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모님들의 특징 중 하나는 '기승전 공부'입니다. 어떠한 문제로 왔든 상담을 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부모용 설문지만 봐도 주 호소나 증상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 부모가 없을 정도지요. 그래서 ADHD, 우울 장애, 불안 장애, 틱 장애 등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공부를 열심히(사실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가 꼭 따라 붙습니다. 이 정도 되면 부모님들이 공부 중독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평가를 하고 난 뒤 해석 상담을 할 때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오로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우리 아이의 지능(IQ)이 얼마인지입니다. 기준은 또 엄청나게 높아서 부모님들이 그나마 안심하는 지능의 마지노 선은 120입니다. 이 밑에 해당하는 지능을 이야기하면 표정이 어두워지고 간혹 90대로 나오기라도 하면 평균 수준의 지극히 정상적인 지능인데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 합니다.
그래서 해석 상담을 진행하는 임상가들은 인지 기능 영역을 이야기할 때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요. 어떻게 해야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오해를 사지 않는 해석 상담이 가능한지 정리해 봤습니다.
1. IQ에 대한 간략한 orientation을 우선적으로 제공할 것
: IQ의 평균이 100이고 표준 편차가 15라서 플러스/마이너스 1 표준 편차가 85~115에 해당하고 이 범위가 전체의 68%를 차지한다는 것, 부모님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120이라는 지능이 사실은 굉장히 드물다는 것(130이 상위 2%에 해당하니까요), 100이하의 지능도 통계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의 지적 능력이라는 것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2. IQ보다 언어성/동작성 지능의 차이, 소검사 편차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할 것
: 전체 지능은 수검자의 대략적인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 뿐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이 많죠. 요즘은 Wechsler 지능 검사도 반구 국재화 이론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언어성, 동작성 지능의 유의미한 차이가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언어성, 동작성 지능이라는 게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시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그 차이가 유의미할 때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10~15개에 이르는 소검사 편차입니다. 동일한 지능(예를 들어 110)이라고 해도 소검사가 고른 분포를 보이는 것과 편차가 큰 것과는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실제 인지 기능을 발휘하는 면에서도 잠재력보다는 기능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강점과 약점이 되는 기능을 중심으로 해석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능이 높으냐 낮으냐 보다는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보강해야 할 부분인지를 일러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교육적이니까요.
3. 아동/청소년의 호소 문제(chief complaint)와 인지 기능의 관계를 설명할 것
: 많은 부모님들이 IQ는 불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심리평가를 실시한 아동/청소년이 어떤 심리적 문제나 정신 장애로 고통을 받는 경우 그런 영향으로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치료가 되면 어떤 부분이 회복되는지 등등을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불안 수준이 높은 아동/청소년의 경우 주의력 관련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불안을 적절히 통제하게 되면 병전 수준으로 주의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짚어서 알려줄 수 있습니다.
부모를 대상으로 한 해석 상담은 education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고 특히 IQ가 불변이 아니라는 점, IQ보다는 언어성/동작성 기능의 차이, 그보다는 소검사 편차에 의한 인지 기능의 비효율성, 강점과 약점 분석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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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많지만 우리나라에 한정하여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만 꼽아보라면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기승전'공부'이기 때문
상담을 하면서 많은 부모들을 만나는데 자녀의 문제가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 부모가 원하는 건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겁니다. 부모의 나이, 학력, 직업 불문하고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습니다. 겉으로는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학교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면 한다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깔대기처럼 공부로 모아집니다. 공부를 꼴지해도 좋으니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즐겁게 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모의 자녀는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의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테니 앞으로도 저를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은 돈, 성공, 경쟁과 같은 주제로 흐르게 되고 결국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에 이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학원, 학교, 수업, 숙제, 진도, 진학처럼 공부와 관련있는 단어를 빼고 한번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아마 할 이야기가 거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완전 초보들입니다. 정작 본인들부터 공부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본 경험이 많지 않고,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그런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백지 상태니까요.
둘째.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
부모들이 심하게 착각하는 점 중 하나는 자녀보다 자신이 세상을 오래 살았고 경험이 더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면 삶의 지혜에서 나온 조언을 자녀들이 귀담아 들을거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미안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조금만 머리가 굵어져도 어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행동만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 아이들이 "네,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엄마 아빠나 실천하세요. 말만 그럴싸 하게 늘어놓지 말고요"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빨간 불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지 않는지, 식당 종업원을 정중하게 대하는지 등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따라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인류의 지혜가 들어있으니 우리 아이가 책을 가까이 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리 책을 안 읽으려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한탄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불평을 하는 부모 중에 본인이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말로는 인류의 보고라면서 책을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은 책을 멀리하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아이들이 책을 읽을리 만무합니다. 비슷한 예로는 부모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보고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가지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강압도 있죠.
아이가 어떤 좋은 습관을 들였으면 하고 기대하려면 그보다 먼저 부모 자신이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큰 이유를 들었지만 저는 기저에 더 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결과중심주의인데 이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지 부모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사회, 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결과를 따지고 평가하는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중심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입니다.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은 지속성을 앗아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결과중심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과에 타격을 줍니다.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건 간단합니다. 비교와 평가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참 잘했네", "지난 번에 비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좋아졌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겠다" 등의 말은 모두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한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잘한 상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거든요. 어른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결과중심주의 용어로는 '가성비'가 있습니다.
반대로 과정중심주의는 과정 중에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느냐에 초점을 둡니다. "해 보니 어땠어?", "즐거웠니?", "재미있었니?"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죠. 평소에 자녀와 상호작용할 때 이런 말들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마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부모가 공감하지만 결과중심주의 시스템 하에서 과정의 의미를 추가로 부여하는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결과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잘한다", "못한다"는 말 자체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시면 "잘한다", "못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자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결과중심주의 시스템에서 자란 부모와 대화를 하게 되면 결국 내재적인 동기와 호기심이 말살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정확하게는 불길함을 느껴서)입니다. 심리평가를 할 때마다 문장완성검사에서 "이번 방학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좀 더 노는 것".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친구와 노는 것"이라고 쓰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녀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은 부모는 1) 잘했다, 못했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결과중심주의와 적극적으로 싸우고, 2) 공부를 제외한 다른 주제에 스스로 관심을 갖고, 3) 스스로 이를 체화하고 습관화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부모는 미안하지만 자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를 충족하는 부모의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더 암울한 건 상황이 나아질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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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되실텐데 (부모가 보기에) 통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만 빠져 있는 자식을 답답해 하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식이 게임을 그만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일텐데요.
"그놈의 쓸데없는 게임 좀 집어치고 이제 공부 좀 해라"
"그렇게 공부 안 해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냐"
"엄마 친구 아들은 지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잘만 한다던"
"공부란 게 다 때가 있는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빠 말 들어라"
등등의 잔소리를 하기 쉽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잔소리들은 긍정적 or 부정적 내용, 비교, 협박, 미래 예견 등 서로 다른 내용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부'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이죠.
부모의 의도가 자식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니 공부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하실 수 있지만 도리어 말하고 싶은 의도가 들어간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그 말이 의도하는 효과는 물 건너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노골적인 의도가 실린 단어는 반복적인 사전 경험에 의해 이미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게끔 조건화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부라는 낱말은 듣기만 해도 짜증, 혐오감,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자동으로 유발됩니다. 그러니 '공부'라는 단어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이 아무리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해도 차단되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녀가 공부를 하게 만들고 싶을수록 '공부'라는 단어를 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요새 애들 뭐 좋아하냐?"
"쉬는 시간에는 주로 뭐 하니?"
"직장이 아닌 직업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는데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차근차근 생각해봐라"
"맨날맨날 놀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위의 말만 들으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단어가 빠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 말을 하는 부모의 의도는 결국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요.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 끌고 나가려면 '공부'라는 단어가 만든 차단벽을 일단 우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단어가 부모가 아닌 자녀의 입에서 절로 나올 수 있도록, '공부'가 낳는 두려움, 불안 등의 심리적 불편감을 스스로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만 빼고 말하는 역발상의 전략이 가끔은 더 깊은 수준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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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부한 건 어른이 되고 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으니 기술을 배우거나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만
밖에서 따로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동/청소년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꽤 많죠.
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하는 전문 상담 교사 뿐 아니라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들과 입씨름 하는 부모님들도 많이 계실겁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배운 미분, 적분 공식을 실생활에서 그대로 쓰지 않고, 국사 시간에 열심히 외웠던 년도를 직장에서 활용하는 것도 아니니 그들의 항변이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죠.
자신의 적성에 맞고 흥미도 있는 진로를 탐색하는 것과는 별도로 학교 공부가 그렇게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비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지식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몰게 되는 차는 어릴 때는 페달을 밟아서 가는 자그마한 장난감 자동차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크고 복잡한 조작을 요하는 차로 갈아타게 됩니다.
한편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기름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름을 모으듯 단순한 지식을 그대로 외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내가 타는 차가 바뀌면서 그런 단순한 기름만으로는 차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영어 단어는 기름이지만 어순에 맞게 배열해서 발음해야 문장이 되고, 정확한 문장을 말해야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문장의 기본은 단어이니 단어를 외우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미분, 적분 공식은 기름이지만 미분을 적용하는 문제를 찾고, 어떤 순서로 대입해서 어떻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그 논리적인 구조를 배우기 위해 미분 공식을 외우는 겁니다. 그런 규칙을 익히기 위해서는 공식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죠.
학교 시험에서 정답을 고르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의 발생 년도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현재에 적용하고 교훈을 얻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차를 운전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한 기름일 뿐 아니라 그 기름을 어떤 차의 어떤 종류의 엔진에 넣어야 하는지, 그 차를 운전하기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익히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전혀 쓸모없는 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어떠한 마음 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군 생활이 제 인생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쓴 글에서 이야기한 것도 사실 동일한 맥락입니다.
기름을 모으는 걸 소홀히 하면 나중에 차에 넣을 기름이 없고 기름만 모으면 나중에 모은 기름을 어느 차에 넣고 어떻게 운전해야 할 지 몰라 헤매야 할 겁니다. 그러니 기름도 모으고 차를 운전하는지 그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고 인생 공부도 중요합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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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평가 불안으로 인한 부적응이 의심되어 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아동의 부모를 면담할 때 자신들은 절대로 공부하라고 push하지 않는다며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학원도 굳이 보내려고 하지 않으며 특별히 사교육도 강요하지 않는다면서요.
이들의 MMPI-2 결과도 신뢰로운 걸 보면 실제로 겉으로는 별다른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겉으로는 공부는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필요할 때 말하면 그 때 학원도 보내주겠다,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공부를 못하면 결국은 실패자가 된다든가,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할 수 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자신들의 학업 기대를 감추면서 공부와 상관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허용하지 않는 부모라면 이런 부모가 자녀의 정신건강에는 훨씬 더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런
double message는 자녀에게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차단시켜 더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부모님은 말로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지만 속으로는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니 공부로 인정받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는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둘째. single message만 주는 부모는 차라리 simple합니다. 부모를 포기하거나 미워하거나 받아들이는 식으로 선택하는데 갈등이 덜하니까요(쉽기만 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double message를 주는 부모는 자녀를 양가 갈등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런 고마운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해.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니 공부를 잘 못하는 건 오로지 내 잘못이야'라고 본인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니 아동의 심리평가 결과에서 심한 불안이 드러나고 있는데 부모가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다고 보고할 때 이런 discrepancy를 위에서 말씀드린 틀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기대하는 표리부동한 부모인지 말이죠. 제 경험으로는 학력 수준(학벌)이 높을수록 이런 부모가 확률적으로 훨씬 더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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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을 대하는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당면하면서 동시에 좌절감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데 어른들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억압적이고 강요적인 양육 방식에 익숙한 우리네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첫째,
당연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냉면을 먹어봐야 냉면이 맛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듯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경험하고 그 결과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구분할 수 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부모가 허락해 준 적이 별로 없으니 경험 자체가 없고 그래서
정말로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
몇 번의 사소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습관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네 사회는 원초적인 즐거움보다는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해서 어떠한 경험이 즐거움을 주는지, 그래서 만족스러움을 경험했는지보다는 경험을 통해 뭘 얻었는지, 공부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만을 따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봉사 활동을 경험했다면 그 활동을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즐거움을 발견했는지 함께 찾아보기보다는 자원 봉사 점수 몇 점을 획득했는지, 자원 봉사 과정 중에 다른 아이에 비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에만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활동 자체를 꺼리게 되죠.
셋째,
두 번째 이유와 연관이 있는 이유인데 남들의 시선에 예민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부모의 강요에 의해 예, 체능 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인데 만약 첼로를 다룬다면 악기를 연주해 스스로 어떤 음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얻어야 하는데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해서 또는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해야 비싼 돈을 들여 악기를 배울 수 있게 해 준 부모님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첼로를 배우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몸에 배게 되면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러한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뭔가 본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그마한 활동이라도 경험하게 하고 그것이 쌓이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게 될텐데 문제는 아이들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즉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고 성공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하면 부모의 기대는 적당히 충족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잘 모르는 것, 성과가 양적으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은 아예 시도조차 않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부모부터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소용이 없어 보이지만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함으로서 행복해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그리고 그러한 본보기가 충분히 누적되어 아이들의 신뢰를 얻게 되는 시점까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모는 그렇게 안 하면서 마치 시혜라도 베푸는 양,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 봐, 공부에 조금 소홀해진다고 해도 당분간 참아줄테니까"와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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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창시자(?)인 고미숙 선생이 쓴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2007)'을 북 크로싱합니다.
공부라는 말을 들으면 즐거운 상상보다는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는 작금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공부가 얼마나 즐겁고 좋은 것인지,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부가 결국은 인생의 문제를 격파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임을 열심히 설명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책장도 쉽게 넘어가지만 '수유+너머'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신성이 좀 떨어지는 책입니다. 고미숙 선생이 쓴 책이나 수유+너머에서 나온 책을 이미 읽은 분들에게는 추천하기가 좀 어렵겠습니다.
반대로 공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충분한 청량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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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솔직히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누가 쓴 책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또 어떤 잡놈이 공부 잘하는 법이라는 헛수작으로 애꿎은 아이들 잡으려고 책 썼구만'이라고 생각하고는 들춰보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 선생이 쓴 책이더군요(이런 실례가~).
이 책은 제가 착각한 것처럼 공부를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고 진정한 공부가 삶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알리는 책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고미숙 선생과 연구 공간 수유+너머를 아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질문의 크기가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든가, '이념이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든가 하는 핵심을 찌르는 화두를 던지는 솜씨는 여전하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 이미 충분히 써 먹었던 코뮌과 노마디즘, 밥의 중요성을 또 다시 울궈먹고 있고 이제는 열정으로 생각해주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지는 과장스러운 문체도 눈에 거슬립니다.
자신이 뜻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에게 체화되어 변화를 일으키려면 자발적인 내적 동기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수유+너머에 호의적인 저에게조차 거슬리게 느껴진다면 과연 어떤 독자가 고미숙 선생이 원하는 공부가 곧 삶이요, 삶이 곧 공부인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을 지 심히 걱정됩니다.
자본주의에 침잠되어 공부 본연의 즐거움과 의미를 상실한 현 세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눈은 여전히 발군이나 방법 선택이 좀 에러입니다.
다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설득력있는 갈파와 모든 공부는 나눔으로 완성된다는 견해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고미숙 선생은 이렇게 어정쩡한 stance를 취하는 책보다 좀 더 내공있는 책을 써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덧. 그리고 화보집도 아닌데 반딱반딱하는 재질로 무장해놓고는 이 얇은 책 값으로 11,900 원이나 받고 있습니다. 그린비 출판사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입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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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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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공부하기김해완 (수유+너머)보통 공부는 머리로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다닐 때도 체육시간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란 머리가 좋은 사람, 즉..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이 말은 단순히 상담자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의외의 돌발 상황이 수도 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상담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빨리 떠나는 사람을 제외하고 상담자로 끝까지 남아 있으려면 계속 직면하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또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래서 스스로 이런 저런 관련 서적과 자료를 찾아보게 됩니다.
학교에 있을 때에는 그저 주어지는 대로, 강의를 따라가느라 바빠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구분도 못하면서 그저 지식을 머릿속에 주워담느라고 바빴지만 현장에서 항상 실전에 투입되는 상담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눈에 탁탁 들어옵니다. 일종의 '현장눈'이 생겼달까요
그래서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새로운 책을 읽어도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것은 물론 새롭게 습득한 지식을 어떻게 현장에 응용할까 고민하기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제 상담에 적용해 체화한 지식은 책에 씌여진 것과는 다른 형태와 색깔을 갖춘 나만의 노하우가 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실제로 하는 분들은 학교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담자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계발을 위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부 자체가 잘 될 뿐 아니라 이를 실제 상담 장면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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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는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건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공부를 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는 건지 인과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뭐 그렇다고 활자 중독은 아니어서 종이 냄새를 맡아가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책도 좋아하지만 PDA를 사용해 언제 어디서나 e-book의 형태로 읽을 수 있는 간편함도 사랑합니다. 셀빅이나
아이비를 사용할 때에는 e-book으로도 꽤 많은 책을 읽었죠. 지금도 모아놓은 e-book 파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언제나 손을 댈 수 있을런지...).
월덴 3의 북 크로싱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가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느냐고 제게 물어보시는데 원래 책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기도 하고 현재는 출, 퇴근 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에 육박하는데다 짜투리 시간에는 습관적으로 책을 들고 있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간다고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이란 것이 자꾸 읽으면 점점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예상보다 많은 책을 읽게 됩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질문도 많은데 저는 대부분 그냥 감으로 선택합니다. 느낌이 좋아보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구매해요.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북 크로싱을 해서 그 책을 좋아하는 분께 보내면 되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덜었죠.
책은 꽤 다양한 걸 읽는 편인데 구분을 해 보면 주로 심리학 분야의 책, 영성과 관련된 책, 여행 에세이나 가이드 북, 사진 관련 책들, 소설류, 루소나 소로우 스타일의 책들 그리고 매주 받아보는 시사IN의 북 리뷰에서 사회, 환경, 노동, 경제 분야의 추천 도서를 유심히 보고 선택합니다.
시사IN을 정기구독하기 전에는 심리학 책을 제외하면 주로 신변잡기 식의 소비 성향 책이 많았는데 시사IN 덕분에 지구온난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정당 정치에 관련된 내용까지로 독서 분야를 넓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론가의 서평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특히 출판사의 서평은 전혀 참고하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출판사의 로비가 작동한다고 믿기 때문에 일부러 피하는 편(시크릿같은 책은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이고 나중에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갔을 때 읽으려고 놔두는 편입니다. 믿을만한 블로거의 서평을 보고 찜 해 두었다가 구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풍림화산님이나
혜란님 블로그에 올라오는 포스트를 꼼꼼히 챙겨봅니다.
온라인 서점 중에서는
YES24를 이용(나름 플래티넘 회원이라능~)하는데 관심이 있는 책은 북 카트에 넣어두었다가 5만 원 단위로 몰아서 구입(그래야 2천 원이 더 적립되거든요 ^^)합니다. 돈이 없는 학생 때에는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거나 e-book을 활용하기도 하고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제본을 하곤 했는데 요새는 도서 대여점을 가끔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책이든 음반이든 대부분 구입을 합니다. 이럴 때 돈을 버는 것이 좋은 거라고 느낍니다.
몇 분에게는 따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지만 제 꿈 중 하나가 자그마한 북카페를 운영하는 것(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이라서 자금도 따로 모으고 있고 북 크로싱이나 도서 관련 블로거와 유대 관계를 맺는 것도 다 그 꿈을 위해서지요. 기왕 북카페를 할 거면 심리학 관련 북카페로 차별화할 생각도 있습니다. 심리학 관련 책을 주로 다루고, 심리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독서 모임, 심리학 관련 전문가 초청 강연 등도 하고 싶고요.
책을 읽는 방법이라고 뭉뚱그려 제목을 달았지만 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게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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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장정일은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간에 겉으로 보기에 상당한 질곡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여호화의 증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고, 19세 때에는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소년원에 다녀왔으며 아버지를 증오한 나머지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식을 낳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결혼을 했으며 동정을 잃으면 눈이 멀어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보지 못하게 될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치열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치열한 삶과 사유, 그리고 독서열은 좋아합니다.
이 책은 그가 읽어온 책들을 꼭지별로 정리한 책입니다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낯뜨거운 부제는 아마도 출판사에서 홍보 목적으로 붙인 것 같고요.
이 책에서 장정일은 하나의 화두에 대해 관련있는 책을 깊이있게 읽으면서 파 내려가는 독서법을 보여줍니다. 저는 최근에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기 위해 일부러 비슷한 류의 책이 연결되지 않도록 폭넓게 읽고 있는데 이것이 넓이를 강조하는 독서라면 장정일의 그것은 깊이를 강조하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에 대한 YES24 리뷰(특히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를 읽어보면 이 책의 내용이 현실에 와 닿지 않는 장정일의 현학놀음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모든 꼭지를 하나하나 씹을 생각은 하면서도 작자 서문은 귀찮아서 안 읽었나 봅니다. 장정일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고 자신이 시작해서 끝을 못 맺으면 다른 궁금한 사람이 또 이어서 하고 그러다 지치면 다시 자기가 받아서 할 것이라고 말헀는데 장정일이 공부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부분은 눈에 거슬리면서도 자신이 받아서 공부할 생각은 없나 보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생각해 볼 거리를 상당히 많이 얻었습니다.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생각도 못했던 책 여러 권을 추가했고요. 제가 이어받아서 공부할 수준은 안 되지만 나름대로 큰 소득이었습니다.
현재의 제 지적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진도는 참 안 나갔지만 공부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열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은 한번 쯤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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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당시만 해도 대학 입학에 있어서 적성과 흥미는 그다지 고려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모의고사 점수에 의해 지원 가능한 대학과 학과의 커트라인이 정해졌고 그 가운데에서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교보다 학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입학한 이후 정말 행복했습니다. 수학을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심리학과에서 확률과 통계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빼놓고는 제가 원했던 심리학을 원없이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에도 참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을 해 보면 그 때는 진정한 재미로만 공부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는 가운데에서 학점과 진로의 부담을 안고 공부를 했으니까요. 열심히도 했고, 치열하게도 했지만 여유로운 가운데에서 생기는 진정한 학문의 재미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고 어느 정도 틀을 갖춘 요즈음 공부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 때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알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가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더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닌, 그냥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순수한 학문의 동기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치열하게 공부를 할 때에도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상당히 괴로울 겁니다. 재미는 중요하죠. 하지만 뭔가 무게의 쏠림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학문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치열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지금 공부가 재미없다고, 힘들다고 느끼는 분들은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미래의 어느 날을 기대하면서 젊음을 불살라보기 바랍니다.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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