금을 가진 소수에게만 유리하지만 블루 오션은 아닙니다. 틈새 시장을 선점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죠. 제가 이 블로그를 만든 게 2004년 7월입니다. 그냥 제가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 제가 공부했던 자료를 올려서 다른 사람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만들었죠. 그 당시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니 노하우인데 그걸 왜 공유하냐, 왜 남 좋은 일을 시키는거냐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 블로그 때문에 책도 썼고, 강의도 많이 하고 있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때 남들처럼 나만 알고 있거나 유료 폐쇄 사이트를 만들었거나 했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겁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비교 대상이 없으니 실패해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차라면 남들보다 작은 경차를 타는 것이 창피할 수 있으나 차를 원하지 않아 차 없이 사는 삶은 비교 대상 자체가 없으니까요. 자신의 차보다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치 않는 차 대신 다른 것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죠.
이 글의 제목이 '최대한' 남들과 다르게 살라는 것인데 그럼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남들과 반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양육과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남들처럼 살도록 세뇌되었기 때문에 관성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남들처럼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일부러 남들과 반대로 살도록 노력하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터널 속을 달릴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터널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려면 가속이 줄어들고 관성이 깨질 때까지는 일부러 다른 사람과 달리 살아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 애쓴 결과로 제 삶이 어떻게 되었냐 하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집을 사지 않기로 했고(기회가 되면 아예 제 집을 지을 생각이지만),
차도 안 사고, TV도 안 사고,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입양했고,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비건 채식인이 되었고, 네
세 곳의 정기후원을 하고 있고,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이건 노력 중입니다만). 그리고 여전히 남들과 다른 삶은 진행 중이죠. 무엇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제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사는 인생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도 남들과 똑같은데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남들과 똑같다면 재미 없잖아요. 제가 누군가의 아바타나 클론도 아니고.
그렇게 많이 다른 것도 아닌데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참 좋더라고요. 행복하고요. 초반의 거리낌만 극복하고 나면 마음의 평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참 편해요.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기대보다 훨씬 더 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과 다른 삶,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한번 살아보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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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심리학 분야를 비롯해 인문학을 살펴봐도 그렇고요. 힐링을 다루는 많은 책들도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 상 옳은 말일수록 내 것으로 만들기는 더 어렵더군요. 저는 나름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구든 그렇게 되려면 단순히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결정적인 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런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만 에크하르트 톨레가 이야기하는 'Now'를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게는 그런 체험의 기회를 준 두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하고 '여행'입니다.
죽음과 직접 조우했던 건 아니었지만 삶의 유한성에 대해 뼈저리게 통찰했던 경험이었죠. 지금도 가끔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세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래가 주목되는 심리학 박사였던 제 학부 선배의 죽음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어처구니없이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조문을 가면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기는 하지만 그 선배의 장례식장에서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 인생이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에 빠져 한동안 힘들었었죠.
두 번째 죽음은 가뭄에 콩나듯이 제게는 아주 드문 술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문이었던 녀석의 죽음이었습니다. 제 보험 설계사이기도 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술 생각 나서 전화했냐?"고 농을 던졌는데 그 녀석이 아니라 그 녀석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어제 새벽 귀갓길에 뺑소니 차에 치여 그 녀석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전년도 말에 기분좋게 술 한잔 하고 헤어지면서 불콰한 얼굴로 사람좋게 웃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 녀석은 자신에게 내년이 없을 걸 알았을까?'하는 생각이 몇 달 동안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나에게도 내년이 허락되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도요. 조문을 갔다가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한 약혼녀를 보고 가슴이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그날 참 많이도 울었지요.
세 번째 죽음은 도박 중독 상담을 받던 제 내담자였습니다. 술 문제도 함께 있던 분이었는데 가족과 함께 상담을 받고 있었고 가족 갈등이 심해서 그 쪽으로 초점을 맞춰 상담을 진행하던 차에 이 분이 술 김에 가족에게 울분을 토로하면서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박카스 병에 담아놓은 농약을 충동적으로 마시는 바람에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저세상으로 가버리셨습니다. 그 때의 충격으로 포스팅을 한 글(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도 있습니다. 그 당시 남은 가족들을 계속 상담하면서 함께 애도 작업을 했는데 상담자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유한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지금까지 살면서 저도 병환이나 고령으로 많은 친지들과 사별했지만 선배와 친구와 내담자, 이 세 사람의 죽음만큼 제게 큰 울림을 준 사건이 없었습니다. 이 세 번의 경험으로 제 인생관이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생명의 덧없음을, 삶의 유한성을,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전혀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지 않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남지 않을만큼요.
그래서 저는 죽음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 올 때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지 말고 최대한 머무르면서 그 의미를 곰씹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싶겠지만 버티세요. 어차피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언제 내게 닥칠 지 모릅니다. 그걸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를 살 수 있습니다.
죽음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Now'를 충실하게 살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여행'도 있습니다. 죽음과는 반대 의미에서요. '삶의 충실함'을 몸으로 느꼈거든요. 몇 번의 경험이 있었는데
'2006년 터키 여행 때 생일날 열기구 위에서 본 떠오르는 아침해', '2009년 네팔 여행 때 본 일출', '2010년 쿠바 여행 때 마리아 라 고르다 해변에 누워 있던 경험', '2011년 스페인 여행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눈물 흘린 경험', '2013년 케냐 여행 때 라무섬에서 보낸 2박 3일' 등이 대표적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꼈거나 살아있기를 잘 했다는 뿌듯함을 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행에는 여러가지 장점이 참 많지만 저는 제가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도 여행을 사랑합니다. 여행을 가면 현재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게 되거든요.
세 번의 죽음을 간접 체험한 뒤로 제 현생관이 바뀌었고 여행을 통해 그 가치를 잊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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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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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라고 하면 얼마 전에 소개드린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1956)'이 가장 유명하고 유명세를 떨치게 된 첫 책인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도 잘 알려져 있는데 비해 이 책은 상대적으로 명성이 덜 한 편입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 본인이 머리말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이 책은 '사랑의 기술'과 한 쌍을 이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에서는 인간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고 반대로 이 책에서는 인간의 파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다루고 있거든요. 그러한 능력의 대표적인 세 가지로 '죽음에 대한 사랑', '악성 나르시시즘', '공생적-근친상간적 고착'을 들고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들을 묶어서 '쇠퇴의 증세군'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죽음에 대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 삶에 대한 사랑, 악성 나르시시즘에 반대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 공생적-근친상간적 고착에 반대되는 것으로는 독립성을 들고 이를 묶어서 '성장의 증세군'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모두 전작인 '사랑의 기술'에서 다룬 내용이지요.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이러한 '쇠퇴의 증세군'과 '성장의 증세군'을 모두 갖고 있고 결국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방향, 즉 삶의 방향이나 죽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시간 순서 상으로는 사랑의 기술이 먼저이고 이 책을 나중에 읽어야만 하겠지만 두 권 다 읽어본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책을 먼저 읽든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왕 읽을거라면 두 권 모두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삶의 방향과 죽음의 방향, 둘 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이고 결국은 둘 중 하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어떤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읽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닫기
*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학증은 모두 하나의 본질적인 충동, 곧 다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그 사람을 우리의 의지의 무력한 대상으로 삼고, 그의 신이 되고 마음대로 그를 다루려는 충동으로 귀속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힘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킬 방도도 없이 고통을 겪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지배력은 없기 때문이다.
* 죽음에 대한 사랑의 반대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자기 도취의 반대는 사랑이고, 근친상간적 공생의 반대는 독립성과 자유다. 이러한 세 가지 태도의 증세군을 나는 성장의 증세군이라고 부른다.
* 모든 새로운 종교의 사상 개념은 서로 다르더라도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양자 택일이 있다는 사상만은 공통된 것이다. 사람은 두 가능성, 곧 퇴행의 가능성과 전진의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원초적이고 병리적인 해결로 되돌아 가거나 또는 인간성을 향해 전진하고 인간성을 발달시키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에서 실패하는 까닭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아직도 이성에 따를 만큼 자유로운 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점에, 그리고 결정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에야 비로소 선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악하거나 또는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살아가는 기술에 있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을 하고 언제 갈림길에 서서 결정을 해야 하는가를 몰랐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언제 삶이 그들에게 질문을 하며 아직도 그들이 양자택일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길을 걸을수록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는데, 그것은 흔히 첫번째로 잘못 들어선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정력과 시간을 낭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은 책이므로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국민도서관을 이용해주세요~
덧2. 문예출판사에서 2002년에 동일역자의 개정판을 내놓았기 때문에 커버가 바뀌었습니다. 혹시 구매하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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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대학교 철학 교수인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이 쓴 책입니다.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녹화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죠.
저자가 서문에서도 강조하며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책은 죽음을 다룬 여느 책들과 달리 인간이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이나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지 않습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슬픔의 장면도, 장례 산업과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죽음을 외면하려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까요?
다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죽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철학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영혼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여정을 제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과 같은 철학적인 개론서를 쓸 때는 서로 다른 다양한 주장을 소개하면서 저자 자신은 중립을 지키는 방식과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옹호하는 방식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저자는 후자를 택하겠다고 서론에서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영혼은 없다.
2. 영생이란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3. 두려움은 죽음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4.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살도 이성적,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바라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매우 상반된 것들이죠.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장.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2장. 영혼은 존재하는가
3장.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4장.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5장.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6장.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7장.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8장.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9장. 죽음은 나쁜 것인가
10장. 영원한 삶에 관하여
11장.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12장.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14장. 자살에 관하여 :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
목차만 봐도 흥미진진합니다만(나만 그런가?), 철학책이라서 그런지 당연히 이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존재한다는 이원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설사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영혼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장담을 (아직까지는) 할 수 없다는 점,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양립주의(compatibilism)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꽤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검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는 게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철학적인 전개가 복잡해지면 어김없이 손쉬운 예가 등장해 이해를 돕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장기 상담을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본질적인 주제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것인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립못한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데는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덧.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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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좋아하는 임상가 중 한 명인 Irvin D. Yalom의 고전 '실존주의 심리치료(Existential Psychotherapy, 1980)'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박하게 평가했냐 하면 번역으로 '똥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월덴 3의 심리학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은 이렇게까지 엉망인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은 2008년 8월에 소개한
'프로이드와 인간의 영혼(2001)'보다 더 형편없습니다. 그 때도 엉망진창인 번역 때문에 제가 게거품을 물었는데 이 책은 그보다 한술 더 뜹니다. 제가 웬만하면 분노를 잘 안 느끼는 편인데 이 책의 번역가는 정말 밉더군요.
아주 대놓고 직역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얄롬이 다른 저작에서 얼마나 글을 쉽게 써왔는지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얄롬이 쓴 책들은 월덴 3에서도 자주 소개했으니 한번 확인해보세요.
게다가 이 책은 실존주의적 접근을 따르는 임상가들은 반드시 봐야 하는 책인데 이런 책을 망쳐놨으니 이걸 대체 어떡해야 합니까?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는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 이 4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현재가 되어가는 미래(future-becoming-present)를 주요 시제로 다룹니다.
특히 얄롬은 죽음의 의미에 주목하면서 죽음을 불안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고 정신병리의 주된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삶의 우선권을 재조정'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바로 지금이라는 삶의 향상된 감각'을 느낍니다. 얄롬은 죽음을 직면하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치유의 힘을 깨달았던 것이죠.
죽음과 삶은 상호보완적인데 인간은 보통 죽음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억압합니다. 죽음의 육체적 성질은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사상은 우리를 치유할 수 있다고 얄롬은 보았죠. 그는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삶의 관점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더 본질적인 삶의 유형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죽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몇 안 되는 죽마고우 중 하나인 술 친구를 잃었던 경험과 제가 상담하던 내담자가 충동적으로 자살했던 경험을 하고 난 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저로서는 기존에도 실존주의적인 접근에 끌렸지만 이후로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실존주의적 접근에 대해 다룬 좋은 자료가 있으면 자주 소개하겠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필요한 책이었는데 원서로 다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께도 원서 강독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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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체험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으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찾고,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쉬웠습니다. 오히려 그걸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는 어른들의 질문이 바보같이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자라면서 세상에 물들고 영악해지면서 좋아하는 걸 마음에 물어봐도 마음은 침묵하고 어느새 팽팽 돌아가는 머리만 거기에 대답합니다. 될 수 있으면 새 것, 비싼 것, 근사해 보이는 것,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고르라고 말이죠.
그래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 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이라는 글에서 저는 태그 클라우딩을 하라고 조언 드렸습니다. 그냥 무작정 떠오르는 마음에 드는 낱말을 적어서 목록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구체화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낱말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어떡하죠? 쥐어짠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요.
그럴 때는
싫은 것(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머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설득, 협박, 회유를 할 겁니다. 하기 싫어도 미래를 생각해서 참고 억지로 하라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느냐면서요. 개무시하세요.
'머리에 드는 것'을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것'만 잡으세요.
싫은 일, 싫은 사람을 멀리하고 싫은 것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빈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제서야 내가 정말로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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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입니다. 사실은 제목 이상이죠.
제가 상담자로 일하면서 배운 모든 것들 중 교과서, 학회, 워크샵, 논문에서 배운 건 1%도 안 됩니다. 99%가 넘는 거의 대부분의 지식과 지혜는 모두 내담자에게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해답이 자신에게 숨겨져 있음을 몰랐던 내담자와 함께 떠난 내면 여행을 통해, 해답은 알고 있으나 차마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었던 내담자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떼었던 발걸음들 속에서...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된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내담자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를 도왔습니다. 그들을 통해 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의 힘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제가 체험했고 지금도 매일 체험하고 있기에 상담을 통해 사람이 변화하고 그 변화가 영속된다는 걸 믿습니다.
그러니 체계적인 교육, 집중적인 supervision, 다양한 전문적 치료법 익히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항상 상담을, 내담자의 지혜를 얻는 기회를 최우선 순위로 두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내담자에게 있습니다. 내담자를, 상담의 힘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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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목표는 기대를 내면에 깔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면 실망감을, 성공하면 잠시의 기쁨 뒤에 또 다른 허탈감을 내포하고 있어 삶에 목표를 세우고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추천하지도 않습니다만 그건 제 가치관이니 다른 분께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미 뭔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정진하는 분들이 왜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기 어려운가에 대해서 그동안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 문제는 상담을 하면서 의외로 자주 당면하는 것인데,
제 생각에 목표를 갖고 있는 분들이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목표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정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고 '왜'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 목표에 부합하는 좀 더 구체적인 목표 행동이 나오니까요.
예를 들어 은퇴하고 나서 귀농해서 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죠. 이 때 농촌에서 사는 건 목표가 아닙니다. 농촌에서 살게 된다고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순히 농촌에서 살고 싶다가 아니라 고구마 농사를 짓고 싶다. 민물 낚시를 하고 싶다처럼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목표는 실제로 연습을 해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미리 연습을 해 볼 수 있죠. 낚시를 한다든가, 주말 농장에서 고구마 농사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구체적인 목표 행동을 연습해보면 그 사이에 목표가 바뀔 수도 있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수정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달성하려고 세우는 목표는 기존의 판을 뒤집어야 하는 다소 무리한 것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이는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기 위한 변명거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평소에 여행은 전혀 다니지 않으면서 은퇴한 뒤 배우자와 세계 일주 여행을 다니겠다는 꿈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들 중 실제로 세계 여행을 다니게 될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목표는 세계 여행이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무엇을 경험할 것이냐를 연습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죠. 그런 구체적인 목표 행동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목표가 달성되는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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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궁상만화를 대표하는 최규석 작가가 2008년에 선보인 '대한민국 원주민(2008)'입니다.
최규석 작가의 작품은 월덴3에서 2009년에
'습지생태보고서(2005)'를 처음 소개드렸는데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매니아 층에서는 이미 유명한 작가입니다.
제가 최규석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한 말처럼 자신이 체험하고 위에서 소화된 것만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 그냥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말이죠. 물론 그래서 앞으로 이 작가의 행보가 기대되면서도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연배가 위인 제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신산한 삶을 살아온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서 친근하면서도 뭉클합니다.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내 아이의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고 작가가 고백한 것처럼 아무리 인간이 공감의 동물이라고는 해도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좁힐 수 없는 체험의 거리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네 형님, 누이, 부모님이 겪어온 지난한 시절을 허락을 받고 단순히 엿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좋은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섣불리 꺼내놓지 못하는(혹은 안 하는) 삶의 이야기들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작가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져서입니다.
그 무엇이 되었든 나름대로 보고 나름대로 자신의 그릇만큼 느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추천합니다. 좋은 작품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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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야생 사진가인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アラスカ 風のような物語, 2000)'를 북 크로싱합니다.
알래스카의 장엄한 풍광을 찍은 사진이 메인처럼 보이는 에세이지만 실제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의 삶에 대한 관조가 더 심금을 울리는 책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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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위험 내담자를 상담할 때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전략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 현명한 상담자라면 적어도 내담자가 능숙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아왔다고 믿게 해야 한다. 이러한 신념은 희망의 불을 지피는데 결정적이다.
-> 뒤집어 말하면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할만한 어설픈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일반적인 상담에서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덕목과는 조금 초점이 다른 말입니다.
* 당신이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을 명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담자에게 무엇이 문제라고 믿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 중요한 건 진단이 공식적이냐, 비공식적이냐, 그 진단이 정확한 것이냐가 아니라 상담자가 진단내린 것과 내담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확인하는 겁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 경험은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사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살 유가족인지의 여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상담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하라.
* 내담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라. 예를 들면 내담자가 첫 상담과 그 다음 상담의 약속 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하라.
-> 내담자가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라도 통제 권한을 갖도록 하는 건 꼭 자살 위험 내담자가 아니라도 중요합니다.
*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놔 두고 나머지를 고쳐라. 여기서 해 볼 수 있는 좋은 연습은 내담자에게 기정사실인 것과 아닌 것. 두 가지의 목록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각각의 제목 아래 기정사실이라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기정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각각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 부정적인 사고의 확산을 막고 연상의 악순환을 끊는데도 효과적입니다.
* 다음 주 계획을 물어라. 많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다음 주에 무슨 계획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치유되기 시작했다는 최고의 증거 중 하나이다. 매일 하루씩 더 살라는 것이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계획임을 명심할 것.
* 내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라. 수치심은 거의 항상 역기능적인 가족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자살하려는 사람이 죽고자 하는 소망의 원동력이 된다.
-> 수치심은 죽음의 두려움을 잊게 만들어주는 마취제와 같습니다.
* 갑작스럽게 평화로워진 내담자를 경계하라.
* 내담자가 어디에서 자살이 인생의 문제에 대해 수용할만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탐색할 것. 반드시 이 기본적인 신념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
-> 개인적으로 이걸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상담이 실패한다고, 그래서 내담자를 잃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 죽음에 대한 논리와 싸우고, 내담자의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당신은 그가 한 모든 긍정적인 진술을 잘 모아 둘 필요가 있다.
출처 : '자살 심리치료의 실제'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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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보는 내내 '대체 이 훌륭한 영화가 왜 이제서야 들어온거야?'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영화입니다. 발리우드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네요.
연기력이면 연기력, 탄탄한 시나리오면 시나리오,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발리우드의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살짝 손발이 오그라드는 군중 뮤지컬 씬(?)도 한 번 밖에 안 나오고 극중 분위기 상 꼭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등 적절히 편집해서 봐 줄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웃음 코드만 강조한 나머지 막 나가게 망가지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억지 감동 코드로만 밀어부치지 않고 웃음과 감동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했다는 겁니다.
전세계 역대 인도영화 흥행순위 1위, 타임지 선정 발리우드 영화 베스트 5, 아바타를 밀어낸 영화라는 각종 수식어구가 불필요합니다.
그냥 닥치고 봐도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성공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꿈을 좇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길고 지루한 미사여구를 하나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알 이즈 웰' 주문 하나로 정리됩니다.
올해 본 영화 뿐 아니라 제가 평생 본 영화를 모두 모아도 당연히 TOP 10에 들 정도의 수작입니다.
꼭 보세요.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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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노력이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행복이 노력이라고만 생각하니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의 방법론에만 치중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나만의 취미는 꼭 가져야 한다, 원만한 대인 관계가 행복의 핵심이니 인맥 관리를 강화해라 등등. 일종의 파랑새 찾기죠.
하지만 제가 볼 때
행복하기 위한 노력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그 노력을 기울이는 대상인 것 같습니다.
도박 중독이라는 극단적인 몰입과 탐닉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정신 분석에서 가정하듯이 도박자들이 결코 불행해지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이 보이는 자기 파괴적인 모습은 그저 드러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죠.
도박자도 행복해지기 위해 도박이라는 수단을 선택(잘못된 선택이었지만)했을 뿐이고 어떤 도박자는 도박을 하는 동안 행복감(그런 극치감을 행복감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지만)을 느꼈다고 보고하기도 합니다.
제가 볼 때 대부분의 도박 중독자는 삶의 균형과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소중한 삶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도박으로 인해 잊어버렸거나 통제감을 상실한 것이지요. 그래서 도박으로 인해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다른 삶의 영역을 회복하면, 통제력(controllability)을 갖게 되면 도박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자기 관리만 열심히 한다고,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다고 행복해질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또 다른 이름의 집착과 탐닉이니까요.
삶의 균형을 되찾고 삶의 각 영역의 비율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통제력을 회복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만족감, 그 균형을 나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는 상태, 바로 그것이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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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의 부정적 폐해와 엄청난 파급력 때문에 가족들 뿐 아니라 도박자 스스로도 도박 중독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파탄났다고만 생각하고 잃어버린 돈과 시간을 안타까워하면서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도박 중독은 인생을 망가뜨리기만 할까요?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어렵게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만들어 가족들을 재정적인 곤경에 빠지게 만들고 불신의 벽을 세워 가족들을 서로 의심하게 만들어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도박을 하기 이전에는 의식조차 못하고 살았던 소중한 많은 것들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찾는 도박자도 많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사업에 기고만장해서 돈 무서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살다가 도박에 빠져 어렵게 구한 경비업체일을 힘들게 하면서도 자신이 번 돈을 아껴서 군것질거리로 사 먹은 천 원짜리 붕어빵의 맛에 반해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 도박을 그만두고 나니 저녁에 할 일이 없어 집에 일찍 들어가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항상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피하던 딸이 돌아오는 아빠의 목에 매달리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것에 삶의 희열을 느꼈다는 사람, 도박 대신 운동 삼아 시작한 자전거의 재미에 빠져 장애 아동 돕기 모금 전국종단을 통해 도박자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환하게 웃는 사람 등등. 이 밖에도 도박 중독이 타산지석이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도박자가 무수히 많습니다.
저만 해도 학교에서 그렇게나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here & now'를 도박 중독 상담을 하면서 몸으로 깨닫고 스스로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발목 잡히고 허황된 미래를 꿈꾸며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현재를 갉아먹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도박자를 돕다 보니 현재의 소중함이 저도 모르게 삶에 배어들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도박 중독과의 전쟁에 첫 출전하는 도박자와 그 가족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돈 주고도 얻지 못할 소중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얻은 것을 축하하라고요.
건강을 잃은 사람이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듯이 도박 중독은 밉지만 도박 중독으로 인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니까요. 이건 억만금을 준다해도 살 수가 없는 깨달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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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3대 작가 중 한 명인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1976)'을 북 크로싱합니다.
자살을 단순히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막아야 할 도덕적 죄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 차원에서 조명한 책입니다. 저자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환경적인 측면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인 책입니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이 책을 지은 2년 뒤 수면제 복용으로 '자유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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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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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죽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장 아메리 (산책자, 2010년) 상세보기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부터 자살에 관한 책들이 참 많이 보였다. 자살에 대한 오래된 고전 뒤르케임의 책 말고도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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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이 고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를 갖고 살라는 어줍잖은 충고이죠. 이 말에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든 옳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관점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자살을 죄악시하는 개신교에서는 신이 주신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중세에는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신을 훼손하여 영혼을 모독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현대에도 남아있어서 지인이 자살을 하면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인의 가족들도 죄를 지은 양 극구 숨기려고만 합니다.
저는 아직도 왜 신이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었으면서도 그 책임을 지옥에 가는 것으로 속죄해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본 따 지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왜 신이 수많은 전쟁과 기아와 학대와 폭력을 방치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항상 하는 말이 '신의 뜻이기 때문'이면서 말이죠. 그 논리라면 자살도 신의 뜻의 일부 아닐까요?
자살에 대한 많은 접근은 지금까지 인간은 왜 자살을 하는가의 원인 분석이나 어떻게 하면 자살을 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가만 다루었는데 이는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종교적이 아니더라도 자살을 방조하게 되면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데 문제가 됩니다. 개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살아 있어야 사회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은 1970년대에 이미 개인의 선택권 측면에서 자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또한 늙고 병들어 죽는 자연적인 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적인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훨씬 반자연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작가 장 아메리가 쓴 책입니다.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과 함께 아우슈비츠 생존 3대 작가로 꼽히는 그는 "죽는 것만 못한 삶이라면, 치욕스러운 좌절과 냉혹한 실패 상태에서의 인생이 추한 것이라면 존엄성과 자유를 가지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자유죽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자유죽음을 좇는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현상만을 추적하는 과학적 연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 책을 썼노라고 힘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입장에 완벽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안락사의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편이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자살(저자의 표현으로는 자유죽음)'의 관점에서 깊이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원저의 내용이 난해한 것인지,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참고하세요.
덧.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이 책을 지은 2년 뒤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유죽음을 선택합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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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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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세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세대가 있습니다. 바로 386세대죠.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이 말은 1990년대부터 널리 쓰였죠. 한국전쟁이란 ‘생존공포’를 평생 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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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건희의 권세가 하늘을 찔러도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듯이(얼마 남지 않은 듯 보입니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1,000 명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쓴 책입니다.
말기 암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완화 의료입니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 의료와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 그런지 삶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고뇌가 남다르게 보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누구나 후회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도 제가 당장 죽게 된다면 전혀 후회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노라고 감히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오츠 슈이치는 그동안 완화 의료 전문의로 일을 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하는 후회에는 일정한 공통 분모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이 책을 펴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정리하면서 했던 후회가 언젠가 그 죽음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할 우리들에게도 큰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사명감에서요.
저자가 정리한 후회 25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1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14.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15.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16. 결혼을 했더라면
17. 자식이 있었더라면
18.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9.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20.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붉은 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제가 인상적으로 생각해서 갈무리를 해 둔 부분입니다.
일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후회도 있고 굉장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후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후회든 이승을 떠나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힘들게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면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요?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책이 그 해답을 일러줄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 볼 여지를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듯이 죽음은 살아 있을 때 그 의미를 새겨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별 3개로 평가한 이유는 이 책에 삽입된 사진이 내용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흑백 사진을 유난히 많이 삽입했던데 의도는 대충 짐작하겠습니다만 이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거든요. 책을 읽는 집중력만 떨어뜨리더군요.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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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월덴 3의 새 책 북 크로싱은 장영희 교수의 유고 산문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입니다.
이 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삶이 힘들고, 용기가 없고, 기적이 필요한 분들에게 힘이 되는 책입니다. 저는 보통 에세이는 소장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두고두고 보고 싶어서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제도 안내에 있는 내용대로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이 북 크로싱은 월덴 3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새 책 북 크로싱이므로 맨 처음 신청하신 분은 새 책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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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청자 명단(2011년 2월 11일 13:52 현재)
- 혜란님(독서 완료)
- 궁금님(독서 완료)
- Hzin님(독서 완료)
- ojy님(독서 완료)
- cam님 :
연락 두절
- 월덴지기(보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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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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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장영희 (샘터사, 2009년) 상세보기 이번에 읽은 책은 에세이 입니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게 강-_-렬한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되서 읽기 참 편..
삶(교육) 속의 변하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교사의 길이라 생각하는 조재도 선생님의 교육 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2007)'를 북 크로싱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는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그래도 아직 포기는 이르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위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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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이자 중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교육 에세이입니다.
1989년 전교조 결성에 몸담았다가 해직되어 5년 만에 복직을 한 뒤로 아이들의 인성 함양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조재도 선생님이 쓴 책이죠.
예전에 제가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심한 경쟁 속에서 사는 아이들,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성적표에 그야말로 목 매고 사는 아이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눈물도 어른의 눈물만큼 짜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 그들도 외롭고 상처받고 생활이 고단하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삶(교육)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변화에 대한 흐름이야 아이들이 몸소 체득해 가는 것이니 교사란 학생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일깨움을 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는 선생님이 넘치는 학교라면 그래도 이 힘든 학창 생활을 이겨나갈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기운내지 않을까요?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참담한 현실에 기운 빠져도 아이들만이 희망이라는 신념으로 버티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요.
얘들아 힘내라!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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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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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는 편입니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프로이트의 '일과 사랑'은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칼로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 떨어지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과 사랑이 하나라는 말도 아니며 일을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며 사랑을 일처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랑과 일의 교집합 영역이 생각보다 상당히 클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상당히 축복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신의 일에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혹은 휴식처를 찾기 위해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읽기 전보다 더 한 실망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사랑'의 영역과 '일'의 영역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이 있더군요. 요즘 우리는 으레 사랑과 결혼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또 일의 영역에서도 돈과 만족을 동시에 얻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 대부분이 사랑과 일에서 빈번히 위기를 겪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일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아닐겁니다.
다만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현상과 사물을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재조명하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와~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가 있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도 알랭 드 보통은 새로운 시각으로 '일'에 대해 조명합니다. 물론 '비스킷 공장', '송전 공학', '로켓 과학' 등 특이한 직업과 일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림', '회계', '물류'처럼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직군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찰의 틀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전작들에 비해 뽀쓰가 부족하기 때문에 별 3개로 평가했습니다만 4장에 나오는 '직업 상담' 분야 때문에 별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이 책에서 영국의 직업 상담사로 나오는 로버트 시먼스는 심리학이 직업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상담자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더군요. 솔직히 그가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잠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학위를 얻기도 전에, 가족을 꾸리기 오래전에, 집을 사기도 전에, 법률회사의 정상에 올라서기 오래전에 그런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4장이야말로 이 책에서 우리가 바랬던 답의 힌트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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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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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광활한 사하라 사막 중 말리 북부에는 유목민인 투아레그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모하(자유인)'라 부릅니다. 무엇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바람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다카르 랠리를 취재하러 온 프랑스 여기자가 자신의 가방에서 떨어진 책을, 주워 준 투아레그족 아이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 아이가 이 '사막별 여행자'를 쓴 무사 앗사리드였고, 그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습니다.
선물로 받은 '어린 왕자'를 읽기 위해 매일 30km를 걸어 학교에 다녀 글을 익힌 무사는 마침내 책을 읽고 난 뒤 어린 왕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사막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텍쥐페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이미 작고했지만) 프랑스로 향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살이 되어 프랑스 땅을 밟은 무사는 엄청난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책은 투아레그족인 저자가 문명 세계와 접하게 되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담담하게 기록한 내용입니다. 옳고 그름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현존의 삶을 몸으로 살아가는 투아레그족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 책을 읽고만 있어도 사막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봅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소유해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 34p'문명 국가들에서는 자기 존재의 유일함이 지니는 가치 안에서 비상하는 열망이 아니라,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이상'이라 부른다. 왜 그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빛을 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이미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44p'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이라면 삶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다. 익은 열매는 나이가 없다. 다양한 과정을 경험했을 뿐. 숫자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란 햇수에 달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나이에 연연해하면서 또한 자기 나이를 부정한다' - 164p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투아레그족 사람인 저자가 던지는 생각의 꼭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의 두께도 두껍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삽화가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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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저는 한 순간의 경험이 인생을 바꾼다는 건 소설 또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조금은 그렇지만 예전에는 냉소 그 자체였기에, 순간의 경험을 통해 영구적인 변화가 가능할거라고는 추호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병원에서 수련하고 있던 당시 저는 매우 힘겨워 하고 있었습니다. 전공자들도 헉헉대는 살인적인 수련 강도에 압사당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은 없었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도 힘겨운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적성에 대한 고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었고, 능력에 대한 고민은 그보다 열배는 더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삶이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도 별 차이 없이 계속 될거라는 암울한 예상이 저를 옥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우연히, 정말 아주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왜 시선이 갔는지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원래 제가 읽기로 되어 있던 것처럼 어느 순간 제 손에 놓여 있더군요.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가 지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Du Bon Usage De La Lenteur)'라는 책이었습니다. 작가가 꽤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아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피에르 쌍소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이 책을 제외하고는 피에르 쌍소의 다른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이상하죠?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람의 책을 다른 것은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니...
어쨌거나 이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한 순간, 정말 무협소설에서 '일맥타통'했다고 하는 그 체험을 했습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찌릿찌릿하고, 머리가 뻥 뚫린 것처럼 열리면서 이 책 안에 있는 내용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계속 울었습니다.
'이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알지 못했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었던 삶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걸 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음미하는 삶, 경험하는 삶, 소홀히 하지 않는 삶, 누리는 삶, 베푸는 삶.... 그것에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사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구석구석에 배어든 깨달음이니까요)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살 것을 결심했습니다. 아니 이 책을 읽은 그 순간부터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병원에서 저를 알던 사람들은 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에서 수련받던 저는 아직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병원 생활 이전의 저를 잘 알던 사람들은 지금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하더군요. 너무 달라진 모습에 말이죠.
저는 이미 몇 년 째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100%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그런 삶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것들을 제외하면 별로 원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단지 이 책만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유일한 원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버려진 담배 꽁초가 항상 산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듯이 아마도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들이 딱 들어맞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불씨는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누구에게나 찰나의 기회, 찰나의 인연, 찰나의 경험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한 순간도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온몸과 마음을 열고 인생을 경험해 나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기적같은 만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께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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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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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둘이다. 불혹이 넘었다. 이제 철들 나이도 되었건만 여전히 어리석은 면이 많다. 그나마 옛 친구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많이 놀라곤 한다. 철딱서니 없던 내가 현재의 모습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